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사랑을 말했다(9) - 카파르 2026 0920 창6:14

창세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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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6:14 NKRV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서론

창세기를 펼쳐 읽다 보면 인간의 역사를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도 노아 시대에 있었던 홍수 사건은 특별히 강렬합니다. 인간의 죄악이 땅에 가득했고, 하나님께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한복판에서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방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Genesis 6:14 NKRV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여기에 재미있는 히브리어 언어유희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그 방주에 코페르, 곧 역청을 바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르다’라는 동사 역시 카파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소리로 따라가 보면 고페르, 코페르, 카파르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비슷한 음이 반복되는 일종의 언어 유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말장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을 묵상해 보면 놀라운 복음의 그림 하나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1. 방주는 물 위에 있지만, 물은 방주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방주는 물 위를 떠다니는 배입니다. 그런데 나무로 만든 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물이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입니다. 한두 방울쯤이야 닦아내면 됩니다. 그런데 물이 계속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물 위에 떠 있어야 할 배 안에 물이 차기 시작하고, 결국 배는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의 안팎에 역청을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물이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도 다녀야 하고, 학교도 가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공기를 마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배는 물 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죄와 욕망과 가치관이 우리의 영혼 안으로 밀려들어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벌지만 돈이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공을 추구할 수 있지만 성공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사람의 인정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도 방수처리가 필요합니다.
방주가 방수가 되어야 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방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의 삶에 바르는 역청은 무엇입니까?

2. 우리의 역청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

창세기 6장 14절에서 역청을 바른다는 말에 사용된 동사가 카파르입니다. 그리고 역청은 코페르라고 부릅니다.
흥미롭게도 구약성경에서 죄를 덮고 속죄한다는 개념을 표현할 때에도 바로 이 כפר, 카파르 계열의 어근이 사용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욤 키푸르’, 곧 속죄일의 ‘키푸르’ 역시 같은 어근의 언어 세계 안에 있습니다.
물론 창세기 6장의 역청 자체가 곧 예수님의 속죄를 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빛 아래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복음의 그림을 발견하게 됩니다.
방주를 살려낸 것은 나무의 힘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나무의 틈을 덮은 역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려낸 것도 우리의 의로움이나 노력이나 착함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죄 가운데에서 살리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구약의 제사에서는 죄를 속하기 위해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흘려야 할 피를 대신 흘리셨고, 우리가 담당해야 할 죄의 값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속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역청을 바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매일 새로운 종교적 행위를 더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받은 사람이다.”
이 복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는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돌아갈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 복음이 우리 영혼의 안팎에 발라져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물결이 몰려와도 가라앉지 않습니다.
유혹이 찾아와도 다시 일어납니다. 실패를 경험해도 다시 일어납니다. 사람이 나를 흔들어도 다시 중심을 붙잡습니다.
왜입니까?
내가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삶의 틈을 그리스도의 은혜가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주가 방수가 되듯 우리의 영혼도 복음으로 방수가 되는 것입니다.

3. 구별된 삶은 세상을 피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삶입니다

성경에는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자신을 지키려 애썼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언어를 배웠고, 바벨론의 교육을 받았으며, 바벨론의 행정조직 안에서 일했습니다. 세상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는 분명한 경계가 있었습니다. 왕의 명령이라 해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 6장은 말합니다. 그가 자신을 고발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 표현이 참 좋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거창한 행동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대단한 믿음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도 그냥 평소처럼 하나님 앞에 선 것입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구별되었다는 것은 사람들을 미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을 거부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바벨론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타협하지 않고 더 철저하게 자신의 영혼에 역청을 발랐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했고, 결박과 옥에 갇혔으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놀라운 말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세상을 피해 도망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았기에 세상이 그들의 믿음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합니다.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이 규칙을 끝없이 늘려놓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먹어라, 저것은 먹지 마라. 이것은 해라, 저것은 하지 마라.
그렇게 규칙만 늘어놓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믿음은 복음이 아니라 자기 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과 달라.” “나는 이것을 지키고 있어.” “나는 저 사람보다 거룩해.”
이것은 방수처리가 아니라 벽을 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함은 그런 거룩함이 아닙니다. 진정한 구별은 세상 사람들과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같이 해볼까요? 나는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함께 살아가지만 세상의 가치가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웃고 일하고 사랑하고 섬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4. 이제 역청이 발린 방주로 살아갑시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새가족교육을 마치고 우리 교회 공동체에 편입되는 분들을 축복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 명단에 이름 하나를 더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등록한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람은 혼자 항해하도록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예배하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서로를 붙잡아주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항해하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방주 밖에는 여전히 파도가 칩니다. 우리의 삶에도 파도가 올 것입니다.
사업의 문제가 올 수도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자녀 때문에 눈물 흘리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관계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이 흔들리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파도가 친다고 방주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파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파도가 아니라 방주 안에 무엇이 발라져 있는가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 삶의 안팎을 덮고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한빛성도 여러분, 그리고 새가족 수료자 여러분,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놓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매일 아침 다시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오.
“나는 주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의 가정에 역청을 바릅시다.
우리의 말에 역청을 바릅시다.
우리의 인간관계에 역청을 바릅시다.
우리의 돈과 시간에 역청을 바릅시다.
우리의 눈과 생각, 행동에도 역청을 바릅시다.
세상의 물결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도 그 물이 우리 영혼까지 점령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세상 속에서 살아가되 세상이 내 안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성도들의 인생에는 이미 십자가의 역청이 발라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죄를 당신의 피로 덮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파도가 높아져도 항해하십시오. 바람이 거세져도 믿음으로 걸어가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오.
방주는 방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날마다 복음으로 방수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은혜가 우리의 삶 안팎을 덮고, 세상의 어떤 물결 속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우리 모두를 성령께서 끝까지 붙드시고 도우실 줄 믿습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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