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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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십자가 공동체

본문: 로마서 15장 1-4절

찬송: 303장 날 위하여 십자가의

우리는 평생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나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자녀를 키우고 부모를 모시느라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과 편안함은 늘 뒤로 미루며 묵묵히 견뎌왔다. 그런데 이토록 가족을 위해 헌신적인 우리가 가끔 낯선 사람들 앞이나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매우 차갑고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 때가 있다. 저 사람의 행동은 분명히 틀렸고, 교회 일은 저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며 상대방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덮어주기보다 매사에 시비를 가리고 엄격하게 정죄하는 일에 소중한 에너지를 쏟아붓곤 한다. 우리의 길고 깊은 신앙 연륜이 연약한 자를 넉넉하게 품어내는 따뜻하고 넓은 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남의 허물을 깊숙이 찌르는 차가운 무기가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순간이다.
바울은 오늘 기록된 본문을 통해 참된 믿음의 강함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일러준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롬 15:1) 말씀 속에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온전히 담당한다는 것은 곁에서 그저 속으로 꾹 참아주는 가벼운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무겁고 버거운 짐을 내 어깨 위로 직접 옮겨 매는 대단히 적극적인 수고를 뜻한다. 구원과 직결된 핵심 진리가 아니라면 사소한 방식의 차이 앞에서는 누가 무조건 옳은가 증명하려는 소모적인 싸움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롬 15:2) 매번 똑똑하게 시비만 가리는 사람은 결국 공동체의 흩어짐을 만들지만, 이웃의 서툰 미숙함을 묵묵히 내 어깨에 짊어지는 사람은 마침내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집을 세운다.
우리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단 하나의 확실한 이유는 단순한 윤리적 도덕이나 율법적인 의무감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정확히 그런 낮아짐의 삶을 친히 사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15:3) 온 우주의 위대한 주인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와 기쁨을 철저하게 포기하셨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세상의 모진 조롱과 무서운 저주를 십자가 위에서 고스란히 홀로 대신 받아내셨다. 정말 자격 없는 나 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신 그 크고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기억할 때만 우리는 내면에 뿌리내린 지독한 이기적인 본성을 꺾고 타인을 향해 온기 어린 손을 내밀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 비로소 어두운 세상 속에서 진짜 영롱한 빛을 밝게 발한다.
하지만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의 답답한 부족함을 넓게 품고 나의 당연한 기쁨을 포기하는 좁은 길은 필연적으로 몸과 마음을 지치고 고단하게 만든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이유 없이 상처받고 때로는 억울해서 고집스러운 이웃을 진심으로 섬기는 선한 일에 깊은 절망과 한계를 뼈저리게 느낄 때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선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고난을 끝까지 넉넉히 견뎌낼 신령한 힘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신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롬 15:4) 변덕스러운 사람의 가벼운 말이나 화려한 세상의 얄팍한 방법에서는 영혼을 살리는 진짜 생명과 위로를 찾을 수 없다. 오직 거룩한 성경을 조용히 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읽고 들을 때 비로소 하늘의 신비로운 위로가 우리 메마른 영혼을 포근하게 덮는다. 은혜로운 말씀 속에서 끔찍한 십자가를 말없이 참으신 온유한 예수님을 깊이 만날 때, 우리는 어떤 시련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스러운 이웃을 넉넉히 사랑할 수 있는 참된 인내와 내일을 당당하게 살아갈 굳센 힘을 온전히 얻게 된다.
이제 우리는 사사건건 시비를 가리는 차가운 재판관의 높은 자리에서 겸손히 내려와야 한다. 대신 희생적인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웃의 무거운 짐을 즐거이 짊어지는 따뜻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오늘 하루, 내 곁에 서 있는 연약한 사람의 눈물과 부족함을 내 어깨에 단단히 메고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걷기를 엄숙히 다짐한다.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낌없이 주는 위로가 우리의 상한 마음을 덮고, 이타적인 헌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도록 붙들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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