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들의 최후
Notes
Transcript
다윗의 시로 기념식에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3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4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찬송가: 423장 먹보다도 더 검은
46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엘브릿 신전의 보루로 들어갔더니
47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비멜렉에게 알려지매
48 아비멜렉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살몬 산에 오르고 아비멜렉이 손에 도끼를 들고 나뭇가지를 찍어 그것을 들어올려 자기 어깨에 메고 그와 함께 있는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가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 하니
49 모든 백성들도 각각 나뭇가지를 찍어서 아비멜렉을 따라 보루 위에 놓고 그것들이 얹혀 있는 보루에 불을 놓으매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남녀가 약 천 명이었더라
50 아비멜렉이 데베스에 가서 데베스에 맞서 진 치고 그것을 점령하였더니
51 성읍 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으므로 그 성읍 백성의 남녀가 모두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간지라
52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사르려 하더니
53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54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하니 그 청년이 그를 찌르매 그가 죽은지라
55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56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전형상화
9장 시작부터 등장한 아비멜렉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의 최후를 본문은 이야기 합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서자입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반지파 출신의 사사인데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기드온의 3백용사/ 양털송이/ 에브라임 지파와의 정치적 협상
왕을 세우려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말을 했던자이나 그의 삶은 왕같이 살았다. (자녀와 처첩과 황금 에봇을 만들어 소유하였다. 그리고 급기야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왕같이 살았다 )
아비멜렉은 세겜땅 출신의 기드온 첩의 아들이다. 그는 이름에서 보듯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욕망을 어렸을 때 부터 키워졌 다는 것을 알수 있다. 엄빠로 부터 받았을 것이다.
세겜에서 불량배를 모아 기드온의 아들을 모두 한바위에서 죽임, 세겜 사람들이 공모함/ 요담만 살아남음/ 요담의 그라심산에서 외침 ( 감람나무,무화과나무, 포도나무-가시나무)
요담의 예언 (아비멜렉에서 불이 나와 세겜을 사르고, 세겜에서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르리라)- 예언의 성취
3년통치, 아비멜렉은 사사가 아니다. 그리고 외부의 적도 없었다. 내전에 가까운 상잔이 벌어진 것이다.
형상화
성경에 보면 두 스토리가 있다. 왕이 계신다. 그분은 항상 창조하신 분이시고 원래 왕 이시다. 정의와 공의와 긍휼로 통치 하신다. 그리고 그에 반해서 자기 욕망으로 이 왕을 반역하고 스스로가 왕이 되고자 하는 왕이 나온다
인간도 그렇다. 하와와 아담이 그랬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다. 자신이 왕이 되려고 했다. 모든것을 자신이 결정하려고 했다.
왕은 자신이 결정하는 사람이다. 오늘날도 우리는 모두 왕이 되려고 한다. 자아실현과 자기주체성, 자기감정에 솔직한것, 자기 마음의 움직이는대로 하기, 규율과 권위와 전통을 없애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기,
이것이 왕 되기 프로젝트인다. 그런데 피조물이 창조주처럼 살려면 자기 책임과 실존적 드려움을 마주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상을 만든다. 자기를 기만하여 믿을 수 있은 대상을 만든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 하며 예배하도록 창조 되었다. 그래서 존재적으로 하나님을 예배 하던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우상을 예배하게 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을 견디지 못한다. 불안과 두려움이 항상 있다. 그래서 현세적인 만족과 욕망의 충족에 대하여 그것이 최고의 삶이라는 우상을 숭배한다. 자기를 숭배한다.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려는 사람 이였고, 자기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한 사람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권위를 해체합니다.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철학적 사조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문화적인 영향력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섭습니다.
내가 결정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때 우리는 반응이 어떻습니까? 화가 나지 않습니까? 간섭 받는 것 같은 , 왜 상관이야? 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것이 현재 문화속에서 팽배한 사조입니다.
내가 왕인데! 내가 결정하는 것인데 ! 누가 뭐래~~!
재형상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입니다. 어떤 관계입니까? 사랑에 기초한 관계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양자됨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녀일 뿐아니라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왕은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내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몸이 있기에 성령의 소욕을 따르려는 우리 가운데 여전히 죄의 욕망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주님이 재림하시는) 우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완전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중간에 뺴앗기지 않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오해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끝까지 우리의 구원을 견인해 나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만약 우리의 구원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잃어벌일 수 있는 성격이라면 우리는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왕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여전히 우리 삶의 왕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우리 왕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우상을 반드시 왕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 십자가 앞에 가져오셔서 부수시고 주의 주되심을 선포 하시고 하나님 우리왕을 높이시고 예배 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 드립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