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는 선(3) - 시선을 예수께 2026 0927 히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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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12:1–3 NKRV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포기하지 않는 선(善) ③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본문: 히브리서 12:1-3 주제 카피: 시선(視線)을 예수께 핵심 문장: 선을 포기하지 않는 힘은 내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온다.

들어가는 말 — 선을 선택한 다음에 찾아오는 문제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9월 동안 ‘포기하지 않는 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현실을 피하지 않고 일상의 선을 성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매 순간 자기 앞에 놓인 선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선을 지키고 선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곧 한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선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택한 선을 계속 이어 가는 일입니다.
한 번 일찍 일어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번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계속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오래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번 기도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응답이 보이지 않는데도 계속 기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번 정직을 선택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정직하게 살아서 반복해서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그 선택을 이어 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새해가 되면 헬스장에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운동복도 사고, 운동화도 사고, 물병도 사고, 운동 앱도 설치합니다. 첫날에는 사진도 찍습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면 헬스장이 조금씩 한산해집니다. 운동을 시작할 마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시작할 때의 마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비슷합니다. 은혜를 받았을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월요일이 오고, 피곤한 일상이 시작되고, 기대했던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오늘 히브리서가 기록된 교회의 성도들도 지쳐 있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과정에서 고난을 겪었고, 세상의 조롱과 압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견뎠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손이 늘어지고 무릎이 약해졌습니다. 믿음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주저앉고 싶은 상태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에게 “조금만 더 독하게 마음먹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고 책망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오늘 우리가 기억할 말씀도 이것입니다.
선을 포기하지 않는 힘은 내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옵니다.

1. 끝까지 달리려면 먼저 무거운 것을 벗어야 한다

1절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증인들은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아벨과 에녹, 노아와 아브라함, 모세와 수많은 믿음의 사람이 삶으로 증언합니다. 그들의 인생에는 실패도 있었고 고난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고 믿음으로 걷는 길은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믿음의 삶을 경주에 비유합니다. 경기장에서 달리는 선수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경주를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달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Hebrews 12:1 NKRV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우리는 달리는 방법을 배우기 전에 먼저 벗어야 합니다. 더 열심히 달리는 것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등산을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산에 가는 사람은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며 가방에 이것저것 넣습니다. 큰 물병을 넣고, 두꺼운 옷을 여러 벌 넣고, 책도 한 권 넣고, 충전기와 보조 배터리도 여러 개 챙깁니다. 노트북까지 가져가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하나는 나쁜 물건이 아닙니다. 모두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산을 오를 때는 쓸모가 있다는 사실보다 지금 이 길에 필요한지가 더 중요합니다.
산 아래에서는 “이 정도는 들 수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르막길을 한 시간만 걸으면 작은 물건 하나의 무게도 크게 느껴집니다. 결국 가방이 무거울수록 산의 풍경을 바라보기보다 어깨의 고통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무거운 것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죄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들도 있습니다. 좋은 목표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연스러운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더 잘하고 싶은 열정이나 미래를 준비하려는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믿음의 경주를 방해한다면 내려놓아야 할 무게가 됩니다.
우리들의 가방에는 비교라는 돌이 들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친구가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거워집니다. 누군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쁘면서도 내 삶만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직장, 행복한 관계, 멋진 여행, 안정된 미래를 향해 달리는 것 같은데 나만 출발선 근처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SNS를 열면 모두 자기 길을 잘 달리는 것처럼 보입니다.(자전거..더 잘달리고 싶다!) 가다보면 잘 달리는 사람 만남. 내 속도로 잘 달리고 있었는데도, 따라가보고 싶음. 나를 추월한 저 사람을 나도 따라가보고 싶음. 그런데 내 속도를 잃고 무리를 하면 원했던 목적지에 가기 전에 퍼져버림. 다리는 다리대로 아프고 심박수도 무리하게 올라가고 오히려 급격한 체력한계만 만나게 되더라.
우리는 하나님이 내 앞에 놓으신 믿음의 경주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경주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속도를 잃고,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리합니다. 그러다 지치면 믿음까지 잘못된 것처럼 느낍니다.
완벽주의도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면 좋은 열망이 무거운 짐으로 바뀐 것입니다. 기도를 완벽하게 하려다가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다가 한 장도 읽지 않습니다. 완벽한 사과를 준비하다가 결국 사과하지 않고, 완벽한 때를 기다리다가 순종을 계속 미룹니다.
과거의 실패도 무거운 짐이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는데도 실패한 장면을 계속 등에 지고 달립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또 실패할 거야.” 과거의 일이 현재의 정체성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다시 달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끝난 일을 가방에 넣고 계속 짊어집니다.
본문은 무거운 것뿐 아니라 “얽매이기 쉬운 죄”도 벗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죄는 단순히 속도를 늦추는 짐이 아니라 우리의 발을 묶어 넘어뜨립니다. 반복되는 거짓말, 음란함, 미움, 욕심, 책임을 피하는 습관을 그대로 둔 채 믿음의 경주를 잘 달릴 수는 없습니다.
벗어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이제부터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인정하고, 필요한 경우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죄로 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차단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시간과 상황을 안다면 그 자리에 계속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치고 느려진 모든 사람을 게으르거나 믿음이 없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아프거나 번아웃을 겪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달려라”는 말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멈추어 치료받고, 공동체의 도움을 받고, 충분히 쉬는 것도 경주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과정입니다. 휴식은 경주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달리기 위해 호흡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나의 시선을 예수님에게서 빼앗고, 믿음의 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짐 하나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가방을 내려놓아야 고개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도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아야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더 힘을 내기 전에, 나를 무겁게 하는 것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2. 다른 사람의 경주가 아니라 내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 달려야 한다

본문은 이어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우리 앞에 당한 경주”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 앞에 놓으신 경주가 있다는 뜻입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간 사람들이 모두 같은 코스를 달리더라도 몸의 상태와 속도는 서로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빠르게 달리고, 어떤 사람은 천천히 자기 속도를 지킵니다. 처음 출전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빨리 뛰는 모습을 보고 흥분해서 자기 속도보다 빠르게 달리기 쉽습니다. 출발할 때는 기분이 좋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빠르게 지나가도 함부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호흡을 확인하고,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합니다.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은 첫 구간에서 다른 사람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결승선까지 경주 안에 머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도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몇 달 동안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 오랜 시간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 크게 헌신하는 것보다 평범한 날에도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람의 속도를 봅니다. 나와 같은 나이에 누군가는 안정된 직장에 들어갔고, 누군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누군가는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나는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있고, 반복해서 지원서를 쓰고 있으며, 기대했던 관계가 끝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단순히 삶이 힘든 것보다 “나만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어집니다. 내 경주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주와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낙심하는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할 때 옆 차가 빠르게 달린다고 무조건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 차의 목적지와 나의 목적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옆 차가 고속도로로 진입한다고 나도 따라가면 오히려 목적지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속도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빨리 간다는 사실이 내가 잘못 가고 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내 길에 오르막이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어떤 청년에게는 취업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믿음의 경주일 수 있습니다.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결과와 동일시하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준비를 감당하는 것이 그 사람의 경주입니다. 어떤 청년에게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직장에서 정직을 지키는 것이 경주일 수 있습니다. 어떤 청년에게는 가족을 돌보면서 자신의 계획을 잠시 늦추는 것이 경주일 수 있고, 어떤 청년에게는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상담과 치료를 꾸준히 받는 것이 믿음의 경주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속도가 느려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 앞에 놓으신 길을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은 그 경주를 “인내로써” 달리라고 말합니다. 인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지 않다고 자신을 속이는 것도 아닙니다. 인내는 힘들어도 경주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속도를 늦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잘되지 않을 수 있고,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배 자리에 앉아 있지만 아무 감동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내 믿음은 끝났나 보다”라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감정이 뜨겁지 않아도 예배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인내입니다. 긴 기도를 하지 못해도 “주님, 오늘도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인내입니다. 많은 말씀을 읽지 못해도 한 구절을 붙들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인내입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인내입니다.
인내는 이를 악물고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증인들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여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 공동체의 손을 잡고, 도움을 받으면서도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청년의 시기에는 빠른 결과를 원합니다. 노력하면 바로 열매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곧 해결되고, 순종하면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과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우리를 빚으시는 분입니다.
바스크치즈케이크. 실패의 경험. 빵을 만들 때 반죽을 오븐에 넣자마자 꺼내면 겉모양은 있어도 안은 익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으시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이 믿음의 속을 익히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내란 멀리 있는 결승선만 바라보며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 앞에 놓인 한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내일의 힘까지 오늘 끌어다 쓰려고 하지 말고, 오늘 주신 은혜로 오늘의 순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은혜, 하루의 은혜를 사모하라.
믿음의 승리는 가장 빨리 달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놓으신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달리는 데 있습니다.

3. 포기하지 않는 힘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데서 나온다

이제 본문은 믿음의 경주에서 가장 중요한 비결을 말합니다.
Hebrews 12:2 NKRV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달리다 지치면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지? 왜 이렇게 믿음이 약하지? 왜 또 넘어졌지?” 자신의 부족함을 오래 바라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을 바라봅니다. “저 사람은 잘하는데 나는 왜 이렇지?”라고 비교합니다. 때로는 문제만 바라봅니다. 그러면 문제가 점점 더 크게 보이고, 예수님은 점점 더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넘어질 것 같은 장애물을 보지 말고, 네가 가야 할 방향을 봐.” 앞에 작은 돌이 있다고 그 돌만 계속 바라보면 이상하게 자전거가 그쪽으로 향합니다. 피하려고 계속 바라보는데도 몸과 핸들이 시선이 향한 쪽으로 움직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비슷합니다. 운전자는 핸들만 붙잡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할 방향을 바라보며 운전합니다. 시선이 흔들리면 차도 흔들립니다.
우리의 영혼도 오래 바라보는 것을 향해 움직입니다. 실패를 오래 바라보면 실패가 우리의 정체성이 됩니다. 유대인 교육 - 부정적인 사람과 놀지도 사귀지도 말라.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버스 노쇼. 화가 날 상황. 그런데 감독은 다음 플레이만을 집중하자고 선수들에게 말함. 경기장까지 더 좋은 컨디션으로 도착. 슛 연습을 못했음에도 일본과 결승전에서 승리.
사람들의 평가를 오래 바라보면 인정받는 것이 삶의 방향이 됩니다. 두려움을 오래 바라보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우리의 오늘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너 자신을 더 굳게 바라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좋아질 것만 바라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이십니다. 믿음의 경주를 처음 시작하신 분이며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끝까지 달리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편안한 길만 걸으신 분이 아닙니다. 배신과 거절을 경험하셨고, 조롱과 수치를 당하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실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가 가볍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이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십자가 너머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죄인들이 구원받으며,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사람들이 다시 자녀가 되는 기쁨을 바라보셨습니다. 지금의 고통보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의 완성을 더 크게 보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얕은 물을 건널 때 징검다리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발밑의 물을 보면 두렵습니다. 돌 사이의 간격을 보면 넘어질 것 같습니다. 그때 맞은편에 서 있는 아버지가 말합니다. “발밑만 보지 말고 아빠를 봐. 천천히 한 걸음씩 와.”
아이의 발이 갑자기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돌 사이의 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대상이 바뀌면 다음 걸음을 내디딜 용기가 생깁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문제가 사라진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척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보다 크신 예수님, 십자가를 통과하여 부활하신 예수님,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더 오래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결승선에서 팔짱을 끼고 우리를 평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왜 이것밖에 못 달리느냐”고 소리만 지르시는 분도 아닙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달리셨고, 십자가와 죽음을 통과하셨으며, 부활로 승리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이실 뿐 아니라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혼자 힘으로 믿음을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믿음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넘어질 때 붙드시고, 길을 잃었을 때 다시 돌이키시며, 마침내 경주를 완주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경주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가 아닙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입니다.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Hebrews 12:3 NKRV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생각하라”는 것은 예수님을 잠깐 떠올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길을 걸으셨는지, 왜 십자가를 견디셨는지를 깊이 헤아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힘들 때 문제를 반복해서 생각합니다. 잠들기 전에도 생각하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생각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대화까지 머릿속으로 수십 번 연습합니다. 그렇게 문제를 오래 묵상합니다.
본문은 그 집중력을 예수님께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문제의 크기를 계산하는 것보다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더 오래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실패를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보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이루신 일을 더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이 찾아올 때 이렇게 짧게 기도해 보십시오.
“예수님, 지금 제 시선이 문제에 붙잡혀 있습니다.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과 함께 다음 한 걸음을 걷게 해 주십시오.”
상황이 바로 바뀌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긴 기도를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고, 주님이 보여 주시는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디면 됩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칠 때마다 다시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맺는말 — 선을 이어 가는 시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번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선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상의 선(線)을 지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그 길 위에서 선(善)을 선택(選)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시선(視線)을 예수님께 고정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선을 포기하지 않는 삶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곧은 직선을 그리는 삶이 아닙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길이 휘어지고, 잠시 멈추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님께 돌아와 다시 방향을 잡는 삶입니다.
우리는 강한 의지만으로 선을 끝까지 이어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 때만 선을 행한다면 반응이 나쁜 날에는 포기하게 됩니다. 결과가 보일 때만 충성한다면 열매가 보이지 않는 시간에는 낙심하게 됩니다. 감정이 뜨거울 때만 예수님을 따른다면 마음이 메마른 날에는 경주를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의지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먼저 달리신 예수님, 십자가를 견디고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포기하고 싶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반복된 실패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신앙의 자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과가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싶은 기도와 섬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늦은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은 자신의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더 세게 달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앞에 놓으신 길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발밑의 물만 보지 말고 맞은편에서 손을 내미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나의 부족함만 보지 말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지금의 지연만 보지 말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승리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오늘의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디십시오. 먼 결승선까지 한 번에 갈 힘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한 걸음을 걸으면 됩니다.
일상의 선을 지키십시오. 선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십시오.
선을 포기하지 않는 힘은 내 안에 있지 않습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결단

말씀 앞에서 여러 가지를 결심하기보다 한 가지를 결단했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고, 다음 한 걸음을 내딛겠습니다.”
나를 무겁게 하는 것이 있다면 예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내 길을 잃었다면 하나님께서 내 앞에 놓으신 경주를 다시 받아들이십시오. 낙심하여 멈추고 싶다면 문제보다 예수님을 더 오래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이번 주에 포기하지 않을 작은 순종 하나를 정하십시오. 다시 기도하고, 다시 예배의 자리에 서고, 다시 맡은 일을 시작하고, 다시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디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결단찬양>
푯대를 향하여
<나눔질문>
지금 나의 믿음의 경주를 무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와 비교하느라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신 경주를 놓치고 있는가?
이번 주 낙심하는 순간에 예수님을 바라보며 내디딜 ‘다음 한 걸음’은 무엇인가?

결단기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 믿음의 경주를 달리다 지치고 낙심한 우리의 마음을 주님 앞에 올려 드립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무거워진 마음, 사람의 인정에 매여 흔들린 마음, 반복된 실패와 죄책감으로 주저앉은 마음을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우리를 무겁게 하는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보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로 벗어 버릴 용기를 주십시오. 다른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하나님께서 내 앞에 놓으신 길을 잃지 않게 하시며, 빠르지 않아도 믿음으로 한 걸음씩 걷게 하십시오.
문제와 실패를 오래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십자가를 견디시고 부활하셨으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끝까지 붙들고 온전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다음 한 걸음을 내딛게 하십시오. 일상의 선을 지키고, 선을 선택하며,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게 하십시오.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리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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