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27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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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ronicles 15:16–29 NKRV
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17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갸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18 그 다음으로 그들의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19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20 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알라못에 맞추는 자요 21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22 레위 사람의 지도자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인도하는 자요 23 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24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이더라 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2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다윗은 왕이 된 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 했습니다. 다윗에게는 예배를 회복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13장을 보면, 다윗은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옮깁니다. 이 방법은 이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돌려보낼 때 썼던 이방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 뜻을 구하지 않았다. 역대상 13:1-2
1 Chronicles 13:1–2 NKRV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2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은 상관이 없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율법을 통해 배운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달랐다. 이스라엘에게는 이미 명확한 규례가 있었다. 민수기 4장을 보면 언약궤는 아무나 만지거나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레위인 가운데 고핫 자손이 메도록 되어 있었다. 다윗은 성경의 규례보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수레를 끌던 소들이 뛰었고, 웃사가 언약궤를 붙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다윗의 동기는 분명 선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목적과 뜨거운 열심을 가졌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의도와 결과가 잘못된 과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철저히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등장하는 사울 왕의 이야기도 이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가치 없고 병든 것만 진멸하고, 기름지고 좋은 양과 소는 남겨두었습니다. 사무엘이 이를 책망하자,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것을 남겼다고 변명합니다.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을 덮기 위해 ‘하나님을 위한 제사’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보기에 화려한 결과물이 아니라, 투박해 보여도 말씀 그대로 걸어가는 순종입니다. 결국 사울은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고쳐 쓰려다가 왕위에서 버림받았습니다.
다윗 역시 첫 번째 시도에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목적만으로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을 따르지 않았고, 그 결과 웃사가 죽는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윗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목적뿐만 아니라 그 과정과 방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역대상 15장 13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1 Chronicles 15:13 NKRV
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다윗은 자신이 생각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나아갑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무엇을 이루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 가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우리나 또하나 봐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당시 언약궤를 메고간 레위 사람들다. 이때 레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 수레가 흔들려 궤를 만졌던 웃사가 즉사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 죽음의 자리에 자신들의 발로 걸어 들어가, 그 무거운 언약궤를 직접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극심한 두려움과 긴장감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해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두려웠을 것이다. 우리들도 그러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것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두렵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을때 나에게 불이익이 올 것이 두려운 것이다. 성공하지 못할 것 같고, 가난해질 것 같고, 남들보다 뒤쳐져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늘 본문 2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 Chronicles 15:26 NKRV
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여기서 “도우셨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자르(עָזַר)’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전쟁 중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직접 붙들어 싸움을 이기게 하실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죽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속에서 레위 사람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걸음을 내디딜 때, 하나님은 그들이 무거운 궤를 감당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을 주시고 두려움을 이길 평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걸어갈 때, 그 길이 아무리 무겁고 두렵게 느껴져도 하나님은 친히 그 무게를 함께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혼자 걷게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본문 29절에는 또 다른 시선이 등장합니다.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 미갈이 창문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비웃습니다. 성경은 미갈을 ‘사울의 딸’이라고 부릅니다. 사람 앞에서의 위신과 체면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울 집안의 가치관을 그대로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당시 다윗은 화려한 왕의 겉옷을 벗고, 레위인들이 입는 얇은 세마포 겉옷을 입고 있었습니다(27절). 미갈의 눈에 그것은 왕의 체통을 잃은 경박한 모습이었습니다. 미갈은 언약궤를 메는 수고와 기쁨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창문 안’이라는 안전한 곳에서 세상의 기준으로 다윗을 평가하고 조롱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의 평가에 갇히지 않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춘 예배자로 기뻐했습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의 크고 작은 선택 앞에서 우리는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보이는 길을 택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나의 선한 의도와 좋은 결과가 모든 과정을 정당화해 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련해 보일 정도로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걸어가려 할 때, 세상은 미갈처럼 창문 안에 숨어서 우리를 융통성 없다고 조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미갈의 창문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기쁨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신호등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지켜주듯,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안전하게 걸어가야 할 생명의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나의 선한 열심이나 세상의 효율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앞서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순종의 걸음이 때로는 무겁고 두렵게 느껴질지라도, 한 걸음 내디딜 때 우리를 ‘아자르’ 하시는, 힘 있게 도우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으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이 본문은, 사실 한 번의 뼈아픈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역대기를 기록한 저자는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해 이 글을 썼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예배가 끊어졌던 자리에서 다시 신앙의 질서를 세워가야 했던 사람들에게, 역대기 저자는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를 전해줍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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