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라는 삼손의 머리카락
Notes
Transcript
1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2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3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5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
6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7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
8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전형상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삼손이 사로잡히고 조롱거리가 되다가 어떤 최후를 맞이 하는지 결론까지 나옵니다.
15-16절: 마음을 달라고 한다. 마음은 성경에서는 생각과 동의어로 사용될때가 많은데, 보통은 생각과 감정을 포함한 전 인격을 말한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사랑은 마음을 주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손해보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에 대하여 오해할 일이 줄어든다. 세상은 사랑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받으려고 한다. 사랑 받으면 그를 통해 무엇을 얻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계속 받지 못하면 내가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괴로워 한다. 그러나 사랑은 관계이고 그 관계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내가 더 손해를 보는 것으로 사랑의 크기를 가늠한다. 16절에 보면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왜 그런가? 삼손도 들릴라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세상은 달콤한 속삭임으로 우리를 속인다. 결코 속지 말자! 사랑은 요구하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가 더 손해보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17절을 보면 삼손의 믿음에 대한 실체를 접한다. 삼손은 나실인이고 따라서 서약에 따라 머리를 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힘의 근원은 아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의 힘의 근원을 그렇게 믿고 있었고 ,삼손은 떠난 하나님은 삼손이 자신의 믿음대로 되도록 내버려 두신다. 그의 믿음의 근원이 사라지자 그는 바로 힘을 상실하고 눈이 뽑히고 종이 되어 맷돌을 굴리는 신세로 전락한다. 우리의 믿음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은혜와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과 모든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다보면 그 힘이, 그 축복이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자체가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이 우상숭배이다. 삼손에게 힘과 능력은 근원 되시는 하나님으보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나실인이라는 태생적인 배경과 그 머리카락이라는 우상으로 변질 되었기에 결국 무너지게 된 것이다. 나실인은 거룩한 구별이다. 시작은 하나님 이지만 마침은 우상이다. 시작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마침은 육체로 마치는 일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경게해야 한다.
28절을 보면 삼손이 처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이때 삼손이 처음 불렀을까요? 아닐 겁니다. 그러나 삼손의 기도는 여기 마지막에 한절만 나옵니다. 진정한 기도는 이 때가 처음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부르짖고 계신가요~ 탄식 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니까?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라는 절박함이 있습니까? 원수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 계신가요? 절박하지도,탄식하지도, 승리를 구하는 기도를 할 정도로 긴급한 일이 과연 우리 삶에서는 없는가요?
삼손은 마지막 사역을 마치고 죽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동안 지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사사 다운 모습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고 마지막 죽음 조차도 뭐 그렇게 저는 감명을 얻지 못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손을 사용 하셨다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2:9–10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형상화
우리의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은 참 이야기 거리이고 신기합니다. 머리카락에 능력이 있었다고 사람들이 여전히 오해 하고들 있습니다. 에베소서 1:19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어떠한 좋은 것을 하나님으로 믿으면 이 또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함은 내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동력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함은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구하여야 하고 그렇게 받아야 하고 누려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하나님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다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거나 구원이 의심받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진 저와 여러분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무안하시고 변함 없으십니다. 그것이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분의 독생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화평한 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종이 아니라 자녀가 되었기 떄문에, 성과에 따라 대접받는 신분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받아 들여져서 대접받는 신분이기 떄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믿는 믿음 조차로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그분이 비추시는 햇살이 아니라 그분에게 고정하고 바라보고 송망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만약 삼손이 나의 힘의 근원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붙잡아 주심이라고 했다면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가졌다면 삼손의 스토리는 어떻게 쓰여졌을까요? 분명 오늘과 같은 종결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재형상화
삼손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랍니다. 저는 이것은 스토리의 복선이고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카락은 잘릴 수도 자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다고 신앙이 자라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성숙해 진다는 것은 그것이 삶에서 그대로 작동할 때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눈에 보이는 상황들이 힘들어도 하나님이 나를 신실하게 보호하고 있으시구나! 그분이 이 시련을 통해 저와 여러분을 더욱 그분의 아들을 닮도록 인도 하시는 구나!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실 제 자신을 위한 말씀입니다. 저는 최근에 저의 믿음이 너무나 연약함을, 한마디로 형편 없음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어려운 환경과 시험 가운데 바람앞에서 촛불 마냥 마구 흔들리는 제 마음을 발견합니다. 그 두려움과 불안함의 근원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근심해야 합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구 우리를 대적 하겠습니까?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를 이해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좋은 것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실까요?
이 새벽 이 담대한 믿음으로 굳게 서도록 은혜 주시길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