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7
골로새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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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 아무도 여러분들을 비판하게 놔두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음식이나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이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그 아무도 여러분들을 비판하게 놔두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음식이나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이 포함됩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바울은 그당시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음식과 마시는 것, 절기나 초하루 안식일 등은 다 율법에 의거해 지키는 것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규칙들이 몸에 배어져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단순히 당연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인 된 이후에도 이러한 생활 습관들이 달라졌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닐겁니다. 그냥 당연하게 지켜왔던 것들이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들의 이 익숙함이 타인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일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은 그렇게 지킬지언정 남에게까지 간섭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몇몇 열성적인 사람들이 잘못된 지식과 생각으로 새로 믿게된 이방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바울이 유럽 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당시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갈라디아서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6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불러 주신 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몇 사람이 여러분을 교란시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8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9 우리가 전에도 말하였지만, 이제 다시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 1:6–10.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복음을 유럽지역에 전하던 초기의 상황을 담은 서신입니다. 그리고 골로새서는 바울이 이 모든 상황을 다 겪은 후 신생 교회인 골로새 지역의 교인들에게 쓰는 서신입니다. 이 둘을 비교해보면 어투나 상황을 보는 관점면에서 여러가지로 다른 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어조는 좀 격분되고 감정이 많이 개입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제 산전 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지도자입니다. 그런 지도자가 있는 것이 골로새 교회에게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이 뭐라고 하든 그들의 말에 영향을 받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그리스도인들의 표본이나 고참인듯이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라고 바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판하다는 단어는 정확히 말하면 커트라인을 정한다는 말입니다. 커트라인을 정해서 골로새 교인들을 기준점 밑으로 평가한다는 뜻입니다. 자신들의 말을 들어야 커트라인을 통과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커트라인을 정하는 기준이 음식이나 마시는 것 절기와 초하루 안식일 등 유대교의 전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기본이고 그 위에 이러한 커트라인을 그어서 그 기준점을 통과하는 것을 자신들이 평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커트라인을 긋는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교회의 기본적인 그림이 바뀌는 것입니다. 바울이 경고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앞으로 실현될 것들의 그림자입니다.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앞으로 실현될 것들의 그림자입니다.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바울이 이러한 유대교의 전통들을 무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착각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유대교의 전통을 쓰레기 취급하여 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교의 전통을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유대교를 연구하고 그의 반평생을 유대교인으로 살았던 바울이 이제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유대교의 전통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보여주는 귀한 대목입니다. 제가 자주 한국 교회의 전통을 이야기하면서 항상 말씀 드리는 것이 이 전통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인데 결론적으로 전통이 복음을 앞서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긴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울 역시 유대교의 이러한 전통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체로 존재하는 것들의 그림자다 라고 말해줍니다. 실체가 아닌 그림자가 여러분들을 평가하는 커트라인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속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은 어떤 커트라인에 의거하여 정해집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하는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면 너무나 분명하게 이야기해주는 교회의 전통들과 격식과 예의와 행위에 있습니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것들이 커트라인이 될 수 없을 뿐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두가지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첫번째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그 어떤 커트라인도 존재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 커트라인이 우리에게 유익할 수 있는 것인데 잘못 그어짐으로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여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일석 이조라고 하지요? 악한 세력들은 좋은 것들을 커트라인으로 삼아서 여기에 넘아가는 사람들을 삼키고 넘어가지 않아도 좋은 전통들을 쓰레기로 만드는 효과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을 잘 그려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올바른 그림을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실체가 무엇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실체를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분과 실제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너무나 식상한 말이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봐야하고 기도를 해야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커트라인이 아니지만 중요한 것들입니다. 커트라인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버려져서도 안되는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실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이 실체는 앞으로 실현될 그 무엇입니다. 아직 완전히 보여지지 않은 미완성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삶을 살아가면서 점점 더 명확해지고 분명해지는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헛되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 우리는 완성되는 그림에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완성되어져가는 그림을 보고 기뻐하고 감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에게 스스로 낮춤을 주장하고 천사 숭배와 자신이 본 것에 과몰입함과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에 의지하여 헛된 것을 자랑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자격을 논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 누구도 여러분에게 스스로 낮춤을 주장하고 천사 숭배와 자신이 본 것에 과몰입함과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에 의지하여 헛된 것을 자랑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자격을 논하게 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이제 두번째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들은 겸손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겸손의 대상이 잘 못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천사 숭배입니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으로 성도들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능력이 영적인 능력이기 때문에 영이 연약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메신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효과가 있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천사를 숭배하는 현상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천사를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다고 말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천사는 결코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누구든 천사를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 이상으로 여기면 이미 엇나간 것입니다. 신비한 존재이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결코 선망이나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둘째로 무엇을 지속적으로 본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럴 수는 있습니다. 기도를 깊게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자주 환상이나 꿈이나 여러가지 영적인 현상들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점은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이고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에게만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 역시 그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지만, 그의 서신에서 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12장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12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을 입은 채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4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5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두고서는 내 약점밖에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6 내가 자랑하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후 12:1–10.
이때 당시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의문이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것 역시 유대교에서 들어온 기독교인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고린도 교회를 자신들의 영향권 안에 두려고 애쓰던 상황이었습니다. 요즘 용어로 바울이 ‘긁힌’ 것입니다. 그래서 잘 하지 않던 자신의 경험까지 이야기하며 고린도 교인들을 설득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은 그런 이야기 조차 안합니다. 아주 담담하게 현재 골로새 교인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천사가 되었든 영적 세계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사람으든, 그 누구도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을 복음이라는 커트라인에서 벗어나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천사도 좋고 영적 경험도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들이 커트라인이 아닙니다.
세번째, 육신적인 생각으로 자신들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앞의 두 유형은 영적인 유형입니다. 천사도 영적 영역이고 신비한 영적 체험 역시 영적인 영역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유형은 육신의 자랑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육신의 영역으로 커트라인을 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무수히 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건강 돈 명예 인기 등,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마치 하늘 나라의 상급인것 처럼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여기에 속아 넘어 갑니다. 세상에서 얻지 못한 그 무엇을 교회 안에서 대리 만족하려는 것 역시 여기에 포함됩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커트라인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영역에서도 육적인 영역에서도 분별을 하지 않으면 당하고 넘어가기 쉬운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머리 속에 들어와 커트라인을 정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복음이 우리를 주장하도록 매일 매일 열어놓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이신) 머리에 속해있지 않습니다. 모든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양이 공급되어 관절과 힘줄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성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이신) 머리에 속해있지 않습니다. 모든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양이 공급되어 관절과 힘줄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성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