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04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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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맛 왕 도우가 다윗이 소바 왕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
10 그의 아들 하도람을 보내서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벌써 도우와 맞서 여러 번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찔렀음이라 하도람이 금과 은과 놋의 여러 가지 그릇을 가져온지라
11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 등 모든 이방 민족에게서 빼앗아 온 은금과 함께 하여 드리니라
12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인지라
13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4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1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대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행정장관이 되고
16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비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사워사는 서기관이 되고
17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다스리고 다윗의 아들들은 왕을 모시는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니라
오늘 본문은 18:9-17까지 이지만 1절부터 보려고 한다.
1절부터 17절까지 18장의 내용을 보면 다윗이 왕이되고 나서 점점 그 세력을 확장시키는 장면이다.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를 한다. 심지어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하맛왕 도우라는 사람이 다윗이 하닷에셀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 다윗을 축하하기 까지 한다.
여기서 하맛왕이 다윗을 축하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 그대로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강해지는 다윗왕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과 은과 놋으로 된 물품을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다윗이 승승장구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이렇게 승승장구를 하는 것이 다윗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3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이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지금 다윗의 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기록한다.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다윗에게 승리를 주시는 것인가?
다윗이 믿음이 좋아서 그런가?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물론 다윗의 믿음은 훌륭하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 한다.
그런데 그것이 먼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길 내가 하나님께 잘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무슨 말인가?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하면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풀료 좋은 결과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종교는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해서 신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오늘날 기독교안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복을 받기 위한 행동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러한 승리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10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또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한 왕조를 세울지라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여 한 왕조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시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왜 선택하셨겠는가?
물론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보셨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때 아무나 선택하시지는 않으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윗의 그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낸 공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7 또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 떼를 따라다니던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8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시고, 함께하시고, 그를 왕으로 세우시고, 그의 집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지나치게 낮출 필요도 없고, 반대로 자신을 지나치게 높일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른 사람만큼 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반대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의 삶에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따른 결과가 있다. 성경도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결과를 분명하게 말씀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을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우리의 공로로 계산할 수 없고,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언제나 우리의 잘못에 대한 결과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형편을 보고 그 사람의 신앙을 쉽게 판단해서도 안 되고, 내 삶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하나님께 더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반대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이다.
다윗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시고 그의 집을 세우신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감동시켜 얻어낸 보상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먼저 다윗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축복은 다윗이 그런 하나님의 뜻을 듣고 믿어 삶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다윗도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승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역대상 18:4
4 다윗이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천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고 다윗이 그 병거 백 대의 말들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4절을 보면 다윗은 소바 왕에게서 전차 1,000대와 기병 7,000명, 보병 20,000명을 빼앗았다. 그런데 전차용 말 100마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말의 힘줄을 끊었다. 앞으로 전쟁을 생각한다면 많은 전차와 말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군사적으로 유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모두 자신의 군사력으로 쌓아 두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면 다윗은 전쟁의 승패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렸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패배한 나라에서 얻은 재물과 전리품을 자신의 소유로 삼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전쟁에서 얻은 금과 은과 놋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것은 단순히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의미만 가지고 있지 않다. 다윗은 이 전쟁의 승리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한 것이다. 자신이 왕으로서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치렀지만, 그 승리의 결과를 자신의 능력으로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돌려드린 것이다.
그래서 역대상 18장은 다윗의 군사적인 성공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성공의 중심에 다윗을 세우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고, 다윗은 그 승리로 얻은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는 것도 같은 의미가 있다.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우리의 재능과 수고를 드리는 것은 단순히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하나님께 떼어 드리는 행위가 아니다. 내가 풍족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니고, 내게 여유가 있기 때문에 드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을 때만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것이 내 힘과 능력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에도, 시간을 드릴 때에도, 마음과 재능을 드릴 때에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
단순히 돈이 많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남아서 드리는 것도 아니다. 내가 드리는 시간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내가 드리는 물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내가 가진 능력과 기회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임을 기억하며 드리는 것이다.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는 것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내 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그것을 다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윗은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한가지를 더 한다.
그것은 자신의 본문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본문 12절 부터 에돔, 모압, 암몬, 블레셋, 아말렉등과 전쟁을 벌여 승리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4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14절에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행했다고 하는 “정의와 공의”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מִשְׁפָּט, mishpat)와 체다카(צְדָקָה, tsedaqah)이다.
미쉬파트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바르게 판단하고, 그 판단을 실제 삶 속에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법을 지킨다는 의미를 넘어, 사람을 대할 때 공정하게 판단하고 각 사람을 바르게 대하는 것을 포함한다.
체다카는 의로움과 올바름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맞게 살아가고, 내가 맡은 관계와 역할을 바르게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는 것은 단순히 재판을 공정하게 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워주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백성을 바르게 다스렸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힘과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한다는 것도 거창한 종교적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다.
직장이나 사업터에서 편법을 쓰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불공평한 일을 하지 않고, 내가 가진 힘이나 위치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내 주변에 있는 소외되고 지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돌아보고 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것도 정의와 공의를 살아내는 모습이다.
결국 정의와 공의는 특별한 사람만 실천하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자리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려드렸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왕의 자리에서는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내 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삶이다.
역대상을 읽고 있던 원독자들의 상황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바벨론에서 돌아와 다시 시작했지만, 자신들이 기대했던 모습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성전을 다시 세웠지만 이전과 같은 영광을 보지 못했고, 나라의 형편도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다시 시작했는데도 삶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 얼마나 실망하고 낙심했겠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역대기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잘했기 때문에 좋은 상황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주시는 분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공로로 계산할 수 없고, 우리의 어려움 역시 언제나 우리의 잘못에 대한 결과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우리의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려드렸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왕의 자리에서는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 상황이 어떠한가보다 하나님께서 누구신가를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삶의 자리가 지금 내 눈에는 답이 없어 보일 수 있다. 내가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쉽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살아가야 한다.
가정에서는 가정에서, 직장에서는 직장에서, 교회에서는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내게 유리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사람은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아직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며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답을 보여주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사람의 삶이다.
우리 청년들도 이러한 삶을 살아 승리하는 한주가 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