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찾는? 이웃이 되는!

가창교회 중고등부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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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 이야기의 문맥

(슬라이드1)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 배웠다 설교의 말미에서, 우리는 말씀을 듣는 자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들은 것을 행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요한계시록 1:3의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배웠다. 오늘 말씀은 누가가 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이다. 마치 요한의 편지를 튀르키예의 일곱 교회 성도들이 듣고 그 편지의 가르침대로 행했던 것처럼,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가 그 말씀대로 행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대한다.(슬라이드2)
오늘 말씀의 시작: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대답하여 = 그 앞에 질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질문 율법교사 > 예수(시험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는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오해가 있었기 때문(안식일 논쟁 등) - 사실은 율법이 아닌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갈등이었지만 만약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예수께서 말한다면, 율법을 어기는 자가 되어 정죄를 받을 수 있는 상황
되질문 예수 > 율법교사: 되질문 - 율법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대답 율법교사 > 예수: 첫째는 하나님 사랑, 둘째는 이웃 사랑 우리의 오해: 마치 이 말씀을 예수가 처음 가르친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히브리어 성경의 율법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예수께서 다시 기억나게 하신 것(우리가 구약을 잘 안 읽어서 생기는 문제, 말씀을 좀 읽어라) (슬라이드3)
누가복음 10:27 NKRV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슬라이드4)
신명기 6:5 NKRV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웨를 사랑하라(슬라이드5)
레위기 19:18 NKRV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야웨이니라
대답 예수 > 율법교사: 이 말씀대로 행하면 된다, 그러면 영생을 얻는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슬라이드6) 예수께서 그대로 ‘믿으면 된다’고 하시지 않았다. ‘행하면 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이대로 살아야겠구나’가 아니라, 진짜 내 육신을 가지고 그 말씀대로 행해보는 자가 복이 있고 영생을 얻는다고.
질문 율법교사 > 예수: (슬라이드7)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 예수께 ‘너는 의롭구나’하는 칭찬을 받으려고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되겠습니까?” = “어떤 사람이 내 이웃이 되는 사람인지 내가 한 번 잘 찾아볼까요?” 그의 속마음은, 예수께서 특정한 대상을 지목하면 그 대상을 사랑함으로 의롭다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 예를 들면, 당신 앞집에 사는 요나단씨를 사랑하십시오. 당신과 같이 일하는 율법학자 호세아를 사랑하십시오 등.
그 후에 나오는 대답이 오늘의 본문

두드려 맞아 반 죽은 자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옷을 빼앗고 폭행해서 ‘반 죽여놓고(원어)’ 길바닥에 버리고 갔다. 우연히 그를 본 제사장: 피하여 지나감 이와 같이 그를 본 레위인: 피하여 지나감
누군가는 이들이 제사를 드리기 전에 부정한 것을 피하기 위해 그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본문은 정확하게 말한다. 다른 장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이었다고. 심지어 그들은 아까 우리가 레위기에서 보았던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도 알았을 것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이었으므로. 그러나 그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 사람은 내 이웃은 아니니까.(슬라이드8)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는 중에 그를 발견했다. 전에 유대인들은 모든 이방인을 정서적으로 경멸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다르다. 이들은 유대인에게 멸시의 대상, 모멸감을 주어도 되는 사람이었다. 뿌리는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이방인과 결혼하고 이방 문화와 혼합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순혈주의를 추구하던 유대인들에게 이들은 율법을 더럽인 개만도 못한 자들.
그런 사마리아인이 반 죽은 자를 돕는다. 어떤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상처를 고쳐준다. 자기가 타던 가축에 태워 여관에 그를 머물게 한다. 다음날 그가 떠나면서 말한다. “이 사람을 돌봐주십시오. 혹시 지금 제가 드리는 비용보다 돈이 더 들게 되면 제가 돌아올 때 갚겠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율법학자에게 물으신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습니까?”, “자비(엘레오스, 헤쎄드)를 베푼 사람입니다.”, “가서, 당신도 이와 같이 하십시오.”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제사장과 레위인 같은 사회적으로 칭송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그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인보다 더 낮은 위치로 끌어내리고 계신다. 오히려 하늘 아버지의 뜻을 삶에서 살아내는 자는 이 사마리아 사람이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칭찬 받는 자는, 말로 주여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삶으로 살아내는 자들이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으신 것.

생각의 전환

오늘의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봅시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바빠서 제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반 죽은 사람을 뒤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번거로웠기 때문입니다. (슬라이드9) 귀찮았기 때문이고, ‘누가 도와주겠지.’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 마음의 중심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래서 어디까지가 내 이웃일까?”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더라도 ‘저 사람은 내 이웃은 아니니까.. 저 사람의 이웃이 그를 돕겠지 그를 살리겠지.’ 이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슬라이드10) ‘누가 네 이웃인지를 찾지 말고’, ‘불쌍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그 누구든’, ‘니가 그것을 발견하면 먼저 다가가서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웃이 누구인지 눈에 불을 켜고 찾지 말아라. 도움이 필요한 자가 생기면, 다가가서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어라.
사마리아 사람은 반 죽어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여관에 돈을 주며 그를 부탁할 때, 나중에 그 사람에게 무언가 받아내려고 했을까? 그렇지 않다. 그가 재정적으로 여유를 가진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만, 성경은 그의 재물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은 딱 하다.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그리스도인들이 오만데 때만데 욕을 얻어먹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많이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세상의 아픔에 대해 무감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 식구, 내 새끼, 내 교회, 내가 속한 공동체만 내 이웃이라고 생각하니까, 정작 실제로 아파하는 자들에 대해 무관심해지게 되고, 공감능력을 상실하고, 우리만의 도시를 건설해서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을 놓쳐버리게 되는 것. 그리고 짠 맛을 잃은 소금은 더이상 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친구초청행사를 2주 앞두고 있다. 친구를 정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구 해야 되노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귀찮노 하는 사람도 있을 것. 우리가 이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내 친구들을 이 장소에 데려오는 것도 중요하고, 많은 사람이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에피타이저로 맛보는 것도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서 나의 마음을 한 번 점검해보면 좋겠다. 혹시나 여러분의 반 친구 중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보이거나, 왕따를 당하고 있거나,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저는 여러분이 그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면 좋겠다. 나도 고등학교 때 말도 거의 없고, 친구 1,2명이랑만 얘기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2명의 친구가 “오늘 우리랑 밥 함 먹을래?” 하면서 찾아왔고, 중창단 동아리를 시작하고 그 친구들과 더 관계하면서 교회를 처음 가보게 되었다.
‘누가 내 이웃인가?’, ‘누가 내 친구인가’를 묻고 찾는 율법학자, 제사장, 레위인 같은 마음이 아니라.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 줄까?’를 찾는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이 여러분들에게 부어지기를 축복한다.
여러분이 평소에 관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를 데려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옳은 일이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용기를 내어서, ‘아픔을 겪고 있는, 어려움에 처한, 우울해보이는, 힘들어보이는’ 저 친구에게 내가 다가가서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함을 흘려보내주어야겠다. 내랑 오늘 밥 무까? 이러한 마음으로 남은 2주를,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친구들에게 흘려보내는 시간으로 보내기를 축복한다. 누가 내 이웃인지를 재어보고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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