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찾음(2)

성령강림(2026)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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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신앙

할렐루야.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어제 체육대회가 있었죠. 다들 재밌게 시간 보내셨나요? 저희 가족도 오랜만에 그런 체육대회에 참가해 본 거라서 굉장히 재밌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경품 추첨이 엄청나게 기다려졌었는데 아쉽게도 저희는 하나도 얻지 못해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마을 주민분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게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어제도 만난 분들께는 말씀드렸지만 지금 저희 아이가 벌써 육 개월 하고도 절반 정도 지나가고 있는데요. 또 둘째가 지금 이제 전도사님 뱃속에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기르고 또한 낳고 하는 이 과정 가운데서 요즘 기도 제목이 거의 아이와 관련된 기도 제목이 참 많아지는 것 같아요. 돈과 관련해서도 저희가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재정을 허락해 주세요, 라는 기도를 한다던가, 건강과 관련해서도 특히 요즘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는데, 아이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기도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참 신기한 것이 하나님께서 저희가 구하는 대로 다 주시지는 않는데 하나님께서 저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쪼금 농담 삼아서 하나님, 저희 아이 키우는 데 재정이 부족해요 로또 좀 당첨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기도를 하고서 정말로 제가 로또를 사가지고 집에 가고 있는데 갑자기 제가 정차하고 있는 와중에 뒤에서 차가 들이받아가지고 교통사고가 난 겁니다. 진짜 로또에 당첨은 안됐지만 사고 처리 하는 과정을 통해서 딱 저희가 필요한 만큼의 재정이 채워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필요를 저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채워주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어쩌보면 기복신앙인 것이 아닐까? 이렇게 뭐가 필요하다고 하나님께 바로 기도로 구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저희는 저희의 필요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구할 때가 많습니다. 단순히 돈 문제 뿐만 아니라 가족의 건강이라던지, 아니면 직업과 관련한 기도던지, 심지어는 미래의 배우자를 놓고도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어찌보면 “기복”, 우리의 행복을 구하는 기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복신앙이 좋지 않다고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럼 이러한 기도들도 다 나쁜 것일까요?

혈루증 앓는 여인

오늘 본문말씀인 누가복음 8장 말씀에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예수님께 다가간 여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말씀 43절 말씀을 보시면요,
Luke 8:43 NKRV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무려 12년 동안이나 혈루증, 그러니까 피가 계속해서 흐르는 병이 있었는데 의사를 아무리 찾아가도 이 병을 고치지 못하는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5세기 이후에 쓰여진 성경 사본에는 의사한테 아주 재산을 다 탕진했다 라고도 표현할 만큼 이 여인이 혈루증을 고치기 위해서 갖은 애를 다 썼는데 고치지 못한 겁니다.
이 병은요 사실 그냥 피만 많이 나오는게 문제가 아닙니다. 모세 율법, 특히 레위기 말씀을 보시면요.
Leviticus 15:19 NKRV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Leviticus 15:25 NKRV
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가 아닌데도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그의 불결기를 지나도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은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여인이 몸에서 피가 나오게 되면, 아마 생리를 이야기하는 것이겠죠? 그렇게 되면 7일 동안 부정하다고 하는데 심지어 이 생리 같은 것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면 그 계속되는 내내 부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유대인 사회에서 부정하다고 하면요 이 사람이 앉은 곳도 부정하고, 누워있는 곳도 부정하고, 심지어 만지는 모든 사람과 물건이 부정하고, 심지어 그렇게 만진 물건을 만지는 다른 사람도 부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이 여인이 일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구걸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요? 12년 동안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부정하게 여겨졌던 이 여인은 이 병을 낫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박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낫지 않으면 살아갈 방법 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말씀 44절 말씀을 보시면,
Luke 8:44 NKRV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몰래 예수님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슬쩍 만지니까 바로 그 즉시 혈루증이 멈췄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굳이 몰래 뒤로 가서 옷자락만 만졌을까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 여인은 혈루증 때문에 누군가를 만지기만 해도 그 사람이 부정하다고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놓고 만지는 것은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라 다른 사람을 욕보이게 하는 것이고 아주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이었어요. 그런데도 이 여인은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혈루증이 즉시 고쳐지는 치유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문말씀 45-46절 말씀에,
Luke 8:45–46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누가 내게 손을 댔느냐?” 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시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이 다 “저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인이 예수님을 만진 상황이 아주 많은 무리와 함께 이동하고 있던 때였거든요, 그래서 베드로가 “아니 주님. 아주 무리가 밀려들어서 계속 밀치고 있지 않습니까? 대체 누굴 찾으시는 겁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 “누군가가 내게 손을 대어 내게서 능력이 빠져나갔다”라고 마치 여인을 찾으시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막 몰려들어서 밀치는 와중에도 “누군가가 예수님을 만져서 치유받은” 것을 알고 계시는데 설마 여인이 만진걸 모르셨을까요? 아마 알고 계시지만 아마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면서도 치유받기를 원했던 것도 알고 계셨을 겁니다. 그래서 여인이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예수님께 직접 말하기를 원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인도 예수님께서 아신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본문말씀 47절에
Luke 8:47 NKRV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이 여인이 벌벌 떨면서 예수님 앞에 엎드리고 자신이 손을 댄 이유와 곧바로 낫게 된 것을 그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말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 여인이 이 말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다 수군거렸을 거예요. “저저 부정한 여인이 아주 염치도 없이 예수님을 만졌대!” “예수님도 부정타는거 아니야?”하면서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자신의 죄,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 각오를 하면서도 만졌던 것과 자신의 혈루증을 낫게 하기 위해서 한 행동을 모두 예수님 앞에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말씀 4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Luke 8:48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이 이 여인을 구원하였다는 말씀과 함께 평안히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복과 믿음

흔히 이 여인의 행동,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진 것을 보고 믿음이 좋은 여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상황, 율법에서 부정하게 되고, 누군가를 만지기만 해도 부정해지는 상황에서 이 여인의 행동은 사실 “믿음이 좋은 여인”이라기 보다도 “나만 나으면 돼”라는 생각을 가진 이기적인 여인에 조금더 가깝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하려고하는, 소위 말하는 “기복 신앙”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여인은 아주 절박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재산을 다 탕진해서라도 낫고 싶었는데 그 어떤 의사도 이 여인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먹고 살 수 있는 수단도 없었을 거구요.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은 이 여인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정말로 이 여인의 이 “기복적인” 신앙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정말로 이 여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만졌을 때 치유받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이 여인이 자신을 만졌다는 것을 알고 계실 정도인데, 정말 이 여인의 이런 기복적인 신앙, 자신이 행복해지면 된다는 이 믿음이 나쁜 것이라면, 낫지 않게 하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 본문말씀은요 이 여인과 같은 기복신앙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얼마나 이런 마음과 믿음이 많습니까? 자녀가 아픈데 자녀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당장 내일 먹고 살 돈이 없는데 돈을 바라는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복 신앙이라고 듣지 않으실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혈루증을 낫기 위해서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더라도 예수님을 만진 이 여인을 치유하신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구하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구하는 그대로 다 족족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설교 초반에 말씀드린 경험처럼 때로 생각치도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꼐서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드리는 기도, 기복적인 믿음과 기도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믿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치유된 것을 아시고 “아 치유되었구나 이제 알아서 잘 살겠지”하고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본문말씀 46절에 나온 것처럼,
Luke 8:46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누군가가 내게 손을 대어서 내 능력이 빠져나갔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여인을 찾으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 여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이 여인이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 스스로 고백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예수님꼐서 열명의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병환자들이 “예수 선생님! 우리를 제발 불쌍이 여겨주세요!”하고 외치니까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서 너희가 깨끗해졌음을 알려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이 나병환자들이 제사장을 찾아가는데 그 가는 길에 몸이 깨끗해진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자기가 깨끗해진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을 다시 찾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에 예수님께서 “아니, 열 명이 다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어찌 이 이방 사람 한 사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왔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Luke 17:19 NKRV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혈루증 앓는 여인에게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이 믿음, 그저 자신만 병이 나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기복적인 믿음이 아니라,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예수님 앞에 엎드리며 자신의 잘못을 고한 것과 같이, 자신이 깨끗해진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온 이 사마리아 나병환자와 같이, 우리의 필요가 채워졌을 때 하나님을 찾는 믿음이 진짜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이 바로 이러한 믿음이고, 구원은 바로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믿음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정말 절박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경우도 있을 거구요, 그저 좀더 나은 삶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조금 부족한 필요를 구할 때도 있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을 치유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 구하는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저 우리의 필요를 위한 믿음과 기도는 연약한 믿음입니다. 아직 우리가 삶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구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도 귀하게 여기시지만 그보다 더 큰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혈루증을 치유받고서 자신의 잘못을 예수님 앞에 그리고 모든 사람들 앞에 다 고했던 여인의 그 믿음, 몸이 깨끗해지고서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나병환자의 그 믿음이 바로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우셨음을 믿고, “아 하나님 이거 주셨어요? 땡큐!”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풍족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는 믿음이 바로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입니다.
본문말씀 47-48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Luke 8:47–48 NKRV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할렐루야! 부족할 때만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풍족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또한 그 가운데 잘못한 것을 숨김없이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바로 그렇게 예수님이 찾으시는 강한 믿음을 가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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