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찬양하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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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할렐루야!
오늘을 마지막으로 “시편과 함께 걷는 인생길” 설교 시리즈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시편의 가장 마지막 편인 150편입니다.
우리는 이 시리즈를 시편 1편에서 시작했습니다. 시편의 첫 단어는 “복 있는 사람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마지막은 “할렐루야”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인생에는 여러 가지 부침이 있겠지만,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의미겠지요.
우리는 그동안 여러 시편 가운데 여덟 편을 뽑아서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다가,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어떤 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면서도 하나님을 배신하고 죄를 범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용서를 구합니다.
어떤 시는 고난과 아픔 가운데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숲속에서 홀로 메아리를 듣듯이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기도 합니다.
또 어떤 시는 불의한 인간들 앞에서 하나님께 공의와 정의를 회복시켜 달라고 부르짖으며, 불의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푹 빠져서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죄 가운데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처럼 귀중하게 여기고, 즐겁게 묵상함을 간증하기도 합니다.
경외함과 기쁨과 설렘, 평안과 위로, 불안과 걱정, 두려움과 분노가 우리의 인생 가운데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가운데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 8주 동안 시편을 통해 배운 중요한 교훈입니다.
시편은 우리의 삶에 기쁨만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슬픔도 있고, 탄식도 있고, 때로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질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들은 그러한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서 숨기지 않았습니다.
슬플 때는 하나님 앞에서 슬퍼했고, 두려울 때는 하나님께 두려움을 토로했으며, 기쁠 때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은 우리가 날마다 겪는 모든 상황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 가운데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데 유익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독일의 구약학자 한스-요아힘 크라우스는 그의 책 『시편 신학』에서 종교사학자 카를 케레니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편이 우리를 종교 자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의 위험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교제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종교 행위가 대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기보다 종교적인 형식과 의식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과 별로 상관없는 종교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한국말로 쉽게 표현하면 “앙꼬 없는 찐빵”, “속 빈 강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지만 정작 하나님은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의 형식이나 질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기도와 성례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신앙의 행위 가운데 정작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시편은 우리를 다시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시편은 우리를 다시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때,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욱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심을 발견하고, 죄 가운데에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경험하며, 불의한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보게 됩니다.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찬양 중에도 이런 가사가 있지요.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그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그렇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 믿음의 응답입니다.
그렇다고 슬픔을 억누르고 억지로 기뻐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시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슬픔을 숨기는 방법이 아니라,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오늘은 시편 150편을 통해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시편 150편을 통해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시편 150편은 어디에서 찬양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찬양해야 하는지,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찬양해야 하는지를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어디에서 찬양해야 할까요?
먼저 어디에서 찬양해야 할까요?
1절을 보면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만나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하던 성전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하늘 성소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는 하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늘 아래 어느 곳이든지, 혹은 장차 우리가 우주여행을 하게 된다면 우주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권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예배당에서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기쁨과 슬픔이 있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까요?
2절입니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먼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 때문에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이란 그분이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의미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일,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보존하시는 일,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돌보시는 일, 불의한 세상 가운데 공의를 행하시는 일, 모두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능력만을 찬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선하시며, 의로우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온 세상보다 뛰어나시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지극히 위대하신 분이시기에 찬양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 때문에 찬양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에 찬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 때문에 찬양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에 찬양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일을 행하셨을 때만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고, 기도한 대로 응답을 받았을 때만 찬양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요?
3절부터 5절까지 보면 나팔 소리로 찬양하고,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며,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고, 현악과 퉁소와 제금으로 찬양하라고 합니다.
각각의 악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고 어떤 소리를 내는지는 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현대 악기의 기준으로 본다면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건반악기와 전자악기 등 다양한 악기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목소리를 합하여 찬양하는 것이지요.
시편 기자는 심지어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물론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든 예배에서 이 악기들을 사용하고 반드시 춤을 추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구약의 성전 예배와 신약 교회의 예배 형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와 몸짓을 모두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목소리나 화려한 악기가 아니라, 찬양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고 진실한 믿음과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6절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호흡이 있는 모든 존재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또한 에베소서 1장 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셔서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에서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무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지으셨으나,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찬양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가 찬양하고 숭배할 대상을 스스로 정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자기 자신을 찬양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을 높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돈을 찬양합니다. 명예와 권력을 찬양하고, 성공을 찬양합니다.
물론 돈이 유익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훌륭한 사람을 칭찬하며, 어떤 성취를 기뻐하는 것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대신할 때입니다.
로마서 1장 25절은 죄인 된 인간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면 이러한 것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면 이러한 것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도 여전히 돈을 사랑하고, 명예를 탐하며,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기를 원하는 마음과 씨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그러한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모시기를 배우게 됩니다.
돈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관리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명예도 마찬가지이고, 우리의 성공과 성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이 즉시 사라지거나, 불의한 사람들이 모두 변화되거나, 우리의 슬픔이 순식간에 기쁨으로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이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옮겨갑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고, 우리의 흔들리는 감정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확실하다는 사실을 붙들게 됩니다.
환경이 먼저 제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삶의 방향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은 처음에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마지막도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이 말은 히브리어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시편의 마지막 다섯 편인 146편부터 150편까지는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약의 요한계시록 19장에도 할렐루야라는 찬양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하늘의 허다한 무리가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찬양하며 할렐루야를 외칩니다.
시편의 마지막에서 울려 퍼지는 할렐루야가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찬양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여전히 죄가 있고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는 성도들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이 있습니다.
시편을 기록한 믿음의 사람들도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상황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시며,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마침내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더 이상 죄와 죽음이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는 그분 앞에서 영원히 기뻐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단지 오늘의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앞으로 완성하실 영광스러운 약속을 믿기에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에 탄식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눈물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시편 기자들처럼 우리의 모든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보다 더 확실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소망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길이기도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고난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도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붙들려, 마침내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로 “시편과 함께 걷는 인생길” 설교 시리즈는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길은 계속됩니다.
앞으로도 기쁨과 슬픔이 있을 것이고, 감사와 탄식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영원한 할렐루야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한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할렐루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소망을 품고 오늘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