Χριστὸς, מָשִׁי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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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리스도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지지난 주에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지난 주에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살아내는 삶-이웃이 되어 주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다. 오늘은, 그래서, 성경은 누구에 대해 증언하는 말씀인가, 그리고 이웃이 되어 주는 삶을 사는 우리는, 결국 이웃에게 무엇을 나누어주어야 하며 누구를 소개해야 하는가? 이것에 대해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슬라이드1). 특히 우리가 너무나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단어,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우리가 정말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질문. ‘그리스도’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영광을 얻을 기회를!
보통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러나 그리스도는 엄밀히 말하자면 ‘구원자’라는 뜻이 아니다.(슬라이드2) 헬라어 ‘Χριστὸς’는 히브리어 ‘מָשִׁיחַ’를 번역한 것인데, 마쉬아흐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존재’,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존재를 뜻한다. 그리스도와 메시아는 같은 뜻입니다. 임금을 한자로는 왕, 히브리어로는 멜레크라고 하는 것처럼, 같은 뜻의 단어를 다른 언어로 표현한 것일 뿐.
리오넬 메시가 성이 메시고 이름이 리오넬인 것처럼, 그리스도가 예수의 성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존재이시다!”는 신앙고백이다. 그렇다면 기름부음 받은 존재가 어떤 존재이기에,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 히브리어로는 마쉬아흐 즉 메시아라고 부르는가?
제사장, 예언자, 왕
제사장, 예언자, 왕
(슬라이드3)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에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셔야 그 직분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세 가지의 직책이 있었다. 1) 제사장, 2) 예언자(선지자), 3) 왕
각각의 직분을 임명할 때 사용된 도구는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잘 알려진 방식은 양각나팔을 통해 깨끗한 올리브유를 붓는 것으로 임명식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메시아라는 말은 예수께만 유일하게 바쳐진 단어가 아니라, 제사장-예언자-왕을 일컫는 보통명사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예수라는 존재를 가리켜서 특별하게 메시아라고 부르는가? 왜 그리스도라고 부르는가? 가장 큰 이유는 예수께서 제사장, 예언자, 왕의 역할을 전부 감당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였지만, 그는 제사를 집례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가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자, 예언자였던 사무엘에게 책망 받았다. 다윗 역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성소에 들어갈 때 그는 대제사장의 권위 아래 순종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를 제사라는 제도를 통해 중재하는 역할,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대언자의 역할, 왕은 권위를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역할이다. (슬라이드4)
예수께서는 유일무이하게 세 가지 직분의 역할을 감당하신 분이시며, 각각의 직분에서 G.O.A.T (Great Of All Time)였던 분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슬라이드5)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언자: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아들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왕: 그 아들은 모든 세계를 지으셨으며, 영광의 빛이시요 하나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신 모습이시다.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고 다스리신다.
제사장: 그 아들은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
나는 예수를 진짜 그리스도로 믿는가?
나는 예수를 진짜 그리스도로 믿는가?
(슬라이드5)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진짜 그리스도라고 믿습니까?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실제의 삶에서는 세 가지 직분 중에 ‘죄에 대한 역할’만을 담당하는 제사장 정도로 축소해서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를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1/3만큼만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의 고백이 온전해지려면 나머지 두 직분에 대한 고백이 더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대언자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 자체가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시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시는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지금 나에게 어떠한 것들을 요구하고 도전하시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시고, 또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는 고백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야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참된 예언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그분께서는 나에게 말씀하는 분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 안에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고자 하는 분이시다. 마치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고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오라고 소리쳤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2026년의 이 세상을 향하여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사회의 부조리함과 불공정함을 깨뜨리고 사회의 각 영역들이 하나님께서 원래 만드신 목적대로 다시 세워지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 가지 더 필요한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시라’는 고백이다. ‘주님만이 왕이십니다’라는 찬양이 있다. 찬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의 왕이라고 고백하는가? ‘내 삶에’, ‘이곳에’, ‘온 땅에’ 그분은 내 삶의 작은 부분도 빼놓지 않고 완전히 나를 다스리시는 나의 왕으로 인정받으셔야 한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과 이 장소에서 왕으로 높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더 나아가 그분은 온 땅에서 모든 영광을 홀로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온 땅’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거룩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중국의 상하이에서, 중국인들의 언어를 통해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알제리의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서, 아랍어를 통해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르헨티나의 대평원 가운데서도, 그 땅의 농부들의 에스파냐어를 통해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내년에 갈 도쿄에서도, 일본인들의 일본어를 통해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잠깐 곁길로 새서, 우리 중고등부가 일본에서,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 노래하고 예배하기 시작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통하여서 일본에서도 왕으로 인정받으시게 된다. 그리고 그분이 왕으로 인정받으시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키시게 되고, 그 지역과 도시 안에 하나님께서 예배자들을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시게 된다. 우리가 이것을 기대함으로 단기선교를 준비하면 좋겠다. 무언가 많은 사역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 땅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선포하고 노래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그것을 소망함으로 저는 여기 있는 모두가 다같이 기대를 가지고 떠나면 좋겠다.
정리하면서
정리하면서
말씀을 정리하겠다.
그리스도와 메시아는 같은 뜻으로,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존재를 뜻한다.
그 기름부음 받은 존재는 구약 시대에서 시작된 것으로, 제사장-예언자-왕의 세 가지 직분이다.
우리가 예수를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그리고 메시아라고 신앙고백하는 것은, 예수께서 제사장-예언자-왕의 직분을 완전하게 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구원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서 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께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옳은 신앙고백이지만, 완전한 신앙고백은 아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예언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술의 고백을 넘어 일상의 고백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 나의 하루의 삶 가운데 당신의 말씀을 듣고 따르기 원합니다. 믿음의 삶에 대해 격려하여 주시고, 잘못된 삶에 대해 책망하여 주십시오.’ 이러한 고백이 필요하다. 그래야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를 삶에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예수님, 당신이 나의 삶의 모든 권리를 가진 유일한 왕이요 주인이십니다. 나의 삶의 가장 작은 조각일지라도 다 당신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필요하다. 그래야 모든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나는 16년째 맥북을 쓴다. 내가 맥os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애플의 설명서를 읽어야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설명서를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면 우리에게 탑재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os 설명서를 읽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내가 하드웨어는 예뻐서 맥북을 쓰지만, 패러렐즈 같은 써드파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맥북에 윈도우를 깔아서 쓰고 맥os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내가 제대로 맥북을 쓴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겠지. 그리고 나는 음악작업이나 프레젠테이션 등 맥북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맥북을 쓰는데, 내가 웹서핑이나 메모장만 켜서 사용하고 있으면 내가 맥북을 ‘제대로 알고 활용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닐 것.
(슬라이드6) 일개 전자기기조차도 그것을 정말로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을 공부하고 ‘아 이런 기능도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앎과 동시에 그것을 직접 사용해보아야 한다.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도 비슷한 적용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부 모습만 안다면, 그분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부 모습조차도 내 머리 속에만 가두어놓고 있다면, 그것은 경험해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알았던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아주 적은 부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점점 더 많이 그리고 깊이 알아감으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더 넓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