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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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
VRChat
저는 컴퓨터 게임을 참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참 많이 즐긴 게임이 VRChat이라는 게임인데요, 말 그대로 VR, 가상 현실 기기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직접 만든 캐릭터와 직접 만든 세계로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즐기는게 목적인 게임입니다. 제가 얼마나 플레이했는지 보니까 2018년부터 지금까지 대략 2천 시간 정도 했더라구요. 최근 몇 년은 거의 안했는데 특히 코로나 시기 때 많이 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제가 이 게임을 많이 즐기기도 했고 또 게임 안에서 여러 외국 사람들도 만나고 하다보니까 외국어 공부도 게임을 하면서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람들이 만든 세계가 뭐가 있을까 하고 탐방을 하는데 거기에 교회가 있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마중물침례교회라고 하는 교회에서 교회 청년들이 코로나 시기 때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걸 안타깝게 생각해서 게임 안에 교회를 세웠다고합니다. 그래서 저도 한 동안 함께 유튜브로 예배 라이브를 틀면서 예배를 드리고, 또 한 번은 선교사님이 직접 가상 현실 기기를 차고 들어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신 적도 있는데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가상 현실 교회에 대해 흥미가 생겨서 좀더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미국의 한 목사님이 가상 현실에 교회를 세우고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이 있더라구요. 보니까 휠체어를 탄 여성이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쫒겨난 일,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남성이 교회에서 쫒겨난 일 등등 교회에 가고 싶어도 교회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가상 현실에 교회를 세웠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인터넷 공간에도 교회가 생겨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예배자들을 위한 예배 공간을 이렇게 세워나가시는 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 여인
오늘 본문말씀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도 그렇게 예배 자리에서 쫒겨난 것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시는 장면은 아주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예수님께서 유대 지역을 떠나셔서 갈릴리로 향하시는 중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던 때에 일이었습니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거기에 우물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에 피곤하셔서 우물 곁에 앉아서 쉬셨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시간이 여섯 시라고 나오는데 오늘날의 시간으로 따지자면 대략 정오, 해가 가장 높이 떠있는 시간입니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그런데 한 사마리아 여인이 혼자서 물을 길으러 왔다고 합니다. 보통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올 때 해가 뜨거운 정오는 피하기 마련이라 사람이 없었을 거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여인은 혼자서,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에 물을 길으러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보시고는 “내게 물을 좀 주게”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잠깐 먹을 것을 사려고 동네에 간 터라 지금 우물에는 예수님과 여인 단 둘이 있는 것이죠.
이 이후에는 여러분도 익히 잘 아시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유대인이 어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내가 누군지 알았더라면 나한테 물을 구할 것이다.” “아니 물 담을 그릇도 없는데 어떻게 저한테 물을 주신다는 거예요?”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예수님께서 생명의 물이 되심을 암시하시는 내용이죠.
저희가 오늘 살펴볼 내용은 바로 그 뒤에 내용입니다. 본문말씀 16-18절 말씀을 보시면요,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께서 뜬금없이 여인에게 너의 남편을 불러오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이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니깐요, 예수님께서 “그래, 네가 남편이 없다라고 하는 말이 맞지.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있는 사람도 너의 남편이 아니지 않느냐. 네가 하는 말이 참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이 사실은 사마리아 여인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아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부분입니다. 사실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다라고 하는 말은요, 이 여인이 이혼을 했든지 간에 아니면 사별을 했든지 간에 결혼하고 헤어지고 또 다시 결혼하고 하는 과정을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심지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남편조차 아닌, 그러니까 동거인으로서 같이 살고 있기만 하지 결혼조차 안 한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여인이 그렇게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이고, 저 여인이 어떻게 남편들한테 잘못을 했겠지. 저 여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으니까 결혼을 그렇게나 많이 했겠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문란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라고까지 추측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여인이 어떻게, 왜 그렇게 다섯 번이나 결혼을 했는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저희가 봐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데 당시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러한 여인들은 단순히 뒤에서 뒷담화가 나오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아주공동체에서 배제될 만큼의 큰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여인들이 다 같이 의문에 와서 수다를 떨 동안에 이 여인은 남들은 절대 나오지 않는 정오 시간에 홀로 우물가에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공동체에서 배제된다라고 하는 것은 예배 공동체, 그러니까 회당에서 말씀을 듣고 함께 예배드리는 그 모임에서조차도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여인은 이제 자신의 처지를 다 알고 있는 예수님께 예배에 대해서 묻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주님! 제가 당신을 보아하니 아주 선지자로 보입니다.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이 그리심 산에서 예배드렸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지 않습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이라고 하는 곳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모세오경에서는 그리심 산이 불경한 산으로 여겨졌는데 반대로 사마리아 버전에서는 그리심 산이 예배드리는 산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보니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가 예배드리는 곳이 더 좋은 곳이라고 하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여인은 어떻습니까? 유대인들이 예배드리는 예루살렘은 고사하고 그리심 산에서도 예배드릴 수 없을 만큼, 추문 때문에 예배 공동체에서 쫓겨난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이 질문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에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는데, 나같이 어디에서도 예배드릴 수 없는 사람은 대체 어디에서 예배드리면 된다는 말입니까?”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여인이여, 앞으로는 이 그리심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고, 너희가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22절에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는 말은 정말로 유대인들이 구원의 중심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본문말씀 23-24절 말씀인데요, 함께 한 목소리로 읽어볼까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장소 같은 것에 구애 받지 않고 어디에 있든지 간에 그곳에서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비록 이 여인이 공동체에서 쫓겨나고 회당에서도 쫓겨났지만 이 여인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제대로 하나님을 찾고, 그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교회에서 쫓겨난 자들
교회에서 쫓겨난 자들
이처럼 오늘 말씀은 예배 장소, 예루살렘 성전이나 그리심 산이나 아니면 회당이든지 그곳에서 쫓겨난 사람들 조차도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때 그곳이 예배 처소가 되고, 또한 그렇게 예배드리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다 라는 말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 초반에 말씀드린 것처럼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나가지 못했던 청년들, 휠체어 때문에 교회에서 거부당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나마 교회를 세워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러한 정성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는 것이죠.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교회는 과연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보일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쫓겨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아주 대놓고 교회에서 “당신 나가!”라고 하면서 쫓아내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생각해 보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계단으로만 이루어진 예배당을 올라갈 수 있을까요?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자막이 없는 설교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기가 예배 중에 막 “으아앙!”하고 울고 있으면, 거기다가 눈빛을 “째릿!”하고 있는 예배당에서 부모와 자녀가 같이 예배가 될 수 있을까요? 의도했든지 의도하지 않았든지 교회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비유, 양 한 마리, 동전 한 닢, 탕자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도 버리는 이가 없이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잃어버린 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에게서 떠나간 사람들이었다면,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이들은 잃어버리진 않았지만 소외된 자들, 하나님을 믿고 또한 예배드리지만 함께 예배드릴 수 없게 소외된 자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소외시킨다고 한다면 그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더이상 예배가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것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항상 어느 누구라도 찾아올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물론 재정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자물쇠를 걸어잠그는 건 당연히 해야하지만 적어도 예배드리려고 예배당에 찾아오는 사람을 저희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희 딸이 막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만 짜증부리고 울고 하면 저희가 감당이 되니까 괜찮지만 만약에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거나 아니면 백화점을 간다거나 할 때 거기서 막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 하다보니까 얼른 가족 화장실이나 유아 휴게실에 들어간다거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추석 때 제주도에서 온 가족이 함께 모였는데 오고 가는 비행기에서 하린이가 그럴 까봐 정말 많이 걱정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저희가 아이를 돌보면서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보는 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갓난아기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눈치보지 않는 예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막 예배를 일부러 방해한다거나 신천지가 와서 행패를 부린다거나 하면 제재를 하겠지만,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 함께 예배드릴 마음이 있는 사람, 그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자 하는 예배자는 교회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꼐서는 그렇게 함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와 교회를 찾으십니다.
본문말씀 23-2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함께 읽겠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할렐루야!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고자 하는 이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어느 누구라도 예배드릴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환영하며, 그렇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