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없는 열심

매일성경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8 views
Notes
Transcript

Psalm 103:1–5 NKRV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찬송가: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요
Judges 21:1–12 NKRV
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4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5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 7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8 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9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 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11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

1. 하나님 없는 열심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사사기 21장은 참 불편한 본문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본문도 있고, 큰 위로를 받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2절,이스라엘 백성이 울고 있습니다. 4절,하나님 앞에 제단도 쌓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도 드립니다.
겉으로만 보면 굉장히 신앙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면 놀랍습니다.
10절,한 지파가 사라질까 걱정하다가 다른 성읍의 사람들을 죽입니다. 베냐민을 살리겠다고 하면서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합니다.
슬퍼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점점 더 끔찍해집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사기 전체가 마지막에 내리는 진단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그 말이 어떤 뜻인지를 보여 주는 한 장면입니다.이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자기 생각에 옳은 것을 하나님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붙들고자 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열심은 오히려 상처를 더 깊게 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만든 맹세는 결국 우리를 묶어 버립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앞장에서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기브아에서 일어난 끔찍한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그 범죄는 분명 심판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의 대응이 점점 통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거의 베냐민 지파 전체를 멸절시키는 데까지 갔습니다. 베냐민 남자 가운데 겨우 육백 명 정도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또 하나의 맹세를 해 놓았습니다. “우리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주지 않겠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베냐민 지파를 거의 다 죽였습니다. 여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남자들에게 자기 딸도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2절부터 갑자기 울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심히 통곡하여.”
왜 웁니까? 3절입니다.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이스라엘 중에 오늘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여기서 우리는 굉장한 아이러니를 봅니다.
“하나님, 왜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되었습니까?” 그런데 누가 거의 없애 버렸습니까? 자기들이 그랬습니다.
누가 딸을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까? 자기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내가 결정합니다. 내가 밀어붙입니다. 내 방식대로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힘들어지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됐습니까?”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말을 세게 해 놓고 관계가 틀어지면, “왜 저 사람이 저럴까?”
자녀에게 내 방식만 강요해 놓고 자녀가 마음을 닫으면, “왜 아이가 이렇게 되었을까?”
욕심을 따라 내가 결정해 놓고 일이 어려워지면, “하나님, 왜 길을 열어 주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많은 문제는 하나님이 안 풀어 주셔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의 맹세입니다.
맹세 자체가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가는 열심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너무 흥분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베냐민에게 우리 딸은 절대로 안 준다.”
그때는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이 자기들을 묶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절대로 저 사람 용서 못 해.” “다시는 저 사람하고 상종 안 해.” “내가 다시는 저 일 하지 않을 거야.”
분노 가운데 한 말이 나중에 나를 묶습니다. 상처 속에서 내린 결정이 나중에 내 신앙을 묶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했던 말이 화해할 길을 막아 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열심만 가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서 열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열심이 신앙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그 열심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첫 번째로 기도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내 생각이 너무 앞서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내 감정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착각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내 열심보다 말씀을 앞세우게 해 주십시오.”

2. 회개 없는 슬픔은 또 다른 죄를 만든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더 심각한 장면은 5절 이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또 하나의 맹세를 기억합니다.
“미스바 총회에 나오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죽이겠다.” 그래서 조사를 해 보니까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합니까? “잘됐다.” 베냐민 남자들에게 줄 여자가 필요했습니다. 야베스 길르앗은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해서 처녀들을 데려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을 보십시오. “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및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여러분, 얼마나 끔찍합니까? 조금 전까지 이 사람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울었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가운데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지파가 없어질까 걱정하던 사람들이 지금 다른 성읍을 죽이러 갑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비극입니다.
그들은 슬퍼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슬픔과 회개는 다릅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과 회개하는 것은 다릅니다.
예배드리는 것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도 항상 같은 것은 아닙니다.
4절을 보면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예배했습니다.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몇 절 지나지 않아 또 사람을 죽이러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방식은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경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는 것이 회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힘들어서 울 수 있습니다.
결과가 아파서 울 수 있습니다.
관계가 깨져서 울 수 있습니다.
내가 손해 봐서 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회개는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사람이 왜 저렇습니까?”가 아니라, “하나님, 내 안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습니까?”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만 묻는 것이 아니라, “주님, 이 일 속에서 내가 돌이켜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결과는 슬퍼했지만 자기들이 걸어온 길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해결책도 결국 자기 방식입니다. 첫 번째 폭력을 두 번째 폭력으로 해결합니다. 한 번의 잘못된 맹세를 또 다른 맹세로 해결합니다.
죄의 문제를 더 큰 죄로 해결합니다. 여러분, 죄가 무서운 이유가 이것입니다. 죄는 한 자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부릅니다. 거짓말 하나를 감추려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합니다.
미움을 붙들고 있으면 결국 말이 거칠어집니다. 말이 거칠어지면 관계가 무너집니다. 관계가 무너지면 자기 정당화를 시작합니다.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런데 사사기 마지막 장을 보면 그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는 옳았습니다.
이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옳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넘어지는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확신해서 돌이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은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오늘 내가 틀릴 수 있다.” “내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 “내가 옳다고 붙들고 있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실 수 있다.”
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제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물론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가십시오. “하나님, 이 문제를 통해 먼저 나를 고쳐 주십시오.” 그것이 회개의 기도입니다.

3. 우리는 더 좋은 방법을 원하지만 필요한 것은 참된 왕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어디에서 복음으로 나아갑니까? 사사기를 끝까지 읽으면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오늘 본문의 근본적인 문제는 방법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왕이 없다”는 말은 단순히 정치적인 왕이 없었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그러나 실제 결정은 누가 합니까? 자기가 합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비극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신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내가 합니다. 내 돈은 내가 결정합니다. 내 관계도 내가 결정합니다.
내 자존심도 내가 지킵니다. 내 계획도 내가 세우고, 마지막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축복해 주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왕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마지막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누가 너의 왕이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더 강한 의지도 아닙니다.
더 많은 열심도 아닙니다.
참된 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결국 그 참된 왕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다윗보다 크신 왕,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사기의 이스라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다른 사람을 죽여 자기 백성을 살리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맹세를 지키기 위해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에게 칼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이 저주의 칼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예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죄의 책임을 주님께서 지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죄가 죄를 낳는 악순환을 끊어 버린 자리입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으셨습니다.
원수를 죽여 평화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사사기의 이스라엘보다 본질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판단을 왕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구하지 말고) 참된 왕께 돌아오라.”(삶의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내려 놓아라)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시면 달라집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화해가 중요해집니다.
내 자존심보다 순종이 중요해집니다.
내 방법보다 말씀이 중요해집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세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내 열심이 항상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서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눈물이 항상 회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과만 슬퍼하지 말고 내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내 인생의 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께 내 삶의 주권을 다시 드려야 합니다. 혹시 오늘 내 마음속에 이런 말이 있습니까?
“나는 맞고 저 사람이 틀렸다.” “나는 절대로 양보 못 한다.” “이 방법밖에는 없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
오늘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한번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제가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살지 않게 하십시오.”
“내 생각보다 말씀을 따르게 하십시오.”
“내 열심보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게 하십시오.”
“내가 왕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오늘 하루의 선택 속에서 인정하게 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사사기의 비극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살았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합시다. 하나님 없는 열심은 상처를 더 깊게 합니다. 그러나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 들어가면,
상처는 회복으로 바뀌고, 자기 의는 회개로 바뀌며, 싸움은 화해의 길을 찾게 됩니다.
오늘도 내 소견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내가 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