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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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만든 신
본문: 사사기 17장
주제: 하나님을 믿는 것과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 믿는 것은 다르다.
​
[서론]
제가 필리핀에 있을때 매우 인상깊게 본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대부분 카톨릭 신자들입니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영향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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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필리핀 카톨릭 신앙은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토속신앙과 섞여 원래의 카톨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 것입니다.
제가 제일 놀랐던 것은 매년 열리는 ‘블랙 나자렌’ 행렬입니다.
​
바로 이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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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짊어진 검은 피부의 예수상을 사람들이 메고 거리를 행진합니다.
그러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예수상이나 그것을 감싼 천을 만지려고 합니다.
병치유와 축복과 기적을 경험할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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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사람은 과연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 믿는 것일까요?
​
우리는 흔히 우상숭배라고 말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전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상숭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교묘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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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사기 17장에 바로 그런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본론1]
사사기 17장은 사사기의 첫번째 에필로그, 첫번째 결론에 해당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미가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미가’라는 이름은 “어느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라는 매우 신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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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실제 삶은 이름과 너무나 다릅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은을 훔쳤습니다.
그것도 조금 훔친게 아니라 무려 은 1100세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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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보면 미가가 한 레위인을 자기 집 제사장으로 고용하는데 일년에 은 10세겔을 주겠다고 합니다.
단순히 숫자만 따져도 무려 레위인 연봉 110년치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가 그 돈을 훔쳐간 사람을 저주하는 것을 미가가 듣습니다.
겁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그 은을 훔쳐간 사람이 자신이라고 고백하고 돌려줍니다.
​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꾸짖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들에게 축복을 빌어줍니다.
자신이 저주한 사람이 아들임을 알고 두려워 저주를 축복으로 바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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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이상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집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돌려받은 돈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합니다.
여전히 아들이 저주받을까봐 두려워 어떻게든 축복으로 돌려놓으려는 속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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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우상을 세우시는 것을 좋아하실까요?
십계명을 보면 1, 2계명에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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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어머니는 이게 마치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을 제단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게 바로 사사 시대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
더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분명 1100세겔의 은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상을 만들때는 그중 200세겔만을 사용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돈을 모두 바치기에는 아까웠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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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정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판단하고, 자기들이 결정하고, 자기들이 만들어가는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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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은 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가는 개인 신당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그 당시에는 백성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공적인 성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가는 자기 집에 별도의 신당을 만든 것입니다.
​
또한 그곳에 제사장이 입는 옷인 에봇을 우상으로 만들어 둡니다.
다산의 복을 준다는 드라빔도 우상으로 만들어 둡니다.
더 나아가 자기 아들 중 하나를 그곳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
어떻습니까?
자기가 예배 장소를 정합니다.
자기가 예배 도구를 만듭니다.
자기가 제사장을 세웁니다.
​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미가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까?
​
하나님을 모르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게 아닙니다.
모두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
6절은 이런 상황을 잘 요약해줍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대로 하였다.”
​
물론 사사 시대에는 인간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인간왕이 없어 이런 잘못된 신앙의 모습이 나타난 것일까요?
하나님이 이미 왕으로 계셨지만 백성들이 왕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욕망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실제 삶의 왕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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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다를까요?
​
우리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도 읽습니다.
그런데 얼마든지 미가처럼 하나님을 믿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맞추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내 생각에 맞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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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교회에서 정치적 신념을 신앙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십자가,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왠 말입니까?
결국 목사들의 책임입니다.
​
개인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방식대로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보고, 운세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에 가서는 하나님께 복을 구합니다.
​
일천번제 헌금을 들어보셨나요?
1000일동안 하나님께 일정한 헌금을 드리면 뭔가 특별한 응답과 복을 받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성과 열심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문제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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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성경에 이런 헌금이 없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또한 이런 나의 정성과 열심으로 하나님을 움직일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신앙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대로 조종하고 통제할수 있는게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뜻을 내려놓고 그 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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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2]
미가의 이상한 신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7절부터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지내던 한 젊은 레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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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이 이렇게 이곳 저곳을 떠도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레위지파는 가나안 땅을 점령할때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신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들을 돌봐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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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미가는 자신의 집에 방문한 레위인을 자신의 집 제사장으로 삼으려 합니다.
야매인 자기 아들보다 전문 제사장이 더 낫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연봉 10세겔과 의복 한벌, 그리고 먹을 것과 숙소를 제공해 준다며 설득합니다.
이에 레위인이 제안을 받아들여 그 집에 거주하게 됩니다.
​
10절입니다.
미가는 레위인에게 자기 집의 어른이 되어주고,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니 레위인은 결국 미가의 친아들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
무슨 의미일까요?
미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인도해줄 영적 지도자를 원했던게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제사장을 원했을 뿐입니다.
​
자신이 제사장의 말씀에 순종하려는게 아닙니다.
단지 제사장을 자기 집안의 종교 체제 안으로 끌어들여 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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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것은 12절입니다.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미가가 무슨 권한으로 제사장을 임명할수 있을까요?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을 임명한 것입니다.
​
미가는 자신의 신당을 만들고, 에봇과 드라빔 우상도 만들고, 자기 아들에 이어 레위인 제사장까지 세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어가 누구입니까?
미가입니다.
모두 미가가 만들고, 미가가 세우고, 미가가 고용하고, 미가가 임명합니다.
하나님은 계속 언급되지만 정작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은 없습니다.
​
그럼 미가는 왜 이렇게까지 한 것일까요?
13절에 그의 속마음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미가는 자기가 이제 레위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니, 주님께서 틀림없이 자기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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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의 신앙이 무엇인지 그 민낯을 정확히 드러냅니다.
미가가 원했던 것은 결국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복을 받는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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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것은 미가에게 강한 확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가는 의심하지 않고 복을 받을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아무리 확신이 강해도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는 확신이라면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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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의 종교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닙니다.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종교일 뿐입니다.
미가는 하나님을 자기 방식대로 섬긴 사람입니다.
​
그럼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구합니다.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
성경에도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기도가 많이 등장합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할수 있습니다.
사업을 위해 기도할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할수 있습니다.
​
기복이 문제가 아니라 기복주의가 문제입니다.
기복은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복주의는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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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은 전혀 다릅니다.
기복주의에 빠지면 하나님과 거래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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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제가 이렇게까지 기도했잖아요.”
“하나님, 제가 헌금도 열심히 했잖아요.”
“하나님, 제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봉사했잖아요.”
“그러니 하나님도 이 정도는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
신앙이 거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신앙을 마치 수학공식처럼 여기게 됩니다.
“이만큼 열심히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식입니다.
​
이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움직이고 통제하려고 내가 만든 신일 뿐입니다.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와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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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복주의 신앙은 고난 앞에서 쉽게 무너집니다.
잘 믿으면 잘 되는게 기복주의인데 이유를 알수 없는 고난도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믿어도 사업이 실패할수 있습니다.”
“열심히 믿어도 병이 낫지 않을수 있습니다.”
​
참된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말씀에 나오는 미가는 하나님을 버린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내고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앙에는 정작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
하나님의 이름은 계속 등장합니다.
심지어 미가의 이름도 “누가 주님과 같으랴”는 신앙고백적 이름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은 자기가 결정합니다.
​
자기가 예배의 방식을 정하고,
자기가 제사장을 세우고,
자기가 원하는 복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그것을 달라고 합니다.
​
그래서 성경은 미가의 시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
결국 미가가 섬겼던 가장 큰 우상은 신상이나 드라빔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장 큰 우상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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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자기가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자기 뜻을 이루어 주는 신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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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
나는 하나님을 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까?
​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내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내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까?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신앙은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움직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움직이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시고 나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믿음인줄 믿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함께걷는교회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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