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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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는 참 감사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올해 초 마음에 품었던 분들의 이름을 적었고, 그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했습니다. 한 달 전부터는 릴레이기도로 자리를 지켰고, 2주 전에는 전도부흥집회를 통해 다시 복음의 열정을 일깨웠습니다. 집에서 늘 만나는 가족에게 어떻게 하면 “교회 가자”는 그 한 마디 건넬까 고민고민하다 말을 꺼내셨을 테고, 어떤 분들은 여러 번 망설이다가 전화를 거셨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식사를 대접하며 초대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연락하고, 또 교회가 낯선 분들을 위해 참 많이 신경 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긴 많은 손길들이 있는데 모두 다 주님께서 아시고 우리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실 줄 믿습니다.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침부터 수고하셔서 몸과 마음이 조금 지치셨을 줄 압니다. 행사를 준비하고 한 영혼을 초대하면서 가졌던 긴장도 이제는 조금 풀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다 끝났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요기 베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973년 그가 감독을 맡고 있던 뉴욕 메츠팀은 시즌 후반까지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시즌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 요기 베라가 남긴 말로 널리 알려진 표현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뉴욕 메츠팀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후에는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끝났다고 단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랫동안 인용되어 왔습니다.
  오늘 새생명축제도 일정으로 보면 이제 끝났습니다. 하지만 한 영혼을 향한 우리의 기도와 사랑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을 들은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관계를 이어 가며, 다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지금부터 계속되어야 합니다.
  야구 경기는 마지막 아웃이 선언될 때 끝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한 영혼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겠습니까?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정했습니다. 행사는 끝났지만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마음 앞에서 교회가 무엇을 기뻐해야 할지 묻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 비유는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가 나온 배경을 자세하게 보면, 단순히 ‘한 사람이 소중하다’라는 교훈보다 더 날카로운 말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누구에게, 또 왜 말씀하셨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깨닫고 행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곁에 모인 사람들과 수군거린 사람들]
  오늘 말씀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당시 세리는 로마에게 바칠 세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두면서 동족을 착취한다고 여겨지던 사람이었습니다. ‘죄인들’은 단순히 실수 한두 번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종교 활동 밖으로 밀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부정하다 여겨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거룩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회개를 선포하셨고, 죄를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죄인들은 그분께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죄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이라는 분은 이제껏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달리 자신들을 무시하는 정죄가 아니라, 자신들을 살리는 말씀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숨겨야 할 과거가 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위축되었지만 예수님 곁으로 나아왔습니다.
  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그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라며 수군거렸습니다. 이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영접하고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에서 은혜를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멀리한 사람들을 예수님이 가까이하시는 것에 대한 못마땅함이 그들의 눈을 가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늘 이야기했지만, 죄인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기쁨에는 참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비유가 나옵니다. 잃은 양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 잃은 아들 비유입니다. 이 세 비유 모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수군거림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하신 일을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안다면, 지금 일어나는 일을 함께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질문합니다.
  새생명축제를 하면서 교회의 문이 활짝 열리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올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분들을 그냥 교회 행사에 온 참석자 중 한 명쯤으로 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영혼으로 보고 있습니까? 말투와 옷차림, 생활 방식이 우리와 다른 그들이 올 때, 우리는 편안한 자리를 지키려고 합니까, 아니면 예수님 곁에 세리와 죄인들이 가까이 왔던 것처럼 그들이 복음 가까이에 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고 있습니까?
  물론 교회가 죄를 죄가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부르시지만, 죄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영접하시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참된 환대는 그 사람을 존중하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죄에서 돌이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곁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수군거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참된 환대를 하여서 죄인들을 영원한 생명 앞으로 인도하는 귀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잃은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예수님은 수군거리는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이 질문에는 목자의 행동이 또렷하게 나타납니다. 목자는 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그 양을 찾아 나설 뿐 아니라, 찾아낼 때까지 찾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숫자 계산을 하곤 합니다. 아흔아홉 마리가 남았으니까 손해를 본 것은 1%라고 생각합니다. 손해를 본 것은 아깝지만 1% 손해면 나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자에게 한 마리는 통계가 아닙니다. 목자의 돌봄 아래에 있어야 할 양을 잃은 것입니다. 길을 잃은 양은 스스로 안전한 곳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목자가 찾아오지 않으면 위험 가운데 그대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목자에게 돌아오지 못하는 양을 향한 목자의 긍휼과 사랑으로 양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잃은 죄인 하나를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를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인 잃은 양 비유에서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은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스스로 찾아 하나님께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와 허물로 길을 잃은 우리를 찾아오셨고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바 되었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삶의 방향을 잠시 놓친 정도가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해야 할 피조물인데 내가 하나님 되려고 하는 심각한 죄를 지었고, 하나님을 떠나 내 뜻대로 살아왔습니다. 겉으로 말씀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고, 교회 생활에 익숙한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죄인, 잃어버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나 정도면 괜찮지’라며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마음 역시 길을 잃은 양의 모습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처럼 길 잃은 양 같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안타까워하시는 것에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육신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죄인과 함께 식사하셨으며, 마침내 십자가까지 지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죄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사랑에 예수님의 생명이라는 말할 수 없는 큰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도는 우리의 열심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이름을 품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자기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교회로 데려오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나의 열심 그 이전에 예수님의 사랑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먼저 입은 내가, 그 사랑을 다시 흘려보내는 것이 전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도하기 위한 모든 수고를 주님 앞에서 감사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혹 초대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닙니다. 말을 꺼냈다가 거절당한 순간, 이름을 두고 기도한 그 시간, 낯선 이들을 따뜻하게 환대한 그 손길 모두 예수님을 향한 순종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구원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권하며 기도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을 주시고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새생명축제 발대식에서 함께 외쳤던 구호처럼 “성공적인 전도는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구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찾은 뒤에 시작되는 기쁨]
  그렇게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어떻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5절 말씀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라고 말합니다. 양을 다그치면서 “왜 길을 잃었어. 내 인도를 잘 받고 잘 따라왔어야지”라며 다그치지 않습니다. 목자는 길 잃어 지친 양을 어깨에 멥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 모아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라고 말합니다.
  이 잃은 양 비유의 절정은 찾음과 기쁨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7절에서 비유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는 ‘회개’입니다. 
  새생명축제의 목적은 많은 사람이 초대되어 자리가 차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초대되어 오신 분이 많은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그들을 섬겨서 이 자리에 나왔고, 또 그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숫자 자체가 구원은 아닙니다. 교회의 기쁨은 한 사람이 자기 죄를 깨닫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의 열매를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 가운데 말씀을 듣고 즉시 믿음을 고백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오랜 시간 질문하고 고민한 뒤에 주님께 돌아오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별 반응 없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들은 말씀이 마음에 남아 나중에 다시 복음을 찾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구원의 때를 우리가 다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젠가 다 잘 되겠지. 언젠가 믿겠지’라고 낙관적으로 있는 것은 성경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사람이 결국 자동으로 구원받게 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죄인의 회개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분명히 전하고, 오늘 믿고 돌아오라고 권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다음 기회는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의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이라는 표현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죄인의 회복을 못마땅해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마음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흔아홉에 들어 있는 의인이라 여기며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기쁨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뻐했습니까?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된 것, 준비한 자리들이 채워진 것, 식사가 맛있게 잘 준비된 것은 모두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기쁨과 우리의 기쁨이 같아지기를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내 죄를 깨닫고 돌이켜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을 가장 크게 기뻐해야 하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래 믿지 않던 우리의 가족들이 교회에 대한, 말씀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질문을 꺼내는 그 일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 연약하여서 전도의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많이 초대하면 우쭐해 하고, 아무도 데려오지 못하면 잘못한 사람처럼 움츠러듭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쁨은 사람을 동원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 구원하는 그 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그곳에 있어야 할 줄을 믿으시고, 하늘의 기쁨과 나의 기쁨이 같아지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제 오늘 새생명축제는 끝이 났습니다. 뒤에 걸려 있는 현수막도 내릴 것이고, 준비하고 계획한 것들이 다 마무리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도 오늘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환대도 오늘 하루의 친절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복음 증거도 다음 행사가 가까이 와서야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져야 합니다.
  오늘 품었던 한 사람의 이름을 다시 불러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오신 분들에게 부담 없이 안부를 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지면 그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복음을 나눌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교회의 문턱을 넘어올 때 따뜻하게 환대하며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순종을 오래 이어 가는 것이 행사의 열기를 오래 가져가려는 것보다 더 건강한 모습인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의 기쁨이 하늘의 기쁨에 맞춰지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사람이 왔다는 소식에 감사하되 거기서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함께 기뻐하기 바랍니다. 그들의 믿음이 자라 세례를 받고, 말씀과 성례 안에서 교회와 함께 살아갈 때 기뻐하기 바랍니다. 혹 넘어졌던 성도가 돌이킬 때 왜 그랬냐며 판단하기보다 기쁨으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잃은 자를 찾으시는 예수님의 기쁨에 함께하자고 초대받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생명축제의 일정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한 영혼을 향한 교회의 기도와 사랑과 전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오늘 최선을 다한 전도의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지만, 복음을 전하고 사랑하며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먼저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오신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다시 한 사람 곁으로, 우리의 VIP에게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한 죄인이 회개할 때 기뻐하시는 하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이 일이 우리 남천교회의 기쁨이 되어서 우리가 날마다 이 일에 힘쓰고 열매 맺는 귀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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