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력한 혀
Notes
Transcript
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2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4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찬송가: 456장 거친 세상에서 실패 하거든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전형상화 (말씀 강해)
야고보서 2:26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는 신자의 양심을 깨워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유익이 있는 반면 이 기준이 타인에게로 향하면 교만과 정죄의 우를 범하게 된다.
2장의 선언적인 야고보 사도의 교훈은 3장의 실천적인 부분에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말’에 대한 우리의 경건과 거룩함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1절을 보면 선생된 자들 ,리더들, 교회의 순장과 권사와 말씀 전하는 목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없으니 오히려 선생이 되지 않는것이 유익하다 할 것이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인데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1-2절 말씀의 요약이다.
그러면서 3가지 비유로 설명을 강화한다. 3-5절이다. 첫재는 배의 조정 (작은 키), 말의 조정 (재갈), 작은불 (숲을 태운다)
‘혀’에 대하여 6-9절에서 부연 설명을 한다. 말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는데 이 혀가 불이요 불의 세계라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입술과 혀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형제들을 저주하고 판단하고 비판한다. 10절을 보면 그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까? 아니라는 것입니까?
현실은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합당하지 않다는 말이다. 11-12절입니다. 어찌 샘이 한 구명으로 단 물과 쓴 물을 내겠습니까?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는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습니다. 짜물이 단 물을 만들겠습니까?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잠언 4:23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근원이 무엇인가가 본질을 구성하고 그 본질에서 형상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형상화(현실 연관성)
말 한마디로 천량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속담입니다. 말로 어떻게 빚을 갚겠습니까? 말의 가치가 그만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제일 먼저 언어가 변화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는 흔히들 말실수를 하고 ‘ 아이고 미안해 내가 실수했네~~ 그런 뜻은 아니였어, 내 본심은 그게 아니야, 미안해 이해해줘’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말을 하고 상대방에게 다시금 거짓말까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야고보서 3:12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우리 마음속에 것이 입을 통하여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속사람이 거룩한 자들은 거룩한 말을, 속사람이 불경건한 자들은 불경건과 불의의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어떤 말을 더 자주 합니까?
부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말, 세우는 말과 허무는 말, 걱정과 염려를 증폭하는 말과 믿음과 신뢰를 돕는 말,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서 우리의 겉모습과 태도를 바꾸려고 하더라도 결국은 우리 본심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더 오래 잘 숨길 수는 있어도 결국은 파탄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욕도 잘하고, 화도 잘내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를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저의 모습에 여전히 경계를 합니다. 뒤통수 맞을까봐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안에 성령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그분에게 내 자신을 드리기를 더욱 힘씁니다. 제 말이 변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없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내 안에 계신 말씀의 은혜로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날마다 더 깊이 압니다.
전형상화 (적용)
우리 속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한가지 입니다. 말씀의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시편 119:9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말과 언어는 우리 속사람의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내부가 변화되지 않고는 언어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우리 속사람은 복음의 말씀으로만 변화 됩니다.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라고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5: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그리스도 예수를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자가 없고, 나아갈 자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믿어야 합니다. 그 은혜에 전적으로 기대고 의지할 때 우리의 속사람은 변화가 됩니다. 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두번째는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 새로운 신분,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지는 거지의 언어를 왕은 왕의 언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이요 그의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성화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언어는 자기의 욕망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덕을 선포하는 수단이 되어 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신분을 기억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더욱 힘써야 합니다. 선한 말, 세우는 말, 긍정적인 말, 권면하는 말, 돕는 말, 격려하는 말,믿음의 말을 점점 더 사용하고 넓혀 나가는데 힘써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7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고, 하나님이 우리가 해야할 일을 대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일하심과 그분이 이루신 일이 기준이 됩니다. 이 구원에는 우리의 공로와 기여가 1점도 들어가지 않고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써야 하는 데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일입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돕지만 결국은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한 말을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