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도에 내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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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의 기도에 내가 있습니까
[서론]
인도의 기독교 전도자 썬다 싱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썬다 싱이 한 동행자와 함께 눈 내리는 티베트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매서운 추위에 두 사람 모두 지쳐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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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길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썬다 싱은 동행자에게 함께 이 사람을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행자는 거절했습니다.
“우리도 살아남기 어려운데, 저 사람까지 데리고 어떻게 가겠습니까?”
그는 혼자 길을 떠났습니다.
반면 썬다 싱은 쓰러진 사람을 등에 업었습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웠지만, 그 사람을 눈 속에 남겨 두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걸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업고 걷느라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온기가 등에 업힌 사람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추위를 견디며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얼마 뒤, 길에 쓰러진 또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놀랍게도 먼저 떠났던 동행자였습니다.
그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숨져 있었습니다.
자신도 위험하다며 혼자 떠난 사람은 목숨을 잃었지만, 쓰러진 사람을 업고 간 썬다 싱은 그 사람과 함께 살아남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짊어진 무게가 오히려 자신을 살리는 힘이 된 것입니다.
​
이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개인의 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말씀 잘 듣고, 기도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각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내 곁의 누군가가 지쳐 주저앉아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기도할 힘조차 없고, 믿음마저 흔들리고 있다면, 나는 내 신앙만 잘 지키며 걸어가면 되는 것일까요?
때로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까지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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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붙들어 주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도 붙들어 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야고보서의 마지막 말씀을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함께 믿는 공동체로 부르셨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본론1]
먼저 당시 교회의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성도들의 대부분은 핍박과 박해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자들에게 억압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주가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아 억울한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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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려움은 교회 밖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도 세상의 가치관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부자는 높이고, 가난한 사람은 무시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시기와 다툼이 일어났고, 서로를 비방하며 원망했습니다.
교회 밖에는 고난이 있고, 안에는 상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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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속에서 믿음을 어떻게 지킬수 있을까요?
13절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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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당하는 사람에게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시험들을 만나게 됩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수 있는 일도 있지만, 아무리 애써도 길이 보이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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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내 사정을 아뢰고, 마음을 쏟으며, 이 시간을 견딜 힘과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미 1장 5절에서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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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믿기 때문입니다.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내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이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붙들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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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살다보면 괴로운 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즐거운 날도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이때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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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힘들때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기도하며 구했던 일인데 막상 이루어지고 나면 내가 잘나서 된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래서 기쁠때에도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기쁨도 주님의 은혜입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
이처럼 온전한 믿음이란 우리 삶의 모든 형편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괴로울때는 기도로, 기쁠때는 찬송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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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난이 깊어지면 혼자 기도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병이 걸리면 몸만 약해지는게 아닙니다.
마음도 지치고, 기도할 말조차 나오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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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에게 야고보서는 어떻게 하라고 말합니까?
14절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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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견디려고만 하지 말고, 공동체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내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곁에 두신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 역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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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은 그 사람을 찾아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합니다.
기름을 바르는 의미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당시 기름은 치료하는 약으로 쓰였습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표지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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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이 모든 일을 ‘주의 이름’으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름 자체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병든 사람을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
회복의 주체는 주님이십니다.
공동체는 그 주님을 믿고 병든 사람 곁에서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병에 낫지 않으면 환자나 기도한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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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6절은 기도하라는 권면을 공동체 전체로 넓혀갑니다.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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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만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서로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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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서도, 정작 내가 상처 준 사람에게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비방하고 무시했다면, 그 사람에게도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제가 사정도 잘 모르면서 함부로 판단했습니다. 제 잘못으로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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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일이 필요합니다.
모든 잘못을 모든 사람 앞에 낱낱이 공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잘못을 숨기고 체면을 지키기보다 필요한 자리에서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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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질병이 죄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서는 몸의 질병과 죄의 문제 모두 주님께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의 관계가 모두 하나님의 돌보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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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여기서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서로’라는 말입니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늘 강해서 도와주기만 하고, 어떤 사람은 늘 약해서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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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만, 내일은 내가 그 사람의 기도를 필요로 할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누군가를 붙들어 주지만, 내일은 그가 나를 붙들어 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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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는 부탁을 종종합니다.
그러면 나 역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내 곁에 지쳐있는 사람의 사정을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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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도제목을 들었다면 기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혼자 기도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곁에 앉아 함께 기도해 줘야 합니다.
내가 상처준 사람이 있다면 먼저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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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믿음은 이렇게 이웃을 돌보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고난 중에는 기도하고, 기쁠 때는 찬송하며, 연약한 지체와 함께 주님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야고보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온전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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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2]
그럼 다른 사람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정말 힘이 있을까요?
내 믿음도 부족하고, 내 삶도 흔들리는데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수 있을까요?
야고보서는 엘리야를 예를 들어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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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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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엘리야를 생각하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멜산에서 수백명의 바알 제사장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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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야고보서는 그 놀라운 모습보다 먼저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 위대한 엘리야도 결국 이세벨이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사역의 열매가 없는 거 같아 무기력함에 빠져 하나님께 차라리 죽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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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엘리야 정도의 믿음은 되어야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주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님 정도는 되어야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주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믿음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도 소용없을 거야”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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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기도의 힘은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특별한가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어떤 기도를 드리는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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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야고보서는 엘리야가 기도하자 삼년육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자 비가 내려 땅이 열매를 맺었다고 말합니다.
엘리야의 놀라운 기도의 능력을 말하려는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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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며 두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과 세상 두 마음을 품고 있던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 백성들에게 엘리야는 “언제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며 책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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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스라엘에 가뭄이 오도록 기도한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그가 기도하자 삼년육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아무리 바알 우상에게 기도해봤자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
그러나 엘리야가 다시 간절히 비를 구하자 비가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가랑이 사이에 넣어가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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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일꾼을 일곱번씩 보내며 구름이 올라오는지 확인했습니다.
마침내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올라왔고, 엄청난 비가 내렸습니다.
가뭄이 끝나고 땅이 다시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
하나님은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초점은 엘리야가 엄청난 능력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게 아닙니다.
핵심은 엘리야가 백성들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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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같이 연약한 사람도 누군가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물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다가 낙심할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상황은 그대로고, 회복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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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엘리야를 기억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의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어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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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절은 야고보서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시작이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담아 마지막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밖의 시험으로 인해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로 가는 사람을 서로 서로 돌보아 돌이키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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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릇된 길로 가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마음 속에는 세상기준이 들어와 있어 믿음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믿음과 삶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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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 학력, 지위같은 세상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으로 불평과 원망을 퍼뜨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 마음을 품은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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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코가 석자야”
“나는 믿음이 적어서 안돼”
그렇게 핑계대며 가만히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가 돌아올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붙들어주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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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는 그 일이 한 영혼을 죽음에서 구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자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권면, 돌봄을 통해 한 사람을 다시 생명의 길로 이끄신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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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많은 죄를 덮어준다’는 것은 잘못을 모른 척하거나 감춰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돌이킴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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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야고보서는 시험 속에서 인내하며 온전한 사람,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권면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길을 잃은 형제 자매를 돌아오게 하라는 권면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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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다른 사람의 넘어짐에도 마음을 쓰는 믿음입니다.
내가 힘들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형제 자매가 약해질 때에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했을 때는 죄를 고백하고, 누군가 길을 잃었을 때에는 사랑으로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붙들며 하나님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야고보서가 우리에게 말하는 온전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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