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사슴의 노래

가창교회 중고등부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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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향한 인간의 외침

(슬라이드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성경 66권은 대부분 신이 인간에게 주는 말씀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유일하게 책의 대부분이 신을 향한 인간의 외침으로 된 책이 있는데 그것이 시편.
특히 우리가 오늘 읽은 시편 22편은 시인의 절절한 절규가 담겨있는 시편. (슬라이드2) 오늘 설교 제목은 ‘새벽 사슴의 노래’. 이 시편 22편의 제목이 אַיֶּ֥לֶת הַשַּׁ֗חַר 새벽 사슴의 노래이다. 이 시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목숨을 위협받던 때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밤새 사울의 군사에게 쫓기는 자신을, 마치 맹수에게 쫓기는 새벽녘의 사슴에 비유하여 다윗이 지은 시다. 그래서 시인의 어려운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1-2절입니다. “하나님 왜 저를 버리십니까? 왜 안 도와주세요? 기도하는데 왜 응답 안하세요? 내가 낮에도 밤에도 기도하는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6-8절입니다. “나는 벌레입니다. 사람들의 조롱거리일 뿐입니다. 저한테 뭐라고 조롱하는지 아세요? 니가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구해주시겠지.” 좀 더 의역하면, “하나님이 누고? 안 계시니까 니 기도 안 들어주시는 거다. 가짜 신 믿어서 뭐하노? 씨잘떼기 없다.” 12-18절입니다. “황소처럼 강한 자들이 저를 괴롭힙니다. 사자는 사람을 찢어! 사자처럼 저한테 달려듭니다. 저는 쏟아진 물처럼 기운이 없습니다. 내 마음이 마치 촛물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절망스럽습니다. 내 입과 혀가 말라붙어서 말할 기운도 없습니다. 이게 다 뭐 때문이지 아세요? 하나님 당신이! 내가 매장되는 동안 나를 버려두셨기 때문입니다! 개 같은 놈들과 못된 놈들이 나를 묶어버렸습니다. 원수들이 나를 보고 즐거워합니다. 원수들이 나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갑니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어떻습니까? 시인에게 소망이 보이나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시인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슬라이드3) 우리 상황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가지고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기 처지를 숨기지 않아요. 하나님은 높고 거룩하신 분이니까 내가 좀 점잖도 빼고 해야하지 않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아가 저에게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옷을 잘 차려입고 근엄한 말투로 찾아오면 저는 좀 슬플 것 같거든요. 우리는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은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시편 기자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아까 우리는 1-2절, 6-8절, 12-18절에서 쏟아지는 시인의 탄식과 절규를 들었다. 그러면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인의 절규 사이에는 반전의 단어가 하나 있다. (슬라이드4) 개역개정에는 번역이 되지 않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단어.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에도 나를 돌보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멀리하지 않으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은 의지를 내어 자신의 시선을 돌리고 있다. 자신을 쫓아오는 맹수가 아니라, 자신을 돌보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결국은 왕이 된 다윗의 뒷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믿음으로 고백한다. “지금 내 상황은 이렇지만! 나는 이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신 분이 누구이신지 바라보겠습니다! 그분의 능력이 어떠한지 선포하겠습니다!”
여러분 시편 22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짜 가르침은 이것입니다. 여름수련회 때 들었던 말씀을 (잊었겠지만) 기억해보자. 앞에 있는 요단 강을 바라보면 우리는 앞으로 갈 수 없다. 하지만 홍해를 건너게 하신 분, 광야를 동행하신 분이 누구이신지 기억하며 바라보면 우리는 요단 강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이것이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과, 예수를 믿는 자들의 차이다. 상황은 똑같이 찾아온다. 마치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처럼, 고통과 아픔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고 찾지만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은 때가 분명히 찾아온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나를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여기까지는 시편 22편을 통해, 내가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고,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삶의 자리라는 곳까지 한걸음 더 나아가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시인은 오늘 본문에서 얘기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무리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맹수에게 쫓기는 새벽 사슴이,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조롱당하는 상황에 처한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을 선택하겠다고, 하나님을 예배하겠다고 선포한다고 합니다.
(슬라이드5) 여러분 왜 제가 이 말씀을 하냐면, 사람들은 나를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원수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다윗을 통해 그가 믿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상황이 저 모양인데, 자신이 믿는 신을 버리지 않는구나. 도대체 그 신이 어떤 신이길래 저정도로 신뢰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절망이 저 사람의 삶을 덮어버릴 법한데, 다윗은 무슨 믿는 구석이 있길래, 오히려 자신을 버린 것처럼 보이는 신을 좋으신 분이라고 전할 수 있을까?’
지난 주 수요일 저녁에 나는 차를 떠나보냈다. 고장도 났고 수리비도 너무 많이 들고, 수리해도 또 금방 고장이 나는 부위라서 중고로 내놓기로 결정했다. 그럼 내가 차를 바꿨을까? 그렇지 않다. 돈이 없으니까. 그러면 내가 낙심했는가? 처음에는 그랬다. ‘이제 우야지. 불편하겠노. 일본 티켓팅도 해야되는데 차까지 말썽이네. 12월에 내년 학비도 내야하는데. 큰일났다.’ 그런데 화요모임에서 예배하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기 시작했고, 나는 불평한 마음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집에 차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데.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신데, 왜 내가 당연히 차를 소유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수요일 아침에, 일부러 아이들을 차로 등교시키면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주셨던 아반떼를 다시 가져가시는 날이다. 8년 3개월 동안 우리에게 좋은 차를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좋은 때에 우리 집에 딱 맞는 차를 다시 주시도록 기도하자.
그리고 제가 어제 한창 축구를 같이 보러 다니던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예수를 안 믿는 친구들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찌질한 이야기인데, 니가 그래 말하니까 하나도 안 찌질해보이네.’라고 하더라구요.
내가 이렇게 믿음이 좋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이런 태도를 배워가야 하고, 이를 통해 내 주변에 신앙이 없는 자들에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똑같다. 지난 주에 우리는 친구들을 초청해서 우리 교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예배에 대해 함께 나누고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것은 1년 중 하루이틀의 일이다. 그 친구들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을 본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하는 이야기, 말투, 돈을 쓰는 태도, 다른 친구와 선생님들을 대하는 방식. 특히 여러분이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 그것에 반응하는 태도.
어느 찬송가의 가사처럼,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우리의 삶 전체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간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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