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5:1-14 / 담을 허는 자
Notes
Transcript
담을 허는 자 ()
메인 아이디어 :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신 주님을 배움으로 우리 안에 쌓여진 담과 세상을 향한 담을 헐라!
[분위기 조성]
여러분, 앞의 사진을 한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베를린 장벽이라고 합니다. 이 베를린 장벽은 독일을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는 약 45.1킬로미터에 걸친 콘크리트 벽이었습니다. 이 벽은 공산주의 체제였던 동독이 서독을 고립시키기 위해 만든 담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독의 생각과는 달리 이 담이 세워짐은 동독이 무너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1961년부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5000여명이 이 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시도를 하였고, 그 가운데 100명에서 200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국 이 벽은 동독시민들의 폭동으로 인하여 1989년 11월 9일 무너지게 됩니다. 이것으로 인해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을 이루게 되죠. 결국 전세계에서 분단 국가는 대한민국 우리나라만 남게 된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막힌 담은 이렇게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삶 가운데서도 마치 베를린 장벽처럼 세워진 담이 있습니다. 이 담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 담을 헐어야만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있는 담이 무엇이고 그 담을 우리가 어떻게 헐 수 있는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1. 우리 안에 담을 헐라
1)우리 삶에 주님이 보이지 않게 막고 있는 담을 헐라
오늘 말씀은 사도 본 환상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 본 환상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어요.
<하나님 나라의 모습 묘사>
사도 하늘을 보니 거기 열린 문이 있었습니다. 그 문에서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들리면서 사도 요한에게 그 문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곧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보니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보석과 같은 빛깔을 띄는 것들과 무지개로 장식되어 있는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그 주변에는 24명의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각자의 보좌에 앉아있고, 그 보좌 앞에는 네 생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그런 장면들을 자세히 보다 보니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는 것이에요. 그 두루마리는 안에도 말씀이 적혀 있고 밖에도 말씀이 적혀 있었는데,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었죠. 이 두루마리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계획해 놓은 세상을 향한 계획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두루마리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그 때, 한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그 힘있는 천사의 큰 음성을 온 세상으로 퍼져갑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음성에 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도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었습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막 울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그 두루마리의 실린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심판과 구원의 계획이 실행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환상을 볼 당시 초대교회는 로마의 학대와 핍박 가운데 지하로 숨어들고 있었습니다. 많은 믿는 자들이 죽어가고 요한 자신은 지금 밧모라는 섬에 유배를 당하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교회의 유일한 소망은 그 두루마리에 있었습니다. 그 두루마리에 붙여진 인이 떼내어지고 어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이 실행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로마와 대적자들을 심판하고 슬픔과 고통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이 속히 이루어져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봐도 그 두루마리를 풀 자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중에 그것을 풀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주님 앞에서 웁니다.
울고 있는 요한에게 24장로 중의 한 사람이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5절을 읽어볼까요?
5.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울고 있는 요한의 귓가로 들리는 것은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이신 분이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는 두루마리를 떼어버리실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순간 요한은 울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보니 그에 눈에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한 어린양이 보였습니다. 그 어린양은 일찍이 죽임을 당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어린 양이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가지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떼어버릴 수 없을 것 같던 그 인봉되어 있는 두루마리를 어린양이 떼어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린양의 정체는 뭘까요? 일찍이 죽임당하셨지만 살아계신 분,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분,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가져가 인을 떼실 수 있는 분, 그 분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요한은 지금 예수님을 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아무도 뗄 수 없었던 두루마리에 붙어 있던 인을 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울고 있는 요한에게 너무나도 큰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던 두루마리를 풀 자가 바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요한처럼 문제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면 되지만 찾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 안에 막힌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주님과 우리 사이를 어떤 담이 막고 있기 때문이죠. 그 담은 나의 자신감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지식이 될 수도 있구요. 나의 힘과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내 친구가 될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나 혼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그저 그 문제 앞에 주저 않아 좌절하고 울기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요한에게 찾아오신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의지한다면 그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어린양이신 예수님에게는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가진 능력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요한 앞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면 더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6절입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주님의 능력은 일곱 뿔과 일곱 눈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일곱 뿔은 완전하신 주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강력한 능력을 말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일곱 눈은 완전하신 주님의 통찰력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그 깊이와 넢이와 높이와 너비를 알 수 없는 주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결국 우리 예수님은 완전하신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고 완전하신 통찰력을 가지신, 즉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문제를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 그 문제를 맡기기만 한다면 우리의 문제는 두루마리가 풀리듯이 해결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가 있으신가요? 여러분들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십니까? 지금부터라도 그 담을 헐어버리고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 문제를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문제를 맡기신다면 반드시 그것을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2.세상을 향한 담을 헐라
1)십자가의 승리는 피흘림의 승리이다.
두번째로 우리는 세상을 향한 담을 헐어야만 합니다.
오늘 주님은 요한에게 한 동물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6절을 다시 읽어볼까요?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여기까지.
주님이 어떤 동물의 형상으로 나타나시죠? 네 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을 해보면 주님은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찌르고 승리하신 참된 승리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주님은 양이 아니라 앞서 5절에서 한 장로가 요한에게 말했듯이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 더욱 맞아보입니다. 약한 어린 양보다는 승리의 단어는 사자와 같이 강하고 힘있는 동물과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요한의 눈에 어린 양으로 비춰집니다. 그런데 그 뿐만 아닙니다. 그 어린양이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참된 승리자라고 불리는 예수 그리스도, 하지만 그의 모습은 죽임을 당한 것같고 약해 보이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의 승리의 모습을 잘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세상이 선호하는 칼의 방식이나 군사력을 통한 힘의 과시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에 자신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세상의 권력을 누르고 강제적으로 세상의 왕으로 오르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택하신 승리는 십자가의 연약함을 통한 승리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승리였습니다. 낮은 자의 모습으로 태어나 낮은 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그 분의 피로 사람들을 사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을 주님의 나라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분의 섬김과 그 분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산 구원과 영원한 생명은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 그리고 나라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자신의 섬김과 헌신과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주님께서 허신 그 담을 다시 쌓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향해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지만, 우리들은 정작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 세상과 교회 사이에 큰 담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자와 받지 않을 자를 구별하고, 세상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대적하는 그런 모습으로 세상과 교회, 그리고 세상과 나 사이에 담이 세워져 갑니다.
“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니 가까이 가기 싫어. 난 저 사람이 싫어. 그러니 예수 믿으라고 하지 않을거야!”
여러가지 나만의 이유로 인하여 복음이 힘을 잃어가고 담을 더욱 높아져만 갑니다. 오늘날의 세상이 교회를 욕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함도 아니고 기독교의 교리로 인함도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향해 무작정 쌓아가는 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 담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허물어놓으신 담을 우리가 다시 세워가면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늘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으로 세상을 향해야 합니다.
[나가는 말]
오늘 이 시대의 교회와 교인들에게는 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담이며, 또한 세상을 향한 담입니다. 이 담들은 우리들을 더욱 고립시키며, 우리의 생명을 조금씩 갉아먹는 암세포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담을 이미 허셨지만 우리들이 다시 이 담을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고 우리들의 교회 속에 쌓아갑니다. 그럼으로 이 시대의 교회와 교인들이 더 외톨이가 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담을 헐어야만 합니다. 주님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김으로 주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담을 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과 우리 사이에 있는 담을 헐어야 합니다. 세상을 미워하고 욕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서 그 분의 피와 죽음을 기억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라본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어린양 예수를 의지하며 막힌 담을 허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 안에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