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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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오늘 본문은 귀신들린 아이를 두고 제자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군중이 서로 얽혀 논쟁하는 내용으로 시작을 합니다.
논쟁의 내용은 “귀신 들린 아이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제자들이 능히 하지 못함” 으로 인해 논쟁이 시작됩니다.
왜 지금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사람들과 논쟁하고 있는가?
왜 지금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사람들과 논쟁하고 있는가?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6:7 (NKRV)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보내시다 (마 10:1, 5–15; 눅 9:1–6)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분명 마가복음 6장 7절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예수님과 변화산에 올라간 제자 뿐만 아니라, 변화산 아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 역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예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그런데 왜 이들은 지금 귀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이렇게 사람들과 논쟁을 하게 된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이후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 친히 칠십인을 세워 각 동네와 각 마을로 전도하게 하신 말씀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칠십인이 예수님의 명령을 잘 수행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칠십인 파송의 결과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기도 없이 애를 쓰다.
기도 없이 애를 쓰다.
기도 없이 애를 쓰다.
기도 없이 애를 쓰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칠십인의 모습,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가진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능히 고치지 못해는지, 그리고 어떻게 칠십인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능히 항복시킨 것인지, 이 두 사건의 전혀 다른 결과의 이유가 궁금해 집니다.
오늘 제자들이 능히 하지 못한 이유와 칠십인이 능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두 상황을 비교해보면,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이후에 등장하는, 칠십인 파송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실 때, 명령하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2절입니다.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절에 나오는 “주인에게 청하여" 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청하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원래 의미를 담아 말하면 “간절히 구하여" 또는 “기도하여"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모습과, 지금 귀신을 내쫓지 못해 변론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 입니다.
다시 마가복음 9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9장 28절을 보니,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고 난 뒤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 때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이런 귀신은 오직 기도로만 쫓아낼 수 있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능히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모든 일의 시작이 기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칠십인의 전도자들이 주여 주여 할 때마다 귀신을 쫒아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였기 때문” 입니다.
기도하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결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만,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항상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논쟁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
계속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제자들은 결과적으로 귀신을 제어하는데 실패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물으십니다.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이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하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22절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물으십니다.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이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하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22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귀신 들린 아버지의 말에 예수님께서 2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말씀에 그 아이의 아버지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소리 질러 말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만 말하면 좋을텐데, 바로 뒤에 이상한 말을 더 합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방금 믿는다 말을 해 놓고, 숨도 돌리지 않고,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 부르짖습니다.
믿는다는 건지 믿지 못하겠다는 건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금 귀신 들린 아버지의 말은 이것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능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데, 혹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세요” 라고 부르짖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 아비의 기도에 예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놀랍게도 그 부르짖음에 반응하여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해 주십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나는 여전히 믿음이 연약함에도, 예수님 앞으로 나오니깐, 나의 부르짖음에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고, 나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이에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해 주십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말하는 곤고한 자의 탄식을, 하나님께서는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신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신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 탄식하며 부르짖는 자녀” 를 외면하거나 숨기지 아니하시고, 울부짖을 때에 들으신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얼굴을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 탄식하며 부르짖는 자녀” 에게서 돌이키거나 외면하거나 숨기지 아니하시고, 울부짖을 때에 들으신다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믿음을 가지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기도로 시작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의 믿음이 완벽할 때 기도하고, 너의 행실이 거룩해질 때 고백하고, 너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나서, 나에게 오라 말씀하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 간구할 때,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켜야만 한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행실, 우리의 죄 고백, 완전해진 다음에 주님을 찾아와서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모습이 초라하고, 죄 많은 모습이지만 있는 그대로 부르짖으며 나아가면 됩니다. 여전히 나는 죄인이고, 부족하며, 의롭지 않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왜 힘이 없냐하면, 우리의 기도가 왜 응답받지 못하냐 면, 여전히, 지독하게도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자복하는 심정이 아니라, 여전히 나는 의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미없는 기도가 어디있으며, 나를 지으시고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의 기도가 귀신 들린 아비의 부르짖음이 되길 원합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옵소서”
더 나아가 우리의 모든 문제의 시작이 기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연약한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고, 모든 문제를 기도로 시작하여 주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은혜가 저와 성도님들의 인생가운데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나 얼굴을 치켜들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 주님께 부르짖으며, 겸손하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나의 믿음의 연약함을 도와 달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