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3:17-18 / 하박국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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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의 질문 (3장 17-18절)
M.I. 하나님께서는 악하고 부조리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신뢰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문제제기 및 주의 집중: 이 세대가 하나님을 부인하는 두 가지 이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의심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하나님의 존재나 하나님의 성품이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고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2014년 4월 16일, 저는 하나의 끔찍한 사건 앞에서 이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0여명이 사망, 실종된 대형 참사”
이것이 세월호 사건을 대강을 말해주지만, 당시 저에게 이 사건은 이 설명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사건 당시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구조에 대한 기대감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대처로 인해 무너져 내릴 때 제 안에 있던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란 탑에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다는 것이죠. 끔찍한 사건 앞에서 “왜”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고 제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강한 도전심과 항의심 같은 감정들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신대원에 있는 기도골방에서 하나님께 따지고 따졌던 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국민들이, 아니 사건을 지켜본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저와 같은 감정과 의문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보면 이런 끔찍한 사건들을 만나게 됩니다. 인류의 역사들은 이런 끔찍하고 악한 일들의 반복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 제1차 세계대전, 흑사병, 쓰나미, ISIS의 테러,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병, 후천적 질병, 가정의 폭력 등 악한 일들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사람들의 지식은 늘어나고 법률은 더 조직화 되고 세분화 되고 있고, 국가의 군사력은 늘어나고 정치인들은 더 안전한 세상에 대한 공약을 내세우지만 이 세상의 고통이 문제는 여전합니다. 심지어 이 고통은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를 더욱 큰 고민의 구렁텅이로 밀어뜨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악하고 끔찍한 사건과 악행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문제들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은 세상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신적 존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은 언제까지 우리들의 고통을 보고만 있나요? 당신들이 자랑하는 사랑의 하나님은 거짓 아닌가요? 왜 이 세상의 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2013년 3월 미국 퍼듀대학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거기 참석한 무신론 철학자 알렉스 로젠버그(Alex Rosenberg) 박사는 기독교 변증가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 박사에게 “당신이 신이 악을 허락한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면 나는 크리스천이 되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고통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신자로 이 땅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이죠. 그리스도인들 또한 이런 암당한 현실 가운데 좌절합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폭력과 불행들을 보고 신앙적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고통의 문제 가운데 계시나요? 그리고 그 고통의 문제 앞에 어떤 답을 내어놓고 계신가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도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선지자였습니다. 혹시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도 이 질문을 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껏 품에 안고 살아왔던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답을 찾아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회복시키길 원하신다.
1)하박국 시대의 악한 죄악들
하박국 선지자가 살던 시대는 국가 대외적으로 매우 힘든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눠지게 되고, 북 이스라엘도 앗수르라는 나라에 의해 멸망당한 뒤였습니다.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남유다를 압박했던 앗수르가 조금씩 힘을 잃고 이제 신흥 강국인 바벨론이 떠오르고 있던 시기였죠. 그래서 하박국은 주전 612년 앗수르 수도인 니느웨가 바벨론에게 점령 당하는 사건과 요시야라는 선한 왕이 앗수르를 도와주려고 가는 애굽 군대를 막다가 전사한 609년의 하란 전투와 갈그미스 전투에서 앗수르 군대의 최종적인 패배의 장면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고대근동 지방을 차지하기 위해서 신흥 강국 바벨론이 열심히 주변국들을 점령하고 있는 그 시기에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로 활동했었습니다.
2)남유다의 악행과 하박국의 질문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혼란한 시기였지만 내부적으로도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남유다 백성들의 범죄 때문이었죠. 그들의 죄가 무엇이었는지 3절을 한 번 볼까요?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그들의 죄는 패역과 겁탈과 강포였습니다. 서로의 것을 빼앗고, 파괴하고, 폭력을 행하는 그런 악행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죄를 깨닫지 못하고 서로 헐뜯기를 계속합니다. 소송과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하나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찢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남유다 백성들이 이렇게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분쟁하고 악행을 저질렀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시야왕 이전 남유다는 극도로 악한 왕들인 므낫세와 아몬의 지휘 아래에서 하나님에게 철저하게 돌아섰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남유다는 도덕적, 영적으로 타락했고 산당에서 바알을 숭배하고 자식을 몰렉에게 바치며 태양신에게 말들을 바치는 행위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했습니다.
하지만 요시야왕이 등극한 지 얼마 뒤에 그는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요시야 왕을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성전이 회복되고 유월절을 다시 재정하는 등의 거룩한 모습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만 해도 하박국 선지자는 남유다가 회복되어 진실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갈 것 같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작스레 그 하나님의 선한 왕인 요시야가 애굽과의 전투에서 죽어 버립니다. 자신들을 통제할 사람이 사라지자 남유다의 백성들은 다시 깊은 죄의 수렁으로 빠져든 것이죠.
3)하박국의 질문
요시야 왕 시대에 한 때 거룩했던 남유다 백성들이 다시 죄를 짓는 모습을 본 하박국 선지자는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계속 죄악에 빠져 살아갔습니다. 결국 하박국은 하나님께 애통한 심령으로 부르짖습니다. 2절,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고, 패역하고 악한 죄악을 저지르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대어 하나님께 묻는 것이죠. ‘하나님, 어찌하여 언약 백성 답지 않게 타락하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의 모습을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어찌하여 주의 거룩한 백성들이 사악한 죄와 불의 가운데 거하는 것을 그냥 두십니까?’ 하고 하나님께 찢어지는 마음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교회도 하박국 당시의 남유다와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2명만이 한국 개신교를 신뢰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종교 신뢰도에서 가톨릭(29.2%), 불교(28%), 개신교(21.3%)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이제 종교를 신뢰하지 못하는데, 그 중에 개신교 즉, 우리가 속한 교회를 가장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 불투명한 재정 사용,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 교회성장제일주의, 교인들의 부도덕한 삶이 바로 그 이유들이었습니다. 이 이유들을 정리해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했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으려 한다는 충격적인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느새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의 장소, 위로의 장소, 평강의 장소가 아닌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우상을 섬기고 거짓말하며 서로 비교하고 비판하며 신뢰하지 못하는 장소로 인식되어 버리게 된지도 모르겠습니다.
4)이신론적 접근: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관섭하지 않는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교회를 보며 비관적인 미래에 대해 한탄하는 소리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주일학교의 미래가 없다. 교회가 무너져 가고 있다. 막막하다’ 이런 말들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신 것 같고, 나의 상황과 교회의 상황은 변하지 않으니 답답한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의심이 생기는 것이죠.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나를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자꾸 우리들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이신론’이라고 합니다.
이신론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시고 나서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게 하시고 더 이상 만든 세상에 관섭하지 않으시고 그저 지켜만 보신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을 놓고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가 그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만 본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우리는 이것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어려움과 타락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고 삶의 고통의 문제가 회복되지 않을 때 우리는 이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리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5)하나님의 답변: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선하게 변화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깨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해 이신론과 같은 불신과 의심의 늪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남유다 백성들의 범죄함을 보며 애통해 하고 있는 하박국에게 이제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일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것이죠.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놀라웠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서로 해하고 있는대도 하나님께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시기에 아무런 계획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의 일에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 보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상과 달리 이미 우리를 향한 놀랄만한 계획을 세워두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2장 4절 말씀에 이런 말씀을 해 주십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믿음이 너를 살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요? 바로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는 믿음입니다.
6)적용: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생들에 대한 선한 계획을 세워두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악한 신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그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 땅의 들풀도 먹이시고 나는 새도 관심있게 인도하시는 분이신대 하물며 우리 인간들을 그냥 놔두시겠냐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교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모든 상황에 관섭하시고 선하게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바로 이 사실을 기구한 인생을 통해서 철저히 깨달았던 성경의 인물도 있습니다. 바로 요셉이라는 사람이죠. 요셉은요. 자신의 형들의 시기로 인하여서 무참히 애굽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어 노예생활을 하였지만 그의 인생의 말년의 고백은 이와 같았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고통의 문제에 처해 계시나요? 아니면 교회에서 일어나는 악한 문제들 때문에 시험에 들어 계시나요? 그렇다면 이 시간 하박국을 통해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믿으시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과 교회를 친히 다스려 나가시는 친절한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으며 악이 성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이 세상의 일어나는 악행들이 하나님의 선한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면 그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내가 고통에 처해 있다고 오늘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가고 계신다는 그 믿음이 우리들의 영혼을 살리고 우리의 교회를 다시 굳건히 세워나가는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님과 교회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회복시키길 원하신다.
1)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과 바벨론을 도구로 쓰시는 하나님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 선한 계획은 어떤 계획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계획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장 6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여기서 갈대아 사람들은 신흥 강국 바벨론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지금 타락한 남유다 백성들을 바벨론 제국으로 점령당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계획이라고 하셔서 얼마나 놀라운 계획인지 들어보니 이건 놀랍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황당한 계획인 것이죠. 그래서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13절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하박국은 자신의 나라, 즉 남유다가 비록 병들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인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악한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들어서 남유다를 벌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선하신 통치로 자신들을 인도하시고 남유다의 타락을 정화하실 줄 알았는데 이건 그냥 악한 자들에게 자신들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 같았습니다.
2)다니엘 예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갈 때 하박국과 같은 황당한 응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길에 순종해서 가 보았더니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경우에요.
구약의 다니엘이라는 사람도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었어요. 당시 다니엘의 대적들이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 다리오 왕에게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신들에게 절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어 죽이는 조서를 쓰게 합니다. 다니엘은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기도의 약속시간을 지킵니다. 즉 하루에 세번 기도하는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신실히 지킨 것이죠.
그렇다면 이 다니엘서를 읽는 우리들은 이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 볼만 한 것 아닌가요? 이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니엘을 다른 나라로 순간이동 시켜주시던지, 도망갈 길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선한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어요.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다니엘은 예외’ 라는 조서를 다시 내리게 하는 그런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기대를 가지고 6장 16절 상반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자, 다니엘이 어떻게 되었다구요? 사자 굴에 던져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이죠.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지켰는데 다니엘의 목숨을 구해 주셔야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니엘은 그냥 굶주린 사자들이 있는 그 굴에 던져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다니엘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박국도 경험하고 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라는 거에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주의 말씀을 지키며 살았기에 우리의 환경이 더욱 나아지고 회복되고 푸른 초장, 에덴동산과 같이 변화될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몰아가시는 것이죠. 그리고 결국엔 원수들이 있는 사자굴에 던져 넣으시는 거에요. 사자굴에 들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며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은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선하다고 찬양한 그 하나님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대답: 악한 세상 또한 심판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실 것이다.
바벨론을 들어서 남유다를 치신다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하박국은 마치 사자의 아가리 앞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거에요. 떨고 있는 하박국에게 하나님께서 이제 말씀하십니다. 2장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묵시의 말씀을 하박국에게 주시고 그것을 판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기록된 묵시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묵시의 말씀은 바로 바벨론 제국의 종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치시기 위해 도구로 쓰신 바벨론 또한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의인인 이스라엘을 악인에게 던져주고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해 주시고 계시는 것이죠. 그리고 더 나아가 2장 14절에서 이런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는 물이 바다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요? 하나님께서는 그 바벨론을 심판하실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악이 요동하고 악한 세력이 득세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고 있는 하박국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자굴로 던져 넣고 바벨론에 침략을 당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너를 버리는 것이 아니며 너희와의 언약을 끊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제거하고 주의 백성인 너희를 정결하게 회복하며 타락한 이 세상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나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4)하박국의 바꿔진 반응
하박국은 이런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충격에 빠집니다. 바벨론이라는 악한 우상숭배국을 들어서 남유다 백성들을 치시겠다는 소리에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대적들의 손에 던지시고 멸하시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은 유다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그들의 나라와 더 나아가서 이 열방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3장 2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바벨론을 들어서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야 이해가 됩니다. 주는 그 주님의 놀라우신 선한 계획을 속히 이루어 가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하박국은 이제 바벨론의 침공을 앞당겨 달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 이유는 그것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5)적용: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고 기도하라.
저는 바로 이런 기도의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다가 보면 사자굴에 들어가는 경험이나 풀무불에 던져지는 경험 그리고 대적들의 손에 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극한 환경 가운데 고통을 받고 좌절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박국의 질문과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서 마음판에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을 가지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그 날을 꿈꾸고 계신다는 거예요.
실제로 하나님은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통해서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어요. 다니엘 6장 26-27절을 보면 우상숭배자 다리오왕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셨더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업신여겼던 왕과 백성들이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짐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건져냄을 받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환경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믿고 주님의 일이 우리의 모든 삶에 부흥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내가 풀무불에 던져지더라도, 심지어는 내가 사자굴에 던져지고 대적들의 손에 넘겨질지라도 반드시 그 풀무불에서 건져내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그 사자들의 입을 막으시고 대적들의 물리치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주님의 역사의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기도자를 찾으시는 줄 믿습니다. 바로 여기 계신 성도님들이 바로 그 기도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는 기도자들이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도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의 시작일이 500년하고 하루가 지난 날인데, 아마 500년전 이 날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매우 바쁜 날이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기대하던 날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자신이 쓴 기독교 강요 1권 17장에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신의 계획을 세우는 데 최상의 이유를 가지고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신가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은 어떤 것인가요?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도 세상을 포기한 적이 없으시고 그분의 선하신 계획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그 과정 가운데 고통과 고난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뜻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의 확증이 바로 자신의 몸을 고통 가운데 던지셔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에 대한 바람직한 반응은 의심과 불평과 불신이 아닌 바로 믿음과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또한 하나님의 계획을 향한 그 믿음과 기도를 회복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입술에서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고백들이 터져나올 것입니다. (3장 17-18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문]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어떤 환경과 고통의 문제가 찾아와도 믿음과 기도로 나아가길 소원하며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