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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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부르심에 순종하여 반응한 자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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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 가나안 땅으로..

데라와 그의 가족

데라와 그의 가족

창세기 11:27-32
창세기 11:27–32 NKRV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에서 살고 있었다.
여호수아서에서 우상숭배자로 묘사되고 있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의 아버지이며,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살고 있었다. 또한 여호수아서에서는 우상숭배자로 묘사되고 있다.
여호수아 24:2 NKRV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데라와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던 ‘갈대아인의 우르'지역에 대해서 윌리엄 샌포드 라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벨론 문명이 문화적, 정치적으로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한 시기의 인물로 본다. 아브라함은 오랜 기간동안 문자와 훌륭한 성, 고도로 발달된 예술, 아름다운 보석과 세공술, 체계적으로 확립된 법전과 법 체계를 갖춘 지역 출신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었고, 게다가 고도로 발달된 종교 제도도 있었다.”
데라와 그의 가족들은 괜찮은 환경에서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데라가 그 좋은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떠난 것이다.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도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류하였으며(창 11:31)
사도행전 7:2–4 NKSV
스데반이 말하였다. “부형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주하기 전에,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서, 어디든지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거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하란으로 가서,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 그를 하란에서 지금 여러분이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렇다면 데라는 왜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했는가?
성경은 그 이유를 정확히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왜 가나안으로 가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 여정 중에 하란에 거류하게 되었다.
만약 하나님의 부르심이 데라와 그의 가족 모두를 향한 것이 였다면 왜 데라는 가나안으로 끝까지 가지 않았을까?
데라가 가나안으로 떠나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떠났다. 그러나 끝까지 가나안으로 들어갈 마음은 없었다.
“하란에 이르러 거류하였으며"
창세기 1:1
성경에서는 정착 기간에 따라 각각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토, 도시, 집이든 장소에서 손님이나 낯선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둠()
팬션이나 호텔에 잠시 머누는 것이다.

גּוּר (gûr): v.; ≡ Str 1481; TWOT 330, 332—1. LN 85.67–85.85 (qal) dwell as alien, live as a stranger, be a guest, i.e., be in a place with a focus that one is living as a guest or stranger in a place, whether a territory, city, or house

영토, 도시, 집이든 장소에서 손님이나 낯선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둠(룻 1:1)
גּוּר(구
특정한 위치나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어딘가에 위치한다. 내재적/일시적()
גּוּר(구
영토, 도시, 집이든 장소에서 손님이나 낯선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둠(룻 1:1)
전세로 사는 것
팬션이나 호텔에 잠시 머누는 것이다.
특정한 위치나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어딘가에 위치한다. 내재적/일시적(룻 1:2)
전세로 사는 것
일반적으로 더 긴 시간을 어떤 장소에 있어야 한다.()
집을 사거나 짓고 사는 것
집을 사거나 짓고 사는 것
창 11:31에서 ‘거류하다'의 의미
창세기 11:31 NKRV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창세기 11:31 NKRV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는 ‘야사브'이다. 즉 데라는 하란에 자리를 잡고 정착한 것이다.
:31에서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는 야사브'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는 ‘야사브'이다. 즉 데라는 하란에 자리를 잡고 정착한 것이다.
에서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는 ‘야사브'이다. 즉 데라는 하란에 자리를 잡고 정착한 것이다.
יָשַׁב’이다
יָשַׁב’이다.
‘야사브'이다.
데라가 가나안으로 떠나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떠났다. 그러나 끝까지 가나안으로 들어갈 마음은 없었다.
더 이상 가나안으로 가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데라의 처음 목적지는 가나안이었다. 그런데 하란에서 멈췄다. 가나안으로 떠난 이유를 알 수 없느나, 분명한 것은 처음 계획대로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고도 60년이라는 시간이 더 있었다. 그런데 하란에서 그 삶을 마무리했다.
무엇이 데라를 그곳에 멈추게 하였을까?
하란은 우르와 비슷한
데라는 거기까지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하란에 머물러 그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데라는 아브라함을 위한 페이스메이커였던 것일까? 혹시 데라 역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으로 떠났으나 그 중간에 머물렀던 하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고도 60년이라는 시간이 더 있었다. 그런데 하란에서 그 삶을 마무리했다.
무엇이 데라를 그곳에 멈추게 하였을까?
만약 가나안으로 떠난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이었다면 데라는 그 부르심에 끝까지 순종하지 못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고도 60년이라는 시간이 더 있었다. 그런데 하란에서 그 삶을 마무리했다.
왜 그것들에의해 넘어지는가?

아브라함의 모험

창세기 12:1-4 에서 아브람은 하란을 떠난다.
창세기 12:1–4 NKRV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간 이유는 무엇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여호와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며,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시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그가 신뢰할 만한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제 처음 말씀하셨을까?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언제 처음 부르셨는지 알 수 있다.
사도행전 7:2–4 NKRV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스데반의 설교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하란으로 옮기기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 저술가들은 BC4세기 이후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골짜기 전체를 ‘메소보다미아'라고 불렀다. 그래서 스데반이 말하는 메소보다미아는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은 그의 고향 우르에 있을 때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 저술가들은 BC4세기 이후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골짜기 전체를 ‘메소보다미아'라고 불렀다. 그래서 스데반이 말하는 메소보다미아는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은 그의 고향 우르에 있을 때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우르에서 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온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란에 있을 때도 여호와께서 보이실 땅으로 갈 마음이 있었다.
히브리서에서는
아브라함은 우르에서 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온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란에 있을 때도 여호와께서 보이실 땅으로 갈 마음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이동하고 움직이는 때와 기준은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씀이다.
아브하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하고 움직였다. 이것을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 여기셨다.
아브라함 이라고 언제나 늘 믿음으로 반응했을까? 아니다.
창세기 15:2–6 NKRV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녀를 아직 주시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조급하고 초초해졌다. 그래서 자신의 종인 엘레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했다. 아주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일이다. 여호와의 약속이 크고 놀랍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다시 한번 약속하신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러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흔들리때 마다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를 믿고 오직 그의 말씀만 기준으로 삼았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서 11:8 NKRV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부르심에 순종하였지만 그 종착지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가야할지 몰랐다. 그저 그 부르심,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간 것이다.

순종의 결과

그렇다면 데라와 나홀과 아브라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데라가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이동한 이유는 성경이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데라의 또다른 아들인 나홀은 우르에서 하란으로 이동하는 여정에 그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 그렇지만 하란을 ‘나홀의 성'(, 참조)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나홀 역시 그 여정에 동참했다고 볼 수 있다.
* 아브라함이 우르에 있을 때 여호와가 나타나셔서 그가 보이실 땅으로 가라 하셨고 그로 인해 하란으로 이동했다는 것에서 유추해보면
아브라함이 가정에서 영향력이 아주 커서 모두 아브라함을 따라서 우르로 이동했다.
아버지인 데라가 살아있었고, 아브라함은 장남도 아니다. 과연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을까?
우르는 살기 좋은 곳이며, 고향이다. 한 사람의 의견으로 결정하기에는 너무 큰 대가 지불이다.
아브라함 뿐 아니라 데라 가족 전체가 여호와께서 보이실 땅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그렇지만 가장 타당한 설명이 아닌가?
가족 전체가 동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타당한 설명은 데라의 가족 전체가 부르심을 받아 여호와께서 보이실 땅, 가나안으로 이동하던 중간에 하란에 머물렀다고 보는 것이다.
데라와 아브라함과 나홀의 처음 시작은 같았다.
그러나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며,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통로로 사용된 것은 아브라함이었다.
왜?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처음부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염두해두고 계셨기때문에 데라와 나홀은 마치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처럼 하란까지 전력질주하다가 거기서 레이스를 끝마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냥 아브라함만 꼭 찝어서 부르셨으면 된다. 데라와 나홀을 생고생 시키실 필요가 없었다.
정황상 모든 가족이 같은 부르심을 받고 하란까지 함께 이동했다. 그 후의 차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정황상
하란까지 다 같이 부르셨는데 거기서 아브라함에게만 말씀하셨을리 없다. 모두에게 동일한 부르셨다. 그런데 오직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반응했다.
데라와 나홀은 여러가지 이유로 하란에 머물러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두려움과 염려, 아무 연고도 없는 가나안 땅에 먹고 사는 문제
어쩌면 하란의 화려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데라와 나홀을 움직이지 못하게 방해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었고, 결국 그것에 의해 넘어진 것이다. 그들의 기준은 눈 앞의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나아갔다.
이것이 데라와 나홀, 그리고 아브라함의 삶의 구분 지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 어떤 특정인을 점찍어 그와 일하시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더 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때로는 그것들은 아주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따뜻하고 안락하게 보인다.
자기합리화로 그런 방해요소들과 타협한다.
왜 그런가?
여호와의 약속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손에 잡히지 않을때가 많기 때문이다. 두려움으로 인해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모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시작되었으며, 믿음의 발걸음을 통해 완성되었다.
그저 순종하면,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완성하신다.
때론 의심과 불신으로 넘어지고 조급함으로 나의 방법으로 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때 다시금 나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으면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도와 주신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믿음과 신뢰가 회복되는 것이다.
갈바를 알지 못할때 순종하는 자들을 도우시고 인도하시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며, 복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믿음을 견고히 해주시길 기도하자.
<적용기도>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왜 그것들에 의해 넘어지는가?
이미 나에게 말씀하셨다. 순종하면 된다. 이 시간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담대함을 주시도록 기도하자.
왜 그것들에의해 넘어지는가?
성경은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Terah’s motive in leaving Ur may have been no more than prudence (the Elamites destroyed the city c. 1950 bc); but Abram had already heard the call of God ().
Terah’s motive in leaving Ur may have been no more than prudence (the Elamites destroyed the city c. 1950 bc); but Abram had already heard the call of Go
사도행전 7:2–4 NKSV
2 스데반이 말하였다. “부형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주하기 전에,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3 ‘너는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서, 어디든지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거라’ 하셨습니다. 4 그래서 그는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하란으로 가서,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 그를 하란에서 지금 여러분이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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