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생입니까?

요셉, 연말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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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정한 성공인가? 세상적인 관점에서 요셉과 우리는 비참한 인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성공한 인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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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성공적인 인생이었나?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참 많은 평가들이 있었습니다. 가요대전이나, 연기대상, 방송연예대상 등 각 방송사에서 한해동안 활동했던 가수나 연기자들, 예능인들을 시상하는 각종 시상식이 이번 한 주 내내 있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고,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연예인들이 합당한 상들을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치와 관련된 평가도 있었습니다. 각 방송사 뉴스마다 대통령과 시장, 도지사들의 한해동안의 업적과 지지율 등을 조사하여 평가한 것입니다. 연말이 되면 평가를 합니다. 일각에서는 ‘망년회’라고 해서 한해동안 지나온 날들을 잊자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이번 한해동안 우리가 과연 어떠한 성과를 냈는가를 평가하면서, 이번 한해가 성공적인 한해였나, 아니면 그렇지 않았나 평가를 내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1-18절)
2017년 12월 31일 / 배준영 목사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참 많은 평가들이 있었습니다. 가요대전이나, 연기대상, 방송연예대상 등 각 방송사에서 한해동안 활동했던 가수나 연기자들, 예능인들을 시상하는 각종 시상식이 이번 한 주 내내 있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고,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연예인들이 합당한 상들을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치와 관련된 평가도 있었습니다. 각 방송사 뉴스마다 대통령과 시장, 도지사들의 한해동안의 업적과 지지율 등을 조사하여 평가한 것입니다. 연말이 되면 평가를 합니다. 일각에서는 ‘망년회’라고 해서 한해동안 지나온 날들을 잊자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이번 한해동안 우리가 과연 어떠한 성과를 냈는가를 평가하면서, 이번 한해가 성공적인 한해였나, 아니면 그렇지 않았나 평가를 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의 2017년을 스스로를 평가해볼 때 여러분들의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합니까? 우리 한번 확인을 해볼까요? 눈을 감고요~ “이번 한해동안 내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을 들어 봅시다. 그렇다면 이번엔 “한해가 성공적이지 못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한번 손을 들어 봅시다. 네,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네요. 여러분들을 위로합니다. 여러분들도 올 한해를 정리하면서 제대로 “올해 나의 삶은 성공적이었다. 아니었다”를 평가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지 저물어가는 한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해를 보다 나은 한해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연말의 바쁘고 분주한 틈에 2017년의 저를 평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잘 아는 작가님과 메신져로 대화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평가가 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서로 한해를 수고했다고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가님에게 “한해동안 좋은 책들을 많이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작가님은 제게 “저는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나는 한해동안 무엇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별로 이룬 것이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린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달린 것에 비해서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 것입니다. 기대와 포부를 갖고 새로운 교회에 왔는데, 청년부를 보아도 그렇고, 교회 전체 사역을 보아도 그렇고 제가 이룬 것이 전혀 없는 거에요.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정을 보아도 그랬습니다. 순간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달린 것은 같은데, 어느 것 하나 되어 있는 것이 없네요...”라면서 대화를 마쳤습니다.
여러분, 부디 여러분들의 한해는 성공적이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평가를 해보기 전에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 말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이었는가 또는 성공적이지 않는가 라는 가치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는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 지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지표를 다양하게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성공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니까 성공이란 말과 함께 떠오르는 여러 얼굴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저는 몇몇 CEO들의 얼굴이 같이 떠오릅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라던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라던가, 알리바바의 마윈,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같은 사람들이요. 다른 사람들은 지드래곤이나 도끼 같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성공’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누가 성공한 인물입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요셉이나 다윗, 다니엘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요셉은 노예 신분에서 이집트 제국의 2인자가 된 인물이고, 다윗은 양치기에서 왕이 된 사람입니다. 다니엘도 포로에서 나라의 2인자가 된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중에 제일은 누구입니까? 요셉 아니겠습니까? <인생한방! 인생역전! 요셉!!> 우리가 요셉의 인생을 살펴 보면서 어떻게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가를 살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성경이 말하는 성공과 그 방법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이제 말씀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갈등 : 바닥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

저는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좋아합니다. 슬램덩크 만화를 몇번이나 다시 봤는지 모릅니다. 이 만화에는 참 주옥 같은 명대사가 많습니다만 저는 마지막 화에서 허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주인공 강백호가 시합을 계속 하게 해달라고 안감독님께 메달리는 장면이 압권인 것 같습니다. 그 때 강백호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그림>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 때였나요? 저는 지금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영광의 시대, 그가 성공한 인생을 살 때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요셉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입니까?
요셉은 족장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첫째 아들로 모든 아들 중에서 야곱이 독보적으로 애지중지, 금지옥엽했던 아들입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요셉에게만 족장들만 입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혔겠습니까?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그가 꾸는 재수 없는 꿈들도 형들의 심기를 더욱 건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요셉은 형들의 질투로 인해서 결국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됩니다. 노예로 팔려갔다가 파렴치한 강간미수범으로 몰려서 비참한 <죄수>로 추락합니다. 그러다가 파라오의 꿈을 해석을 하고, 위기의 이집트를 구할 수 있는 묘안을 제시하면서, 일약 영웅이 되어, 모든 땅을 다스리는 제국의 2인자가 됩니다. 거기다 자기를 팔아 넘긴 형들을 만나고선 용서하는 클라이막스가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요셉의 인생 중에서 <영광의 시대>는 언제입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그 때가 요셉의 영광의 시대입니까? 아니면 나일강문명의 발생지, 대제국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멋지게 다스리는 그 순간입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어떤 때의 요셉을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또 언제가 성공적이지 못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고민할게 뭐 있습니까? 당연히 애굽의 총리가 된 때가 성공적인 인생이고, 노예였다가 더 비참한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을 때가 몰락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요셉을 가르켜 <성공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아무리 찾아도 오늘 말씀에서 총리가 되어 다스리는 요셉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알록달록한 옷 입고 아빠 품에 있던 모습이라도 있는가 했는데 그것도 없습니다. 되려 <성공한 자>라고 주신 말씀은 귀한 족장의 아들내미에서 갑작스럽게 비루한 노예 신분으로 강등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얼마나 몰락한 인생입니까? 이집트에 팔려온 요셉은 머리를 깎이고, 맨발로 다니며 온갖 오물을 버리고, 가축의 여물을 먹여야 하는 밑바닥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인생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어딜 봐서 성공한 인생입니까?

갈등의 해결 : 성경적 성공한 인생

우리가 본문을 잘못 찾은 것 같습니다. 제가 위에서 PPT를 넘기는 자매에게 오늘의 본문을 잘 못 알려준 것 같습니다. 성공한 인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요셉을 가르켜 ‘성공한 자’라고 말합니다. 우리 오늘 말씀인 창세기 39장 1-3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성경은 요셉이 노예로 팔렸을 때에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형통’이라는 말은 우리 말로 ‘잘된다’라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이 ‘형통한 자’를 가르켜 ‘석세스풀 맨’이라고 번역을 합니다. <성공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가요? 요셉이요?? 평생을 금수저로 살다가 비루한 노예로 팔려온 요셉이요?? 평소에 도대체 하지 않던 고된 일을 하고 있는 요셉이요? 자유도 잃고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요셉이 성공한 인생이라고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가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우리가 다시 2절과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성경은 요셉이 성공한 자가 된 이유를 가르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주인인 보디발은 날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그를 형통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잘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말을 재정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성공>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공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 다른 사람들처럼 남들보다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하는 것이 성공인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성공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시는가 아닌가’를 지표로 ‘성공이냐 아니냐’를 평가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군대에 들어가서 이등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했을 때요. 제 선임병이 저를 사무실에 데려다 놓고 참 아름다운 비유를 들어주었습니다. 저보고 눈을 감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선임병이 물었습니다. “야, 뭐가 보이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캄캄합니다” “그래 그게 니 군생활이야”... (하아...) 그러더니 전화 선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물었습니다. “이거 어떻게 생겼지?” 제가 말했습니다. “꼬여 있습니다”, “그래, 그게 니 군생활이야...”
저는 요셉의 인생을 보면 칠흑 같이 어둡고 차디찬 돌바닥이 생각이 납니다. 오물 냄새가 사방에서 코를 찌릅니다. <시궁창>입니다. 우리는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하고, 비로소 여기를 벗어날 때 <인간승리>라던가 <자수성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적어도 이 시궁창을 벗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는 권력자의 자리에 선 요셉이 정도가 되어야 <썩세스풀 맨>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은, 비록 내가 이 땅 가운데 살면서 여전히 이 어둡고 축축하고, 악취가 나는 비루한 삶의 현장을 전전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선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예 일방적으로 성경에는 우리의 관점으로 성공적인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가인에 족보에 나오는 수 많은 <잘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창세기 4장 16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아담의 아들인 가인의 족보가 나옵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 열거됩니다. 이세상 최초로 도시를 지은 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최초로 들짐승들을 사육하여 가축으로 키우는 사람이 나옵니다. 대단하죠. 최초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나고, 최초로 쇠를 가지고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 아닙니까? 혁신가들입니다. 스티브잡스, 제프 베죠스 뭐 그런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가르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이어서 등장하는 셋의 족보는 별볼일이 없습니다.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하다가 간간히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더라’라는 말들이 나올 뿐입니다. 셋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다가 그냥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무언가를 지배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족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인생을 아름다운 계보로 여기십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현실이 시궁창>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보면서 시궁창과 같은 삶으로 여겨지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남들이 만들어내는 어떠한 성과나 좋은 것들이 여러분에게 없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사랑 받지 못할 자라고 여기고 있습니까? 심지어 여러분들의 인생이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지고, 여러분들이 한심하게 여겨지십니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딴거 다 개나 줘버려 이겁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네가 나와 동행하고 있니?”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인생 헛살지 않았습니다. 저의 2017년도요, 여러분들의 2017년도요 결코 헛산 인생이 아니라 성공한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한 인생입니까? 아니면 성공과 거리가 먼 인생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아니 이번 한해를 우리가 평가를 할 때 하나님과 동행을 하셨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무언가 그럴 듯한 것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하나님 눈에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는 모두 다 실패한 인생들이었습니다. 비루하고 비참한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나를 성공시켜주려는 후원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후원자는 무슨 <키다리 아저씨>처럼 우리의 성공에 가장 큰 관심과 열심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성공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바친 분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성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던 실패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을 알게하고, 하나님과 결국 동행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바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성공을 위해서요. 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성공하는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늘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청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적 성공은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거저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요셉이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공에 편승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성공한 자를 말하며 애굽의 지도자 요셉이 아니라 노예 요셉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진정한 성공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공을 위협하는 유혹

저는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성공적인 인생’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성공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성공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도록 막는 대적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성공만큼은 어떻게든 막겠다는 ‘저격수’입니다.
우리는 이 사탄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서있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에 그보다 높은 존재가 없으니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볼 때 가장 열받는 존재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일 때 가장 성공적입니다. 질투가 많은 마귀가 하는 일은 인간이 더이상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깨트리고, 하나님과 떨어트려 놓는 것입니다. 마귀가 자주 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유용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유혹’이라는 방법입니다. 이 유혹이 치명적인 이유는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건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성공하는 인생이 되었다가도 성공을 잃어 버린 것 같은 때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유혹 받는 요셉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통한 사람이 되어서 주인인 보디발 장군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노예 중에서도 높은 노예가 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그에게 닥쳤습니다. 그가 뭔가를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의 잘생김? 저는 요셉이 당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셉과 저는 같은 과니까요. 암튼 요셉은 잘생겼고, 젊었습니다. 이런 요셉을 눈여겨 보던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유혹하여 잠자리를 같이 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요셉이 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죄였습니다. 죄를 지을 때 우리는 우리의 성공을 걷어 차게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죄를 지은 인간을 하나님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숨어버린다는 것이죠. 하나님 보기를 부끄러워 하고, 두려워 하기 시작합니다.
요셉이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는다면 모든 인간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숨어버릴 것입니다. 더이상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로 ‘유혹에 넘어간 자’라는 수치스러운 수식어를 단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인 행동은 모든 죄인들의 공통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몸을 숨기며 나무 뒤에 숨어버린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이 떠나신게 아닙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에 두렴움을 갖고 자기들이 숨는 것입니다. 이 결과로 아담 이래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인간은 더이상 형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들어왔고, 고통이 들어왔고, 갈등이 들어왔습니다. 인간의 몰락이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의 비참함은 돈이 없고, 있고, 인기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곁을 떠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혹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자로, 성공하지 못하는 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유혹’은 언제나 치명적이라는 것이죠. 치명적이지 않은 유혹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혹은 성공의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요셉에게 성적인 유혹이 얼마나 강력했겠습니까? 이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젊은 남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유혹은 피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요셉이 머무르던 집의 여주인이 요셉을 유혹하는 상황과 마찮가지입니다. 여주인은 원하면 언제든지 요셉을 부를 수 있었고,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유혹은 언제나 요셉과 함께 있습니다. 심지어 유혹은 권력이 있었고, 그 앞에서 요셉은 무력해 보였습니다. 유혹이 특별한 때나 특별한 장소에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혹은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피할 수 있으면 유혹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찮가지입니다. 우리를 형통한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죄로 유혹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우리 주변에 산적해 있습니다. 우리는 유혹의 땅에 살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어떻습니까? 직장인들은요? 쾌락과 성적인 유혹이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방식으로 죄로 유혹하는 환경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적인 성공을 쉽게 할 수 있다고 동참하자고 하는 유혹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함께 하지 않으면 외로워 질 것이라고 버림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유혹도 있지요. 이미 이 유혹에 걸려 넘어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공적인 삶에서 멀어져 버린 청년들이 우리들 중에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이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걸림돌에서 디딤돌로

여러분, 간혹 죄에 넘어지는 것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실수 했으니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번 실수했네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이 땅 가운데에서 이뤄가시기를 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유혹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정말 성공적인 인물로 왕의 직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유혹에 넘어갔을 때 세상의 역사는 그가 강력한 군주라고 기록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실패한 왕으로 보는 것이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 유혹의 걸림돌에 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유혹의 걸림돌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요셉은 이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의 솔루션은 무엇입니까? 첫번째로 요셉은 자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8절과 9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자기가 보디발의 노예인 것을 알았고, 그의 주인인 보디발이 금지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더욱이 죄를 짓기 싫어 했던 인물은 보디발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더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높으신 주인임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의 분명한 자의식은 이 유혹을 거절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 분에게는 이 <자의식>이 있습니까? 나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의식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오늘 날 사회가 말하는 것처럼 나의 주인은 ‘나’입니까? 내가 모든 것 위에 있는 존재로 선택의 자유가 있는 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쾌락을 선택할 것이고, 나를 부유하게 할 돈을 선택할 것이고, 세속적 성공의 동아줄을 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성경적인 성공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늘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아버지 되시며,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알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언제나 떠올리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사실을 떠올릴 때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목걸이 마늘 뭐 그런거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했느냐의 문제지요.
제가 학생 때도 그랬지만, 두발자유화와 사복 등교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학생들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머리는 학생들의 인권이며, 옷을 입는 개성도 학생들의 인권이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교복과 두발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개성을 막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제 어디서 교복을 입고 있는 동안 내가 학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로 주고 사신 새옷을 입고 있는 자로 여러분들을 알았으면 합니다.
두번째 솔루션은 요셉은 세속적인 성공을 잃는 것보다 하나님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 했다는 것입니다. 10절부터 12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요셉은 이 여인의 유혹을 늘 피해다녔습니다. 그러나 유혹은 언제나 직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적극적으로 요셉을 낚아챘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자기의 벗겨진 옷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요셉처럼 유혹의 순간이 올 때 피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당연한 것이구요. 더 중요한 것은 설령 유혹을 거절하여 내가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렇게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이 후의 일은 여러분들이 아는 바와 같습니다. 당연히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말로 강간미수범이 되어서 노예가 아니라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멍청한 짓입니까? 그냥 모른 척 유혹에 양보했다면 그나마 노예 중에서 가장 높은 노예로 계속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가장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타협할 수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에, 나는 그 분의 소유된 백성이기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바보가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입니다. 분명히 이 일을 거절했을 때 자기에게 어떤 일이 닥칠 줄 뻔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킬 수 있다면 비루한 삶에서 비참한 삶으로, 더 바닥으로 내려가도 더 낫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어떻게 되었습니까? 더 비참해졌습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절망적인 최악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 39장 20-23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는 비참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으로 하여금 형통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현실적 상황은 비참해졌지만, 그는 더욱 성공한 사람이라고 불리웠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과 계획표는 요셉을 통하여 계속 흘러 가고 있습니다. 이후에 그가 총리가 되었을 때 성경은 그 요셉이 더 성공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총리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시기 위하여 그 자리에 앉혔을 뿐입니다. 그는 총리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비록 죄수의 신분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성공한 인생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성공한 인생입니까? 아니면 실패한 인생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2018년은 성공한 시간이었습니까? 아니면 실패한 시간이었습니까? 여러분들의 현실적 상황이, 여러분들이 성취한 그 무엇이 여러분들이 성공했다, 아니다를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 한해동안 그 길고 어둡고 차가운 시궁창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할지라도, 날마다 눈물로 괴로워 하며 버티는 인생이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었다면 성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은 것들을 만들어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다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놓쳐버렸습니까? 아니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했을 때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을 위해서 온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까지도 예수님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들은 이미 오신 성령을 바라 보면 되는 것입니다.
2017년 수고했습니다. 우리 2018년에는 성공한 인생으로 세워져 갑시다. 매순간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내게 행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형통한 인생, 성공한 자로 자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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