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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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호세아 2장 14-23절
제목: 사랑의 서약(하나님의 프로포즈)과 회복
성경에 반복되는 주제는 죄-심판-은혜이다.
호세아서에서도 이러한 구성이 반복되어 있다.
광야에서의 회복
14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개유하여(설득하여,타일러서) 거친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친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곳이다. 곧 그들이 40년간 하나님과의 밀월관계를 가졌던 곳이다.
이방문화의 영향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그들의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싸매시며 하나님의 위로로 소망을 주실 것이다.
광야는 고난과 역경의 장소이지만 하나님의 영적 훈련의 장소이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장 강력하게 경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죄악에 빠져있고 우리가 곤고한 가운데 있을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학교로 부르신다.
그곳에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회복시키시고 다시 일으키실 것이다.
(포로생활이 70년이었지만 그기간을 통하여 그들은 다시금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훈련받았다)
15절에는 하나님의 회복이 나타난다.
- 포도원을 주시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실 것
아골골짜기는 아간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심판을 받아 멸망당한 곳이다.
이스라엘의 범죄함으로 인한 그들의 운명이 곧 고멜과 같았고, 아골골짜기와 같았다. 소망이 없고 멸망받을 수 밖에 없는 돌무더기가 될 수밖에 없는 그곳을 소망의 문으로 열어주실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며 회복의 역사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출애굽한 이후에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며 찬양하였던 것처럼 그렇게 그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이다.
16-17절: 하나님을 가리켜 내 바알(바알, 주인)이라고 하지 않고 남편(이쉬)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가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우상처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다 더 깊고, 소중하고,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되는 것이다.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대상이 무엇이냐면 들짐승, 공중의 새,땅의 곤충이다. 들짐승은 모두 무화과나무와 포도원을 먹는 맹수이다(12절),
공중의 새는 이스라엘의 곡식과 땅의 소산을 헤치는 것들이다, 땅의 곤충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모두 범죄한 이스라엘의 땅을 황무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들과 언약을 세워(맺어) 하나님이 주신 땅을 풍성한 풍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땅에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애고 그들이 평안히 누울 수 있도록 하나님의 평안을 허락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한 우리의 성품과 마음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 그 언약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이다.
19-20절에는 오늘 말씀의 주제가 담겨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께서 네게 장가들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프로프즈를 하신 것이다.
19-20절을 보면 내게 네게 장가들겠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면 우리와 결혼하시겠다고 말씀하실까?
그런데 이 장가든다는 말은 재혼이나 그냥 거두어 첩으로 데리고 산다는 말이 아니다.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순결한 처녀와 결혼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창녀고멜과 같이 소망이 없고 음란속에 빠져있고, 죄악속에 빠져있고 소망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순결한 처녀와 결혼하듯 우리와 혼인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사랑엔 눈이 멀어야 결혼한다. 무언가 씌우지 않으면 결혼에까지 이를 수 없다.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에 눈이 멀었다. 우리에 대한 불타는 사랑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우리의 허물도, 우리의 죄악도, 우리의 음란한 모습도, 우리의 부정한 모습도 다 덮어주시고, 감싸주실 수 있는 것이다. 부정한 우리를 순결한 처녀로 맞아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스스로 언약을 세우사 그 순결한 신부를 회복시키시고, 사랑의 서약, 사랑의 맹세를 들려주고 계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즉흥적인 마음일까? 그저 우리가 불쌍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가들겠다고 하시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들것이라고 하셨다.
의와 공변(공평과 정의)됨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속성이요 성품이다.
신랑으로서 맹세하고 서약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이다. 이것이 마치 결혼 지참금과 같은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은총과 긍휼로 장가들것이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 없이는 한순간도 살수 없기 때문이이다. 음란하고 부정하고 죄많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순결한 신부로 대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에 근거해서이다.
20절을 보라. 진실함으로 장가(약혼)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은 진실함으로 우리에게 장가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숨기심 없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리실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 얼마나 하나님과 우리와의 친밀함을 보여주는 말인가? 어떻게 감히 우리가 하나님을 안단 말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시지 아니하시면 어떻게 감히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가든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주시고, 보여주시고, 알게하여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열어보여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알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었는가? 바알을 알았는가? 바알이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세상에서 이렇게 기가막힌 프로프즈를 볼수 있는가?
모든 것이 응하리라(21-22절)
21-22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서약이 이어진다.
그것은 곧 이 모든 것이 응하리라는 것이다.
바알이 하늘에서 비를 내려 땅을 적시고, 농사가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준다.
내가 응하고, 하늘이 응하고, 땅이 응하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응하고, 이것들이 이스스엘이 응하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이스르엘은 고멜이 낳은 첫 번째 아들의 이름, 하나님이 흩으실것이라는 저주의 이름이 아니다.
이 말에는 하나님이 심으신다는 또다른 의미가 들어있다. 이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소망없는 그들을 새로운 생명의 희망으로 심으실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당시에 신랑이 순결한 처녀인 신부를 맞이할때에 지참금이나 선물을 준비하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것,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소유하고, 기도의 응답을 얻고, 변화와 회복의 은혜를 주시는 것 모두가 곧 하나님의 결혼의 선물인 것이다.
23절앞에 보면 그내용이 언급되어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호세아의 두 번째 딸, 로루하마, 긍휼히 얻지 못한다는 이름,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귱휼히 여기며, 내 백성이 아니라 한 로암미를 가리켜 도시 내 백성이라 하고, 주는 내 하나님이라 할 것이라.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와의 관계의 회복을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는 별로 애타하지 않고 세상의 즐거움과 일들에 빠져서 허우적대는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견딜수 없어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프로포즈의 손을 내미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대한 회복과 소망을 담은 사랑의 서약을 하셨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우리는 알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