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28.수요예배설교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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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views바울의 아브라함의 믿음 이해, 분열된 로마교회를 향해 할례와 율법의 무익함과 믿음의 유익을 강조, 믿음으로 인한 세상의 상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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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분석
본문분석
13 왜냐하면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된다는 그 약속은 그 아브라함이나 그 씨[자손]에게 율법을 통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믿음의 의를 통한 것이다.
왜냐하면이 나옴으로써 앞선 본문의 근거, 이유로 제시된다.
결국 할례가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바울은 현재, 로마교회의 분열을 보며, 유대인과 비유대인사이의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고자 한다.
분명 할례는 좋은 것이다. 약속이다. 하지만 그것이 분열의 소지라면, 그것조자 바울은 멀리하고 제외한다.
이로서 바울은 유대인과 율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는 공통된 믿음, 그리스도를 믿음이 더욱 중요함을 말한다.
14 왜냐하면 율법으로부터 그 상속자면(1st condition), 그 믿음은 공허하며(완 수 직 3단) 그 약속은 무의미하게[폐지] 되었다(완 수 직 3단).
1st condition으로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증.
율법때문에 상속자가 된다면, 즉, 언약이 율법으로 된다면, 믿음과 약속은 둘다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 아래에 나올 것이다.
15 왜냐하면 그 율법은 분노를 야기하기 때문이다(현 중 직 3 단). 그러나 율법이 없다면 범법도 결코 없다(현 능 직 3단).
이중부정으로 강한부정이쓰였다.
율법이 불러오는 것은 진노다.
바울은 왜 이렇게까지 율법을 비하할까?
로마서를 살펴보면, 바울이 율법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육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를 살릴 율법이 죄로인해 죽은 우리 육신때문에 우리를 죽이고 고발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말하는 율법, 분쟁의 원인이 된 율법은 그리스도의 피에 비하면 무익한 것이다.
16 이를 통하여 믿음으로부터, 은혜아래로 (가기) 위해, 그 씨에게 그 약속이 굳건하게 되는 것을(현 능 부정) 향하여, 그 율법으로부터[율법의 지지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믿음으로부터[믿음의 지지자]들또한 (그렇다),
17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너를 만들었다(완 능 직
3단)라고 기록된 것(완 수 직 3단)처럼, 그는 하나님을 죽은 자들을 살리고(현 능 분 단 소 남)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현 능 분 단 소 남) 분이시라고 믿었다(에오 능 직 3단).
16절은 이 믿음의 부르심, 은혜가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동일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7절에 다시한번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한다.
이것은 로마교회를 향한 바울의 강력한 권고이다.
너희는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18 그는 소망에 대항하여 소망속에서 그가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다는(에오 중 부정) 것을 믿었다(에오 능 직 3단), 그의 말씀을 따라서였다. “그러므로 너의 그 씨가[후손이] (이렇게) 될 것이다”,
19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의 몸이 약 100세이라 죽은 것같다(완 수 분 단 목 중)는 것을 깨닫고(에오 능 직 3단), 또한 사라의 그 자궁이 죽었음을 (깨닫고도) 그 믿음에 약해지지 않았다(에오 능 분 단 주 남).
창세기의 실제 이 부분은 아브라함의 헛웃음, 비웃음이 나온다.
바울은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소망에 대항해 소망속에서라는 말도, 이 사실을 생각한 표현이다.
20 그러나(대조의 의미) 그 하나님의 그 약속으로 믿지못함으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에오 수 직 3단) 믿음으로 강해져서(에오 수 직 3단),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에오 능 분 단 주 남)
21 그리고 그 약속한 것이(완 중 직 3단) 가능하고(현 능 직 3단) 행하셨다는 것을(에오 능 부) 완전히 확신했다(에오 수 분 단 주 남).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큰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반문하고 있다.
22 그래서 정말로 그가 의롭다고 여겨졌다(에오 수 직 3단).
아브라함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확신에 있었다.
상황을 초월한 믿음을 바울은 말하고 있다.
23 그러나 그 혼자때문에 “그가 여겨졌다[인정되었다](에오 수 직 3단)”라고 기록된 것은 아니다(에오 수 직 3단)
24 반대로 또한 우리때문에, 우리의 그 주 예수께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셨다고(에오 능 분 단 목 남) 믿는(현 능 분 복 여 남),
25 그는 우리의 죄때문에 넘겨지고(에오 수 직 3단) 우리의 의롭다하심때문에 다시 살아나신 분이시다(에오 수 직 3단).
25절은 24절의 우리주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다.
23절을 통해 아브라함의 이신칭의가 그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모두에게 왔다는 것을 알 수있다.
주목할 점
주목할 점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굳건함을 말한다. 정말로 사라의 잉태를 믿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에서 보면 그는 제대로 믿었다고 볼 수 없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그러나 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가 믿을수 있도록 해주었다.
즉,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 그 자체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믿음조차 하나님의 기적과 현현의 결과였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역시 마찬가지다.
세상과 교회에서 내가 옳다 니가 옳다해도,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온 선물인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 하나님의 약속의 산물인 믿음, 우리는 잘 관리하고 있는가.
마음을 지키고 있는가.
오히려 아브라함이 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일할 기회가 생겼다. 아브라함의 무능함과 불신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회가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표현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에서 첫번째 약속을 받은 후 나은 이스마엘은 결국 대로 악한 결말을 나았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그러나 16장의 언약과 17장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이삭을 확정하신 후, 아브라함은 더이상 자손에 대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다렸다.
손놓고 하나님을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움직이란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우리 역시 소망할 수없는 중에 믿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세상의 상속자’.
설교
설교
서론
성경은 우리에게 수많은 메시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성경은 우리에게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다 기억할수도 없는 약속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하나님의 약속의 책, 구약과 신약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믿음, 그속에 함께있는 은혜에 젖어드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에 믿음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아브라함 개인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에게 본이 되었고, 또한 우리의 믿음이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한가지와 해야할 한가지가 무엇인지 알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 우리의 믿음의 근본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세상의 상속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상속자라고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자를 뜻합니다. 이것은 솔직히 우리의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것이라는 말인데,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이세상에 비교할수도 없는 작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우리가 세상의 상속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돌아가보기 원합니다.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말한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바랄수 없는 중에 소망하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아브라함이 온전히 믿었습니까. 에서 우리가 보았지만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그는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 19절에 나온 대로 완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19-21절까지 아브라함이 완전히 바라고 믿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성경은 아브라함이 제대로 믿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잘못알고 말한 것일까요?
아니요, 반대로 바울은 모든 것을 알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17장에서 제대로 믿지 않았던 아브라함을 위해 창1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직접 아브라함과 사라와 말하시고 약속하신 후에야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당연히 지금 창세기를 읽은 성도들뿐 아니라, 당시 로마교회의 사람들 역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이렇게 쓰고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 모든 과정조차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믿지 못할 것을 아시고 18절의 현현을 준비하시고 실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아브라함은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자신과 사라의 현실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의심없이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일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확실할 수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순히 그 자신이 믿음으로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분명 흠이 있는 믿음이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함으로, 그 흠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우리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세상속에서 우리는 고통받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저토록 찬란한데, 우리의 현실은 밑바닥을 치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여기,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상관없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모였습니다. 우리의 형편이나 상황,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잊고, 지금 이순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입니다. 우리에게 흠이 있고, 믿음이 연약하십니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아브라함처럼 흠없는 믿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향해 세상의 상속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흠이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단순히 신이 아닌, 나의 아버지란 사실을 믿고 고백한다면, 이 이후는 하나님께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한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한가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 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나온 아브라함이 이삭의 탄생을 확신한 후 무엇을 합니까. 자신에게 찾아온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립니까? 아무것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우습게도 창18장은 이걸로 끝이 납니다. 오히려 에서는 뭔가 찝찝하게 끝나버립니다.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뭔가 하다 만듯이 끝납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라지셨는지, 아브라함과 사라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갑자기 이후에 뜬금없이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비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들은 20장까지, 앞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어보이는 아브라함의 삶이 이어지게 됩니다. 우습게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는 선지자적인 역할을 하는 아브라함이 20장에서는 다시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아내가 아니라고 속이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입니다. 이후 21장에 들어서서야 사라가 이삭을 낳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좀 더러운 표현이지만,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다 중간에 끊은듯한 찝찝함을 왜 성경은 남긴채 진행할까요. 한마디로 그 이상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히 믿었기에, 더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제대로 믿기 전에, 15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 때는 16장에 바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에서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모든 사람과 더불어 싸우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 그 행동의 잘못됨을 지적했습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하지만 창18장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된 아브라함은 더이상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닥친 일을 해갈 뿐입니다. 왜냐면 그 이상은 하나님께서 분명 하실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26절부터는 무엇이 나옵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가 나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안에서 삶입니다. 그이상의 일을 하나님아버지께 맡겨두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읍시다. 그리고 그 믿음속에서 살아갑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한가지입니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세상을 상속물로 주실 만물의 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할 한가지와 우리가 행해야할 한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알아야할 한가지는 바로 우리의 믿음, 우리의 존재자체가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이란 사실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든지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믿음으로 이끌어주신 아버지께서 모든 약속을 이루어나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할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행할 한가지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믿음안에서 우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은 당연히 흠많고 불완전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셔서 모든 약속들을 가장 알맞은 때에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기억하며, 담대함과 소망을 가지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아버지와 함께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