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자를 통한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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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본론

서론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그 위에 군림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포로로 삼게 하신 것이었고,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 바벨론을 들어 쓰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은 바벨론 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공의를 보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주변 나라들 위에 자신이 군림한 것이 자기 힘으로 자기 지혜로 자기 군사력으로 그리고 자기들이 믿는 신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벨론의 교만을 강력하게 책망하시고 다시금 그들을 낮추실 것을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다양한 각도로 이 본문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오늘은 바벨론의 모습에서 우리가 타산지석을 삼을 수 있는 것들을 역으로 추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해야 했지만 인정하지 않았던 바벨론을 하나님께서는 책망하고 계시죠.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렇다면 어때야하는지를 역으로 추적해서 우리 삶에 적용해보기 원합니다.

본론

1절부터 3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곱고 아리따워서 주변 모든 나라들의 흠모를 받았던 화려한 공주와 같은 바벨론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저주하시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구체적 예언 내용이 강한 이미지로 이어서 주어지는데 4절에 잠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4절을 통해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이스라엘에게 회복을 주시겠다던 내용들을 기억해보면 거기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로 그 회복의 예언들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지만 이스라엘, 당신의 백성에게 복과 회복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4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역시 하나님의 성품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회복자이시고 동시에 심판자이시며 진노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기 때문이죠.

5-7을 볼까요

하나님은 바벨론이 그들이 어렵고 힘들며 연약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고 책망하시며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고 말하며 그들을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였고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관심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라는 사실을 잊었던 바벨론은 자신이 영영토록 여주인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긍휼히 여겨야 할 자기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았고 막 대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자는 자신이 처한 위치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긍휼히 여겨야 할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맡겨주신 사람들의 종말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이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얻은 것이 자기 힘으로 얻은 것이라고 착각해서, 자신이 맡은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왕이시라는 사실을 잊은 자의 모습입니다.

8-9을 계속 봅시다

자신이 여주인이라고 생각한 바벨론은 8,9절에서 말합니다.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자신에게는 모든 것이 있어서 어떤 고난과 고통도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타인의 고통과 고난을 보고 긍휼히 여길 줄 모를 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있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겁니다. ‘it’s none of my business.’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수한 주술과 주문을 빌릴지라도 갑자기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될 것이다. 절대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게 너에게 힘하여 완전히 너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를 돌려보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자들은 타인의 고통을 긍휼히 여길 뿐 아니라 그 고통이 얼마든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겸손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안락함과 소유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고통이 급작스레 닥치는 것은, 원치않지만, 내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0-15절

마지막으로 바벨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스로의 악한 계략을 의지하며 ‘나를 보는 자가 없다, 나 뿐이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없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악을 행하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를 돌려보면, 하나님의 왕되심을 인식하는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자신을 보는 분이 계심을, 홀로 생각으로 죄를 지을 때도 보는 분이 계심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많이 무너집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그들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참으로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는 사람의 모습은 홀로 있을 때 나타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악한 뜻을 얼마든지 합리화할 수 있고, 겉으로 선으로 드러나게 교묘하게 포장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울 수록 잘합니다. 얼마나 우리가 여기에 능한지 모릅니다. 웃으면서 얼마든지 칼과 비수를 숨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아시며 보고 계심을 잊은 처사입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며 맺겠습니다. 조금 불편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은 관리자급에만 해당되는 말씀으로 여겨질 수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 바울 서신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은 왕에게든 노예에게든, 상인에게든,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동일하게 기억되어야 했습니다. 세탁소에서 일 하실 수도 있고 사업을 하실 수도 있고 회사를 다니실 수도 있고 저처럼 그냥 혼자 공부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 여건도 우리 모두 너무 다양하죠. 오늘 말씀이 와닿으실 수도 있고, 한 번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높아져본 적이 없어서 전혀 안 와닿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서로 다른 모습일지라도 하나님은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각자 차이를 가지지만 자신이 속한 삶 속에서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긍휼히 여길 줄 알고, 적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감사하고, 홀로 있을 때도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조금 불편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은 관리자급에만 해당되는 말씀으로 여겨질 수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 바울 서신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은 왕에게든 노예에게든, 상인에게든,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동일하게 기억되어야 했습니다. 세탁소에서 일하실 수도 있고 사업을 하실 수도 있고 회사를 다니실 수도 있고 저처럼 그냥 혼자 공부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우리 서로 다른 모습일지라도 자신의 삶 속에서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긍휼히 여길 줄 알고 적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감사하고, 홀로 있을 때도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기도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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