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권한, 예수를 믿게 하는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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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권한, 예수를 믿게 하는 증언
아들의 권한, 예수를 믿게 하는 증언
지난 번에도 함께 표적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지만 그런 표적이라는 것은 어떤 기적이나 이적을 말하는데 특별히 성경속에서 여러가지 표적이 나타납니다.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이 임하는 사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는 사건, 만나를 경험하는 사건,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5000명을 먹이는 사건 이런 여러가지 표적의 사건이 있다.
지난 번에도 함께 표적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지만 그런 표적이라는 것은 어떤 기적이나 이적을 말하는데 특별히 성경속에서 여러가지 표적이 나타납니다.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이 임하는 사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는 사건, 만나를 경험하는 사건,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5000명을 먹이는 사건 이런 여러가지 표적의 사건이 있다.
그런데 이런 표적이 의미하는 것은 그런 사건의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이 가리키고 의미하는 바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는 7가지 표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의 전
1.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
2. 가버나움에서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사건
3. 베데스다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
이것들이 모두다 표적인데 이 표적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의 이벤트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들이 가리키고 의미하는 바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가 온전한 구원자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가나의 혼인잔치 물이 포도주가 바뀌는 사건
2. 가버나움에서 죽어가는 왕의 신하가 병고침 받는 사건
3. 베데스다의 38년된 병자의 병고침 사건
이 모든 것이 무엇을 가리키고 의미하는 것이냐면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를 가리키고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런 표적의 사건들이 그런 표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런 표적의 사건들로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되신 예수그리스도의 권한과 성경속에서 기록되어진 그 증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증언을 가 증언했다고 말하냐면
세례요한의 증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성경을 볼때 구약과 신약이 떨어져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볼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신약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약에서는 예수님이 없잖아 이야기가 없잖아 하면서 떨어져서 볼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성경은 단한가지의 의미를 전하는데 그 한가지의 의미를 점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이냐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그리스도를 성경의 곳곳에서 점진적으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보여주고 있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구약은 그리스도의 오실 것에 대해 말씀하였고, 신약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동시에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그런 성경이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단 한가지 의미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그렇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시대에 뚝 뛰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39절에 뭐라고 말을 하냐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부터 신약시대까지 신실하게 계획하시고 일하시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과 함께하셨다라는 것이죠 율법을 주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주셨는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함이 점점 더 커졌을때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보내신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하나님되신 예수그리스도의 권한과 성경속에서 기록되어진 그 증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말하나? 세례요한이 누구를 위해 증언했다고 말을 하냐면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런 모세를 변화를 어떻개 하나?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고 말한다,.
그런 요한복음을 묵상하면서 놓히지 말아야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셨는데 성육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성경은 한가지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오직 예
요한복음 5: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세례요한의 증언, 모세의 증언, 그 모든 성경속에 기록되어진 증언들이 바로 누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냐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성경의 증언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한가지의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단 한가지의 의미를 어떻게 보여주냐면 점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성경을 볼때 종종 오해하는 떄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구약과 신약이 떨어져 있다라고 생각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신약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약에서는 예수님이 없잖아 이야기가 없잖아 하면서 떨어져서 볼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성경은 단한가지의 의미를 전하는데 그 한가지의 의미를 점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이냐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그리스도를 성경의 곳곳에서 점진적으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보여주고 있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구약은 그리스도의 오실 것에 대해 말씀하였고, 신약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동시에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그런 성경이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단 한가지 의미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표적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표적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께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예수님께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 영어성경에서 뭐라고 말하냐면 refuse했다라고 말합니다. 거절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어릴때부터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읽게 되어집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이 영생을 이루는 두가지 도구 인 것 입니다.
그런데 성경속에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 한 것입니다. 성경의 곳곳에서 예수님을 증언하고 세례요한이 증언하고 모세가 증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를 보지못한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을 보아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경을 볼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왜 성경을 보아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까? 성경을 자신의 방식으로 보고 구원과 영생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경을 자신의 방식으로 보고 구원과 영생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왔을때 자신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자신들의 방식이 아니었기 떄문에 철저하게 배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42절은 이렇게 말한다.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그런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비록 외적인 모습은 연구도하고 공부도 하고 크리스천처럼 살아가지만 그러나 정작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린 어떠한가? 우리도 외적인 모습은 말씀을 듣기도 하고, 연구도 하고, 설교도 듣고, 공부도 하지만 정작 우리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헛되고 다른 것으로 가득차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설교를 들어도 말씀을 읽어도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오늘 이시간 우리 내면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길 원하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외면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라는 사실을 꼭기억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외면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라는 사실을 꼭기억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유대인들의 겉모습은 변화된 사람같지만
그래서 유대인들처럼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진정한 변화는 외면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라는 사실을 꼭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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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요한복음을 묵상하면서 놓히지 말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런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가운데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말하나? 세례요한이 누구를 위해 증언했다고 말을 하냐면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런 모세를 변화를 어떻개 하나?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