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28 views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오병이어 사건 경험 후
오병이어 사건 경험 후
인간에게 있어 두려움이란,
96/384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무리들과 제자들이 굶주려 있을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대단한 사건입니다. 어린 아이의 한날 도시락 밖에 되지 않는 그런 음식으로 장정을 5000명이나 먹이시는 대단한 기적의 사건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 그 사건을 수많은 무리들과 제자들이 경험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기쁨, 능력의 예수님을 경험했다. 그런 기적을 경험한 후 수많은 무리들이 어떻게 했다고 말하냐면 전절에서 말하냐면 예수님을 임금을 삼으려고 했다고 한다.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그런 임금은 당시에 로마정권에서 자유하게 하고 자신들을 먹여 살 릴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려 했다고 말하냐면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했다고 말합니다. 그런 예수님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임금삼으려 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아셧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아셧습니다. 그런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그 밤,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 가버나움이라는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 배를 저어 가려하면서 잔잔한 바다에서 갑자기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그 밤,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 가버나움이라는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 배를 저어 가려하면서 잔잔한 바다에서 갑자기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그 밤,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 가버나움이라는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 배를 저어 가려하면서 잔잔한 바다에서 갑자기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배는 10리 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10리면 4km가 되는데 그런 마일 수로 계산하면 2마일 이 좀 넘는 것이다. 그런데 10여리쯤 갔다고 하니 2마일 정도 갔을때다. 2마일이면 여기에서 부터 북쪽으로 데본셔까지의 거리이다.
그 2마일 갔을때 폭풍을 만나게 되어집니다. 그런 예수님은 풍랑을 만나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물위로 걸어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본 제자들은 두려워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런 예수님을 보면 기뻐하거나 역시 능력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하며 얼른 도와주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보면 기뻐하거나 역시 능력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하며 얼른 도와주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두려워한 것으로 봐서 우리가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려워한 것으로 봐서 우리가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런 그들의 상황이 꽤 폭풍앞에 주님을 보지 못한 두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폭풍중에서도 예수님이 가까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더 큰 것을 보게 된다.
그런 기쁨과 능력의 사건을 경험한 것과는 달리 아무 폭풍앞에 아무 힘이 없는 무능력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어집니다. 그런 폭풍앞에 그런 예수님은 풍랑을 만나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두번째는 이사건을 마태복음14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마태복음 14: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시고 유령이라 느껴져 두려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은 밤중에 폭풍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이사건은 전에 있는 사건과 너무나 대조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은 밤중에 폭풍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이사건은 전에 있는 사건과 너무나 대조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5,000명을 먹이는 사건에는 무리와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 무리들은 자신들을 로마정부에서의 자유와 현실적 필요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땅의 임금으로 생각하며 임금을 삼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밤중에 그것도 폭풍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아무런 유익도 없고 현실적으로 보면 상황이 굉장히 좋지 못한 그런 상황가운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폭풍이 너무나 커 곁에 계신 예수님 알아보지 못했고 그런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 본문은 수많은 무리들 처럼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 필요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해주 는 분으로만 생각하는 오해를 넘어서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임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닭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제자들의 믿음의 수준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수준이 무엇입니까?
이런 현상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훈련받은 제자들을 그릇된 생각에서 건져내시기를 원하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적을 통하여 저 군중들과 같이 현실적인 이익과 축복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길보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 나라와 그 크신 뜻을 기초로 삼고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 두 갈래의 길 가운데 너희는 어느 길을 가려느냐고 그들의 결단을 촉구 하셨던 같습니다.
제자들이 그릇된 메시야관에 빠져들 수 있는 위기에 있을 때에 물위로 걸으신 이적은 큰 교훈적 가치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물위로 걸으신 이적은 현실적 이익이 없습니다. 여기 현실적 이익이라 함은 배부름이라든지 실질적인 효과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물위로 걸으신 이적은 비실리적인 이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적을 통하여 저 군중들과 같이 현실적인 이익과 축복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길보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 나라와 그 크신 뜻을 기초로 삼고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 두 갈래의 길 가운데 너희는 어느 길을 가려느냐고 그들의 결단을 촉구 하셨던 같습니다.
그들은 기쁨과 능력의 예수를 경험한 것과는 달리 아무 힘이 없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어집니다.
왜 두려움이 생겼나?
왜 두려움이 생겼나?
1리는 0.4km 이다. 10리는 4km이다. 이것을 마일로 계산하면 10리를 못갔다고 하니까 여기서 데본셔까지의 거리가 2마일이다. 그정도 까지 갔을때 폭풍앞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왔는데 두려웠다라고 라고 하니 그들의 상황이 꽤 폭풍앞에 주님을 보지 못한 두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의 폭풍중에서도 예수님이 가까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더 큰 것을 보게 된다.
폭풍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중에 찾아온 예수
그런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런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으로 부터 말할 수 없는 기쁨도 누리고 그분의 능력의 일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은혜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폭풍앞에서 또는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주님의 전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오해할때가 많다.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주님의 전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한다.
정작 인생의 문제가 찾아오면 인생의 폭풍이 찾아오면 그 문제와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분께 구하지 못하고 우리의 능력과 경험과 생각대로 움직일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수많은 문제와 폭풍앞에 설때가 있습니다. 또는 필요들을 위해서 구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하며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도우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어떠한 목적을 위해 달라고하고 기도하는지 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 삶의 질을 높여주시는 분, 그런 분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모든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예수님을 함께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인생속에서 잔잔한 삶을 살다가도 원하지 않는 풍랑을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믿음을 저버리게 될 것 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믿으면 늘 잘되야되고 승승장구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떄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모든 문제를 다스리시는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한 순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존재이다. 그런 은혜를 누리지만 그러나 인생속에서 잔잔한 삶을 살다가도 원하지 않는 풍랑을 만나게 되면 어떻습니까? 두려움 가운데 있을때가 참 많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삶에 폭풍을 만날때 믿음을 저버리거나 포기할떄가 참많습니다. 인생에 시련의 폭풍을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아마 그런 분으로만 생각하면요 인생속에서 잔잔한 삶을 살다가도 원하지 않는 풍랑을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믿음을 저버리게 될 것 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믿으면 늘 잘되야되고 승승장구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떄문입니다.
어쩌면 폭풍을 만날때 믿음을 저버리거나 포기할떄가 참많습니다. 인생에 시련의 폭풍을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믿으면 늘 잘되야되고 승승장구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떄문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들에게도 풍랑은 닥쳐옵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해 일하면 아무런 폭풍도 고통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할때가 참많다. 주님을 믿으면 늘 잘되야되고 승승장구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할때도 참많다. 그런데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들에게도 풍랑은 닥쳐옵니다.
그런데 인생의 폭풍앞에서면 폭풍의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 계신 주님을 보지 보지 못할때가 참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모든 문제를 다스리시는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런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에게 모두다 인생에 폭풍이 찾아올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단한지 다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는 이들에게 주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생에 폭풍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 계신 주님을 보지 보지 못할때가 참많습니다. 그런 가까이 꼐신 주님이 우리에게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믿는 이들에게 주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구원자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 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가 모두 하나님에 달려 있다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되어집니다.
그런데 인생의 폭풍앞에서면 폭풍의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 계신 주님을 보지 보지 못할때가 참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모든 문제를 다스리시는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런 가까이 꼐신 주님이 우리에게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가까이 꼐신 주님이 우리에게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인생에 어떤 폭풍속에 계십니까? 오늘 이시간 우리와 가까이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의 고통을 기쁨으로 두려움을 평안함으로 바꿔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 드러나는때가 언제일까요?
바로 인생에 결정적인 순간속에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