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두려움의 대상,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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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찬양: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서론
어제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기도와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입니다. 가슴 뛰게 하는 힘있는 표현과 구체적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약속들로 가득한 본문이네요.
본론
본론
먼저 12-16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로하며 구원할 자는 오직 하나님 자신이심을 상기시켜주십니다.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다!’라고 확실히 하십니다.
그리고 17-23절 말씀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에게 내려져야했을, 또는 이미 내려졌던 하나님의 징계과 진노가 다하였으며, 이제는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기 때문에 두 내용을 다 다루면 좋겠지만, 첫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이 부분을 통해 두 번째 부분은 간단하게 적용하며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유일한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그 시작은 다시 한 번 다른 이가 아닌 당신 자신이 직접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그리고 반문하시며 책망의 어조를 좀 담으십니다.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참 누가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목숨을 물리적으로 빼앗아갈 수 있는 권력자 앞에 서게 된다면 두려워 떨 것입니다. 실제 말 한마디 행동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목이 날라갈 테니까요. 과거 절대권력을 가졌던 왕들이나, 아직도 그런 권력을 자랑하는 북한 정권 앞에 선다면 저희는 벌벌벌 떨 것입니다. 갑자기 7/11에 있다가 들이닥친 총을 들 괴한이 있다면 우리는 두려워할 것입니다. 당장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는다면 죽게 될 테니까요. 그런데 이런 특별한 상황, 특별한 조건에서만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는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자를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친구를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우리 수익을 좌우하는 대상을 만날 때, 바이어를 만날 때, 고객을 대할 때, inspector를 대할 때,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두려워하는, 사람이 두려워 견딜 수 없는 우리에게, 사람이 두려워 사고를 올곧게 못하고 선택과 결정에 타협하게 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책망하듯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움은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우리의 목숨이든, 삶이든, 누리고 있는 특권이든 가진 것을 빼앗고 우리의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일과 사람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현재 상황보다 더 안 좋아지고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워지는 요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더 멀리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하면 오늘 말씀처럼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들이 죽을 사람들이며 풀 같은 이들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무슨 뜻이냐면요, 그들이 별 볼일 없는 하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니가 뭔데 나한테 그런다는 거야?’라면서 자존심 세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단지 하늘의 일이고 이 땅의 인간관계와 일들은 마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면, 영원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현재 있는 일을 현재의 맥락에서만 해석하면 우리는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힘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힘을 주셔서 슈퍼맨처럼 모든 상황에서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큰 힘은 우리 세계관의 완전한 변혁에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다보니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해석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거기서 깨닫습니다.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아! 지금 겪는 이 일과 고통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지만… 생각해보니, 죽으면 어떤가! 내가 섬기는 분은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그 날부터 영원을 살아가는 자가 아닌가? 갑자기 시야가 확- 넓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절대적으로 내게 다가오던 수많은 두려움의 대상들이 상대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현재의 고통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영원의 소망을 가지게 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13절에서 하나님께서 두 번째 반문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능력과 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며 왕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우리 앞에 우리 목숨과 인생과 수익과 건강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잠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이상 그렇게 커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힘은 이 놀라운 인식변화에서 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셔서 우리 영적 눈을 열어주십니다. 당장 내 앞에 있는 사람, 내 삶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사람이 너무나 두려워 밤잠을 설치고 그 사람 의견과 생각에 내 의견과 생각을 맞추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비위맞추는데 애썼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내 앞에 있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며 그 사람의 권위와 능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자유하고 평안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 영혼의 눈이 만군의 여호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17절부터 23절까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이 백성이 아니거나,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것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하나님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실 두려워해야할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대해야할 것은 진노 끝에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결론
결론
혹시나 현재 삶 속에서 여러분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들이 아무리 대단해보여도 그들은 결국 죽을 인간이며 우리 생명을 우리 인생을 가장 큰 의미에서 좌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들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고, 그들의 중요성을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을 신경쓰지 말고 무시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탄생과 죽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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