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18.금요기도회설교
Notes
Transcript
본문주해
본문주해
27 לָ֤מָּה תֹאמַר֙ יַֽעֲקֹ֔ב1/4
וּתְדַבֵּ֖ר1/8
יִשְׂרָאֵ֑ל1/2
נִסְתְּרָ֤ה דַרְכִּי֙ מֵיְהוָ֔ה1/4
וּמֵאֱלֹהַ֖י1/8
מִשְׁפָּטִ֥י יַעֲבֽוֹר׃1/2
( WTT)
왜 너는 이야기하느냐(칼 미완) 야곱아1/4
그리고 너는 말하느냐(피엘 미완)1/8
이스라엘아1/2
내 길은 여호와께로부터 숨겨졌고(니팔 완)1/4
하나님께서1/8
내 율례[공의, 권한, (행한)정당함]를 무시하신다(칼 미완) [라고]1/2
- 야곱, 이스라엘의 불만
- 시적으로 표현된다. 야곱과 이스라엘의 반복은 이사야서에서 계속해서 나온다.
- 이것은 이스라엘이 아직까지 부족하고 나약한 야곱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임을 뜻한다.
- 이스라엘의 이중적인 외침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일깨우시고자 하시는 것 같다.
- 야곱은 나약한 인간이다. 거짓말하고 얍삽한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그냥두시지 않으셨다.
- 이스라엘은 승리의 상징이다. 하나님께 이긴 자, 그 무엇과 부딪혀도 이길수 있음을 말한다.
- 그러나 이사야서에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란 이름보다 야곱이란 이름이 어울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으신다.
- 길이 숨겨졌다는 완료다. 이건 하나님께서 한번도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 공의, 율법으로 번역되는 미슈파트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신이 행한 공의나 율례는 전혀 기억하지 않고 무시한다고 말한다. 억울하다는 뉘앙스다.
28 הֲל֙וֹא יָדַ֜עְתָּ אִם־לֹ֣א שָׁמַ֗עְתָּ אֱלֹהֵ֙י עוֹלָ֤ם׀ יְהוָה֙ בּוֹרֵא֙ קְצ֣וֹת הָאָ֔רֶץ1/4
לֹ֥א יִיעַ֖ף1/8
וְלֹ֣א יִיגָ֑ע1/2
אֵ֥ין חֵ֖קֶר1/4
לִתְבוּנָתֽוֹ׃1/2
( WTT)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칼 완)? 아니면 듣지 못했느냐?(칼 완) 여호와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땅끝들을 창조하신(칼 분사) 분이시다1/4
피곤해지지 않으시고(칼 미완)1/8
지치지 않으신다(칼 미완)1/2
탐구할 수 없다1/4
그의 명철(이해)은1/2
- 2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알지 못하느냐? 다른 말로 모르냐?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모르냐는 뉘앙스다. 마찬가지로 듣지 못했느냐 도 당연한 사실을 듣지 못했느냐다. 특히 둘다 완료로 쓰인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면 결코 모를수 없다는 뜻이다.
- 이후 첫 왕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나온다, 만물과 천지의 창조자이자 영원하신 분이다.
- 그리고 3가지 부정으로 하나님을 표현한다.
n 피곤치 않음과 지치지 않음은 하나님의 영원과 그대로 이어진다.
n 역시 탐구불가도 하나님의 영원과 이어진다.
n 결국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다.
n 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영원하신 천지의 창조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뿐임을 나타낸다.
- 이것을 말하는 것은 27절에 나온 이스라엘의 말이 거짓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스라엘이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분명 하나님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비록 그 방식이 이스라엘의 마음에 들거나, 이스라엘의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언정 항상 움직이신다.
2 נֹתֵ֥ן לַיָּעֵ֖ף1/4
כֹּ֑חַ1/2
וּלְאֵ֥ין אוֹנִ֖ים1/4
עָצְמָ֥ה יַרְבֶּֽה׃1/2
( WTT)
그는 힘을 주고 있다(칼 분사)1/4
피곤한 자에게1/2
그리고 (물리적, 생식)힘이 없는 자에게1/4
(물리적)힘이 (물리적, 생식)증가하게 하신다(히필 미완)1/2
- 피곤한 자에게 힘을 준다.
이 힘은 모든 종류의 힘을 통칭한다.
- 둘째 단의 힘은 물리적인 힘을 가리킨다.
- 동시에 생식력을 가리킨다.
- 이 힘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식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즉 고자다.
- 증가하게 한다는 것의 다른 말은 많아지게 한다인데, 이것은 자손과 관련된 말이다. 즉, 열매나 자손을 많이본다는 뜻이다.
-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 또한 이것은 동시에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나게 하신다. 그 약속과 성취를 상기시킨다.
30 וְיִֽעֲפ֥וּ נְעָרִ֖ים1/4
וְיִגָ֑עוּ1/2
וּבַחוּרִ֖ים1/4
כָּשׁ֥וֹל יִכָּשֵֽׁלוּ׃1/2
( WTT)
젊은이들이라도 피곤해져서(칼 미완)1/4
지쳐버릴 것이다(칼 미완)1/2
그리고 청년들도1/4
기진맥진하여(칼 부정사) 비틀거릴 것이다(니팔 미완)1/2
- 사람의 한계
- 힘의 한계
- 29절에서 물리적인 힘을 부여하는 분으로 하나님이 소개된다.
- 30절에서 그에 대비되는 인간의 물리적인 힘의 한계, 체력의 한계를 다시 말한다.
- 즉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를 보인다.
- 넘쳐서 힘을 주는 하나님과 스스로의 힘도 없는 사람
31 וְקוֹיֵ֤ יְהוָה֙ יַחֲלִ֣יפוּ כֹ֔חַ1/4
יַעֲל֥וּ אֵ֖בֶר1/8
כַּנְּשָׁרִ֑ים1/2
יָר֙וּצוּ֙ וְלֹ֣א יִיגָ֔עוּ1/4
יֵלְכ֖וּ1/8
וְלֹ֥א יִיעָֽפוּ׃ פ1/2
( WTT)
그러나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바라는 자](칼 분사)는 힘을 새로 받을 것이다[통과할 것이다](히필 미완)[새 힘을 받을 것이다]1/4
날개로 날아오를 것이다(칼 미완 저시브)1/8
그 독수리들 같은1/2
그들은 달릴 것이다(칼 미완) 그러나 지치지 않을 것이다(칼 미완)1/4
그들은 걸어갈 것이다(칼 미완)1/8
그러나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칼 미완)1/2
- 앞서 나왔던, 지치다, 피곤하다를 완전히 부정한다.
- 이것은 27절에 야곱이 했던 것들, 자신의 힘겨운 상황에 대한 모든 불평들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어버리겠다는 선포다.
- 미완료로 쓰임으로 계속되는 상을 갖는다.
-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지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왜냐면 지치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은 고자에게도 생식력을 주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기 새 힘은 모든 종류의 힘을 통칭한다.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설교
설교
서론
27절은 이스라엘의 불평으로 시작합니다. 억울하다는 논조로 말합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의와 길을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두번째에 나오는 송사라는 단어는 원래 율례, 공의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을 지켰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외면하신다는 억울함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말씀처럼 예배와 찬양, 기도속에서 새 힘을 얻습니다.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됨을 느낍니다. 새 은혜로 너무나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우리는 그러지 않는 것같습니다. 예배도 찬양도 기도도 어떨 때는 형식적으로 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함께 오늘의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나눠주시는 새힘과 능력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평은 우리에게도 함께 존재합니다. 물론 우리가 감히 하나님께 대놓고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27절에서 이스라엘도 대놓고 불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비방할 수 없어서 그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분명 예배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데도, 왜 이리 힘이 든지. 왜이리 살기 힘든지, 한숨이 나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과 우리의 고민은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그 답을 함께 묵상하며, 더욱 주님께 붙들려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 몇가지를 알려주십니다.
물론 어떤 때는 말씀처럼 예배와 찬양, 기도속에서 새 힘을 얻습니다.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됨을 느낍니다. 새 은혜로 너무나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우리는 그러지 않는 것같습니다. 예배도 찬양도 기도도 어떨 때는 형식적으로 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함께 오늘의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나눠주시는 새힘과 능력을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불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 대해 이렇게 답하십니다.
나는 영원하다. 나는 모든 것을 창조했다. 내 능력은 한이 없다. 내 지혜는 끝이 없다.
약간 동문서답처럼 느껴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8절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알고 있다. 네가 한 모든 것을 벌써 알고 있다. 너는 변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네가 알수는 없겠지만, 더욱 완전한 방식으로 너에게 행하고 있다.
이것이 28절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야곱의 그 송사, 투덜거림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모두 알고 있다고 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명철이 한이 없음으로, 야곱 너는 내가 하는 일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벌써 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잘못일까요. 오늘 본문은 야곱이 잊었다고 책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잊음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피곤하며 곤비하다는 말이 28절부터 나오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힘없음 말합니다. 지쳐감을 말합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지치고 피곤해서 모든 것을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진맥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그 움직이심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두번째로 알려주심으로 연결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29절에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한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후반절이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무능과 힘은 물리적인 힘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체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체력중에서도 특별한 체력, 힘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식력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와닿지 않으시죠. 29절에 나오는 무능한 자는, 자식을 낳을수 없는 자입니다. 남자는 고자라 부르죠. 여자는 불임을 뜻합니다. 2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물리적인 힘, 그것도 자손을 남기는 힘을 말을 합니다. 이것은 자손을 낳는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무능한 자, 불임이라도 자손이라는 축복을 더하는 분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브라함과 사라를 암시합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라. 불임, 그 무능했던 자로부터 얼마나 많은 민족이 나왔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힘없고 지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가장 큰 축복을 주는 자다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을 주시며, 그 큰 축복을 쉬지 않고 부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힘을 잃고 체력을 잃고 건강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 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셋째로, 여호와를 앙망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앙망하라고 하십니다. 앙망하다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 바라면서 기다리다라는 뜻입니다. 희망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도 아닙니다.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라 하십니다.여호와를 바라보며 희망을 가지라 하십니다. 다른 곳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생일날 부모님이 준비한 선물을 먼저 훔쳐본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입니다. 당연히 그 선물이 내게 올거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주나, 기뻐하며,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선물을 주면 바로 낚아챌 기세로 기다릴 것입니다. 실제, 31절에 쓰인 앙망하다라는 단어는 매복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와같이 기다리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힘듭니다. 어렵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우리의 희망을 하나님께 표현합시다. 기다립시다. 하나님이 주시면 잡아챌 기세로 기다립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안겨주실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며 다시한번 마음에 간직하기 원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무엇을 깨우쳐주십니까.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선물받을 아이처럼, 매복하는 군인처럼 기다려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이런 소망의 기다림이 우리속에 있기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기 원합니다. 새 은혜로 충만하기 원합니다. 새 기쁨으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