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도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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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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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도전하라

오늘 저희에게 주시는 말씀의 제목은 “변화에 도전 하라”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변화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변화는 제 삶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이고 또 변화는 제가 성장해 가는 하나의 모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화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변화되는 것에 주변 사람들은 상당히 많이 칭찬을 받습니다. 변화 되는데 힘들어 하고 있을 때면 격려도 받습니다. 제가 이런 이유 때문에, 부족한 저를 칭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때문에, 제가 변화 되는 것을 상당이 즐겨 하고, 도전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변화되면, 내가 변화를 도전하면 누가 가장 먼저 좋아할까요? 그리고 누가 가장 많이 응원을 해 줄까요?
만약 내 남편이 좋아하고, 내 아내가 좋아하고 또 내 자녀가 좋아한다면, 내가 변화 되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내가 만약에 남편이 바라는 대로, 아내가 바라는 대로, 또 자식이 바라는 대로 더 나아가 부모가 바라는 대로 변화되었을 때 가족으로부터 아낌없는 칭찬의 말을 듣습니다.
제 가족은 대부분 이렇게 말해 줍니다. 정말 정말 내 아들이, 당신이 변했군요.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군요. 우리 아들을 그리고 당신을 변화 시킨 것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분, 맞습니다. 이렇게 칭찬을 받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이렇게 칭찬과 격려를 해 주시지 않습니까?
가끔은 이것이 칭찬인지, 아닌지 헷깔릴 때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힘이납니다.
다시 말해, 내가 변화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또 내가 변화되는 것을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이라는 것이죠.
나와 함께 먹고, 나와 함께 마시고, 잠자는 가족, 뉴질랜드라는 특수한 이민 생활 때문에 떨어져 있는 가족도 있지만, 가족이 가장 먼저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당히 변화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변화에 도전 하는 것을 즐겨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내 가족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내 식구가 좋아하면, 내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좀 힘들어도, 어려워도 인내하며 할 수 있습니다. 내 가족이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유가 분명하고, 동기가 분명하면, 때론 내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겹쳐 있다 해도…… 변화 되는 것을 즐겨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론 실패 할 때도 있지만 가족이 응원 해 주고 격려해 주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합니다.
때론 도전해야 할 주제가 너무 힘든 것이 있을 때도 있죠. 그래도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 가족과 내 자녀들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를 도전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가족의 원수, 그리고 내 민족의 원수, 그런 그들에게 까지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면, 이건 쉬운 도전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요나 선지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주신 계획을 도전 하여 전도를 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요나 선지자는 변화를 선뜻 선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멀리 도망 갑니다. 그것도 아주 멀리 도망 갑니다.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와 달리 사랑하는 가족의 문제로 변화되고 도전하라고 하면, 가족이니 깐, 그래도 가족이니 깐, 할만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다루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풀어 가시는지 살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저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변화에 도전”하고 “전도하라” 말씀 하십니다. 그럼 요나 선지자는,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떤 면을 바라보며 변화에 도전해야 합니까?
1. 기다리시는 하나님바라보며 변화에 도전하라.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변화에 도전하라” 시작.
어떤 분을 바라보며 변화에 도전하라 고요?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혹시 공감이 되십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특별히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참을 성 없고, 인내심 없는 사람을 바라보고 변화에 도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애 하시며,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계속해서 바로 보면서 변화에 도전 하라는 것입니다.
요나서 1장 17절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으시면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본문에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찾으셨습니까? 문자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신다”라는 말씀은 안 나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생각하시고 찾으면 “기다리시는 하나님”이 보이실 겁니다. 네 글자입니다. “밤낮 삼일”입니다. 하나님은 왜 밤낮 삼일을 기다리시는 것이죠? 요나 선지자가 변화에 도전하여 주신 말씀대로 전도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무엇인지 보겠습니다.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라고 해도, 그들을 회개시켜 하나님께 돌아 올 수 있게 “전도하라”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하라고요? “네 원수를 용서하고 전도하라”입니다.
그런데 3절의 말씀을 보면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다시스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요나는 용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전도도 하기 싫습니다.
다시 말해 변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도전 하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변화되기 싫은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요나는 배를 탑니다. 그런데 문제는 니느웨로 가는 배를 탄 것이 아니라, 정 반대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에 탑니다. 그리고는 괘씸하게 배 밑창에 내려가 누워 깊은 잠에 빠집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끔 저희들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내가 싫어하는 일은 끝까지 미루고, 또한 만나기도 싫어하는 사람을 마주치면, 그 사람이 볼까 내가 먼저 놀라서 피해 도망간 적이 있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피해를 준 이웃, 관계적으로 나를 어렵게 한 이웃, 더 나아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역사적인 과거의 일 때문에 마음에서 용서가 안되고, 그저 싫은 이웃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이웃을 “용서하라 하시고, 그런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지만, 싫습니다. 아직까지 용서는 둘째 치고 보기도 싫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도망 갈 수 있으면 멀리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멀리 도망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바꾸시지 않는 분입니다. 내가 변하든지 하나님이 변해 주셔야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선한 계획을 변경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합니까?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어떻게 하셨습니까? 변화되기를 기다리며, 요나의 선택이 선한 선택이 되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틀이 지나갑니다. 요나는 왜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까지 와있는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삼일이 지나갑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밀려옵니다.
하나님의 인애하심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분을 바라보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요나서 2장을 보시면 요나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 드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내 삶에 어려움이 찾아 오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닥쳐 오면, 성도라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서 나가면, 제가 이 고통속에서 벗어나면, 그들을 용서하고 전도하겠습니다. 비록 어렵지만 마음을 바꿔먹고 하나님의 선한일에, 원수들을 전도하는 일에, 도전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께 이렇게 서원한 것을 꼭 지키겠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도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옵소서”라고 서원까지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혹시 주변에 용서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이 변화에 도전하시길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힘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시면,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해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면, 용기가 나지 않습니까?
오늘 요나처럼 기도하시면서,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선한 계획 이신 전도하는 일”에 나도 한사람, 나도 그 사람들을 전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만 되시길 소망합니다.
두번째 살펴 볼 것은 “변화에 도전한 일을 온전히 이루라” 입니다
2. 변화에 도전한 일을 온전히 이루라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변화에 도전한 일을 온전히 이루겠습니다.” 어떻게 이루고요? 온전히 이루라입니다.
3:1-2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우리의 하나님은 너무 좋으신 분입니다. 저희가 변화되어 도전해야 할 일을 친절하게 다시 말씀해 주시는 분입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내가 용서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삼일 동안 죽음을 맛보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 나왔지만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2007월 여름이었습니다. 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일본을 향한 전도는 우리나라가, 우리 크리스찬이 해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전 솔직히 부담 스럽단 말보단, 싫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가족의 조상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때 심한 고난을 겪어야만 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역사 속에서 한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정말 마음 불편하게 “남쪽의 끝인 오끼나와부터 시작하여 저 북쪽의 삿보로까지 가서, 전도를 선교”를 하시자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비랑으로 말입니다. 솔직히 돈도 없었고, 그럴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 교회만 가면 “일본에 가서 전도합시다”라는 말을 목사님과 다른 직분자분들로부터 들을까봐, 피해 다녔습니다. 또한 제 마음 한 구석에는 저와 같이 생각하시는 분들이 교회 내에 많을 꺼야 하며, 스스로를 더 정당화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과 달리 일본 전도 축제는 “러브소나타”라는 표제를 가지고, 40일 특별 새벽기가 시작되었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부르심, 콜링은 새벽마다 계속되었습니다. 전 그럴 수록 피하고, 도망갔습니다. 아무리 교회라고 해도 “그들은 용서해야 할 존재들이 아니라, 철저한 사과를 먼저 받고 나서, 전도를 할까 말까를 결정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전도해”하며 거절했습니다.
전 교회가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심한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정말 심각하게 생각했고, 교회를 떠 날 생각까지 했습니다. 마치 일본에 가면 매국노가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집안 어른들에게 까지 들을 비난의 소리가 저를 요동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결정은 “나라의 역사와 집안 어른들을 배신 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고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정말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 주시며 사랑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죄 많은, 죄 많은 저희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독생자 아들까지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분의 사랑 때문에, 그분의 은혜 때문에 용서 받았고, 죄에서 구원해 주신분이 저희들의 하나님입니다.
저를 보십시요. 제 몸에는 칼자국이 몇 개나 있는지 아십니까? 간암 수술로 당뇨와 고혈압으로 몸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살아 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선교도 있고, 전도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일본을, 원수 나라인 일본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제가 이 몸을 가지고, 일본에 가서 전도를 한다면, 의사도 말리고, 성도도 말리고, 모든 사람들이 말립니다. 그런데 멈출 수 없는 건 “그들을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누가 용서를 하겠습니까? 용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용서 할 때, 그 감동과 그 의미가 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먼저 용서합시다. 우리가 먼저 사랑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 줍시다.” 순간, 갑자기 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주체 할 수 없이 뜨거워 지기 시작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신분이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죄인이 나인데, 나는 용서 받았으면서, 왜? 왜?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걸까? 순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웠습니다.
전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하나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죽음의 경각에 달려 있는 목사님도, 링거액을 달고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일본에 가서 죽는 한이 있어도 가신다는 저 비전이, 나에게도 같은 비전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는 제가, 제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용서하지 말고, 먼저 사과를 받은 후에 해도 늦지 않아, 그게 먼저야”라는 소리가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내가 너를 용서해 준 것 같이, 너도 용서하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한참을 눈물 흘리며,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나…… 완전히 용서는 안돼, 하지만 가야 할 것 같아. 우리 가서 복음을 전하자.
3: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에 가서 하루 종일 외칩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아주 간단합니다. 왜죠? 그는 히브리사람입니다. 그는 니느웨가 외국이고, 그들의 언어를 잘 모르는 외국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언어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음의 메시지는 길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외쳤을 겁니다.
“여러분,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질 것입니다. 이 니느웨가 무너질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곤 어떤 복음의 자세한 설명도 없이 지나 갔을 겁니다. 이렇게 전해도 당시의 도시 규모로 보았을 때, 니느웨의 1/3 정도 밖에 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전도하면 사람들이 회개를 할 까요? 이렇게 전하면 그들의 마음에 찔림이 있을까요? 저희가 잘 알고 있듯이, 그들은 이스라엘 주변 국가 중에서도 가장 악날하고, 포악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주 낯선 외국 사람이 와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말로, 40일 지나면, 성이 무너진다고 외칩니다. 과연 이것 만으로 복음이 전해 질까요?
3: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 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정말,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일어 났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전한 메시지는 아주 간단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요나가 전한 내용은 아주 짧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면, 전도자의 성의가 있다거나, 감동이 있는 메시지도 아닙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 도시 전체 백성이 회심을 하고, 누구까지 회개를 합니까? 니느웨의 왕까지도 회심을 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 아멘 !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도저히 믿기 힘든 이 일이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들에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기준에는 원수 이지만, 하나님의 기준에는 아무리 악한 일을 해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저희에게 주시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구원은 누가하십니까? 구원은 누가 온전히 이루어 가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만이 온전히 이루어 가실 수 있습니다. 그럼 저희는 무엇을 꼭 해야 합니까?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던 사람을 용서하면 됩니다. 그리고 찾아가서 그 한사람에게 복음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직접 일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할 수 없는 것, 저와 여러분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본질적인 참된 사랑을 만나게 하십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다른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님 만을…… 성령으로 만날 때, 성령으로 충만이 만져 질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며, 변화에 도전하고 무엇을 하라고 하셨죠? “전도하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변화되기 힘들 때,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을 때 저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변화에 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그에게, 그들에게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도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일을 억지로, 강압적으로 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러셨듯이 저희들에게 찾아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희가 당신의 사랑이 가득한 말씀으로 깨닫고, 변화 되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저희에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증거가 있습니다. 저희에겐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요.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기도하십시요. 저희가 죽음에 있을 때 어둠 속에 있을 때, 당신의 사랑으로 건져내어 당신의 자녀로 변화 시켜 주신 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그리고, 찾아 가셔서 용서하시고, 찾아 가셔서 전도하십시요.
오늘 말씀으로 증거하셨듯이,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미 큰 용서 받은 저희는 도전할 수 있습니다. 개인 적인 문제로, 민족의 문제로, 더나아가 나라간의 갈등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오늘의 말씀 말씀처럼 변화되어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온전히 이루어 가시는 복된 저와 여러분만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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