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s 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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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일으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였습니다.이것은 예언된 약속이었습니다.
NKRV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나면서 부터 불구된 자를 베드로와 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치유합니다. 그 치유된 병자가 걷고 뛰면 뛸수록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사람들이 심히 놀라워합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나옵니다. 그 사람들의 눈에는 이 기적을 일으킨 주체를 베드로와 요한이라고 생각해 그를 주목합니다. 이 사람들을 향한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NKRV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둘 다 메시야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런 표적이 나타나는 것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불구된 자에게 치유를 주신 그 이름이메시야임을 드러내는 표적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명명백백히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심히 놀라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나옵니다. 그 사람들의 눈에는 이 기적을 일으킨 주체를 베드로와 요한이라고 생각해 그를 주목합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첫번째 왜 놀라냐?
이스라엘아. 왜 이 일을 놀랍게 여기느냐? 놀랍지 않습니까? 매일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불구가 일어나 걸으니까요. 베드로는 그 뜻으로 말한게 아닙니다. 이것은 베드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이것은 예언된 약속이었습니다. 남자분들은 이사야 35:6 여자분들은 누가복음 7:22절 찾아보겠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 바깥뜰 동편 끝에 있는 회랑으로, 율법 학자들이 자유롭게 강론하던 곳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기적을 일으킨 주체를 베드로라고 생각해 그를 주목합니다.
NKRV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NKRV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둘 다 메시야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런 표적이 나타나는 것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불구된 자에게 치유를 주신 그 이름이메시야임을 드러내는 표적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명명백백히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두번째 왜 우리의 능력과 경건으로 이 일을 한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냐?
사람 눈에는 보이는 것만 보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신의 대리자같이 능력있어 보였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도 저기 있었다면 저런 사람들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기도할까? 말씀을 몇시간이나 읽을까? 뭐 별의 별게 다 궁금했을 것입니다. 만약 저 사람이 가진 신학은 무엇인가도 궁금해서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이 따로 있다.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이 사람을 치유하였다!!
세번째 거부했고, 거부했고, 죽였다.
아마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는 이 예수를 보고 그의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법정에서 빌라도에게 재판받을 때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치던 사람, 십자가 지고 가실 때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능력을 보고 몰려든 사람에게 직구를 날립니다.
13절. 너희가 예수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자고 한 것을 너희가 거부하였고!!
14절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자(바라바) 놓아주기를 구하고!
15절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너희가 죽였다!
베드로는 직접적으로 반복하면서 유대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울까요? 그 날 미문에 앉아 있던 병자가 뛰노는 것을 보고 놀라면 놀란만큼 두려웠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메시야를 죽이고 못박았다는 사실이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지면서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복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복음은 절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17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러하였다. 그대로 있지 말고 19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복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복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19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복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복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19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청중들이 예루살렘이며 유대인들입니다. 구약이 권위를 갖습니다. 모세가 신명기 18:15-19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다. 그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멸망받을 것이라.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에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다. 그 씨,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구약을 예수님의 사건과 연결하여 풀어 설명해줍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시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19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모든 것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가 하는 모든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간증에서도. 사역에서도, 심지어는 우리의 실패 속에서도 예수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의 찔림은 우리를 인함이요 그의 허물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그들이 거부하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똑같이 죽였습니다. 성경은 그의 찔림은 우리를 인함이요 그의 허물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의 죄악이 그를 상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간증에서도. 사역에서도, 심지어는 우리의 실패 속에서도 예수가 드러나야 합니다.
회개하라. 여러분 얼마나 불편한 소리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 말이 기분 나빠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이 자기를 도둑놈 취급하는 것 같아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회개하라 말은 나쁜 소리가 아닙니다. 축복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라>는 말은 기분 나쁜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가장 축복된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요한의 첫 번째 메시지도 /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도 같았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예수님하고 내가 상관이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이 기분 나빠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이 자기를 도둑놈 취급하는 것 같아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라>는 말은 기분 나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에서 <회개하라>말은 나쁜 소리가 아닙니다. 축복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라>는 말은 기분 나쁜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가장 축복된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요한의 첫 번째 메시지도 /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도 같았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축복된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요한의 첫 번째 메시지도 /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비로소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하고 나와 상관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늘 충만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주님이 누구 때문에 죽었는지 막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고 유대인들이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나에게 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내가 죽였습니다.” “내가 죄인이라서 내 죄 값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얼마나 지금도 예수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렇기에 이제 우리가 할 것은 회개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19절로 갑니다. 이 말씀이 오늘 설교의 핵심이요,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저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고, 유대인들이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나에게 감격이 없습니다. 물론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고, 유대인이 죽었다는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내가 죽였습니다.” “내가 죄인이라서 내 죄 값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얼마나 지금도 예수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솔직히 인정하십시다.
예수님은 “ .... 여러분이 죽였습니다.” // 예수님은 “제가 죽였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가 할 것은 <회개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19절로 갑니다. 이 말씀이 오늘 설교의 핵심이요,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어떤 사람은 이 말이 기분 나빠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이 자기를 도둑놈 취급하는 것 같아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라>는 말은 기분 나쁜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가장 축복된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요한의 첫 번째 메시지도 /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도 같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세례요한 / 마 4:17 예수)
베드로는 기적 후에 자기에게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 말하나요? 사람들의 시선을 나에게서 돌려 오직 주님께 주목하게 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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