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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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Tone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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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Emotion
A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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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O
C
E
A
E
Social
서론
서론
이 아침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초대 교회 삶의 짧은 요약 영상을 한 편 보는 것 같습니다. 짧지만 구체적이고 간결하지만 그 중심의 뜨거움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본론
본론
2장 시작에 약속대로 성령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기다리고 있던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일어나 그 상황을 모인 사람들에게 설명하며 사도행전의 첫 설교를 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 설교가 끝나고 그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셨을까요? 바로 오늘 말씀의 시작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했습니다. 우리말에서 마음이 찔린다는 것은 친구끼리 말하다가, 티비를 보다가, 선생님과 대화하다가 간혹 우리 마음에 ‘아차' 싶은 것들에 대해서도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조금 마음이 불편한 것이 있을 때도 사용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원어에서 이 표현은 칼이나 매우 날카로운 창과 같은 것으로 찔러 관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는 그들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히브리서 말씀과 같이 그곳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히4:12)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대로 가만히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어째서 그들의 가슴이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던 것일까요? 베드로 사도의 설교는 부활하신 예수가 바로 구약에서부터 다윗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6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강력하고 담대하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그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여느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이며,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이며, 주님이라 부를 분이시며,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이심을 깨닫게 되자 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은 타는 것 같았고, 날카로운 양날의 검이 가슴을 찔러 예민하디 예민한 속살을 가르고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목소리로 그들이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신음하듯이 고함을 치지 않았을까요?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네가 말하는 것이, 네가 지금 선포하고 있는 부활하신 예수에 관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어찌해야겠느냐! 라고 신음하며 외쳤던 것입니다. 요나가 전한 복음을 듣고 베옷을 입고 나라 전체가 재를 뿌리며 하나님께 회개하였던 니느웨의 회개 사건이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찔려 죽을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무엇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정확히 설명해줍니다. 38-40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라는 42절의 말씀과 43절부터 47절까지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생생하면서도 충격적인 모습들 속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말씀 앞에 가슴이 찔려 회개하고 주님 앞에서 너무나 괴로워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을 때, 사도들이 대답한 것은,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교회에 모이고 서로 같이 밥 먹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을 교제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결과였습니다. 열매였습니다. 무엇의 결과이자 열매였습니까? 바로 회개의 결과이자 열매였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외쳤을 때 우리에게 오는 답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그분을 받으며 가슴을 부여잡고 죄를 애통해하며 회개하십시오! 입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며 두 가지만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는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런 애통하는 심정을 가지게 됩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음을 보고 자신의 죄악됨과 추악함이 얼마나 통렬하게 다가오십니까? 과연 우리는 목을 꼿꼿이 하고 하나님 앞에 감내놔라 배내놔라 하지는 않는지요. 오히려 ‘오늘 아침에도 우리가 진멸되지 않음은 오직 주의 성실하심이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겸손으로 감사하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43절부터 47절까지의 일을 순종하려고 마음을 먹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귀합니다만, 우리가 먼저 돌아보고 기억해야 할 것은 회개를 통해 이 놀라운 순종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섬기지 못하는 자신, 넉넉히 베풀지 못하는 자신,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다그치고 꾸짖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 해야할 것은 그런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리스도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자신을 부끄럽게 느낄 때, 그리고 그리스도의 용서를 얻을 때, 우리는 적극적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나누며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