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신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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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신하가 믿음으로 예수님께 간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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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신하의 믿음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날때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들은 힘들어도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할 수도 있지만, 어떤 문제들은 내 힘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인생을 살면서 몇번 만나지 않지만…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이 듭니다.
어떤이는 그 문제를 평생 안고 살기도 하고, 평생 그 문제로 인해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심방을 다녀보면, 이런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많은 가정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의 문제가 아닌데도… 제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이 선택하시는 해결책은 어떤 것인가요?
정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앞 뒤 좌우 다 막혀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 때 여러분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오늘 성경에도 이러한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바로 왕의 신하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왕의 신하라는 원어의 의미로 볼 때 고위 관리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왕의 신하이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부족할게 없어 보입니다.
물질이나, 권세나 무엇하나 부족한게 없는 왕의 신하였지만, 그에게도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아들이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46절의 말씀을 한번더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여기서 병들었다는 히브리어 원어는 계속해서 병을 앓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에 걸렸는데,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이 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47절에 왕의 신하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 아들이 병으로 인해서 거의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죽을 만큼 아프다가 아니고, 이제 곧 죽으려고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은 이 왕의 신하의 마음을 조금은 공감하실 것입니다.
저도 딸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아파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참많이 힘들더라구요…
특히 2009년에 유행했던 신종플루 기억나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었던 아주 무서운 독감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가정도 예외없이 신종플루에 걸렸었습니다.
아이가 먼저 걸리고 저와 아내 모두 걸렸었는데…
아이가 신종플루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을 하고, 치료받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두려웠습니다.
아이가 힘이 없어서 팔도 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말 잘못하면 죽을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행이도 약이 잘 나와서 빨리 회복이 되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짧은 시간에 참많은 고통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죠…
왕의 신하는 오랜시간을 이 고통과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그 긴시간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세와 물질로 사랑하는 아들을 살려 보려고 발버둥을 쳤겠죠…
한때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와 물질의 풍요로움을 통해 겁나는게 없었을 겁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세와 물질이면 아무 걱정없이 평생 잘 살수 있을줄 알았을 겁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듯…. 떵떵거리며 살았겠죠…
하지만 아들이 아프고 나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그냥 허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도 지켜주지 못하는 권세와 물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들을 살려 보겠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겠죠…
좋다는 약은 다 먹여 보았을것이고, 용하다는 의사는 다 만나 보았겠죠…
하지만 그 아들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더 악화가 되어갑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이제… 사랑하는 아들이 죽는 날만을 기다려야하는 아주 절망적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더 이상 소망이 없을 때, 그에게 한줄기 빛이 비취는데… 그 빛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이전에 갈릴리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
결국 왕의 신하는 예수님을 만나 사랑하는 아들이 고침받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들이 고침받는 과정중에 우리는 왕의 신하에게서 본받을 만한 믿음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왕의 신하가 어떤 믿음의 모습을 보였기에 갈릴리의 두번째 표적으로 기록되어지는 이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였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왕의 신하가 보여준 믿음의 세가지 모습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이 왕의 신하의 믿음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번째로 왕의 신하의 믿음의 모습은, 절망중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우리 47절의 말씀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왕의 신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차도가 없는 아들을 보면서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솔직히 이러한 상황이 되면, 일반적으로 가지는 마음은 이제 안된다 는 포기의 마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으니… 무슨 방법을 이야기 해도 안되… 라는 그 마음이 가득하게 되어 집니다.
절망중에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이죠….
왜냐하면 그 희망 때문에 더 큰 아픔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른 희망은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던 예수님이 다시 갈릴리로 오신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오셔도 안될거야….
이제 우리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어…라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것입니다.
하지만… 왕의 신하는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봅니다.
잘못되면… 더 큰 상처를 받을수도 있지만…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바라 봅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이라면… 내 아들도 살릴수있을거야라는 그 실낫 같은 믿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만약 왕의 신하가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고, 지금까지의 경험상 내 아들은 어떤것으로 해도 안된다라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면….
아들은 살아날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도 안될때…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절망에 빠져있을때…
하나님앞에 기도해 봅시다. 이야기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기 때문에 하나님한테 기도해도 안된다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 왕의 신하가 경험한 기적이 열리는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조차도 포기해 버리니…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이 다가왔을 때 처음부터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세상적인 방법들부터 찾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들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기적은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을 바라볼수있나요?
예배의 자리입니다, 기도의 자리입니다, 말씀을 보는 자리입니다.
우리교회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많은데…
예배의 자리를 포기하고, 기도의 자리를 포기하고,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리를 포기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시려고 하시나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기적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두번째로 왕의 신하의 믿음의 모습은 바로,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우리 48절과 49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여러분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입니다.
지금 왕의 신하가 목수의 아들을 만나 아들을 살려 달라고 요청하는데…
예수님은 왕의 신하를 향해서 하시는 이야기가 고친다, 못고친다가 아니라, 왕의 신하에게 핀잔을 주고 있습니다.
아들이 죽어가는데…. 그래서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목수의 아들에게 와서 부탁을 하는데… 예수님이 하시는 이야기는 왜 자꾸 표적과 기사를 구하냐고… 핀잔을 주고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까요?
아마도 보통사람들 같았으면, 예수님을 욕하고 돌아갈겁니다.
내가 언제 당신한테 부탁한 적이 있냐고? 내 이럴줄 알았다고…. 찾아오는게 아닌데.. 괜히 왔다고…
아마도 자신의 식솔들을 동원해서 핀잔을 주는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고는 돌아갔겠죠…
그런데… 왕의 신하는 달랐습니다.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아들을 살리겠다는 간절함이 예수님을 향한 믿을을 가지게 하였고, 현재 당하는 모욕도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핀잔 때문에 마음이 상해 돌아갔다면… 아들은 살아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왕의 신하는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마저도 다 내려 놓았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아들을 살려낼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이 모든 모욕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그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 올수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의 응답이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도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응답하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십시요….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붙들고 하나님만 신뢰하십시요….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하시고, 하나님의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왕의 신하는 전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우리 50절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왕의 신하가 끝까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 할때에 예수님은 50절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좀 당황 스럽습니다.
같이 가자, 내가 고쳐 주셌다….도 아니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만 하시는데…
어느 누가 이것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참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왕의 신하는 이 말씀을 믿고 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헬라어 단어는 받아들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
이게 말이 되나요?
저라면….
예수님께 좀 버릇없지만 이렇게 따질 것 같아요…
저기 예수님…. 그냥 가라니요? 어딜요?
아니 좀 같이 가서 우리 아들 얼굴좀 보고,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한것처럼, 아들한테 기도 한번은 해 주셔야죠…
자신이 없으면, 없다고 해야지…
그 말은 나도 하죠…. 라고 따질 것 같아요….
그런데, 왕의 신하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 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시간에 살아났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모습이 진짜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믿음이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약속의 말씀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중에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함께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혼자 지금의 고난을 당하고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일이 닥쳐도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혼자서 외롭게 고난을 당하고있는 것처럼 자신을 저주하고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 생각은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떠났다고, 너같이 나약한 자와 예수님은 같이 하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에 속삭여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약속을 망각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 가지 마세요.
예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 무언가 변화가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지금 이순간에도 저와 여러분을 위해 행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또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할것이 있으면 구하라고 하십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시면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혹시나 잘못 구해서 독이되는 것을 구해도,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셔서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시는데….
왜 기도를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왕의 신하와 같이 믿음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왕의 신하의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어떤 가요?
현재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내가 생각하는데로 안되니 이제 포기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해서 약속의 말씀들을 믿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나요?
이시간 우리의 어리석은 모습들을 내려놓고 다시금 왕의 신하처럼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여러분….
우리는 왕의 신하에게 일어난 기적이 아들이 살아난 것이 다라고만 생각합니다.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고 그것만 바라보고 있지요…
하지만, 진짜 기적은 그 다음입니다.
53절 말씀을 마지막으로 읽어 봅시다. 시작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결국 그 아들이 살아나는 일은 한 가정이 주님앞에 돌아오는 기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자신의 아들이 살아나는 일에만 집중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바라보신 것은 더 너머의 일이었습니다.
왕의 신하의 집안을 구원하시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궁극적으로 바라보신 것이죠…
우리의 관심은 지금 내 앞에 있는 고난에만 집중되어 있지요…
그래서 왜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냐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주님은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것까지 바라보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기적이 저와 여러분의 삶가운데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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