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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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h 1:
Ruth 1:16–21 NKRV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린 나오미가 며느리 룻만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행복한 인생을 꿈꾸며 떠나갔던 땅에서 실패만 잔뜩 안고 돌아옵니다. 실패자의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보고 나오미가 돌아왔다고 한다. 나오미는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라고 한다. 기쁨이란 뜻이다. 자신을 마라라 불러달라고 한다. 쓰다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20절에 잘 나타나있다.
Ruth 1:20 NKRV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마을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보고 나오미가 돌아왔다고
10년전 그 땅으로 갈 때에는 기쁨의 길이었고 아름다운 꿈과 계획이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지금 돌아오는 이 길은 고통의 길이다. 인생이 그렇다. 성공의 길처럼 보이는 길이 실패의 길이 되기도 한다. 눈물과 한숨의 길처럼 보였던 길이 축제의 길이 되기도 한다.
인생이 그렇다. 성공의 길처럼 보이는 길이 실패의 길이 되기도 한다. 눈물과 한숨의 길처럼 보였던 길이 축제의 길이 되기도 한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아마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실패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수치스럽고 하기 힘든 일이다. 여리고나 다른 도시로 이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마라 그 고통의 길을 피하지 않았다.
이 마라를 주신이가 바로 하나님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라. 여기 괴롭게 하다란 뜻이 마라의 동사형 마라르이다. 마라의 길로 인도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돌아왔다.
이는 며느리 룻도 마찬가지이다. 모압 땅에 남아 가족에게 돌아가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베들레헴에 시어머니를 따라 이주했다.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따라 나섰다.
우리 인생의 고난 혹은 어려움,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닥쳤을 때 그것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와야 한다. 불평할 수 있다.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할 수 있다. 될 대로 되라 포기할 수 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가져와야 한다. 그 상황도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이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을 뽑으라면 C S Lewis이다. 31세이 회심한 그는 죽을 때까지 40여권에 이르는 책을 통해 기독교적 가치관을 정립했다. 타임지는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 크리스챤 투데이는 40년 동안 미국 복음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C S 루이스의 자서전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신이 글을 쓰고 싶어서 쓴 것이 아니다.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손재주가 지독하게 없어서였다. 신체적 결함이 있었다. 엄지 손가락 관절이 움직이지 않았다. 형태는 있었지만. 연필로 글을 쓸 수는 있었지만 총, 연장, 야구 방망이등을 다루는 것은 못했다. 루이스는 언제나 집, 배, 엔진, 물건등을 만들고 싶었다. 항상 시도하며 모든 재료를 망치고서야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서곤 했다. 실패에 눈물 흘리며 뒤돌아 서는 감정은 아프다. 자신의 탓이 아닌 타고난 신체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그의 마라를 받아들였다.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웠지만 포기하고 마라를 인정했을 때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가 탄생했다.
여러분들도 살다보면 이 마라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미 만났는지도 모른다. 어떤 애들은 그렇게도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는데 점수가 잘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아이들을 똑같이 처음 해보는 운동인데도 엄청나게 잘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애들은 누가봐도 다 예쁘다고 하는 애들도 있다. 타고난 외모와 재능이 우리에게 마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예기치 못한 인생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마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부모님의 죽음이나 이혼은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다. 원하지도 않았다. 예기치 않게 당한 사고도 우리에게 마라를 가져다 준다.
멀리보라. 하나님을 기대하라.
나오미와 룻은 먼 시선을 가졌다. 지금 당장을 그렇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결과를 아름답게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먼 시선을 가지라. 3년후 4년후 나는 이렇게 될 거야. 이것때문에 섣부르게 자신의 미래를 판단하지 마라. 우리의 지혜는 너무도 보잘 것 없어 하루 앞의 일도 예측하지 못한다. 마라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멀리 보라.
내가 고등학교 시절 외모도, 공부도, 운동도, 집안재산도 그냥 보통이었다. 하나도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다. 나는 내 인생이 보잘 것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나만보고 실망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때도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신나고 익사이팅한 날들을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작고 평범한 일을 꾸준히 하라.
위대한 일은 평범한 일에서 시작한다. 룻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와서 한 일은 시어머니를 먹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보아즈를 만나게 하시고 다윗의 외조모가 되었다. 위대한 일과 평범한 일은 원래 하나다. 맡겨진 일이 있다면 책임감있게 열심히 하라. 후회없이 열심히 하라. 성적과 관계없이. 바울 한 사람이 전하는 복음이 뭐가 그리 대단했을까? 바울이 자신이 하는 일이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로마제국과 바울 상대가 안되는 게임이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했다. 그러나 300년후에 로마는 기독교로 뒤집어진다.
LC Youth 여러분.
자신에게 마라가 있다면 더 이상 그 문제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이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 마라를 사용하여 여러분들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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