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마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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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 설교일: 2018-07-23 새벽기도
* 제목: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 주제: 세례, 낮아지심
* 성경:
*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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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큰 은혜를 부어 주실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30살이 되어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성인이 되어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소를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요단강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오실때에 세례 요한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절에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시고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분이라고 소개했던 그분이 지금 자신에게 다가온 예수님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예수님의 요구였습니다.
우리 13절의 말씀을 한번더 읽어 볼까요?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여기서 ‘이때에’란 세례 회개를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해 들으시고 당신도 세례를 받기 위하여 직접 요단강으로 오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요단강까지는 제법 먼 거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그 먼길을 오셨으니...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는 참 많이 당황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세례 요한의 이 말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베풀었던 세례는 죄에 대한 회개의 세례로서 이 세례는 죄 없으신 주님이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죄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베푸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여러분, 우리 인간은 본래 죄와 사망의 늪에 빠져서 한평생을 허우적거리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고자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문제는 하나인데 이에 대한 답으로 제시되는 것은 여러 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실례로 중국에서는 인과 예를 중심으로 한 유교적 도덕 철학이 생겨났고,
인도에서는 스스로 깨달아 해탈에 이르는 불교가 생겨났으며,
아라비아에서는 알라신에 절대 복종을 주장하는 이슬람교가 생겨났습니다.
그 외에도 세상에는 나름대로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고 하는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존재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종교나 철학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죄와 사망의 늪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직접 뛰어든 종교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이들 각 종교를 이렇게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 한 사람이 급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공자는 그를 보고 ‘왜 그 물에 빠졌는가“하고 나무랐으며, 석가는 ”스스로 알아서 나오라“고 소리쳤고, 마호맷은 ”인살라“, 곧 알라의 뜻대로만으을 중얼거리며 옆에 앉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한 사람이 물에 뛰어들어 그 사람의 손을 붙잡아 물 밖으로 끌어내 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앞의 세 사람이 놀라 쳐다보니 그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죄와 사망의 늪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직접 그 더러운 늪에 뛰어들어 우리를 건져내신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 뿐이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회개의 세례를 받는 것이 비록 인간의 눈에는 불합리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5절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류의 죄를 그리스도께서 담당하도록 결정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아, 채찍을 맞으시고, 찔림을 당함으로 대신 죄 있는 인간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성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마치 죄 있는 자와 같이 취급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셨기에 망설이는 세례 요한을 강권하여 세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례를 받으셨을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16절과 17절의 말씀을 한번더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셨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자기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와서,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같은 죄인의 위치에 서기 위해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모습을 보시고,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함께 임재하시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이후에야 비로소 예수를 아들로 인정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공생애가 시작되는 그때 비로소 이 사실이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선포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원문의 표현은 지금부터 내가 기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기쁘게 여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 장면을 가지고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아들로 삼아 주셨다는 “양자설”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초대 교회때 부터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시며,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시는 공생애 사역의 첫 단추를 여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함께 하심 속에서 우리를 위한 구속 사역이 시작됨을 알리신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 기도하실 때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우리를 위해 죄인의 자리에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