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에 매인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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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 설교일: 2018-07-25 새벽기도
* 제목: 사명에 매인 예수님
* 주제: 사명
* 성경:
*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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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에 매인 예수님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은혜위에 은혜를 허락하실줄 믿습니다.
우리는 어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구원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우리 인간과 같이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와 같은 시험을 통과 하시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기 직전의 사건과 예수님 신변에 대해 간단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후에 유대 지역에서 얼마 동안 사역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태,마가,누가복음에서는 유대 사역을 생략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직전에 소개되는 사건은 바로 세례요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잡혔다는 것으로 아주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만, 마태복음 14장에서 더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용인 즉슨, 분봉왕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그녀와 결혼을 하기 위하여 아내와 이혼하고 빌립과 이혼한 헤로디아와 다시 결혼을 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동생의 아내를 취한 이 부도덕한 일에 대하여 세례 비난하자 헤롯은 세례 요한을 잡아 투옥 시켰고 마태복음 14장에서 그를 죽였던 것입니다.
세례 헤롯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예수님은 친척관계이면서 자신의 길을 미리 예비하고, 세례를 자신에게 베풀어준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그를 구하러 가신 것이 아니라, 왜 갈릴리로 가셨을까요?
인간적인 생각에는 세례요한을 구하러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신적 능력도 있으니, 세례 요한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구출하셔서, 자신의 일을 돕게 만든다면, 예수님은 더 수훨하게 복음을 전하실수 있으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많은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를 살려서 자신의 곁에 두면 유대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충분히 그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왜 갈릴리로 가셨는지 두가지의 이유를 생각해 볼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15절과 16절의 말씀을 한번 읽어 볼까요?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시점에 요한을 구하러 가시지 않고 갈릴리로 가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15절에 언급하는 스불론 땅과 납달리땅은 갈릴리 바다 북쪽과 서쪽 지역을 말합니다.
갈릴리를 포함한 이 모든 땅들은 종교와 문화적으로 이방인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입니다.
그러니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섬기며 살았던 것이죠....
그런 그들을 향해 흑암에 않은 백성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큰 빛을 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김으로 영원한 사망의 길로 걸어가는 그들에게 빛이 비추었는데 그 빛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마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구원 사역을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이제 사망의 길을 걸어가는 백성들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빛의 역할을 하셔야 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은 이제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명이 이끄는 데로 움직이셔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소식을 들었음에도, 그를 구하러 갈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17절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 외침은 세례 광야에서 외쳤던 외침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이 외침의 주인공인 세례요한의 역할은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세례 충실히 감당한 그의 사역의 본체로서 세례요한의 외침인 회개와 천국을 선포하시며 구속사역을 시작하시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에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각자의 길을 걸어 가셔야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얽매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오직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 자신의 전부였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예수님의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그 길만을 묵묵히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 길이 비록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이 모욕적이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기에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신의 사명을 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흑암의 권세에 매여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그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아야 하는 사명이 주어 졌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사명을 돌아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 사명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