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한자를 대적하지 말라
Notes
Transcript
* 설교일: 2018-08-28 새벽기도
* 제목: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 주제: 대적하지 말라
* 성경:
* 찬송가:
----------------------------------------------------------------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할렐루야!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 사람들도 잘 아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유대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새로운 해석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율법은 출애굽기 21장 24절과 레위기 24장 20절 그리고 신명기 19장 21절에 기록되어있는 말씀입니다.
이 율법은 고대 세계에 널리 통용되었던 동일한 방법으로서 보복하라는 동해보복법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악을 행한다면, 그것 그대로 갚아 주어라는 내용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율법에 대해 정반대의 해석을 내어 놓으십니다.
39절을 함께 읽어 볼까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먼저 예수님은 악한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하여 위해를 가한 비열한 상대에 대하여 그 어떠한 복수도 삼가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피해자가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피해 보상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교훈으로 동해보복법을 절대 진리로 알고 있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우리는 원수에게 똑같이 갚아 주려는 습성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에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으니 그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무나 충격적이게 하나님의 율법을 그대로 거부하는것과 같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분명 5장 17절과 18절에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고,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신다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율법과 정반대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이전에 저를 가르치신 어느 교수님이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더 완전히 지키기를 원하셨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이 율법을 주신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율법을 주신 이유는 바로 우리의 완악함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본성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원수에게 똑같이 갚아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고통을 주기 원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를 때리고 싶어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사람도 억울하게 만들고, 더 고통스러운 모습을 봐야 속이 시원해 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죄성이더라는 겁니다.
만약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율법을 주지 않으셨으면, 죄악으로 가득찬 잔악한 모습으로 살아 갈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똑같이 갚아주시는 것으로 멈추라는 것이 하나님이 이 율법을 주신 이유라고 교수님이 설명해 주시더라구요...
이 설명을 듣고 나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해가 되어졌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똑같이 갚아주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들에게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시킬만한 모습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쪽 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쳤을 경우나 뒤에서 손바닥으로 쳤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대 풍습으로 볼 때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배나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욕을 받을 때 왼쪽 뺨마저도 대라는 것은 이렇게 진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딜 것을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이로 인해 복수가 악순환 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관용하며 무저항함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입니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러한 의미를 전제로 말씀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음을 전제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단순히 원수를 갚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놓치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인데 내가 왜 참나요?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한 사람에게는 똑같이 힘들게 해야 한다고....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하지만, 여러분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맞나요?
그냥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사기를 당했다고, 똑같이 그 사람에게 사기를 치는게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가요?
나를 때려서 코피가 나게 했으니, 상대방도 똑같이 코피나게 때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보이시나요?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러한 모습을 진정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잖습니까?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문자 그대로 지켜서 자신의 의로 내세우고 자신의 신앙생활에 만족하였던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앙의 모습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는 않습니까?
형제와의 관계속에서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았는데, 똑같이 갚아야 된다고, 더 독한 모습으로 대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 있다면 오늘 이 새벽에 그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