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16.주일저녁설교

주일 저녁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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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과 롯의 믿음없음, 롯은 하나님도 못믿고 자신도 못믿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있었다. 천사가 이틀걸리는 거리를 몇시간 만에 주파한 것은 이에 대한 상징이 아닌가?

Notes
Transcript

성경해석

וַיֹּאמְר֙וּ הָאֲנָשִׁ֜ים אֶל־ל֗וֹט עֹ֚ד מִֽי־לְךָ֣ פֹ֔ה 1/4
חָתָן֙ וּבָנֶ֣יךָ וּבְנֹתֶ֔יךָ 1/8
וְכֹ֥ל אֲשֶׁר־לְךָ֖ 1/16
בָּעִ֑יר 1/2
הוֹצֵ֖א 1/4
מִן־הַמָּקֽוֹם׃1/2
( WTT)
그 사람들이 롯에게 말했다 “여기 너에게 아직 누가 있느냐?1/4
사위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1/8
너에게 속한 모든 자1/16
이 도시중에1/2
나오게 해라(히필 명령)1/4
이 곳에서1/2
: 그 사람들이 롯에게 말했다. “여기에 너에게 속한 자, 사위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게 속한 모든 자들이 아직도 누구든지 있느냐? 그러면 이 도시, 이곳에서 나오게 해라.”
כִּֽי־מַשְׁחִתִ֣ים אֲנַ֔חְנוּ 1/4
אֶת־הַמָּק֖וֹם 1/8
הַזֶּ֑ה 1/2
כִּֽי־גָֽדְלָ֤ה צַעֲקָתָם֙ אֶת־פְּנֵ֣י יְהוָ֔ה 1/4
וַיְשַׁלְּחֵ֥נוּ יְהוָ֖ה 1/8
לְשַׁחֲתָֽהּ׃1/2
( WTT)
왜냐면 우리가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히필 분사)1/4
곳을1/8
이1/2
왜냐면 여호와의 얼굴을 향한 울부짖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칼 완).
그리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뻗으셨다(피엘 바익톨)1/8
파괴하기 위해(피엘 부정사)1/2
: 왜냐면 우리가 이곳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고 여호와의 얼굴을 향한 부르짖음[울부짖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파괴하기 위해(피엘) 우리를 뻗으셨다(피엘).
וַיֵּצֵ֙א ל֜וֹט וַיְדַבֵּ֣ר׀ אֶל־חֲתָנָ֣יו׀ לֹקְחֵ֣י בְנֹתָ֗יו וַ֙יֹּאמֶר֙ ק֤וּמוּ צְּאוּ֙ מִן־הַמָּק֣וֹם הַזֶּ֔ה 1/4
כִּֽי־מַשְׁחִ֥ית יְהוָ֖ה 1/8
אֶת־הָעִ֑יר 1/2
וַיְהִ֥י כִמְצַחֵ֖ק 1/4
בְּעֵינֵ֥י חֲתָנָֽיו׃1/2
( WTT)
그래서 롯이 나와서(칼 바익톨) 그의 딸들을 취한(칼 분사) 그의 사위들에게 이야기했다(칼 바익톨). 그가 말했다(칼 바익톨). “일어나서(칼 명령) 이 곳으로부터 나와라(칼 명령)1/4
왜냐면 여호와께서 멸하시기 때문이다(히필 분사)1/8
그 도시를1/2
그리고 웃음이 있었다(칼 바익톨)1/4
그의 사위들의 눈에1/2
:그래서 롯이 나와서 그의 딸들을 취한 그의 사위들에게 이야기했다. 그가 말했다. “일어나서 이곳에서 나가라. 왜냐면 여호와께서 이 도시를 멸하시기(분사) 때문이다.” 그러자 그 사위들이 웃었다[그 사위들의 눈에 웃음이 있었다].
וּכְמוֹ֙ הַשַּׁ֣חַר עָלָ֔ה 1/4
וַיָּאִ֥יצוּ הַמַּלְאָכִ֖ים 1/8
בְּל֣וֹט לֵאמֹ֑ר 1/2
קוּם֩ קַ֙ח אֶֽת־אִשְׁתְּךָ֜ וְאֶת־שְׁתֵּ֤י בְנֹתֶ֙יךָ֙ הַנִּמְצָאֹ֔ת 1/4
פֶּן־תִּסָּפֶ֖ה 1/8
בַּעֲוֹ֥ן הָעִֽיר׃1/2
( WTT)
그리고 날이 밝았을(칼 완) 때1/4
그 사자들이 재촉했다(칼 바익톨)1/8
롯에게 말하기를(칼 부정사)1/2
일어나라(칼 명령) 여기에 있는(칼 분사) 네 아내와 네 두 딸을 취하라(칼 명령) – 일어나라 취하라가 연속으로 나온다. 둘사이에 아무런 접속사도 없는 것이 상황의 급함을 말해준다.
멸망하지 않도록(니팔 미완)1/8
그 도시의 죄책중에서[죄악으로 인한 형벌]1/2
:그리고 날이 밝았을 때 그 사자들이 재촉하여 롯에게 말했다. “일어나라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네 두 딸을 취하라. 그 도시의 죄책 중에서 멸망하지 않게 해라.”
וַֽיִּתְמַהְמָ֓הּ׀ וַיַּחֲזִ֙קוּ הָאֲנָשִׁ֜ים בְּיָד֣וֹ וּבְיַד־אִשְׁתּ֗וֹ וּבְיַד֙ שְׁתֵּ֣י בְנֹתָ֔יו 1/4
בְּחֶמְלַ֥ת יְהוָ֖ה 1/8
עָלָ֑יו 1/2
וַיֹּצִאֻ֥הוּ וַיַּנִּחֻ֖הוּ 1/4
מִח֥וּץ לָעִֽיר׃1/2
( WTT)
그러나 그가 망설였고(칼 바익톨) 그 사람들이 그의 손과 그의 아내의 손과 그의 두 딸의 손을 잡아 끌었다(히필 바익톨)1/4
하나님의 자비가1/8
그의 위에 (있었다)(명사문장)1/2
וַיְהִי֩ כְהוֹצִיאָ֙ם אֹתָ֜ם הַח֗וּצָה וַ֙יֹּאמֶר֙ הִמָּלֵ֣ט עַל־נַפְשֶׁ֔ךָ 1/4
אַל־תַּבִּ֣יט אַחֲרֶ֔יךָ 1/8
וְאַֽל־תַּעֲמֹ֖ד 1/16
בְּכָל־הַכִּכָּ֑ר 1/2
הָהָ֥רָה הִמָּלֵ֖ט 1/4
פֶּן־תִּסָּפֶֽה׃1/2
( WTT)
그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내는(히필 부정사) 일이 있은 후(칼 바익톨) 그가 말했다(칼 바익톨) 네 생명을 위해 도망쳐라(니팔 명령)1/4
네 뒤를 보지 말고(히필 미완)1/8
서지 말 것이다(칼 미완)1/16
모든 평원[계곡]에서1/2
그 산을 향해 도망하라(니팔 명령)1/4
멸망 당하지(니팔 미완) 않기 위해서1/2
: 그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있은 후 그가 말했다. “네 생명을 위해 도망쳐라(명령). 네 뒤를 보지말고(미완) 어떤[모든] 평원[계곡]이라도[에서] 서지 말 것이다(미완). 멸망 당하지 않기 위해 그 산을 향해 도망하라(니팔 명령).[네 생명을 위해 도망쳐라 뒤돌아보지 말고 어떤 평원에서라도 멈춰서지 말고 멸망을 면하기 위해 그 산을 향해 도망쳐라]
וַיֹּ֥אמֶר ל֖וֹט1/4
אֲלֵהֶ֑ם1/2
אַל־נָ֖א1/4
אֲדֹנָֽי׃1/2
( WTT)
그러자 롯이 말했다(칼 바익톨)1/4
그들에게1/2
그러지 마소서1/4
나의 주여1/2
: 그러자 롯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러지 마소서, 내 주여.”
הִנֵּה־נָ֠א מָצָ֙א עַבְדְּךָ֣ חֵן֘ בְּעֵינֶיךָ֒ 1/4
וַתַּגְדֵּ֣ל חַסְדְּךָ֗ אֲשֶׁ֤ר עָשִׂ֙יתָ֙ עִמָּדִ֔י 1/8
לְהַחֲי֖וֹת 1/16
אֶת־נַפְשִׁ֑י 1/2
וְאָנֹכִ֗י לֹ֤א אוּכַל֙ לְהִמָּלֵ֣ט הָהָ֔רָה 1/4
פֶּן־תִּדְבָּקַ֥נִי הָרָעָ֖ה 1/8
וָמַֽתִּי׃1/2
( WTT)
보시옵소서 당신의 종이 당신의 눈에 은혜를 찾았습니다(칼 완)1/4
그리고 당신의 종에게 행하신(칼 완) 당신의 약속의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히필 바익톨)1/8
있게 하기 위해(칼 부정사)1/16
저의 생명을1/2
그러나 저는 그 산을 향해 도망(니팔 부정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칼 미완)1/4
그 악이[재앙이] 저에게 달라붙을수도 있고(칼 미완)1/8
(그러면)저는 죽습니다(칼 완)1/2
: 보시옵소서 당신의 종이 당신의 눈에 은혜를 입었습니다. 또한 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당신의 종에게 행하신 당신의 약속의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산을 향해 도망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재앙이 저에게 달라붙을 수도 있고(미완) 그러면 저는 죽습니다(완). – 소돔인에게 하던 어투와 똑같다.
הִנֵּה־נָ֠א הָעִ֙יר הַזֹּ֧את קְרֹבָ֛ה לָנ֥וּס שָׁ֖מָּה 1/4
וְהִ֣יא מִצְעָ֑ר 1/2
אִמָּלְטָ֙ה נָּ֜א שָׁ֗מָּה הֲלֹ֥א מִצְעָ֛ר הִ֖וא 1/4
וּתְחִ֥י נַפְשִֽׁי׃1/2
( WTT)
보시옵소서 이 도시는 가까워서 거기로 도망치기 (좋고)(칼 부정사)1/4
또한 그것은 작습니다1/2
저가 거기로 도망치게 하소서(니팔 미완 권유) 그것은 충분히 작지 않습니까?1/4
그러면 저의 생명은 살아있을 것입니다(칼 바익톨)1/2
: 보시옵소서 이 도시는 가까워서 거기로 도망치기 좋고 작습니다. 저가 거기로 도망치게 하소서 그것[마을]이 충분히 작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의 생명은 살아있을 것입니다. – 저 작은 마을이라도 건져달라고 한다.
וַיֹּ֣אמֶר אֵלָ֔יו 1/4
הִנֵּה֙ נָשָׂ֣אתִי פָנֶ֔יךָ 1/8
גַּ֖ם 1/16
לַדָּבָ֣ר הַזֶּ֑ה 1/2
לְבִלְתִּ֛י הָפְכִּ֥י אֶת־הָעִ֖יר 1/4
אֲשֶׁ֥ר דִּבַּֽרְתָּ׃1/2
( WTT)
그가 그에게 말했다(칼 바익톨)1/4
보아라 내가 네 머리를 들어올렸다(칼 완)1/8
또한1/16
이 일에1/2
내가 그 도시를 헐어버리지(칼 부정사) 않겠다1/4
너가 말한(피엘 완)1/2
: 그가 그(롯)에게 말했다. “보아라 내가 네 머리를 또 들어올렸다[내가 이 일도 허락하겠다]. 내가 너가 말한(피엘) 그 도시를 헐어버리지 않겠다.”
מַהֵר֙ הִמָּלֵ֣ט שָׁ֔מָּה 1/4
כִּ֣י לֹ֤א אוּכַל֙ לַעֲשׂ֣וֹת דָּבָ֔ר 1/8
עַד־בֹּאֲךָ֖ 1/16
שָׁ֑מָּה 1/2
עַל־כֵּ֛ן קָרָ֥א שֵׁם־הָעִ֖יר 1/4
צֽוֹעַר׃1/2
( WTT)
서둘러라(피엘 명령) 그곳으로 도망하라(니팔 명령)1/4
왜냐면 내가 아무 일도 행(칼 부정사) 할수(칼 완) 없기 때문이다1/8
너가 들어가기까지(칼 부정사)1/16
거기로1/2
그리하여 그 곳의 이름을 불렀다(칼 완)1/4
소알[쪼아르]라고1/2
: “서둘러라(피엘 명령) 그곳으로 도망하라(명령) 왜냐면 너가 거기로 들어가기 전에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소알[쪼아르]라고 불렀다.

1차 작성

14절의 사위나 15절의 롯이나 똑같다. 솔직히 말해 왜 9절에 그사람 롯이라고 했는지 모를 정도다. 분명 하나님의 편에 선거 같은 롯이지만, 그의 본질은 방관하던 그의 사위와 똑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 믿어도 떠나기 싫다. 그는 언제 결혼했을까. 그당시 여자가 만으로 14-15세에 결혼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소돔에 정착하고 결혼했을거같다. 분명한 것은 아브람이 하란에서 떠날 때, 롯은 결혼한거 같지는 않다. 분명 가나안에 와서 결혼한 거같다. 그리고 8절에서 처녀인 두딸이라고 했으므로, 사위가 될 자들, 즉, 약혼자들이지 아직 결혼한 것은 아닌거같다. 그러면 그가 소돔에 와서 결혼했다는 추측은 좀더 신뢰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의 모든 기반은 소돔에 있었다. 이방인 취급당했을지언정, 그는 소돔인이었다. 또한 사라와 달리 롯의 아내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18장 19절에 아브라함을 선택했다. 그것은 ‘알았다’라는 완료형이다. 아브라함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알기 위해( ) 소돔으로 가셨다. 그리고 소돔 사람들은 하나님께 그들을 알렸다. 그것이 의 말씀이다. 상관하리라가 바로 알다란 동사다.
롯은 이 중간에 서있다. 그는 하나님을 택한 것같지만 아닌거같다. 이렇게 롯은 그가 어떤지를 하나님께 알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자신이 어떤지, 그 계획을 알린 것처럼, 그를 채촉하셨고(16-17) 그가 도망하기 전에는 멸하지 못한다고 까지 하셨다(22). 아브라함에게와 똑같이 하나님은 롯에게 알리셨다. 그리고 그 핵심은 ‘산으로 도망하라’이다.
산은 어디인가. 소돔이라 생각되는 지역의 해발은 -350m정도이다. 바다보다 350m나 낮은 지역이다. 그에 반해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마므레는 약 해발 1000m에 달하는 고지였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산은 어디인가. 산으로 도망하라는 명령은 어떤 명령인가.
평지는 요단 평지다. 사람이 살기 좋고, 많이 머물던 평지이다. 비옥하고 광활한 곳이다. 문명이 머물던 곳이다. 세상의 중심지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멈추지 말라 명하신다.
산은 어디인가. 노아가 새로운 세상을 시작했던 곳이다. 그가 홍수 이후 방주에서 내려 발을 처음 딛었던 곳은 바로 산꼭대기였다.
그러나 롯은 소알을 선택한다. 평지를 선택한다. 심판이후 무서워서 다시산으로 간다. 하나님께서 말한 산이 아니다. 자신이 판단한 산으로 간다. 그리고 동굴로 들어간다. 어둡고 깜깜하고 축축한 동굴로 간다. 거기서 희망을 잃는다.
산꼭대기에 갔다면 롯은 아브라함이 봤던 광경과 똑같은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바로 롯과 아브라함이 다시한번 합칠수 있는 접점이다. 롯이 구원의 역사에 참여할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평지를 선택한다. 나중에는 그 평지에서도 도망하여 자신이 선택한 산의 동굴로 도망간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8절에 두딸을 성적으로 팔아넘기려 했던 그 죄악 그대로 두딸에게 당한다.
산은 어디인가. 에는 아람왕 의 신하들이 하나님을 가리켜 산의 신이라 한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하셨다.
예루살렘은 고원에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가야 했다. 그래서 시편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그렇게 많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곳에 성전이 있었다.
산은 어디인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이 바로 모리아 산이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신할 희생의 양을 준비하셨다.
산은 어디인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달리신 곳이 바로 골고다의 언덕이었다.
산은 어디인가. 바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곳이다. 다시한번 구원의 언약속으로 초대하는 장소이다. 그 기쁨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사랑속에 거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험한 장소이다.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다. 아무것도 없는 장소이다. 광활하고 비옥한 평지를 뒤로 해야 올라갈 수 있는 장소이다.
바로 좁은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좁은 길로 초대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롯에게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셨는가. 바로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롯은 믿음이 없었다.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자신도 믿지 못했다. 자신이 저 산을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자신에게 주시지 않을 거라 믿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소알을 선택했다. 당장 모면할 곳을선택했다. 그리하여 그의 두려움은 계속 되었다. 그가 선택한 곳은 높아서 눈을 들어 보면 주위의 모든 곳이 눈에 들어오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신 큰 일을 두눈으로 보며 감사할 수있는 곳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작고 작은 땅을 선택했다. 작지만 자신의 몸 하나는 챙길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거기서도 두려워서 어둡고 축축한 동굴로 들어갔다.
우리의 산은 어디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초청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2차 작성

서론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구원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도 따지지 않고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롯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어리석고 우둔하게 행한 롯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위해 나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셨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리석음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살펴보며, 롯을 구원의 길로 초대한 하나님과 그 구원을 거부하고 결국 자기 생각대로 행했던 롯을 보며, 다시한번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신다.
알다에 대한 말
소돔에 온 목적 알려 하노라(미완)
그전에 아브라함의 선택 택하였나니, 원어로 알았다(완료)
소돔인의 반응 상관하리라 -> 알 것이다(미완)
소돔인들은 자신들이 심판받아 멸망당하는 것이 마땅함을 하나님께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롯은 자신을 어떻게 알려주었는가
우리가 본바와 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지혜없음을 알렸다.(3절 무교병, 8절 대처)
영향력없음을 알린다. 14절 사위의 반응
눈을 세상에 두고 있음을 알린다. 16절
롯의 아내와 두딸 : 아마 소돔에 와서 결혼하고 얻지 않았을까?
처녀두딸(8절), 사위(14절)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가졌던 시기나 그 전후에 롯이 두딸을 가졌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그리고 하란에서 나올 때, 분명 주요 인물은 아브람 사래 롯이었다. 아내는 없다. 가나안이나 소돔에서 결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물쭈물하는 롯과 가족들 16절
이 모든 것은 롯이 소돔에 그 눈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한다.
롯의 불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 18-19절
그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진행하심은 믿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이 산에 올라가기 전에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
자신은 그 산에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두천사는 사람이 걸어서 이틀 거리를 몇시간 만에 이미 주파했다. 이것은 롯이 산을 선택하기만 하면 갈 수 있는 힘을 충분히 주실 것이란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한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자신에 대한 불신
그는 자신이 그 산에 오를수 있을지 믿지 못했다.
산이 아닌 작은 마을 소알을 선택한다.
저렇게 작은 마을 하나 정도면 족하다는 작은 믿음, 솔직한 말로 부족한 믿음을 대놓고 보여주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불신하고 있다.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심17, 21, 22절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은 롯에게 대안을 제시하신다.
롯의 말을 들어주신다. 롯의 믿음없음을 소알의 구원의 기회로 삼으신다.
산을 거부하는 롯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적용 :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고 있는가. 하나님께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알리고 있는가. 롯의 지혜없음의 근본은 바로 믿음없음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흔들리고 부족한 믿음 가지고 믿음이 없는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를 끝까지 달래고 결국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구원의 길은 무엇인가.
2. 하나님께서는 산으로 도망하라 하신다.
하나님은 롯을 소돔에서 끌고 나온 후,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산은 어디인가.
소돔이라 추정되는 곳의 고도는 해발 -350M정도이다. 바다보다 엄청 낮다. 아브라함이 머무는 마므레는 해발 1000M이다 매우 높은 고지대이다. 그래서 27-28절이 가능하다.
노아가 호수심판후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은 곳은 산이다. 말그대로 새로운 땅과 하늘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은 모리아 산이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희생의 양을 준비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한 곳이 산이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에서 아람왕의 신하들은 하나님을 산의 신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산에서 역사하셨다. 주변 이방인이 보기에도 그렇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들을 산에서 살게하셨다.
이스라엘의 지형자체가 고원이었다.
예루살렘은 고원에 있었다. 그리고 성전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시편의 수많은 시들이 ‘성전에 올라가는 시’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박히신 곳이 골고다 언덕이다.
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곳이다.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새하늘과 새땅이 시작되는 곳이다.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결국 롯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었다. 구원으로의 초청이었다. 요단 평지라는 광활하고 비옥한 평지를 뒤로하고 아브라함이 연단받고 있는 산으로 다시 올라오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부르심이었다.
그러나 롯이 선택한 곳은 평지였다. 조그만 평지 소알이었다. 그리고 거기서도 두려워, 하나님의 산이 아닌 다른 산에 오른다. 그리고 동굴로 들어간다.
가장 어둡고 캄캄하고 축축한 동굴로 들어간다.
그리고 죄악중에서 죄악을 잉태한다. 8절에서 두딸을 팔아넘기려한 그는 두딸에게 그대로 복수당한다.
적용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우리에게 산으로 도망하라 하신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부르심이다. 그리스도의 예수의 피가 흘러넘치는 곳으로 오라는 부르심이다.
그러나 산은 오르기 힘든 곳이다. 평지는 비옥하고 편안한 곳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좁은 길로 부르신다. 그리고 좁은 길 끝에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산의 험악함 부터 본다. 저길 어떻게 올라가란 생각으로 접근한다. 왜 그리로 가게 하냐고 한다. 그리고 롯처럼, 소알, 그 좁은 땅이라도 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산으로 부르신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게 하신다. 만약 롯이 올라갔다면 그는 27절과 28절에서 아브라함이 봤던 장면과 똑같은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산으로 오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여실 것이다. 롯이 떠난 후, 에서 눈을 들어 양사방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드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야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는 것, 하나님의 뜻을 ㅜ리에게 알리실 것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결국 산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으로 오르는 산은 롯의 동굴이 될 것이다. 가장 어둡고 캄캄한 곳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산으로 올라가기 원한다.
힘들어보이고 내 능력으로 안될거 같아 보여도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산으로 올라가자.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설교

서론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구원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도 따지지 않고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롯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어리석고 우둔하게 행한 롯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위해 나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셨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리석음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살펴보며, 롯을 구원의 길로 초대한 하나님과 그 구원을 거부한 롯,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며,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묵상할수 있길 소원합니다.
본론
첫째,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에 소돔에 온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알려는 것입니다.
창세기 18:21 NKRV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하지만 그의 어리석음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살펴보며, 롯을 구원의 길로 초대한 하나님과 그 구원을 거부하고 결국 자기 생각대로 행했던 롯을 보며, 다시한번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 부르짖음이 맞는지 심판하러 오셨습니다. 알려고 오셨습니다. 바로 이 ‘알다’라는 단어가 소돔의 심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아브라함을 선택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19절에 표현된 선택했다가 원어로 알았다라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돔인들은 알려고 온 하나님께 그들을 알려주었습니다. 19장 5절에 소돔인들이 천사들을 상관하리라 라는 말입니다. 이 상관하다라는 단어가 ‘알다’라는 단어입니다.
소돔을 알려고 오신 하나님께 소돔은 자신이 어떤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확정되었습니다. 5절 전에는 천사들이 롯에게 소돔을 멸망시킨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롯은 어떻게 자신을 알렸습니까. 8절을 통해 그의 어리석음을 알렸습니다. 3절의 무교병을 통해 부족함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14절의 사위의 반응을 통해 그의 무능함을 알렸습니다. 사위에게 조차 무시당한 롯입니다. 또 16절을 통해 그의 눈이 세상에 있음을 알립니다. 그의 행동은 인간적으로 보면 이해할만합니다. 롯이 언제 결혼을 했습니까. 성경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측해볼 여지는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하란에서 나올 때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성경은 아브람과 사래 롯과 종들이라고 확실히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롯의 두딸은 약혼을 한 상태입니다. 왜냐면 8절에 소돔인들에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두 딸이라고 처녀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14절에 사위가 나옴으로 두 딸이 약혼을 한 상태란 것을 알게 합니다. 이전에 여자는 15세전후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두딸은 15세 전후라고 생각됩니다. 이 나이는 이스마엘과 비슷합니다. 지금 이스마엘이 14세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지고 난후, 롯은 소돔에 가서 두 딸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는, 롯이 결혼 시기도 그 즈음이라고 볼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 이말을 하냐면 롯의 아내도 소돔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소돔출신이거나 이방출신인 아내와 소돔에서 자란 두딸, 그리고 소돔에 모든 생활의 기반을 둔 롯입니다.
그는 천사들이 그를 잡아끄는 그 순간에도 소돔을 떠나기 싫어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끝까지 세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롯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18절과 19절에 나옵니다.
분명 산으로 도망하라 말합니다. 그러나 롯은 거부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산으로 도망갈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재앙을 만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재앙을 만나다라고 할 때 만나다라는 말을 직역하면 재앙이 내게 달라붙는다입니다. 옆에 천사들이 있어도 내가 산으로 도망가면 재앙이 내게 달라붙어서 나는 죽을거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죽는다가 완료형, 즉 과거로 나와있습니다. 내가 산으로 가면 죽는건 기정사실이라는 뉘앙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합니다. 또한 자신도 믿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비옥한 평야에서 산 자신은 이미 저 산으로 갈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는 이미 두천사가 마므레에서 소돔으로 몇시간만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리가 60km이상이라 걸어서 이틀이 걸린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롯이 산을 선택하기만 하면 그런 기적적인 체험을 롯이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이미 예비해놓으셨습니다. 하지만 롯의 불신은 그 모든 기적을 발로 차버리는 결과로 귀결됩니다.
결국 롯이 선택한 곳으 소알이라는 자그만 마을입니다. 저 작은 곳은 심판에서 제외해 달라고 20절에서 애걸복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롯의 모든 청을 들어주십니다. 결국 심판에서 롯을 구원하십니다. 이렇게 믿음없는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그 끈질긴 손과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롯에게 재앙이 달라붙었다면,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도 거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에게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안을 제시하면서까지 우리를 붙드십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자리에 모여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를 어떤 때는 달래며 어떤 때는 꾸중하며 결국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의 눈을 고정시킬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뭐라 말씀하십니까.
둘째, 하나님께서는 산으로 도망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롯을 끌고나온 후 하신 말씀은 산으로 도망하라입니다. 그렇다면 산은 어디입니까.
원어에서는 그 산이라고 관사를 붙이고 있습니다. 어디를 말할까요.
홍수후 노아가 새로운 생명,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산입니다. 그 때, 노아는 새하늘과 새땅을 목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곳이 산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희생의 양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하신 곳이 산입니다. 시내산, 그 산에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에서 이방인들이 표현한 하나님은 산의 신입니다. 그들의 짧은 지식으로도 하나님은 산과 관련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머무는 곳이 바로 산지였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은 고원에 위치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수많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존재합니다. 특별히 성전은 예루살렘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존재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볼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아브라함이 머물던 마므레가 산이었습니다. 롯이 있던 곳은 해발 -350m입니다. 그리고 마므레는 약 해발 1000m입니다. 1350m의 차이가 나는 엄청나게 높은 산지였습니다.
롯이 있던 곳은 해발 -350m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이 바로 산입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셨습니다.
산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된 곳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머무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곳입니다.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초청이었습니다. 비옥한 평야, 하지만 곧 멸망할 세상에서 살던 롯에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이었습니다. 다시 아브라함에게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화해의 제스쳐였습니다. 회복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롯이 선택한 곳이 조그만 평지 소알이었습니다. 그 광할한 구원의 역사를 외면하고 그는 조그만 평지를 선택했습니다. 결국 거기서도 도망가 산의 동굴속으로 들어갑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오직 어둠과 비참함만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롯과 두 딸은 죄악중에 거하며 죄악을 잉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신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로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피가 흐르고 있는 곳으로 오라는 외침입니다.
그러나 산은 오르기 힘든 곳입니다. 평지에 살던 롯처럼 우리에게 산은 어렵고 힘든 곳입니다. 미지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험악해 보입니다. 먼저 좌절과 어쩔수 없지 안돼라는 부정적인 생각만이 들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롯처럼 소알을 구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 험난한 산 말고 여기 앞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 하나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산으로 부르십니다. 비옥하고 넓은 평지길이 아닙니다. 험난한 좁은 길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만약 롯이 산에 올랐다면, 그의 눈은 아브라함의 눈이 되었을 것입니다. 27절과 28절에서 아브라함이 보았던 것을 롯은 똑같이 보았을 것입니다. 에 롯이 떠난후 눈을 들어 사방을 보았던 아브라함의 눈을, 롯은 가졌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롯은 실패했습니다. 그의 결말은 죄악으로 끝납니다. 멸망한 것보다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고, 하고 있고, 할 것입니까. 우리의 선택이 소알이라면, 우리의 끝도 동굴일 것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저 험난한 산을 바라보며 겁먹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 산 정상에서 모든 만물을 말한마디에 창조하신 영존하시는 아버지께서 두팔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험난함이 걱정입니까. 그길에 그리스도의 보혈이 흘러내려오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그 모든 길을 이미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산을 오르는 우리를 그 보혈로 덮으려고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곁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우리가 쓰러지면 엎고라도 가시려고 우리의 곁에서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산으로 올라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곳으로 달려가기 원합니다. 실패해도 좋습니다. 넘어져도 좋습니다. 우리가 넘어진 그 자리를 성령께서 대신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아버지의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산, 그 사명을 생각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기 원합니다. 한명한명에게 주어진 그 산, 부르심이 무엇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응답한다면 삼위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주와 동행하며 주께서 부르신 그 산으로 달려가는 우리 모두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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