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은 왜 구원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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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은 왜 구원 받았는가?
[]
설교전 찬양
주 믿는 사람 일어나(357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384장)
오직 믿음으로
설교후 찬양
오직 믿음으로
6: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6: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6:23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6:24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6: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건강한 공동체
믿음으로…
모세5경이 끝나고 시작되는 성경의 이름은? 여호수아서이다.
모세5경이 끝나고 시작되는 성경의 이름은? 여호수아서이다.
여호수아서는 크게 3가지 주제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정복하라, 정복한 후 그 땅을 분배하라,
여호수아가 다음 세대에게 당부하는 고별인사와 그의 죽음이다.
오늘 본문의 위치를 보면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어디에 진을 치고 있습니까?
여리고 성에서 훤이 내려다 보이는 싯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싯딤에서 진을 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계획에 따라 정복하고 땅을 분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은 이 전쟁은 종류는 정복전입니다.
정복전쟁과 침략전쟁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정복전 인가? 침략전인가?
여리고 성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 들어오는 것은 침략입니다.
관점이 다르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쳐 들어가는 것은 침략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전쟁을 정복전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 침략전이 아니라 정복전이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와 정당성이 창세기 1장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태초 이전에는 지금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땅도 없었고, 하늘도 없었고, 그 땅에서 나는 열매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모든 피조물이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도 하나님의 것이고, 이 땅에서 나는 열매 또한 하나님의 것이며, 사람 또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땅을 자기의 땅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의 땅을 찾는 전쟁은 침략전이 아니라, 정복전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찾기 위해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한 땅을 되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명령에 따라 3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 그 땅을 거룩하게 하고
둘째, 그 땅의 생명을 다 죽여서 거룩하게 하고
셋째,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세워 거룩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던 동물이던 모두 죽여서 거룩함을 되찾는 전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첫 가나안 정복전의 여리고성 전투에서 라합이라는 기생이 살아남습니다.
분명히 모두 죽이라고 했는데, 살아남습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라합을 성경이 기록한 내용을 보면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 받았다 합니다.
살아 남은 차원을 넘어 구원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 죽여서 거룩한 땅이 되라고 하셨는데 라합은 왜 구원받은 것입니까?
라합이 구원 받은 것엔 정말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선포 될 때 두가지 질문을 계속 하시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라합은 왜 구원 받은 것인가?
둘째 공동체의 건강은 무엇으로 지키는 것인가?
라합은 “왜 구원 받았는가”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소식을 믿음으로 들었다.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여러나라가 소식을 듣고 낙담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가 들은 소식은 무엇이고 왜 낙담을 하는 것입니까?
가장 큰 제국을 이루고 있는 애굽,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앞을 막고 있는 홍해바다는 마른땅 처럼 들어났으며, 그들을 죽이려고 왔던 병거와 병사는 모두 바다에서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계속 들리는 소식이 있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처소를 마련하실 것이고, 그곳을 주님의 성전이 있게 하실 것이며, 그곳을 거룩하게 할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땅은 여호와 하나님의 땅이 될 것이고, 이곳에 사는 사람은 다 죽을 것이라는 소식에 가나안 거주민들이 다 낙담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생 라합은 이 소식을 어떻게 들었을까요?
들리는 소식을 들으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집도 없이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장막 생활이란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의 삶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성과는 차원이 다른 형편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라합은 생각합니다. 나는 견고한 성에 살고 있으며, 누가 처들어 와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요새에 살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현재 살고 있는 성의 구조만 보아도 이스라엘 백성의 전력은 형편없습니다.
무려 15M 이상에 진을 치고 있는 여리고성에 올라 올 수 있는 장비는 물론이고 전력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눈에 훤이 보이는 싯딤까지 와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여리고성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그럼 라합은 어떠했을까요?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누가 누구를 숨긴 것입니까? 라합이 정탐꾼 2명을 숨겨 준 것입니다. 라합은 왜 목숨을 걸고 숨겨준 것일까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모세 5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땅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자….. 정탐꾼을 죽이려 합니다.
이 땅이 하나님이 정복할 것이라고 믿는자…. 목숨을 걸고 숨겨 줍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같은 소식을 들었어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믿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사자들을 대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듣습니까?
가나안에 살고 있는 다른 거류민들처럼 낙담하고, 두려워만 합니까? 아니면 라합처럼 이 현실넘어에 있는 하나님, 이 상황 넘어 계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계십니까?
라합이 구원 받은 첫 시작은, 하나님께서 일하신 소식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내일의 일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내 믿음은 정복자의 믿음인가? 아니면 침략자의 믿음인가?
그러므로 정복자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두렵고 떨리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정복자의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라합은 왜 구원 받았는가?
2. 하나님의 사자와 믿음으로 언약을 맺었다.
정탐꾼들은 라합의 이런 선택을 말미암아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정탐꾼은 왜 자신들을 살려 주었는지 라합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라합이 엄청난 말을 합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나는 이 땅을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셨을(?) 내가 아노라.
여기서 라합이 말한 “너희에게 주셨을(?) 내가 아노라”는 현재 미래완료 시제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직 정복되지도 않은 땅을 표현 할 때(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임에도)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문법을 그대로 사용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아직 정복되지 않았지만, 이 땅은 이미 당신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가 압니다. 입니다. 지금 라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잠시 라합의 신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합은 이방 여인에다가, 천하고 천한 기생입니다. 죄송합니다. 몸을 파는 창녀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 여인에게 이런 믿음이 있냐는 것입니다.
결국 이 믿음은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다윗을 낳고,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낳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낳는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을 라합의 출신 성분을 좀 바꿔 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어떤 노력을 했을 까요? 라합은 여리고에 사는 주막의 주모입니다. 또는 숙박업을 하고 있는 주인입니다. 그러나 피해 갈 수 없는 히브리 원어가 있습니다.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여기서 그는 누구입니까? 유다입니다. 그리고 창녀로 변장한 여인은 유다의 며느리 다말입니다. 이때 사용한 단어는 “창녀”입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에서 만난 라합 또한 같은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라합의 출신 성분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찮게 여겼던 창녀, 기생의 믿음은 여리고성에 있는 모든 사람과 전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고 있지만 라합과 같은 믿음은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설마입니다. 설마 내가 살고 있는 이 성과 그들보다 2배가 더 큰 키와 신체를 가진 우리 민족이 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식량전이다. 저들은 광야에 있고, 우리는 몇 년을 먹고도 남을 식량이 준비되어 있다.
결국 버티면 이기는 싸움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싸움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결과를 알기에 라합에게 시작된 믿음은 결코 망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라합이 보여주고 있는 선택은 하나님께 간절히 구원을 바라고 있는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라합이 정탐꾼에게 말을 건냅니다.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내가 너희에게 선대 한즉 너희도 나와 내 가족을 선대하라.
그리고 선대 하겠다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고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해 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신분과 상관없고, 부귀영화와 상관 없으며, 내가 가진 견고한 성에 상관없는 믿음의 여인을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무엇을 듣고, 믿느냐에 따라 약속의 대상이 다릅니다.
내가 내 미래를 맡길 수 있는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야 할 믿음의 길은 하나님이 가시고자 하는 방향과 연합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라합과 같이 하나님이 정복하시고자 하는 곳의 소식을 들었다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으로 나아가는 백성들만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곳을 정복되게 하는 언약을 믿음으로 맺어가는 백성들만 되시길 축언합니다.
라합은 왜 구언 받았는가?
3. 믿음으로 빨간색 줄을 내렸다.
라합은 믿음으로 내린 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아마도 라합은 아주 멀리에서도 보일 수 있도록 그림과 같이 붉은 줄을 내렸을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 받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6일 동안 여섯번 돌고, 마지막 날에 일곱번 돌고 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리를 쳤을 때 라합의 집은 무너졌을까요? 아니면 그대로 있었을까요?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라합과 그의 가족은 창문너머로 매일 매일 여리고 성만 도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보입니다.(봅니다.)
분명히 정복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데 싸우지는 않고 돌기만 합니다.
이때 라합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영국의 기독교 사상가이자 집필가인 CS루이스가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처럼 기독교를 믿는다.
내가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확신합니다.
라합은 매일 매일 해가 뜨듯이, 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끝까지 붉은 색줄을 거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라합은 끝까지 붉은 색 줄을 거두지 않고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자 여호수아는 다음과 같이 합니다.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대로 라합과 그 가족을 구하고 난 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정복합니다.
온전히 정복하는 것은
여리고 성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완전히 태우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죽여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동물들도 다 죽여 거룩하게 합니다.
이것은 잔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잃었던 땅을 찾는 것이고, 우상으로 더러워 졌던 땅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살아 있는 생물 또한 구별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동체는 어떻게 지키는 것입니까?
제가 서두에서 질문했던 것처럼 우리의 공동체는 어떻게 지키는 것입니까?
라합이 보여주었던 믿음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 라합은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닛딤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돌 때 변치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어떤 믿음과 확연히 비교 된다는 것입니다.
다름아닌 애굽에서 출애굽한 믿음의 1세들과 너무도 확연히 비교 됩니다.
믿음의 1세들은 기적과 이적을 경험한 세대들입니다.
라합은 기적과 이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듣기만 한 이방인이고 기생이었습니다.
믿음의 1세들은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어도, 패역하고 우상을 섬기는 배교를 한 세대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광야에서 책망과 심판으로 죽어가는 시간차는 있었지만, 단 두사람을 빼놓고는 다 광야에서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라합은, 믿음은 기적과 이적을 경험하지 않고도, 보지 않았어도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었습니다.
라합은 비록 천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구원에는 신분과 처지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을 어떻게 온전히 믿느냐를 보여준 믿음의 거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취되도록 믿음의 길을 걷는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도록 전진하는 믿음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서 공동체를 지키고, 내 가정을 지키고, 내가 매일 매일 구원 삶을 살아가는 오직 한길은 하나님이 뜻이 이땅에 이루어 지도록 믿고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해가 떳고 내일도 해가 뜰 것입니다.
주께서 오시겠다는 그날까지 떠오른 태양을 보며, 하나님뜻이 온전히 이땅에 이루어지도록 순종하시는 믿음의 백성들만 되시길 축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