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함

금주의 말씀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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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척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세워나가자고 다짐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주변이 별로 복잡한 동네가 아닌데도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해 져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드는 그러한 음식점이었다.
오랫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옛 기억을 더듬어 그 동네로 갔는데 도대체 그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의 이름 앞에 원조 음식점, 진짜 원조음식점 등의 이름을 붙이 수도 없이 많은 같은 종류의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골목길을 가득하였다. 내가 찾던 집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 수식어에 속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사전은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1.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2.<논리>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3.<철학>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사전에서 말하는 “보편 타당한 사실"이라고 정의는 진리에 대한 바른 정의는 아니다. 진리는 누구나 승인할 수 있는 법칙이나 사실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고 왜곡하는가를 봐도 진리는 누구나 승인할 수 있는 법칙이나 사실이라는 정의는 틀린 것이다.예를 들어, 지구는 평평하다는 것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보편 타당한 진리 이었지만 지금 만일 누가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한다면 아무도 듣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찾던 그 음식점은 아직도 예전의 그 이름을 그대로 붙이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 많이 진화하여 단층이던 음식점이 주변의 집들을 사 들여 더 큰 빌딩으로 변하긴 했지만 그 앞에 진짜 음식점, 원조 음식점이라는 수식어는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진리라는 단어 앞에 원조진리, 객관적 진리 혹은 절대적 진리라는 수식을 하지 않는다.진리는 하나 밖에 없고 절대적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시작부터 진리에 대한 사탄의 도전은 시작되었다. 뱀은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여 아담과 이브를 꾀어 죄가 이 세상에 들어 온 이래 사탄은 쉬지 않고 진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서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라고 격려한 것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신약 시대를 여시고 교회가 시작된 이래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이 넘쳤기 때문이다. 이 처럼 사탄은 이단들을 이용하여 진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들의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궤계에 미혹되지 말고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진리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진리를 온전히 분별하고 추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진리는 무엇일까?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증거하셨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은 일점일획이라도 바뀌지 않는다.” 진리는 보편타당한 사실이 아니라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절대 불변의 진리이다. 또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이 진리이시다.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요 17:17).성령님이 진리이시다(요 16:13) 이 진리를 붙잡아야 한다. 만일 이 진리가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절망과 암흑속에서 아무 소망도 의미도 없다. 사람들은 진정한 진리를 눈 앞에 두고도 새로운 진리를 찾는다. 자기 마음에 드는 진리를 찾는다. 그들은 진리를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진리를 만들어서 그것에게 헌신한다. 이는 마치 나무나 금, 은으 만든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는 사람들과 같이 말 못하는 그 우상을 의지한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기업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따르지 아니하고 이방인을 좇아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우상을 따르며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한다(시 115:4-7). 이러한 사람들을 시편 기자는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8)” 금이나 은으로 만든 우상은 말을 못한다. 잔소리도 없고 그 속에 진리도 없다. 다만 이것을 섬기는 사람들의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행하는데 편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이와같이 사람들은 진리를 거부하기 위해서 자기 마음에 드는 거짓 진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그 진리는 계속 바뀔 수 밖에 없고, 계속 진화하여 점점 더 하나님의 진리와는 멀어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거짓 진리를 새롭게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빌립보서 2:10 은 말한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기고" 이 세상의 끝 날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그에게 경배할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나 따르지 않는 자들이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일어날 일이다. 그러기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른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그 진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마지막 날에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꿇게 되는 날에는 이미 늦었다. 그날에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있을 뿐이다.그러므로 지각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이 세상의 구원주로 받아 들여서 영원한 생명 얻는 길로 나아 와야만한다.거짓 진리에 속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철학이나 그 어떤 유전도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없다(골 2:19).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행 4:19). 그 어떤 선한 행실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엡 2:8-9).구원은 오로지 영원하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그를 주님으로 받아 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이 진리를 놓치지 말야야 한다. 이 진리는 또한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 마스터스 신학교의 교수이셨으며 신약학 박사이신 토마스 박사(작년에 소천하심)는 “진리가 의의 영원한 친구이기 때문에 역시 진리는 사랑의 영원한 친구도 된다.”라고 잘 표현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진리와 사랑은 영원한 친구 즉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원한 친구이다만일 진리를 아는데 사랑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진리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사랑은 있는데 진리가 없다고 한다면 그역시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진리하고 말하면 딱딱한 율법이나 교리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진리의 말씀 성경에 근거한 바른 교리를 가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교리가 딱딱한 구약의 율법과 같은 것은 아니다.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것과 같이 진리는 우리를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해방 시켜 주지 우리의 발목에 채워지는 쇠 사슬이 아니다. 예수님의 꾸지람을 들은 에베소교회를 보면거 알 수 있다. 그 교회는 바른 교리를 힘써 지켰고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잘 분별한 교회였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New Korean Revised Version) 2장2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과연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하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과연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주변이 별로 복잡한 동네가 아닌데도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해 져서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그런 곳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주변이 별로 복잡한 동네가 아닌데도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해 져서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그런 음식점이었다.
인터넷 사전은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옛 기억을 더듬어 그 동네로 갔었는데 도대체 그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의 이름 앞에 원조 음식점, 진짜 원조 음식점 등의 이름으로 수도 없이 많은 비슷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골목길을 가득하여, 내가 찾던 집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음식점들이 아무리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 수식어에 속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옛 기억을 더듬어 그 동네로 갔었는데 도대체 그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의 이름 앞에 원조 음식점, 진짜 원조 음식점 등의 이름으로 수도 없이 많은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골목길을 가득하여, 내가 찾던 집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가 세워진지 불과 60여년 후에 주님의 무서운 책망을 듣는다.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를 없애 버리시겠다는 책망이다. 그들이 주님이 싫어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바른 교리를 지키고 나름대로 진리를 지킨 교회가 아니었던가?주님의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신다.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이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진리 안에 있던 교회이었다.그러나 이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일까?에베소 교회는 반쪽 진리만을 가지고 있었다. 바른 교리로 거짓 교사들을 미워하고 배척하였지만 그들은 처음 사랑을 잊어 버렸다.그들은 진리를 가지고 잃어 버린 교회이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온전한 진리가 아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요일 3:18-19)”
네이버 사전은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1.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2.<논리>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3.<철학>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이어서 사전은 절대적 진리, 객관적 진리 등등으로 진리 앞에 그 진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다른 수식어를 붙인 단어들이 있었다.
“ 1.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 2.<논리>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 3.<철학>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진리를 논하면서 왠 음식점인가 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많은 가짜 진리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 음식점을 예를 들었다.
진리를 논하면서 왠 음식점인가 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많은 가짜 진리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 뚱단지 같이 음식점을 예를 들었다.
인터넷 사전은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1.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2.<논리>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3.<철학>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사전에서 말하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사실"이라 한 정의는 진리를 바르게 정의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왜냐하면 진리는 사람들이 승인하는 법칙이나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진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 타당한 진리로 인정된 적이 없는 것은 좋은 예이다.
인터넷 사전은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사전은 ‘객관적진리, ‘구체적’ 진리. ‘근본’진리 등등으로 “진리” 앞에 그 진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다른 수식어를 붙인 단어들이 이어졌다.
“ 1.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2.<논리>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3.<철학>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그러나 사전에서 말하는 “보편 타당한 사실"이라고 정의는 진리에 대한 바른 정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사람들이 승인하는 법칙이나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고 왜곡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 한 예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입증되기 전에는 지구는 평평하다는 것이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보편 타당한 진리 이었다.
또 한편, 사람들이 보편 타당하다고 인정했던 진리들이 많은 경우 세월이 지나면서 또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면서 바뀌는 것을 우리는 쉽게 확인한다. 그 좋은 예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입증되기 전에는 지구는 평평하다는 것이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보편 타당한 진리였지만 지구 둥글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래 이를 평평한 지구를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서 말하는 “보편 타당한 사실"이라고 정의는 진리에 대한 바른 정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사람들이 승인하는 법칙이나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고 왜곡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 한 예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입증되기 전에는 지구는 평평하다는 것이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보편 타당한 진리 이었다.
사전에서 말하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 적인 법칙이나 사실"은 진리를 바르게 정의한 것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진리는 단지 사람들의 승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진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 타당한 진리로 인정된 적이 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사람들이 보편 타당하다고 인정했던 진리들이 많은 경우 세월이 지나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면서 바뀌는 것을 우리는 쉽게 확인한다. 그 좋은 예로 지구는 평평하다는 것이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보편 타당한 진리였지만 지구 둥글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래 평평한 지구를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내가 찾던 그 음식점은 아직도 예전의 그 이름을 그대로 붙이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 많이 진화하여 단층이던 음식점이 주변의 집들을 사 들여 더 큰 빌딩으로 변하긴 했지만 그 앞에 진짜 음식점, 원조 음식점이라는 수식어는 없었다.
사전에서 말하는 진리와는 다르게 성경에는 진리라는 단어 앞에 그 진리를 확증하기 위한 어떤 수식어를 붙어 있지 않다. 다만 진리가 무엇이고 진리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할 뿐이다. (하나님의 진리, 진리의 성령, 진리의 말씀, 복음의 진리 등이 그것이다. )
내가 찾던 그 음식점은 아직도 예전의 그 이름을 그대로 붙이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 많이 진화하여 단층이던 음식점이 주변의 집들을 사 들여 더 큰 빌딩으로 변하긴 했지만 그 앞에 진짜 음식점, 원조 음식점이라는 수식어는 없었다.
그 이유는 진리는 유일한 것이고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진리는 세상이 시작한 이래 계속 공격 받았고 공격 받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진리라는 단어 앞에 인터넷 사전에 ‘진리’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진리를 수식하지 않고, 다만 진리가 무엇이고 진리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할 뿐이다.
사전에서 말하는 진리와는 다르게 성경에는 진리라는 단어 앞에 그 진리를 확증하기 위한 어떤 수식어도 붙어 있지 않다. 다만 진리가 무엇이고 진리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할 뿐이다. (하나님의 진리, 진리의 성령, 진리의 말씀, 복음의 진리 등이 그것이다.)
사전과 달리 성경은 진리라는 단어 앞에 다른 말로도 수식하지 않는다. 다만 진리가 무엇이고 진리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할 뿐이다. (하나님의 진리, 진리의 성령, 진리의 말씀, 복음의 진등등)
그 이유는 진리는 하나 밖에 없고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진리는 유일한 것이고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진리는 세상이 시작한 이래 계속 공격받았고 공격받고 있다.
그 이유는 진리는 유일한 것이고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이래 하나님의 진리에 도전을 시작했다. 뱀은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여 아담과 이브를 꾀어 죄가 이 세상에 들어 오게 하였고, 계속해서 쉬지 않고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 진리로 사람들을 미혹했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서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라고 격려한 것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신약 시대를 시작하시며 교회가 시작되자 이제 주님이 머리이신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이래 하나님의 진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뱀은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여 아담과 이브를 꾀어 죄가 이 세상에 들어 오게 하였고, 계속해서 쉬지 않고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 진리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이래 하나님의 진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뱀은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여 아담과 이브를 꾀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게 하였고, 계속해서 쉬지 않고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했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이래 하나님의 진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뱀은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여 아담과 이브를 꾀어 죄가 이 세상에 들어 오게 하였고, 계속해서 쉬지 않고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 진리로 사람들을 미혹했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서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라고 격려한 것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신약 시대를 여시고 교회가 시작된 이래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이 넘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탄은 이단들을 이용하여 진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 진리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온갖 애를 다 써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탄의 계략에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은 오로지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말씀 안에서 바르게 진리를 온전히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애써야만 한다(딤후2:15).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서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라고 격려한 것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신약 시대를 시작하시며 교회가 시작되자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이 넘쳤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서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라고 격려한 것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신약 시대를 시작하시며 교회가 시작되자 이제 주님이 머리이신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탄은 이단들을 이용하여 진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온갖 애를 다 써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탄의 계략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오로지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말씀 안에서 바르게 진리를 온전히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애써야만 한다(딤후2:15).
우리가 지키고 선포해야 할 진리란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이처럼 사탄은 이단들을 이용하여 진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 진리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온갖 애를 다 써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탄의 계략에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은 오로지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말씀 안에서 바르게 진리를 온전히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애써야만 한다.
이 처럼 사탄은 이단들을 이용하여 진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들의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궤계에 미혹되지 말고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진리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진리를 온전히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애써야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진리란 무엇일까?
우리가 지키고 선포해야 할 진리란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진리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증거하시고 진리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셨다.
예수님은 또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강조포함) 라고 하셨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없으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며 이 진리는 절대 불멸의 영원한 진리인 것을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께서 진리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하셨다.
입에서 나간 말은 일점 일획이라도 바뀌지 않는다.” 진리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보편 타당한 사실이 아니라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절대 불변의 진리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과 같이 진리는 없어지거나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진리가 아니다.
예수님은 또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강조포함) 라고 하셨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며 이 진리는 절대 불멸의 영원한 진리인 것을 가르쳐 주신다.
입에서 나간 말은 일점 일획이라도 바뀌지 않는다.” 진리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보편 타당한 사실이 아니라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그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진리 만을 말씀 하시면서(요 8:45),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요 17:17)이며 진리의 성령(요 16:13) 이시라고 하며 삼위 하나님이 모두 진리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과 같이 진리는 없어지거나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진리가 아니다.
예수님은 또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강조포함) 라고 하시며 당신 자신을 진리라 말씀 하셨고, 진리만을 말씀 하셨다(요 8:45).
예수님은 .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이 진리이시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진리 만을 말씀 하신다(요 8:45).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17:17)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진리의 성령(요 16:13) 이시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이 모두 진리의 원천이라 말할 수 있다.
주님의 은혜로 이러한 진리를 알고 예수님의 말이 거하여 참 제자가 된 자들은 자유를 얻었다(요 8:32). 예수님을 믿기 전에 그들은 죄의 종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지만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으므로 이미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루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를 용서 받고 영생을 얻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요 17:17)이라고 하셨고, 성령님이 진리(요 16:13) 이시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사탄의 종으로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는데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진리를 붙잡아야 한다. 만일 이 진리가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절망과 암흑 속에서 아무 소망도 의미도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요 17:17)이라고 하셨고. 또한 성령님을 진리의 성령(요 16:13) 이라고 하시며 삼위 하나님께서 모두 진리이심을 말씀하셨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진리이고, 선포해야 하는 진리이다. 물론 우리 교회가 선포할 진리도 바로 교회가 시작된 이래 2,000년간 변함없이 전해 온 이 진리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정한 진리를 눈 앞에 두고도 새로운 진리를 찾는다. 자기 마음에 드는 진리를 찾는다. 그들은 진리를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거짓 된 진리를 만들어서 그것에게 헌신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른다하고 나무나 금, 은으로 만든 말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과 같이 마음 속에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8)”라는 시편 기자의 말과 같이 말 못하는 무생물이나 다름 없는 자들이다.
주님의 은혜로 이러한 진리를 알고 예수님의 말이 거하여 참 제자가 된 자들은 자유를 얻었다(요 8:32). 예수님을 믿기 전에 그들은 죄의 종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지만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으므로 이미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루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얻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고 예수님의 말이 거하여 참 제자가 된 자들은 진리로 자유를 얻었다(요 8:32). 우리는 죄의 종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는데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시므로 죄를 용서 받고 영생을 얻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주님의 복음을 듣고도, 진리를 받아 들이기 보다 자기 마음에 드는 거짓 진리를 찾아서 끊임없이 헤매고 다닌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진리를 붙잡아야 한다. 만일 이 진리와 상관이 없다면 그들의 삶은 암흑 속에서 아무 소망도 의미도 모르는 삶일 뿐이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진리이고, 선포해야 하는 진리이다. 물론 우리 교회가 선포할 진리도 바로 교회가 시작된 이래 2,000년간 변함없이 전해 온, 이 진리이다.
금이나 은으로 만든 우상은 말도 못하고 물론 그 속에 어떤 진리도 없다. 다만 이것을 섬기는 사람들의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기에 편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진리를 거부하기 위해서 자기 마음에 드는 거짓 진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진리는 계속 바뀔 수 밖에 없고, 마치 음식점들 같이 진짜 음식점, 원조 음식점 등의 이름으로 선전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말은 하나님의 진리에서 점점 더 멀어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대적하는 거짓 진리를 새롭게 만들어 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정한 진리를 눈 앞에 두고도 그 진리를 받아 들이기 보다 진리 아닌 거짓 진리를 찾아 다닌다. 그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진리를 찾아서 끊임없이 헤매고 다닌다. 보편 타당한 사람이 만든 진리를 찾아서 헤매는 것이다. 그들은 온전한 진리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거짓 된 진리를 만들어서 그것에게 헌신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른다하고 나무나 금, 은으로 만든 말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과 같은 사람들이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8)”라 하며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금이나 은과 같은 생명 없는 무생물과 마찬가지라 말한다. 지금은 진리가 아닌 진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을 그들은 자유로 착각한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의 종 노릇하는 것임을 모른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주님의 복음을 듣고도, 진리를 받아 들이기 보다 자기 마음에 드는 거짓 진리를 찾아서 끊임없이 헤매고 다닌다.
그들은 온전한 진리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거짓 된 진리를 찾거나 만들어서 그것에 헌신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른다하고 나무나 금, 은으로 만든 말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과 같은 사람들이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8)”라 하며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금이나 은과 같은 생명 없는 무생물과 마찬가지라 말한다.
그들은 진리가 아닌 진리를 찾아 헤매고 다니는 것을 자유로 착각한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의 종 노릇하는 것임을 모른다. 자신들에게 자유가 없는 죄의 종으로 사탄의 속박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가지지 않은 것을 모른채 영원한 형벌의 길로 달려 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이런 것 저런 것을 선택하는 것을 자유로 착각하고 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의 종이 되어 영원한 형벌의 길로 달려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주님의 복음을 듣고도, 진리를 받아들이기 보다 자기 마음에 드는 거짓을 찾아서 끊임없이 헤매고 다닌다.
이 세상의 끝 날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그에게 경배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빌 2:10). 이 일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일이다. 그 마지막 날에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있을 뿐이다.
이 말도 못하는 그 속에 어떤 진리도 없는 다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종일 뿐이다. 다만 이것을 섬기는 사람들의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기에 편하여 마치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 자유는 진리를 거부하기 위해서 자기 마음에 드는 거짓 진리로 양심을 버리고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외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대적하는 거짓 진리를 새롭게 만들어 내기에 급급하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이런 것 저런 것을 선택하는 것을 자유로 착각하고 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의 종이 되어 영원한 형벌의 길로 달려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누린다고 생각하는 진리를 거스린 이 자유가 그들을 영원한 속박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될 그 날은 그들을 그 영원한 형벌을 벗어날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를 누리는 그 자유가 그들을 영원한 형벌로 인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될 그 날은 그들을 그 사슬에서 벗어날 아무런 방법이 없다.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2,13)
성경은 그 날을 이렇게 말한다.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를 누리는 그 자유가 그들을 영원한 형벌로 인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될 그 날에 그들을 그 사슬에서 벗어나게 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성경은 그들의 결국을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1-15 강조)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1-15 )
성경은 그들의 결국을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러므로 지각 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이 세상의 구원주로 받아 들여서 영원한 생명 얻는 길로 나와야만 한다.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하나님께서는 이 멸망할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제시하셨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이 세상의 구원주로 받아 들여서 영원한 생명 얻는 길로 나오라고 청하고 있다.
이 길은 세상의 철학이나 유전(골 2:8). 다른 종교(행 4:12), 선한 행실(엡 2:8-9)로 나올 수 없다. 예수님을 제외한 그 어떤 진리도 가짜 진리이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마 7:13,14, 요 10:7,8).
하나님께서는 이 멸망할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고, 그것을 우리들에게 땅끝까지 가서 전하라고 명령하셨다(마 28:20).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1-15 )
오로지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이다.
주님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이 세상의 구원주로 받아 들여서 영원한 생명 얻는 길로 나오라고 청하고 있다.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멸망할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고, 그것을 우리들에게 땅끝까지 가서 전하라고 명령하셨다(마 28:20).
생명 얻는 길은 오로지 영원하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그를 주님으로 받아 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진리다. 이 진리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영생에 관련된 진리이다(요일 5:13) .
이것이 진리이다. 그러므로 지각 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이 세상의 구원주로 받아 들여서 영원한 생명 얻는 길로 나아 와야만 한다.
이처럼 사람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 앞에 갈 길이 막힌 사람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
주님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이 세상의 구원주로 받아들여서 영원한 생명 얻는 길로 나오라고 청하고 있다.
이 길은 세상의 철학이나 유전(골 2:8). 다른 종교(행 4:12), 선한 행실(엡 2:8-9)로 얻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길이다.
이 길은 세상의 철학이나 유전(골 2:8). 다른 종교(행 4:12), 선한 행실(엡 2:8-9)로 얻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시므로 그를 믿는 자들은 모두 구원을 얻는다.
그 길은 좁은 길이고 협착 하지만 생명의 길이다. 그 길에 들어선 자들은 천국 시민으로 인정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얻는다. 이 길은 이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자녀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자유가 보장된 진리의 길이다(마 7:13,14, 요 10:7,8).
거짓 진리에 속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철학이나 그 어떤 유전도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없다(골 2:19).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행 4:19). 그 어떤 선한 행실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엡 2:8-9).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1-7)”
그 길은 좁은 길이고 협착하지만 생명의 길이다. 그 길에 들어선 자들은 천국 시민으로 인정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얻는다. 이 길은 이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자녀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자유가 보장된 진리의 길이다(마 7:13,14, 요 10:7,8).
우리는 이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 같이 모였다.
구원은 오로지 영원하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그를 주님으로 받아 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 진리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 시간에는 진리와 사랑의 관계를 살펴 보려고 한다.
이 진리는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리가 의의 영원한 친구이기 때문에 역시 진리는 사랑의 영원한 친구도 된다.”고 마스트스 신약학 교수이셨던 토마스 박사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진리와 사랑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사랑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이처럼 사람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갈 길이 막힌 사람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
우리는 이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 같이 모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라고 하면 왠지 딱딱하고 경직된 것을 생각한다. 우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진리성경교회라는 이름을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를 돕고 조언해 주던 친구들이 이 이름을 반대했다. 너무 딱딱하고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구태어 그런 이름은 이단들이 사용하는 이름이라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 이었다. 우리는 그 이름을 포기하고 그레이스성경교회로 이름을 정하고 교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 하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딱딱하게 들리는 진리를 선포한다고 하지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자면서 기도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큰 사랑으로 구원 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두 가지 계명을 주셨다. 그것은 사랑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을 다해서 사랑해야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마 22:37-39).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라고 하면 왠지 딱딱하고 경직된 것을 생각한다. 우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진리 성경교회라는 이름을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를 돕고 조언해 주던 친구들이 이 이름을 반대했다. 너무 딱딱하고,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구태여 이단들이 많이 사용하는 ‘진리’를 교회 이름에 넣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그 이름을 포기하고 그레이스 성경교회로 이름을 정하고 교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딱딱하게 들리는 진리를 선포한다고 하지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자면서 기도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극단적인 두가지의 부류의 교회들을 만난다. 어떤 교회는 진리 만을 강조하며 사랑이 없는 교회와 또 그 반대로 사랑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진리를 등한시 하는 교회이 두 극단의 교회들은 진리를 모르는 교회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신 것이다.
우리가 실천할 사랑과 선포할 진리는 과연 어떤 관계를 가졌을까?
우리는 세상에서 극단적인 두가지의 부류의 교회들을 만난다. 어떤 교회는 진리 만을 강조하며 사랑이 없는 교회와 또 그 반대로 사랑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진리를 등한시 하는 교회이다.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두 극단의 교회는 사실고 둘다 진리를 모르는 교회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극단적인 두가지의 부류의 교회들을 만난다. 어떤 교회는 진리 만을 주장하면서 사랑이 없이 율법주의로 나아가거나 또 그 반대로 사랑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자유주의로 향하는 교회들이다. 나는 이러한 교회들은 둘다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교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실천할 사랑과 선포한 진리는 과연 어떤 관계를 가질까?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1-7)
예수님은 이 진리를 믿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계명을 주셨다. 온 마음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와 같이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라는 계명이다(마 22:37-39).
계시록 2장의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이 두 극단적인 교회들을 생각나게 한다.
. 주님은 그들이 거짓된 것을 잘 분별하는 교회이었지만 이를 칭찬하시기 보다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신다. 그들은 바른 교리를 추구하며 지키는 교회였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을 잃은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는 반쪽 진리 만을 가진 교회였다. 그러나 진짜 원조 음식점이 내가 찾던 음식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반쪽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통째로 잃어 버린 교회이었다. 그들은 진리 안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기에 주님의 엄중한 꾸지람을 들었던 것이다.
마스트스 신학교의 교수이셨던 토마스 박사는 “진리가 의의 영원한 친구이기 때문에 역시 진리는 사랑의 영원한 친구도 된다.”고 하신 것과 같이 진리와 사랑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믿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계명을 주셨다. 온 마음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라는 계명이다(마 22:37-39).
진리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사랑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그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을 다해서 사랑해야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 인이 지켜야 하는 계명이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2-7)”
마스트터스 신학교의 교수이셨던 토마스 박사는 “진리가 의의 영원한 친구이기 때문에 역시 진리는 사랑의 영원한 친구도 된다.”고 하신 것과 같이 진리와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이 싫어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바른 교리를 지키고 나름대로 진리를 지킨 교회 이었다. 주님은 그들이 거짓된 것을 잘 분별하는 바른 교리를 지키는 그들을 안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칭찬하시기 보다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신다. 바른 교리를 분별했지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는 반쪽 진리 만을 가진 교회였다. 반쪽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는 진리가 없는 교회였다. 사랑을 버린 그들은 진리 안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기에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이렇듯 진리이신 하나님과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극단적인 두가지의 부류의 교회들을 만난다. 어떤 교회는 진리 만을 강조하며 사랑이 없는 교회와 또 그 반대로 사랑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진리를 등한시 하는 교회이다.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두 극단의 교회는 사실 둘다 진리를 모르는 교회이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사랑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또 한편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NKRV)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19-23)“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19-23)“
두아디라 교회는 인내하고 사랑하였지만 그들은 진리를 왜곡하는 이세벨을 용납하였다.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예수님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이 저질은 배역의 행위를 벌하시겠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신다.
그들은 서로 사랑과 믿음과 섬김으로 충성하였지만 바른 교리를 저버림으로 이러한 엄한 경고를 들었다.
한 교회는 사랑을 잃어서 또 다른 한 교회는 교리(진리)를 잃어서 꾸지람을 들었다.
요한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극단적인 두 가지의 부류의 교회들을 만난다. 어떤 교회는 진리만을 강조하며 사랑이 없다. 또 그 반대로 사랑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진리를 등한시 하는 교회도 있다.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두 극단의 교회는 사실 둘 다 진리를 모르는 교회이다.
계시록 2장의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이 두 극단적인 교회들을 생각나게 한다.
마스터스 신학교의 교수이셨으며 신약학 박사이신 토마스 박사(작년에 소천하심)는 “진리가 의의 영원한 친구이기 때문에 역시 진리는 사랑의 영원한 친구도 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요일 3:18-19)”
교회들이 이 진리를 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진리(교리)만을 주장하므로 율법주의로 나아가거나 또 그 반대로 사랑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자유주의로 향하는 것은 사실은 이 모두 진리를 모르는 교회이다.
계시록 2장의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이 두 극단적인 교회들을 생각나게 한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없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진리는 사랑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2-7)”
여러분이 속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진리의 복음, 사랑을 복음을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가?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한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가?
에베소 교회는 주님이 싫어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바른 교리를 지키고 나름대로 진리를 지킨 교회 이었다. 주님은 그들이 거짓된 것을 잘 분별하는 바른 교리를 지키는 그들을 안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칭찬하시기 보다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신다. 바른 교리를 분별했지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는 반쪽 진리 만을 가진 교회였다. 반쪽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는 진리가 없는 교회였다. 사랑을 버린 그들은 진리 안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기에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2-7)”
교회가 진리의 말씀, 성경에 근거한 바른 교리를 가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진리에 근거한 바른 교리를 가진 교회라면 예수님이 주신 계명을 온전히 따르므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교리를 주장하는 것을 부드럽지 못한 일로 생각하고, 어떤 교회는 아예 웹 사이트 어디를 찾아 보아도 그들이 믿는 교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교회들이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한편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교회들이 교리를 멀리하는 이유들은 여러가지로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가 교리를 주장하면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진리에 근거한 바른 교리는 우리를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해방 시켜 주는 진리이지 우리의 발목에 움직이지 못하게 채우는 쇠사슬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바른 교리가 날카로운 칼로 사람들을 자르고 찌르고 하는 도구도 아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이 싫어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바른 교리를 지키고 나름대로 진리를 지킨 교회였다. 주님은 그들이 거짓된 것을 잘 분별하고 바른 교리를 지키고 있음을 안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칭찬하셨지만,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신다. 바른 교리를 분별했지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는 반쪽 진리만을 가진 교회였다. 반쪽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는 진리가 없는 교회였다. 사랑을 버린 그들은 진리 안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기에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셨다.
나는 이제 시작한 그레이스 성경 교회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세워 나가시는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도구로 교회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들이 쓰임 받게 되기를 기도하며 이 글을 마친다.
진리를 온전히 분별하여 거짓을 멀리하고 그 진리를 실천하여 삶 속에서 사랑이 넘치는 교회인가?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사랑을 잃어 버린 교회인가?
나는 이제 시작한 그레이스 성경 교회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세워 나가시는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도구로 교회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들이 쓰임 받게 되기를 기도하며 이 글을 마친다.
한편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19-23)“
진리를 추구한다며 성경적 교리만을 내 세우지만 사랑이 없다면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사랑은 있는데 진리에 근거한 바른 교리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그 역시 진리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의 예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양 극단의 교회는 주님으로 부터 꾸지람을 들을 것이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19-23)”
두아디라 교회는 인내하고 사랑하였지만 그들은 진리를 왜곡하는 이세벨을 용납하였다.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예수님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이 저질은 배역의 행위를 벌하시겠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셨다.
그들은 서로 사랑과 믿음과 섬김으로 충성하였지만 바른 교리를 저버림으로 이러한 엄한 경고를 들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인내하고 사랑하였지만, 그들은 진리를 왜곡하는 이세벨을 용납하였다.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예수님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이 저지른 배역의 행위를 벌하시겠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신다.
에베소 교회는 바른 교리를 힘써 지켰고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잘 분별한 교회였다.
한 교회는 사랑을 잃어서 또 다른 한 교회는 교리(진리)를 잃어서 꾸지람을 들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과 믿음과 섬김으로 충성하였지만 바른 교리를 저버림으로 이러한 엄한 경고를 들었다.
2:2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한 교회는 사랑을 잃어서, 또 다른 교회는 교리(진리)를 잃어서 꾸지람을 들었다.
요한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촉구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이 싫어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바른 교리를 지키고 나름대로 진리를 지킨 교회이었던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들이 거짓된 것을 잘 분별하는 교회이었지만 이를 칭찬하시기 보다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신다. 그들은 바른 교리를 추구하며 지키는 교회였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을 잃은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는 반쪽 진리 만을 가진 교회였다. 그러나 진짜 원조 음식점이 내가 찾던 음식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반쪽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통째로 잃어 버린 교회이었다. 그들은 진리 안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기에 주님의 엄중한 꾸지람을 들었던 것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요일 3:18-19)”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요일 3:18-19)”
요한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촉구했다.
여러분이 속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요일 3:18-19 강조포함)”
우리는 요한의 촉구의 말을 명심하여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온전하게 주님께 영광 드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구 드리고 있다.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요한의 촉구를 명심하여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온전하게 주님께 영광 드리게 되고, 우리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날에 주님이 주실 큰 상급을 바라보며 온 힘을 다하여 달려 가게 되기를 주님께 간구 드린다.
진리를 고수하므로 삶 속에서 사랑이 넘치는 교회인가? 아니면 진리를 고수한다며 사랑을 잃어 버린 교회인가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진리는 뒤로 던져 버린 교회인가?
만일 그렇다면 회개하고 돌아서서 주님의 진리를 다시 높이는 개개인으로 그리고 교회로 돌아 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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