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0 [수요예배] 두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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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3:1–8 NKRV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

현리전투

현리전투는 1951년 5월 중공군의 5월공세 당시 오마치 고개가 중공군에게 점령당하여 지휘하던 3군단이 포위됐을 때 벌어진 전투로, 유재흥은 3사단장을 대리로 지정한 후 군단전체가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군단 사령부로 복귀하겠다며 경비행기를 이용해 포위망 밖으로 도주하였다. 이에 따라 3군단은 지휘통제가 불가능한 와해 상황이 되었으며, 사단장들을 비롯한 모든 지휘관들이 지휘를 포기하고 계급장을 제거한 후 살기위해 무질서한 도피를 시작했다. 결국 현리 전투의 결과 군단 병력의 30%와 중장비의 70%를 손실하게 되었고,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 장군에 의해 3군단은 해체되었다.
이 사건은 미군 지휘관들이 한국군 장교의 작전능력을 철저하게 불신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 밴 플리트 미8군사령관은 한국군의 1군단을 제외한 모든 군단 사령부를 해체하고, 일체의 작전권을 미군 장성들에게만 부여하였다. 1군단 또한 육군본부를 지휘선 상에서 제외하고 미군 사령부에서 직접적인 지휘를 받도록 하여, 이 시점부터 모든 한국군의 작전권이 상실되었다. [11]
현리 전투 중 밴플리트 미8군 사령관과의 다음 대화는 아직까지도 유명하며 현리에서의 국군의 치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밴플리트 : "유장군, 당신의 군단은 지금 어디 있소?"
유재흥 : "잘 모르겠습니다."
밴플리트 : "당신의 예하 사단은 어디 있소? 모든 포와 수송장비를 상실했단 말이오?"
유재흥 : "그런 것 같습니다."
밴플리트 :"유장군, 당신의 군단을 해체하겠소. 다른 일자리나 알아보시오!"
유재흥이라는 인물은 이전에도
제 7사단, 제 2군단을 지휘 실수로 전멸시킨 인물이었다.
마지막 제 3군단이 벌였던 현리 전투마저
한국전쟁 당시 가장 큰 패전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 사람 지휘관의 잘못은 군단 전체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어지럽게 할 수도 있다.

누가 우리의 리더인가?

예레미야 23:1–2 NKRV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22.1-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목장에서 양들을 함부로하고 흩어지게 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시며
돌보지 않고, 흩어버리며, 몰아내기까지 하는 이 악행을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왕이 존재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시길 원하신다.
그래서
예레미야 23:3 NKRV
3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목자를 세우실 것이다.
이제 이 목자를 통해
다시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리지 않을 우리를 만드실 것이다.
요한복음 10:11–16 NKRV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
요한복음 10:11–14 NKRV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이전에 있었던 목자들은 삯꾼들이다.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나라, 정의와 공의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양은 그저 가죽과 털과 고기를 주는
소모품일 뿐이다.
자신에게 위협이 닥칠때 언제든지 양을 버리고 갈 수 잇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양들을 사랑하시는 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 양들을 아프게 하는 최종적인 적을 없애시기 위해
스스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다.
이제 그 목자를 따라가는, 참된 주인을 알아보는 양들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목자를 따라가는가,
유재흥 같이 한 잘못된 리더를 따라가면 필경 죽음과 고통이 따르게 된다.
이만희, 장길자, 문선명 같은 인물을 따라가는 이들이 삯꾼을 따라가는 이들이다.
돈을 따라가는 이들도 삯꾼을 따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돈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려는 존재가 아니라, 착취하는 존재가 되었다.
뛰어난 학교, 성취, 멀리있는 비전
모두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어제 PD 수첩에서 명성교회의 숨겨진 800억 이야기가 나왔다.
요지는 교회 안에 800억의 숨겨진 비자금이 있었고
그것을 비밀리에 관리하는 장로가 잇었으며
교회에 부동산이 많아서, 그것을 전담으로 관리하는 부목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장로가 자살을 했고,
김삼환 목사가 세습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비자금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맨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가
충격적이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치욕스럽다.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고백이 세상 TV에 나오는데
교회는 그 주님을 돈과 맞바꾸고 있다는 것을 조롱하고 풍자한다.
이 치욕스러움.
우리는 지금 어떤 리더십을 따라가고 있는가?
어쩌면 지금 한국교회에 양 떼가 흩어지고 있는 이유,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로 말미암아
악을 행하는 목회자,
하나님의 분노의 손이 우리 눈 앞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치열한 전쟁속에 유재흥을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리더를 보내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의 약속을 기억하셨을 뿐만 아니라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시길 원하신다.
그래서
예레미야 23:3 NKRV
3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목자를 세우실 것이다.
이제 이 목자를 통해
다시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리지 않을 우리를 만드실 것이다.
이 새로운 목자는 다윗과 같을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길을 걸어갈 때도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우리 주님이다.
주님이 걸어가라고 하시는 길은
예레미야 23:5 NKRV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비록 우리 눈으로 보기에 사망의 음침한 길이라 할지라도
생명과 평강의 길이다.
그러나 다윗을 따라가는 길은 결코
23.5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새로운 다윗은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평안히 살 것이며, 구원을 받을 것이고
잃어버린 자들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길로 행했을 때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다윗의 시작을 살펴보면,
이 리더를 따라가는 것이
결코 세상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시 23편은 이 리더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잘 보여주는 노래다.
시편 23 NKRV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의 이 노래는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 여전히 살아있는 원수에 대해서 노래한다.
다윗은 늘 도망자였다.
사울은 다윗이 가는 곳마다 쫓아가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죽였다.
다윗이 머무는 ‘성'마다 다윗을 사울에게 고발했다.
그래서 다윗은 [광야]로 간다.
광야는 어떤 위협이 어디에서, 어떤 방향으로 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다윗은 400명의 환난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드는 것을 받아주었다.
사람이 늘어나자 더이상 굴에 숨을 수 없었던 다윗은 적진으로 도망한다.
모압의 미스베였다. 그곳에 부모님을 두고 그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때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로 와서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는 명령을 듣는다.
다윗은 곧장 순종한다.
헤렛 수풀로 간다.
여기에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는 요새를 떠났다. 안전해 보이는 곳을 떠났다.
그는 자신을 가려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수풀로 갔다.
게다가 주변 성들은 늘 다윗을 함부로 대했다.
한번은 그일라에 가서 그들을 블레셋의 학대로부터 구해주었는데,
그들 마음 속에 사울이 오면 넘겨주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자 다윗은 더 늘어난 600명의 군사들과 그일라를 떠나
광야의 요새와 십 광야 사이를 배회했다.
마온에 있는 한 사람 나발은 엄청난 부자였는데,
그 부자는 다윗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단칼에 거절한다.
오히려 주인을 억지로 떠난 ‘종'이라며 경멸한다.
다윗의 인생은 늘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억울함과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안전한 요새에서 벗어나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수풀' 밖에 없는 곳으로
쫓겨났다.
이 리더가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하는 리더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것을 떠나야 하는 리더다.
쫓겨나는 리더이며, 광야로 나가야 하며
어두침침한 동굴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원수가 나를 노리는데 노출되도록
떠나야한다.

참된 리더를 따라가는 길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노래한다.
시편 18:1–2 NKRV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18.
요새는 나의 반석이 아니다.
나를 보호해주는 것은 어두침침한 굴이 아니다.
나의 무기는 칼과 단창이 아니다.
오로지 ‘여호와'가 나의 반석이시요, 요새시요,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피할 동굴,
방패, 구원의 뿔, 내가 피할 산성이시다.
다윗은 아무것도 가려줄 것 없는 광야로 쫓겨났지만,
그곳에서 나를 영원히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우리 인생이 이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중일 수 있다.
출구도 보이지 않고, 왜 이런 골짜기로 걸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내 인생을 가로막는 방해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아이들의 방패막이로 살고있지만,
나에게도 그 방패막이가 간절하게 필요하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답이 없이 여전히 살아있는 원수들도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지금 이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정말 끔찍한 원수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원수는 끊임없이 우리의 목을 조여오고 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정말 지켜주시는 분이 누구인지 안다.
세상의 아무리 안전하다고 말하는 건축물도,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을 때, 지진과 해일로 단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본다.
인간의 아주 강력한 경제 체제와 군사력도
하나님의 손에 빠질 때 속수무책으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가
우리가 참된 목자를 선택할 때,
비록 고통과 암흑의 통로를 지나게 된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약속한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거하게 되는 곳은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가 있는
우리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다.

우리의 리더 예수를 따라가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다.
요한복음 10:11–16 NKRV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양떼를 흩어버리고, 몰아내고, 돌보지 않는
이전에 있었던 목자들은 삯꾼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나라, 정의와 공의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양은 그저 가죽과 털과 고기를 주는 소모품일 뿐이다.
소모품일 뿐이다.
자신에게 위협이 닥칠때 언제든지 양을 버리고 갈 수 잇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양들을 사랑하시는 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 양들을 아프게 하는 최종적인 적을 없애시기 위해
스스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다.
이제 그 목자를 따라가는, 참된 주인을 알아보는 양들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시편 23 NKRV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새로운 목자, 다윗의 의로운 가지는
시편 23:4 NKRV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실 것이다.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성읍을 피하실 것이다.
요새를 떠나 수풀로 인도하실 것이다.
마가복음 6장은 이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마가복음 6:34–36 NKRV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마가복음 6:34 NKRV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빈 들에 두셨다.
여러가지로 가르치심으로 영적인 양식을 베푸셨다.
그리고 육체적인 배고픔도 해결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돈이 없었다.
빈 들이다. 광야다. 안전한 곳이 아니다.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을 뿐더러
지금 헤롯에게 처형당한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살벌히 퍼지고 있는
원수의 목전이다.
그러나 그들이 빈 들에 있을 때,
예수만 오롯이 바라보고 있을 때
주님은 그들의 영적인, 육적인 필요를 다 채우셨다.
그런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하신다.
마태복음 16:24 NKRV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매 순간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안전한 성읍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따를 때
고린도전서 1:18 NKRV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의 눈으로는 미련하고 보잘것 없고 위험천만한 행동이지만,
구원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성주가 곧 안시성.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 나라.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당 태종은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의 변방 안시성을 침공한다.  20만 당나라 최강 대군 VS 5천명의 안시성 군사들.  40배의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전사들은 당나라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영화에서 양만춘은 굉장히 불안한 인물이다.
고구려의 대막리지인 연개소문에 반대해 반역자로 찍힌 인물이다.
실재 역사 기록에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양만춘은 안시성 안에서 매우 인간적인 리더로 등장한다.
성읍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일일히 돌볼 줄 알며,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집에 직접 찾아가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질문한다.
수레가 빠져 있을 때 직접 팔을 걷어붙여 도와주며
성벽을 수리하는데도 직접 참여한다.
대사에서 이런 말이 등장한다.
안시성이 어떤 성이냐고? 성주가 곧 안시성이다.
그런 성주가 말도 안돼는 전투에 참여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항복이라는 걸 배우지 못했다!
우리의 성주가 누구인가? / 하나님 나라, 교회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 나라, 교회 라고 고백하는가?
하나님
그렇다면,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을 듣자.
세상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우리의 뼈저린 원수들에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햇다.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항복이라는 걸 배우지 못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자!
오늘 그 천국을 소망하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여전히 우리가 싸워야 하는 문제들에 굴복하지 않고
예수님만 따라가기를 결단하며 기도할 수 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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