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주일 대비 설교(금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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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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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작성

2차(1차 생략)
서론
태신자 전도주일을 앞두고 있음
전도의 어려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본론
우리의 죄인됨을 인정
본문의 청자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이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본문에서 주인은 양 100마리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평민은 5-15마리의 가축을 가진다. 오늘 본문의 목자는 부자다.
이것은 일반 평민에 비해 비유하고 권력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한 본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은 겔 34에 나오는 제사장들의 모습과 같다.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에스겔 34 NKRV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 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서 심판하리라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 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에의 나무를 꺾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 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도 아니하고 평안히 거주하리니 놀랠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들을 위하여 파종할 좋은 땅을 일으키리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할지며 다시는 여러 나라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지라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42 NKRV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쪽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 뜰을 향하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 건물을 향하였는데 그 방들의 자리의 길이는 백 척이요 너비는 쉰 척이며 그 문은 북쪽을 향하였고 그 방 삼층에 회랑들이 있는데 한 방의 회랑은 스무 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다른 한 방의 회랑은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너비는 열 척이요 길이는 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쪽을 향하였으며 그 위층의 방은 가장 좁으니 이는 회랑들로 말미암아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위층이 더 줄어짐이라 그 방은 삼층인데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위층이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길이는 쉰 척이니 바깥뜰로 향한 방의 길이는 쉰 척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백 척이며 이 방들 아래에 동쪽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남쪽 골방 뜰 맞은쪽과 남쪽 건물 맞은쪽에도 방 둘이 있는데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쪽 방 같고 그 길이와 너비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이 남쪽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쪽 길 어귀에 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그가 안에 있는 성전 측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쪽을 향한 문의 길로 나가서 사방 담을 측량하는데 그가 측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북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남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서쪽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측량하니 오백 척이라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우리는 전도자로서 부름을 받았다.
그 첫번째는 우리가 죄인임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우리가 복음에 빚진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인정에서 복음에 대한 책임감이 나온다. 그저 삯꾼이 아니라 양을 맡은 목자라는 사실이다.
2.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빚진자임을 알았지만 부족하다.
책임감만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목자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양은 무리를 이루는 동물이다.
양이 무리에서 떨어지면 매우 쉽게 혼란스러워지며, 어쩔줄몰라하게 된다.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포식자를 부르는 행위다. 그래서 목자는 최대한 빨리 양을 찾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양을 어께에 메었다고 나온다.
이 것은 먼거리를 양과 함께 이동할 때 쓰는 가장 편한 방법이다. 그래서 양을 어깨에 매었다는 것은 양을 찾은 곳이 원 장소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이란 것을 뜻한다.
목자가 양을 위해 먼곳까지 찾아 헤맸다는 의미다.
양의 향한 간절한 마음이 바로 목자의 마음이다.
양을 찾기위해 먼길을 정처없이 헤메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잃은 동물이나 자식을 찾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것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꼭 찾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다. 그 간절함은 사랑에서 비롯한다. 양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고있기에 목자는 양을 찾아다닌다.
우리에게는 이런 아버지의 사랑이 있는가.
결론
태신자 전도주일
우리는 어떤 심정인가.
혹시 피곤하고 부담스러운가.
우리가 누구인지 생각하자. 우리는 죄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댓가를 치른 죄인이다.
온 우주보다 크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빚진 자들이다.
이 빚진자의 심정을 잊지 말자.
또한 목자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알자.
양을 알고 양이 어떤지 알기에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목자, 아버지의 수고와 마음을 알자.
양을 향한 간절한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자.
그 사랑때문에 우리가 여기 서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자신의 아들과 딸을 찾기를 원하신다.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 헤메고 계신다.
그 마음을 가지자.
그래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태신자 전도주일이 되기를
천국에서 잔치가 끊이질 않는 태신자 전도주일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 잔치에 잃은 양과 함께 참여할 수있기를
설교
서론
이제 이틀후면 태신자 전도주일입니다. 모두들 어떤 심정이십니까. 당연히 부담감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전도는 정말 힘듭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게 어떤 때는 편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과 하나될 수있기를 소원합니다.
본론
우리가 전도를 하기전이나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2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전도의 방법은 결국 스킬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방법이 잘 맞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런 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두가지가 없다면 전도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 될 것입니다.
그중 첫 번째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빚진자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향해 말씀하십니까. 일반적인 백성들입니까. 아닙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의롭고 정결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라는 예수님이 저런 죄인들, 불결한 자들과 어울린다고 수군수군 댑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양100마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평민이 가지는 가축수는 5마리에서 15마리에 불과합니다. 양이 아니라 집에 있는 나귀등 모든 가축을 합친 숫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목자는 100마리나 되는 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평민이 아닙니다. 부자입니다.
이것은 이 말씀이 권력과 힘이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한 말씀이란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목자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가 하는 행동을 통해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과 마음이 얼마나 죄로 가득차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에스겔34장 2-3절에는
()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서론
()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것이 바로 성경을 읽고 필사하고 연구하는 일이니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난 후 16장 14절에서 비웃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전도자가 아니라,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 전부와도 바꿀수 없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이제 이틀후면 태신자 전도주일입니다. 모두들 어떤 심정이십니까. 당연히 부담감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전도는 정말 힘듭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게 어떤 때는 편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과 하나될 수있기를 소원합니다.본론 우리가 전도를 하기전이나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2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전도의 방법은 결국 스킬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방법이 잘 맞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런 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두가지가 없다면 전도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 될 것입니다.그중 첫 번째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빚진자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향해 말씀하십니까. 일반적인 백성들입니까. 아닙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이들은 자신이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의롭고 정결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라는 예수님이 저런 죄인들, 불결한 자들과 어울린다고 수군수군 댑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오늘의 본문입니다.오늘 본문에서는 양100마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평민이 가지는 가축수는 5마리에서 15마리에 불과합니다. 양이 아니라 집에 있는 나귀등 모든 가축을 합친 숫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목자는 100마리나 되는 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평민이 아닙니다. 부자입니다. 이것은 이 말씀이 권력과 힘이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한 말씀이란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목자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가 하는 행동을 통해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과 마음이 얼마나 죄로 가득차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에스겔34장 2-3절에는()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것이 바로 성경을 읽고 필사하고 연구하는 일이니 당연합니다.그러나 그들은 결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난 후 16장 14절에서 비웃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전도자가 아니라,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 전부와도 바꿀수 없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빚진자의 심정을 가지기 원합니다.빚진자는 어떻게든 그 빚을 갚기위해 노력합니다. 빨리 그 빚을 다 갚아버리고 그 무거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우리 모두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먹을 것을 줄이며, 입을 옷도 사지 않고, 아끼며 빚을 갚아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빚을 다 갚았을 때, 너무나 기뻐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복음에 빚진자, 생명을 빚진자란 의식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 심정이 없다면 우리는 복음에 무감각해질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께 얻을 것에 더욱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무엇을 달라, 무엇을 달라는 기도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빚진 자의 심정이 있기를 원합니다. 만달란트 빚진 종이 그 임금에게 애걸복걸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빚을 어찌하지 못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갈수 있기를 원하는 심정이 있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빚진 자의 심정이 없다면, 복음은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합니다. 그저 마음에 평안을 얻고 세상을 든든히 살아갈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천국은 우리의 사후를 보장하는 보험상품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갖지 못한 자도 부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받게 하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버지를 이용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자식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우리는 목자의 심정,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목자로서 양들을 방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결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이 말씀처럼 양을 찾고 찾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왜냐면 목자는 양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양은 무리를 이루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그 무리에서 떨어지면 매우 쉽게 평정심을 잃어버립니다.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면서 크게 웁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양은 더욱 위험해집니다. 돌아다닐수록 무리에서 떨어집니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 올 것은 양을 잡아먹을 사자나 곰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정말 간절히 양을 찾아다닙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이것은 양과 함께 먼거리를 이동할 때 쓰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는 것은 목자가 멀리까지 오랜 시간 양을 찾아 헤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만큼 간절히 찾고 찾았다는 뜻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10번은 넘게 반복해서 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가 4살 때, 교회에서 대공원으로 놀러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버스가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 저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찾아헤메었는지 모른다고, 애를 못찾았는데 버스가 떠나려고 하자 악을 써가며 버스를 못떠나가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잃은 양, 잃어버린 아들과 딸들을 찾아 헤메고 계십니다. 바로 사랑이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태신자들을 초청하고 있습니까. 물론 오래 봤다지만, 남인 태신자들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로서,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기를 원합니다. 양을 찾기 위해 독생자의 생명을 버리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태신자전도주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 이 모든 것은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아버지 홀로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형제 자매들이 아버지의 심정을 알고 함께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함께 찾았을 때의 기쁨을 나누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만약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라면, 다른 형제 자매를 찾든지 말든지라고 반응하는 냉담한 자녀의 태도가 어떻게 느껴지겠습니까. 상처받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못을 박는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결론 우리는 오늘 전도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전도에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먼저 우리가 죄인이란 사실,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빚진 자라는 사실을 느끼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든지 내가 복받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빚의 무거움에 하나님앞에 엎드릴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잃은 형제 자매들을 찾아 헤멜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헤메는 과정은 힘들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그 모든 과정에 복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성령께서 동행하십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마음과 합하여 져서 이 태신자전도주일이 천국잔치가 끊이질 않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를 위해 지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빚진자의 심정을 가지기 원합니다.
빚진자는 어떻게든 그 빚을 갚기위해 노력합니다. 빨리 그 빚을 다 갚아버리고 그 무거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우리 모두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먹을 것을 줄이며, 입을 옷도 사지 않고, 아끼며 빚을 갚아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빚을 다 갚았을 때, 너무나 기뻐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복음에 빚진자, 생명을 빚진자란 의식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 심정이 없다면 우리는 복음에 무감각해질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께 얻을 것에 더욱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무엇을 달라, 무엇을 달라는 기도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빚진 자의 심정이 있기를 원합니다. 만달란트 빚진 종이 그 임금에게 애걸복걸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빚을 어찌하지 못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갈수 있기를 원하는 심정이 있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빚진 자의 심정이 없다면, 복음은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합니다. 그저 마음에 평안을 얻고 세상을 든든히 살아갈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천국은 우리의 사후를 보장하는 보험상품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갖지 못한 자도 부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받게 하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버지를 이용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자식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우리는 목자의 심정,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목자로서 양들을 방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결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이 말씀처럼 양을 찾고 찾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왜냐면 목자는 양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양은 무리를 이루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그 무리에서 떨어지면 매우 쉽게 평정심을 잃어버립니다.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면서 크게 웁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양은 더욱 위험해집니다. 돌아다닐수록 무리에서 떨어집니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 올 것은 양을 잡아먹을 사자나 곰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정말 간절히 양을 찾아다닙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이것은 양과 함께 먼거리를 이동할 때 쓰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는 것은 목자가 멀리까지 오랜 시간 양을 찾아 헤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만큼 간절히 찾고 찾았다는 뜻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10번은 넘게 반복해서 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가 4살 때, 교회에서 대공원으로 놀러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버스가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 저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찾아헤메었는지 모른다고, 애를 못찾았는데 버스가 떠나려고 하자 악을 써가며 버스를 못떠나가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잃은 양, 잃어버린 아들과 딸들을 찾아 헤메고 계십니다. 바로 사랑이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태신자들을 초청하고 있습니까. 물론 오래 봤다지만, 남인 태신자들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로서,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기를 원합니다. 양을 찾기 위해 독생자의 생명을 버리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태신자전도주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 이 모든 것은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아버지 홀로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형제 자매들이 아버지의 심정을 알고 함께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함께 찾았을 때의 기쁨을 나누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만약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라면, 다른 형제 자매를 찾든지 말든지라고 반응하는 냉담한 자녀의 태도가 어떻게 느껴지겠습니까. 상처받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못을 박는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결론
우리는 오늘 전도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전도에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먼저 우리가 죄인이란 사실,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빚진 자라는 사실을 느끼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든지 내가 복받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빚의 무거움에 하나님앞에 엎드릴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잃은 형제 자매들을 찾아 헤멜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헤메는 과정은 힘들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그 모든 과정에 복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성령께서 동행하십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마음과 합하여 져서 이 태신자전도주일이 천국잔치가 끊이질 않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를 위해 지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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