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29 로스쿨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37 views
Notes
Transcript
# 빛과 어둠
창세기 1:1–5 NKRV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설교자의 자기 아이 이야기를 하는 것 . 팔불출, 부끄러운 것.
그러나 어쩔 수없이 하는 것은 아빠가 되었기 때문.
119 구급차를 타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님.
정말 위급한 환자를 싣고 가는 상황을 보기 때문.
피를 흘리며가는 사람.
정말 아예 움직일 수 없어서 거구의 몸을 들쳐 업어야 하는 상황
정말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싶은 화상을 입어 실려가는 사람.
산소호흡기와 CPR을 가는 내내 하는 일 등.
그런데 그 차에 이제 태어난 지 3시간 채 안되는 너무 조그맣고 예쁜 아이가
작은 이동용 인큐베이터 안에서 실려가는 모습을 보니
그때의 그 기억들이 스치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
아. 이런게 아빠가 되는 거구나.
그 아이를 이렇게 보며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음.
아이는 내가 키우는게 아니구나.
‘하나님이 키우시는' 거구나.
우리는 때로 우리 힘으로 무언가를 한다고 착각할 때가 많음.
하지만 우리는 매번 경험하고 실수하듯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음.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완전한 질서를 찾게 됨.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어떤 방법으로 창조하셨는지,
창조자는 어떤 모습인지 발견하게 됨.
1.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조 하시는 시작점, 발화점이 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계신 분-
‘무에서 창조’는 어거스틴이 말함.
‘무’로부터의 창조는 많은 오해를 낳은 개념
하지만, 본문은 어떤 물질을 무에서 만들었다에 그다지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음.
만약에 물질을 어떻게 무에서 만들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엄청난 수식같은 것을 고대인들에게 알려주시고 이해시키셔서 우주의 원리를 알게 하셨어야 함.
하지만 본문이 하고자 하는 일은 단순하게
이 우주의 질서와 규칙을 만든 분이 계신데, 그분이 ‘하나님이다’
다시 말하면 본문은 ‘물질’의 창조에 관심이 아닌, ‘누가 창조’하셨는가에 대한 관심.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
‘무로부터의 창조’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2절에서 명확하게 드러남.
하나님께서 1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2절의 땅은 무엇이고, 9절의 뭍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음.
단지 1절은 표제어 처럼 ‘제목’으로 이해하는 것이 다수 학자의 의견.
그렇다면 2절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은 위에 있다.
-> 우주의 무질서에 대한 표현
이 무질서 속에서 일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바로 ‘하나님의 영’ (성령)
무질서의 혼돈함과 공허함을
‘수면에 운행하다’ ‘품다’
3. ‘이르시되’ - ‘있었다’
우리는 창조가 없었던 것을 있게 만드는 마술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음.
하지만 오늘 본문의 구조를 잘 살펴보면,
창조는 naming 이름짓기 - operating 작동하기 - oderly 질서정연함 - praise 칭찬
이름을 짓는 것, ‘정의’ definition 하는 것이 창세기가 말하는 창조.
물론 하나님이 천지를 물질적으로 창조하셨지만, 그것이 창세기,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인 전달 의도가 아니라는 것.
하나님께서 ‘정의’ 내리심으로 혼돈 가운데 있던 것들이 ‘질서’를 잡고 ‘좋게’변하는 과정을 [창조]라고 말하고 있는 것.
여기에서 ‘정의’내림이 바로 [언어], 헬라식으로는 우주질서 ‘로고스’, 성경으로는 ‘말씀’
곧 예수님.
그러니까, 이 이름짓기의 과정 속에 예수님은 질서를 세우시는 ‘지혜’
만물의 통치자로 등장하시는 것.
::정리::
누가 창조했는가? - 하나님
누가 품고 운행하시는가? - 성령님
누가 질서를 만드시는가? - 예수님
창세기의 창조 관점은 ‘물질’이 아니라 ‘질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맡기신 일.
창세기 2:19 NKRV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이름짓기
창세기 2:15 NKRV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경작하기 (agriculture -> culture, cultivate)
‘정의’ 내리고, ‘질서’있게 만드는 것.
사람에게 맡기신 일.
특별히 ‘어두움’과 ‘빛’을 나누시는 것을 묵상.
우리 인생의 어두움은 때로 ‘무질서’일 수도 있고 ‘비질서’일수도 있음.
‘무질서’는 우리가 말하는 ‘악’한 상태는 아니지만,
혼돈과 공허함을 가져다 주는 상태.
‘비질서’는 오염되고 깨져서 질서를 파괴하는 상태.
적극적으로 질서를 거부하며 질서정연한 상태, 선한 상태를 거부하는 상태.
-> 우리는 이것을 ‘죄’라고 부름.
지금 공부하는 상황이
때로 혼돈하고 공허한 ‘무질서’의 시기일 수 있고
때로 완전히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비질서’의 시기일 수 있음.
우리의 이 어두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름짓기, ‘정의’내리기는 훌륭한 돌파구.
우리 인생의 ‘정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로 훌륭하게 내릴 수 있음.
내 인생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따라가는 인생으로 정의내리는 것은 놀라운 ‘정의’
돈, 명예, 출세, 높은 성취가 우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을 작동하는 유일한 ‘언어’, ‘정의’가 되도록 하는 것.
우리의 공부에도 정의를 내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음.
왜 내가 이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
이 공부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질서 세우기 -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실재적인 핵심.
우리의 시간에 대한 질서, 공간에 대한 질서를 세우는 것이 참 중요함.
시간 관리, 청소 :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참 힘든 일.
때로 시간이 주는 압박감은 우리를 무질서, 비질서로 데려가기도 함.
마음껏 게임, 영화, 인터넷에 취하는 것 - 어쩌면 시간에 대한 비질서.
알쓸신잡 - 유시민의 라우렌치아 도서관 이야기.
이 도서관의 입구는 독특한데, 사방이 막혀있는 어두움의 공간.
계단도 어두운 색의 돌.
아래는 넓고 점점 좁아지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음.
그리고 그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창문들로 쏟아져들어오는 빛을 맞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
무식과 무지의 어두움의 공간에서 점점 좁아지는, 마치 좁은 길로 들어가는 것 같은
인고의 시간을 건너면 ‘지식과 질서’를 가져다 주는 '빛'을 만나리라는 것이
미켈란젤로의 의도 였을 것이다 -
빛으로 나가는 삶.
질서있는 삶으로, ‘정의’ 내림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방향을 갖는 삶으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질이지 않겠는가.
이럼으로 우리가 얻는 위로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비질서’를 유도하지 않으셨음. ‘무질서’를 ‘질서’있게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다음 공을 ‘인간’에게 넘겨주셨을 뿐.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무질서’가운데서도 손놓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수면에 운행하심으로 지켜주실 것.
그리고 여전히 싸워야할 ‘비질서’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하시는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
아이가 구급차에 실리고 손가락만한 얼굴에서 숨을 가쁘게 쉬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이 아이 키우시고 자라게 하신다'
확신이 드는 순간.
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모든 계획을 수정.
새로운 정의. 내 아이가 아닌 하나님의 아이.
그리고 질서를 만드시는 분께 구하고 요청하는 것.
우리의 질서, 나의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로 만들어 달라고.
모든 가슴아픈, 어려움들이 사라지고
어두움에 빛이 찾아오는 경험.
평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음.
작은 간증이지만, 기도가 아이를 낫게 한 것처럼.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돼,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실 것.
우주의 창조자이신 분께 피하면,
어떤 상황과 환경의 무질서와 비질서가 우리를 무너뜨리려 해도.
반드시 우리를 지키실 것.
시편 46:1–3 NKRV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