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경건한 삶의 지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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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소중함과 죄악에 대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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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삶의 지혜
~35
본문 이해
말씀의 소중함과 죄악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제일 먼저 말씀보기를 생명처럼 대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이 우리 삶의 등불이 되고, 주의 훈계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어서 음행에 대한 경고인데, 남의 아내를 품는 것은 맨 몸으로 불을 품는 것이고, 맨 발로 숯불 위를 걸어가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나는 괜찮겠지, 하는 순간 옷이 타고 내 몸이 데이게 될 것입니다. 도둑질에 대한 경고도 주어지는데, 탐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패가망신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정욕을 다스리지 못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성(性)의 문제, 음행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한 문제입니다. 그것이 깊은데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일인 만큼 뿌리 깊은 문제이고 사람들의 본성에 깊이 자리한 만큼 누구나 범할 수 있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어 쉽게 범 할 수 있는 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범한 자는 예삿일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스스로 헤어나지 못할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본 단락 27,28절에 언급된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그야말로 개인의 삶의 순수성과 신앙의 순수성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본 단락의 내용은 모든 세대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먼저 선결하고 지켜져야 할 중요한 말씀이며, 특히 부부 사이를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처럼 오래도록 지속시켜 가야 하는 성도들이 깊이 묵상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설교 방향
성도로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요? 첫째, 말씀보기를 생명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주의 말씀이 내 삶의 빛이요, 나의 생명이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둘째, 음행 보기를 숯불 같이 하랍니다. 남의 아내를 품는 것은 맨 몸으로 불을 품고, 맨 발로 숯불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유혹에 넘어가면 이 뻔한 현실이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셋째, 탐심 보기를 재앙같이 하라 하십니다. 도둑질을 남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을 잃는 처사입니다.
서론과 우산 질문
오늘의 말씀은, 경건한 삶의 지혜입니다. 성도로서 이 땅을 살아갈 때, 다른 이들과 구별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본문은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을 몇 가지 일러주십니다. 마음에 새겨 실천하기를 소망합니다.
대지1
먼저, 말씀 보기를 생명같이 하라 하십니다. 성도의 경건은 말씀에서 나옵니다. 20절에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문자적으로 부모의 가르침으로 나오지만, 부모가 가르쳐야 할 것이 주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주의 교훈과 말씀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로 받아도 좋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23절에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와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여기서 명령과 법과 훈계의 책망이란 결국 지혜의 말씀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말은 모두가 강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군인에게 있어서 명령 불복종은 곧 죽음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법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에도 그에 상응하는 법적 제재가 가해집니다. 그리고 훈계의 책망을 불순종할 경우 엄한 체벌과 징계가 따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바로 하 나님의 말씀이 이처럼 강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속력을 지니고 있어서 때로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기도 하며, 때로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제한하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것과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억압의 사슬이라고 생각하였고,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발전할수록 이러한 인간에게 주어진 억압과 구속을 풀어 자유케 하는 것이 참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며 인간 해방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겨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군대에서 동성애를 허락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인간의 생각은 오히려 그들에게 참 자유를 주기보다는 죄와 방탕과 방종의 노예가 되게 하였고 그들의 육신과 영혼은 어둠에 사로잡혀 오히려 더 큰 죄의 속박과 사슬에 얽어매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종국에 그들은 철저한 어둠에 사로잡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 바로 군대입니다. 훌륭한 군인이란 자기 나름대로의 개성과 뛰어남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상사의 명령에 아무런 이의 없이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명령에 죽고 사는 것이 바로 군대의 힘인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불합리해 보이고 옳지 않아 보여도 상명하복의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령에 불복하고 자기 임의로 행하는 자는 군법에 회부되어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그러한 군대는 점점 무기력해져 적의 침략에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그에 속한 모든 이들이 멸절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수류탄 투척에 사고로 죽으니 무섭다고 그러면 열외 시킨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비유하면서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4)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만이 성도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길이며 또한 그의 길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말씀 하였던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삶에 등불과 빛이 되고, 말씀이 주는 책망과 훈계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아멘!
대지2
둘째, 음행 보기를 숯불 같이 하라. 우리가 음행의 유혹에 기울어지는 이유는, 거기에 인간적인 쾌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고하기를, 음행은 쾌락으로 포장된 숯불입니다. 27절에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남의 여인을 품는 것은 맨 몸으로 불을 품는 것이요, 28절에는 맨 발로 숯불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경고합니다. 우선 27.28절에서 솔로몬은 반어법적 비유를 사용하여 불을 품은 자가 옷이 타고 숯불을 밟은 자의 발이 데는 것처럼 음행을 행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과 보응을 모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29절에서는 그리고 음란한 목적을 가진 모든 육체적 접근까지도 하나님의 가혹한 심판적 보응을 모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그 누구도 음행의 죄에서 자유할 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적 보응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즉 음행을 비롯한 모든 죄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행동의 결과로만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품은 악한 생각과 목적 또한 하나님께서 보시고 판단하시는 심판의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도라고 해서 죄에 대하여 결코 자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외형적인 죄에 대해서는 억제하고 금하려고 노력할 수 있지만 마음의 욕구조차 지워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마음을 지켜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더러운 구정물에 빠진 사람이 옷만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고 그 위에 향수를 뿌린다고 속에서 나는 악취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향수와 썩은 악취가 섞여서 더욱 역한 냄새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우리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죄의 정욕, 음욕을 씻어내지 못한 채 겉모습만을 치장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정결해지고 고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이 씻고 내면으로부터 의와 거룩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에만 우리의 삶은 거룩하고 정결한 것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나는 괜찮겠지, 하는 순간 재앙이 시작됩니다.
대지3
마지막 셋째, 탐심 보기를 재앙 같이 하라. 30절에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도둑을 조금 이해하는 듯한 문구입니다. 그러나 31절에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 도둑질을 들키지 말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탐심의 결국은 내 모든 것을 잃는 재앙임을 경고합니다. 본문은 본 문단의 주제인 음행과 간음이 필연적으로 가져올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강조하고자 인용된 말씀입니다. 즉 아무리 주리고 배고파 절도 죄를 범하였고 비록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를 동정하고 불쌍히 여긴다 할지라도 그는 율법이 정한 죄의 대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을 다 갚고자 자신의 집을 다 내어주는 것 또한 감수해야 할진대 하물며 고의적인 음행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서 예외 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을 통해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는 죄라는 것은 그 경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무섭고 두려운 것이며 우리의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심각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용납하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상관없이 철저히 모든 죄에는 응당 그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며 생명으로서 그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돌은 물보다 무겁기 때문에 반드시 바닥으로 가라앉게 마련입니다. 돌이 작다고 해서 물에 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속도가 다를 뿐 모든 돌은 물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크기는 다를 수 있고, 경중이 있을 수 있지만 살인이나 간음이나 우상 숭배와 같은 큰 죄뿐 아니라 거짓말이나 불신이나 미워함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죄라 할지라도 모두 하나님의 심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결론과 도전
여러분, 오늘 솔로몬은 지혜자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간음의 죄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교훈은 오늘날 우리 교회가 반드시 명심하고 명심해야 할 교훈일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수많은 간음과 음행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멸망을 목전에 두고 행했던 온갖 영육의 간음 및 음행과 비교 될 정도로 심각한 죄악, 곧 파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가증한 죄악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일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공동체, 가정을 파탄의 궁지에 몰아넣는 죄악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엇보다 육신과 영혼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며 이를 더럽히는 간음과 음행의 죄를 벗고 정결함과 거룩함의 옷을 입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 분 모두가 주의 신부된 신분을 잊지 않으며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신 예복을 더럽히지 않고 정결하고 순결한 주의 신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경건한 삶의 지혜입니다. 성도로서 이름에 걸맞게 경건하고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말씀을 생명처럼, 음행은 숯불처럼, 탐심보기를 재앙처럼 여기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으로 성적인 유혹을 이기게 해 주십시오. 음행의 유혹으로부터 나의 몸과 영혼을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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