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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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 찬양
주와 같이 길가는 것(430), 주안에 있는 나에게(370), 그 사랑 얼마나
감사되게 하라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나가시더라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19: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19: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19: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감사하는 것과 감사되게 하는 것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내가 받은 것이 있어서 감사한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 있으면 감사해 할 수 있습니다.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받으면 독이 되어 투덜거리지만, 받아야 할 것을 받으면 감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사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입니다. 받는 사람은 필요한 것을 받아서 감사한 것이고, 줄 수 있는 사람은 줄 수 있어서 감사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고 있는 삭개오는 어떤 사람입니까? 받은 것 때문에 변화된 사람입니다..
이미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삭개오는 세상에서 주는 것을 쥐고 있을 땐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무엇인가 받고 난 후 그때부터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무엇으로 그를 감사되게 하셔서 변화시키셨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무엇으로 그를 감사되게 하셨고,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감사되게 하려면
1. 필요한 것을 보고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세리장입니다. 세금을 걷는 사람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세무 공무원입니다. 21세기 한국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직업이죠.
그러나 당시 세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을까요?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지금 기도하고 있는 바리새인이 있습니다.
그의 기도 내용을 보니, 세리토색하는자라 말합니다. 토색하는자란 사기꾼이라는 것입니다. 불의하는자라 합니다. 불의 하는자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인입니다.
간음을 하는 자와 같다 말합니다. 간음한 자란 하나님을 영적으로 배교한자입니다. 배신자죠. 이런 세리를 보면서 바리새인은 먼저 정죄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가지고 기도한 것이죠.
이 기도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입니다. 참 정말 편치않는 기도입니다.
세리들, 나라의 세금을 걷는 사람들은 사기꾼, 죄인, 음난한 배교자입니다. 유대인 사이에서 이렇게 평가받은 사람은 벌써 죽어도 죽임을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세리들은 로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었기에 죽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날까로운 시선으로 정죄하는 것입니다.
세리들을 바라보는 정죄눈빛이 있기에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는 외톨이가 됩니다. 한마디로 철저한 왕따가 된 것입니다. 시대의 죄인기 때문에 자신을 쳐다보는 눈 빛만으로도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 시선은 아무말을 하지 않아도 마치 독화살을 맞는 느낍니다.
왜죠? 그런 눈빛 만으로도 아프기 때문입니다.
외톨이 세리장 삭개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돈을 많이 법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으로도 권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기에 늘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늘 자신을 따라다니는 딱지는 죄인이라는 손가락질입니다.
그런 그에게 한가지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나가시더라
누가 왔다는 소식입니까? 내가 살고 있는 여리고성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삭개오의 가슴이, 의지와 상관없이 쉴새 없이 뛰고 있는 것일까요?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자신과 같은 세리도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았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것입니다.
삭개오는 생각합니다.
나도 주님 앞에 나아가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세리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은 세리장인데…… 이런 생각이 앞서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듭니다. 갈등하고 갈등하고 있는 그에게 예수님이 여리고성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는 그 소식을 듣자 마자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쪽으로 발길이 향합니다.
용기를 내어서 예수님께 왔지만 문제는 키입니다. 얼마나 작았으면 예수님이 숲에 싸여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싸여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순간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나무를 사다리 삼아 올라가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삭개오를 먼저 알아보십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이 나무에 올라가 있는 세리장을 쳐다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순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합니다. 예수님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아셨지?
삭개오야 하는 이름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서 샘 솟듯 기쁨이 넘쳐납니다.
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오는지 모르겠지만, 삭개오는 빨래 내려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나무에 올라가 있는 세리장을 보고 왜 이름을 부르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처럼 자신을 부를 때 사기꾼, 죄인, 음녀와 같은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고 왜 이름을 불러 주셨을까요?
예수님은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부자입니다. 삭개오는 권력을 잡은 세리장입니다.
다시 말해 돈으로나 권력으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런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신을 외면하지 않는 시선입니다.
진정한 친구 하나 없는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나를 인정해 주는 관심입니다.
한번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 보겠습니다.
그냥 불러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처럼 불러보겠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친구처럼 불러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기꾼 죄인 배신자라고 정죄하며 불렀을 때 예수님만이 나에게 삭개오야라고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되게 하는 사람은 상황과 현실 너머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되게 하는 사람은 그 필요를 따라 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아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감싸 줄 수 있는 섬김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을 만날 때 무엇이 필요한지 보이십니까? 보았다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방법을 모르면 열심히 열심히만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했는데도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되게 하는 사람은 먼저 보고, 방법을 알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나의 열심이 앞서지 말고, 예수님처럼 먼저 보고, 방법을 안 후에 한 사람 한사람 세워가는 성도들만 되시길 축언합니다.
두번째, 감사되게 하려면
2. 그와 함께 영의 양식을 먹여야 합니다.
한번 상상을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사기꾼의 집에 오셔서 식사를 함께하고 계십니다. 상식을 넘어 벌어진 이 상황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삭개오의 집에 몰려 듭니다.
“여러분, 여러분 지금 삭개오 세리장, 그 죄인의 집에 예수님이 가셨습니다.
진짜요? 오 주여…… 바리새인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몰려듭니다.”
그리고 모여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왜 사람들이 모여 수군수군 거리는 겁니까?
요즘 같은 세상엔 누가 어디를 가도 신경을 쓰지 않는 세상입니다. 설사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가던 말던 신경을 꺼버린 세상입니다.
그러나 왜 이때는 수군거렸을까요? 한마디로 율법에 갇힌 사고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 입장에서 보면 죄인과 함께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율법과 규례를 가지고 보더라도 공식적으로 인정된 죄인은 진 밖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삭개오는 돌로 쳐 죽여도 되는 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죄인의 집에 머물기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는 그들 입장에선 이해되지 않는 시기심도 발동했습니다. 평생을 율법과 규례를 배워왔던 그들의 시선과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자, 긍휼 없는 정죄의 말로 수근거리는 것입니다.
지금 삭개오라는 한 죄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으로 그 죄인을 보고 계십니까?
분명한 사실은 그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불법으로 빼앗는 사기꾼입니다. 나라를 배신한 배신자와 같은 죄인이며 음녀와 같은 배교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마치 예전부터 사랑했던 사람처럼 이름을 불러 주시고, 그와 함께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상관없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식사를 했다는 말씀이 나오면 저와 여러분은 주목해서 봐야합니다. 정말 주목해서 봐야합니다. 식사를 지금 우리와 같은 수준의 식사로 생각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식사에 함의되어 있는 영적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기록된 식사란 영적 양식을 함께 먹는 시간입니다. 육신의 필요를 따라 먹는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의 양식인 말씀을 함께 먹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과 식사를 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함께 먹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는 것은 죄인의 집에 가서 영의 양식을 직접 먹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식사는 커녕 욕을 했습니다. 그의 죄를 정죄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받기 힘든 기도를 드리며 시대적 왕따만 시켰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식사를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식사를 즐겨하십니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서 식사를 하십니까? 아니면 죄인들의 집에 가서(믿지 않는 분을 말하는 거지요?) 식사도 하고 때로는 내 집에도 초대해서 식사를 하고 계십니까?
중요한 것은 예수님처럼 식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식사를 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복음은 그들의 영의 양식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감사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양식을 먹은 사람은 그 말씀의 능력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감사를 줄 수 없지만 복음이 감사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식사를 하시면서 감사되게 하는 일이 있기를 축언합니다.
3. 스스로 변화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죄인들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아주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듣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씀을 직접 듣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태초이전부터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고, 나에게 대한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듣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
삭개오에게 그동안 죄로 인하여 머물렀던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떠나가지 않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아주 새로운 마음이 찾아옵니다.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JOY가 들어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이 주실 수 있는 Great Joy를 선물 받은 것입니다.
1) 예수님이 내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 얻기 시작했습니다.
2) 예수님이 나와 함께 머물며 식사를 하시며 주신 복음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3)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얻은 것입니다.
분명 삭개오는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주신 은혜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삭개오의 이런 기록이 있기 전에 같은 부자이지만 은혜를 거부한 부자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이 부자는 같은 맥락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심히 근심하더라”, 같은 소식을 듣고도 “크게 근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더라”입니다.
다시 말해 같은 말씀을 듣고도 근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을 들을 때 기쁨을 얻습니까? 아니면 근심을 얻습니까?
[간증]
교회는 오래 출석하지만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등 헌금이 되지 않는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헌금하는 하는 시간이 오면 늘 시험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를 들어 오실 때도 헌금통이 보이면 일부러 멀리 있는 입구를 통해서 들어오십니다.
헌금은 아직 근심꺼리고, 외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설교 말씀을 듣고 깨닫습니다. 헌금은 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리고 헌금을 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헌금을 자신이 하고 싶은 곳에 하는 것입니다.
그 상황을 살펴보니 이렇습니다.
십일조를 내면 부모님께 드릴 용돈이 없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나면 십일조를 낼 형편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 만큼 부모님께 용돈을 드립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분에게 어떤 권면을 하면 좋을까요?
예수님처럼 하시면 됩니다. 복음을 듣게 하시고, 말씀의 은혜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이분은 믿음이 자라, 지금 그 분은 믿음으로 십일조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 커서 부모님께도 용돈을 수년째 드리고 계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근심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고 계신 겁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삭개오가 받은 기쁨, Great Joy는 어느 정도일까요?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말씀으로 기쁨을 얻은 삭개오입니다. 자신이 큰 죄에서 용서 받았다는 진리를 깨닫자 아주 큰 변화가 그에게 생긴 것입니다.
1) 주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되돌려 주겠습니다.
2) 만일 내가 예전과 같이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로 갚겠습니다.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을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듣습니다.
나를 정죄하고 비판하고 조롱하고 있는 사람들은 삭개오의 이런 결단에 놀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와 여러분이 놀라야 하는 것은 재산을 내어놓고, 불의한 행위를 네배로 갚겠다는 삭개오의 결단이 아닙니다.
정말 저희가 놀래야 하는 것은 삭개오가 무엇 때문에 스스로 변했냐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복음을 들었을 때입니다. 예수님이 식사를 함께 하시면서 영의 양식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영의 양식을 충만히 먹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삭개오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시 않았을 때 “예수님은 찾아 오셔서 불러 주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자, 마치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신 것처럼 들었습니다.
그 순간 외로웠던 마음, 외면당하고 조롱당했던 마음, 상처받았던 모든 마음이 모두 치유되고 따뜻한 마음로 변화됩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한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늘 자신의 집에서 먹고 마시며, 자신이 용서받음을 확신합니다.
삭개오는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도 크기에, 그 기쁨이 너무도 크기에 변화를 결단했 싶습니다. 하나님, 제 재산의 절반을 헌금하겠습니다. 앞으로 불법을 저지른 일이 있을 때에는 빼앗은 것의 4배로 갚겠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뉘우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불의하게 얻은 것을 스스로 내 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짜 은혜를 받으면 그 열매는 진정한 변화와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되게 하는 사람은 필요한 것을 보고 줄수 있어야 합니다. 아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 그와 함께 영의 양식을 먹여야 합니다. 정죄하며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함께 육과 영을 기쁘게 하는 양식을 먹여야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되게 하는 사람은 스스로 변화되게 해야 합니다. 새롭게 얻은 믿음을 붙잡는 확신을 갖게 하면 받은 은혜가 커서 스스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감사되게 하는 성도의 삶으로 “오늘 이 집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라고 선포하는 복된 종들만 되시길 축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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