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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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주신 되신 하나님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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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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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소제목–6 NKRV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목자는 양으로 지키는 직업을 말합니다.
그리고 목자는 언제나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돌보고 지키는 자를 뜻합니다.
즉 목자가 있음으로 인해서 양들이 편안하게 쉼을 얻고 평안한 삶을 살아갈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 되심을 말하고 있으며,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해 주실것을 말하고 있는것 입니다.
목자는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에게 맡겨진 양으로 돌보기위해 양들이 있는 환경을 돌아보고 살피면서 어딘가 부족한것은 없는지, 혹은 위험한 짐승 은 없는지를 쉼없이 살피게 됩니다. 인간의 목자들도 이렇게 세심하게 살필진데, 하물며 만물의 주인되신 한나미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면, 이세상 그 무엇보다도,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우리가 누릴수 있어야 하지 않겟습니까?
물론 양들에게는 목자 있다 할지라도, 양들은 그저 제 갈길만 묵묵히 갈것입니다.
목자가 있음을 인지 하지도 못하고, 그저 자신들이 살만한곳으로, 먹이가 풍부한 곳으로 그렇게 물 흘러가듯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그러한 여정 가운데에 때로는 절벽을 만나고, 큰 강이 그 길을 가로 막을것이며, 흉포한 맹수들이 나와서 그들의 삶을 위협하게 될것인데, 그때 비로서 목자의 능력이 나ㅏ나게 되는것 입니다. 목자가 양들의 앞에 나타난 장에물들을 치워주고, 절벽에 떨어진 양들을 지팡이를 통해서 끌어 올려주며, 양들을 위협하는 맹수들을 쫒아내 줄것입니다.
이러한 목자가 바로 우리의주인되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인것 입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 (2-3절)
지키시는 하나님 (4-5절)
목자되신 하나님은 우리의 갈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양들은 그들이 갈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저 앞만 보고 갈뿐입니다.
그길의 끝에서 낭떠러지나 맹수의 숲이 나올수도 있고, 푸른 초장이 나올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목자가 이끄는 양들은 목자의 발걸음을 쫒아 그길만을 따라갑니다.
목자는 양들을 잘 먹이고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양들이 먹을 넓은 초원과 호수가 있는곳, 맹수가 없어 안전한 곳으로 양들을 이끄는 것 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이와 같이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 이시며, 아버지 아시며, 우리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의 안전을 지키고자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여행 가운데에 폭풍이나 비를 만나고, 맹수를 만나는등 어려움은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 또한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지켜주시는 삶은 하나님 아버지가 목자된 삶은
그러한 위협에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방패와도 같습니다.
지키는 목자가 없는 양들의 무리는 분명 지키는 이가 없기 때문에 피해를 입고, 때로는 맹수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을것 입니다. 하지만 양들을 지키는 목자가 있는 양때는 그러한 위협으로 부터 큰 위협 없이 안전하게 살아갈수 있는것 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요 방패 이시며, 우리를 지키는 산성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보살피듯,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분
그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백성을 고난속에 두심으로 한민족의 하나님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하나님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시대이며, 도리어 신을 부정하고, 그 권위에 도전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들은 신의 권위에 도전을 하게 된것일까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부름에 응답해 주시는분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의 사건에서 나타나듯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혹은 동경에 의해서 자신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닮고 싶은 욕망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수 있을것 입니다.
하와는 분명 뱀의 꼬임에 빠져서 선악과를 먹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서 입니다. 어째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었던것인까는 조금만 유추해보면 쉽게 답이 나올것 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등을 보며 자라나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가듯이 아담 과 하와 역시 그러했을것 입니다. 그렇게 하와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우리에게 원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를 떠넘기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분명 하와를 모든 산자의 어머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모든 인류 문명의 시초가 되며,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들은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게 됩니다만, 역시 인간은 욕망의 화신이어서인지는 모르겟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 혹은 그와 같은 위치에 서고 싶기 때문인지 여전히 바벨탑을 쌓아가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초창기 바벨탑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 인류는 언어가 갈라지고, 소통의 장애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벌이며, 저주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저주를 극복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과학이란 이름의 도구를 손에 쥐고, 하나님의 신비를 지금도 파해쳐 나가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것은 바벨탑이 무너진 원인 입니다.
과거 손양원 목사님이 하신 설교중에 바벨탑이 무너진 원인에 대한 설교가 있었습니다. 이 설교에서 바벨탑이 무너진 원인을 4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손양원 바벨탑을 무너뜨리신 하나님 (창세기 12장)

바벨탑을 무너뜨리신 하나님

창세기 12장

홍수 이후 100년경이었습니다. 바벨은 ‘혼란’의 뜻으로 바벨탑은 세계 3대 건물 중 하나입니다. 중국의 만리성萬里城(만리장성), 애굽 나일 강 건너 지하 왕궁이 3대 건물입니다. 바벨탑은 7층 2100규빗1으로 상층은 월신月神, 하층은 지신地神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바벨탑을 깨뜨리신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주를 깨뜨리실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어긴 바벨탑을 무너뜨리셨습니다.

1. 불신의 탑이기 때문에 무너뜨리심

높은 탑을 세워 놓으면 홍수가 나도 구원을 얻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망치 아니하리라고 하셨는데 그 언약을 불신하고 탑을 쌓았습니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불신의 탑을 무너뜨리시고 말았습니다. 왜 모세가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까? 불신과 의심을 깨뜨리십시오. 탑 꼭대기에는 하나님의 손이 닿지 아니하겠습니까?[시 139:7–8]

2. 명예의 탑이기 때문에 무너뜨리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목적이 아니고 자기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명예의 탑을 쌓습니다. 기독자여, 명예의 바벨탑을 깨뜨리십시오.

3. 인의人意(사람의 뜻) 계획을 깨뜨리심

흩어지지 말고 모여 살자는 뜻이었습니다. 인간들은 ‘대동단결大同團結하자, 일의일심一意一心(하나의 뜻과 하나의 마음)하자’ 하였지만 다 깨뜨리셨습니다.

신의神意와 인의人意가 합하지 못하고 인의뿐이면 무너집니다. 가톨릭은 대동단결의 뜻, 프로테스탄트는 반항한다는 뜻입니다. 루터는 개인이었지만 인의에 반항하였습니다. 인류 역사를 거울로 보십시오. 인의의 계획은 다 깨뜨려지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인의’를 세우려는 기독자여, 반성하십시오. 신의를 어그러뜨리는 단체 기관은 무너지고 맙니다. 좌우전후를 살피십시오. 자기를 살피십시오[요 19:10–11].

4. 자력득구自力得救의 탑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수양의 노력으로, 자기의 지용덕智勇德(지혜, 용기, 덕)으로, 자기의 의義로, 율법적 지식으로, 이렇게 자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충돌하려다가 망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아담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던 에녹과 엘리야는 승천하였습니다. 고전古傳에 바벨탑은 대풍大風으로 무너졌다고 합니다. 인간이 자기 뜻으로 하나님의 뜻에 충돌하려다가는 대풍이 일어납니다. 깨어집니다.

진리의 탑을 세우십시오. 진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진 후에 신앙[아브라함]의 세계가 나타납니다. 인간의 탑이 무너진 후에야 하나님의 진리의 탑이 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가는 곳마다 반드시 세 가지를 하였습니다. (1) 제단 (2) 샘물 (3) 장막을 쌓았습니다. 제단은 기도, 샘물은 생명수, 장막은 세상의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샘물은 또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믿음의 탑, 소망의 탑, 사랑의 탑, 영원한 탑, 진리의 탑을 세우십시오.

1948년 1월 25일 주일

불신의 탑이기 때무네 무너뜨리심
우리는 과거 바벨탑에 주인들이 행했던 실수를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하니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기 위해서는 나의 힘과 능력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에 의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것 입니다.
혼세상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 되셨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목자는 자신의 양을 지키는 직업이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6절)
이러한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매순간순간 하난미의 이름을 찬양하며 사는것,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갈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것 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우리를 보고 기뻐하시며, 그것을 통하여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게 되실것 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하나님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시대이며, 도리어 신을 부정하고, 그 권위에 도전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들은 신의 권위에 도전을 하게 된것일까요?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의 사건에서 나타나듯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혹은 동경에 의해서 자신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닮고 싶은 욕망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수 있을것 입니다.
하와는 분명 뱀의 꼬임에 빠져서 선악과를 먹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서 입니다. 어째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었던것인까는 조금만 유추해보면 쉽게 답이 나올것 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등을 보며 자라나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가듯이 아담 과 하와 역시 그러했을것 입니다. 그렇게 하와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우리에게 원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를 떠넘기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분명 하와를 모든 산자의 어머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모든 인류 문명의 시초가 되며,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들은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게 됩니다만, 역시 인간은 욕망의 화신이어서인지는 모르겟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 혹은 그와 같은 위치에 서고 싶기 때문인지 여전히 바벨탑을 쌓아가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초창기 바벨탑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 인류는 언어가 갈라지고, 소통의 장애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벌이며, 저주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저주를 극복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과학이란 이름의 도구를 손에 쥐고, 하나님의 신비를 지금도 파해쳐 나가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것은 바벨탑이 무너진 원인 입니다.
과거 손양원 목사님이 하신 설교중에 바벨탑이 무너진 원인에 대한 설교가 있었습니다. 이 설교에서 바벨탑이 무너진 원인을 4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손양원 바벨탑을 무너뜨리신 하나님 (창세기 12장)

바벨탑을 무너뜨리신 하나님

창세기 12장

홍수 이후 100년경이었습니다. 바벨은 ‘혼란’의 뜻으로 바벨탑은 세계 3대 건물 중 하나입니다. 중국의 만리성萬里城(만리장성), 애굽 나일 강 건너 지하 왕궁이 3대 건물입니다. 바벨탑은 7층 2100규빗1으로 상층은 월신月神, 하층은 지신地神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바벨탑을 깨뜨리신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주를 깨뜨리실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어긴 바벨탑을 무너뜨리셨습니다.

1. 불신의 탑이기 때문에 무너뜨리심

높은 탑을 세워 놓으면 홍수가 나도 구원을 얻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망치 아니하리라고 하셨는데 그 언약을 불신하고 탑을 쌓았습니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불신의 탑을 무너뜨리시고 말았습니다. 왜 모세가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까? 불신과 의심을 깨뜨리십시오. 탑 꼭대기에는 하나님의 손이 닿지 아니하겠습니까?[시 139:7–8]

2. 명예의 탑이기 때문에 무너뜨리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목적이 아니고 자기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명예의 탑을 쌓습니다. 기독자여, 명예의 바벨탑을 깨뜨리십시오.

3. 인의人意(사람의 뜻) 계획을 깨뜨리심

흩어지지 말고 모여 살자는 뜻이었습니다. 인간들은 ‘대동단결大同團結하자, 일의일심一意一心(하나의 뜻과 하나의 마음)하자’ 하였지만 다 깨뜨리셨습니다.

신의神意와 인의人意가 합하지 못하고 인의뿐이면 무너집니다. 가톨릭은 대동단결의 뜻, 프로테스탄트는 반항한다는 뜻입니다. 루터는 개인이었지만 인의에 반항하였습니다. 인류 역사를 거울로 보십시오. 인의의 계획은 다 깨뜨려지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인의’를 세우려는 기독자여, 반성하십시오. 신의를 어그러뜨리는 단체 기관은 무너지고 맙니다. 좌우전후를 살피십시오. 자기를 살피십시오[요 19:10–11].

4. 자력득구自力得救의 탑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수양의 노력으로, 자기의 지용덕智勇德(지혜, 용기, 덕)으로, 자기의 의義로, 율법적 지식으로, 이렇게 자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충돌하려다가 망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아담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던 에녹과 엘리야는 승천하였습니다. 고전古傳에 바벨탑은 대풍大風으로 무너졌다고 합니다. 인간이 자기 뜻으로 하나님의 뜻에 충돌하려다가는 대풍이 일어납니다. 깨어집니다.

진리의 탑을 세우십시오. 진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진 후에 신앙[아브라함]의 세계가 나타납니다. 인간의 탑이 무너진 후에야 하나님의 진리의 탑이 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가는 곳마다 반드시 세 가지를 하였습니다. (1) 제단 (2) 샘물 (3) 장막을 쌓았습니다. 제단은 기도, 샘물은 생명수, 장막은 세상의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샘물은 또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믿음의 탑, 소망의 탑, 사랑의 탑, 영원한 탑, 진리의 탑을 세우십시오.

1948년 1월 25일 주일

우리는 과거 바벨탑에 주인들이 행했던 실수를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하니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기 위해서는 나의 힘과 능력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에 의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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