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이 목마름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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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래햄 그린이라는 소설가가 쓴 <A Burn Out Case> (소진된 삶의 사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퀘리라는 한 성공한 건축가가 있었는데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에 후미진 땅 콩고로 인생의 항로를 바꿔 들어갑니다. 거기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프리카 땅의 처참한 기아와 빈곤을 목격하게 된 후,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자신의 건축기술을 병원을 지어주는데 사용하면서, 제2의 인생, 소명을 재정립하는 삶으로 접어들어갑니다. 자신에게 다시 본래 있었던 곳, 화려한 삶의 무대로 되돌아올 것을 권하는 친구에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삶에 대한 열망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사랑하면서 살수가 없다네. 나의 첫번째 인생 끝에서 열망은 종착점에 다다르게 되었고, 내 삶의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었다네.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애를 썼으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 겉으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인가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것 같았으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지 진정 내 것은 아니었어. 나를 다시는 생명없는 얼어붙은 땅으로 몰아내려 하지 마시게.”
여러분은 살면서 이 소설의 주인공 같은 경험을 해 보신적 없습니까? 삶은 고되고, 그 고된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이 부서져라 달려왔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실종된 것 같아요. 모든 것에 흥미가 없어지고, 생은 건조해져 있는 가운데, 어느날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나 우두커니 앉았는데 내 마음이 그렇게 허전하고, 가슴이 시려서 한동안 잠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그 허전함이 뭘까요? 마치 가슴 한복판이 뻥뚫린 듯 하여, 한 여름인데도 마음에 솔바람이 지나가는 것도 같고, 정신없이 살때는 몰랐는데, 내가 뭔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해 있으며,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허전함 말입니다.
‘내가 누군가와 관계가 끊어져 있어 외로운가 보다’ 싶어, 카톡을 열어 connection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열어 세상과 접속을 시도하기도 하고, 나가서 산책도 하면서 몸에 활력을 북돋워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요, 그는 곧 같은 허전함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런 가을이 되면 그 마음이 더 시릴지도 모릅니다. 실존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안에 있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인간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인간 내면의 진실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허전함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고, 다만 <사마리아 여자>라고 호칭을 부칩니다. 이 여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18v에 드러나 있습니다. 다섯 남자를 남편으로 가졌다 합니다. 소위 팔자가 드센 여자입니다. 성경은 이 여자가 성적으로 문란해서 남편을 다섯이나 반갈아 가면서 가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을 우물가에서 만났지만, 예수님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이 여자…어린 시절에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어서 그런지, 사랑 받아야 할 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늘 마음 한켠이 허전하고 외로워서 혼자서는 자기 인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댈 언덕이 찾아 그 영혼이 방황하며 돌아다녔습니다. 한 남편과 살다가 죽었는지 헤어졌는지 모르지만, 떨어지고 나면 또 다른 남자를 찾아 남편을 삼고, 또 다른 남자를 남편으로 삼고 그렇게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남편 다섯을 거치게 되고도 모자라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서 만나니, 이제는 동네 사람들 보기도 부끄러워 정식으로 혼인도 하지 않고 그냥 몰래 숨어서 지내는 것 같습니다. 6v에 보면, “예수님이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시쯤 되었더라.” 그때 7v에 보면 이 여인이 이 시각에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육시 - 우리로 치면 정오 11-1시 사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는 정오 11-1시면 가장 햇빛이 따가운 시간이어서 보통은 사람들이 물길으러 나오지 않는 시각인데 이 여자는 그 시각을 택해서 물 길으러 온 것입니다. 여인이 사람만나기를 부담스러워 했다는 뜻입니다. 에수님은 육신이 피곤하여 그 우물가에 앉으셨는데, 인생이 피곤하여 지치고 닳아버린 여자가 예수님과 마주친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을 건넸습니다. 7v. “물을 좀 주시오.” 파격이었습니다. 당시유대사회는 남녀가 대단히 엄격히 구분되어 서로 말을 섞는 것을 조심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업신여겨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이 땅을 지나가면서도 피해갈 뿐만 아니라, 이들을 만나면 무슨 벌레를 보듯이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자에게 그것도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넨것입니다. 예수님은 알았던 것입니다. 이 뜨거운 대낮에 아무도 모르게 물을 길으러 오는 이 여자의 모습, 그리고 그 공허하고 흔들리는 눈빛을 보고 이 여자가 지금 뭔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여자가 대뜸 대답했습니다. 9v. “당신은 유대인인데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10v.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 이 생수! 뭡니까? 하나님의 선물. 누가 줍니까? 여자 앞에 서 있는 예수님이 여자에게 주는 것. 하지만 여인은 그것이 뭔지 전혀 모릅니다. 툴툴거리듯이 묻지요. 11v.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생수를 구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여인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13v-14.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à 이 샘에서 그저 고여있는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너에게 주는 물 저 바닥에서 다시 솟아나는 <생수>를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하는 샘물이 되리라.
이때 시큰둥하게 예수를 바로보던 여자의 태도가 180도로 반전됩니다. 15v.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러분! 느낌이 오세요? 예수께서 여자에게 던진 단어 하나가 여자가 그동안 일상의 고된 삶에 시달리면서 전혀 캐치하지 못했던 자기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 보여준 것입니다. “너는 목말라해 왔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목마르다.” à 자기가 왜 그토록 홀로 있을 때 견딜 수 없었는지, 왜 한 남자를 잃으면 또 다른 남자를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마음에 솔바람이 자니가면서 허전한 맘에 견딜 수가 없었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목말랐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내면의 진실을 들추어 끌어내어 주니, 이 여자가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라 “주여! 그런 생수 내게 주사 제가 더 이상은 목마르지 않게 해 주옵소서.” 마침내, 자기가 무엇때문에 그렇게 시리고, 허전하고, 답답하고, 외로웠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천년 이름모를 여자 얘기입니까? 아니지요. 바로 오늘 우리 자신의 진실이지요. 저도 여러분도 이 여자처럼 목이 마릅니다. 갈증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저 깊은 곳에는 참된 만족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몸은 음식을 먹어 양분을 받아야 만족하고, 마음은 지식을 가져야 흡족한데, 이 영혼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신을 만났을 때에만 진정한 만족감이 찾아옵니다. (몸은 음식으로 만족하며, 마음으로 지식으로 흡족하지만, 영혼은 하나님을 만났을때만 충족된다). 기독교는 그 신을 하나님이라 합니다. 이 영혼은 절대 잠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에 끊임없이 헤매고 다닙니다. 한 밤에 일어났을 때 찾아오는 허전함, 바로 영혼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나를 이대로 두지 말아줘.” / 홀로 있을 때 찾아오는 외로움! 영혼이 보내는 시그널입니다. “너는 지금 엉뚱한 곳에 와 있는거야.” / 밤을 새워가며 인터넷을 헤매고 다니고 게임과 오락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내 삶은 진정한 만족이 없고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욕망의 갈증을 거짓된 것으로 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à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 갈증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을 때만 비로소 만족함이 옵니다.
저는 유학하러 외국에 가서 10년을 살다가 들어왔습니다. 말이 유학생활이지 사실 유학생들 생활은 거의 빈민수준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 부르심을 따라 첫목회자로 포항을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새로 담임목사님 오셨다고, 새로 지은 좋은 아파트에 온 사방이 최신식이었습니다. 얼마나 눈이 휘둥그래졌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흡족함이 반년을 못갑디다. 내가 30평짜리 아파트 한채만 가지면 소원이 없겠다! 가지고 나면요? 또 다른 목마름이 찾아올 것입니다. 좋은 집을 가져도, 출세를 한 것 같아도, 좋은 자가용을 가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으로는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만족은 없습니다. 그런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그러셨지요? <생수>를 마셔야 한다. 생수 – 새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십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거져 주십니다.
옥한흠 목사님 설교집에 나오는 실화 얘기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자 뒤꽁무니 쫓아 다니면서 별의별 못된 짓을 다했는데 결국 나중에는 싫증이 나더랍니다. ‘여자도 별 것이 아니구나’ 그때부터 마약에 빠졌습니다. 한 모금 피우면 눈이 핑돌고 머리가 빙빙돌면서 황홀한 마음이 드니까 자꾸 맛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공부고 뭐고 다 손을 놓게 되었습니다. 결국 집에서도 쫓겨나 거의 폐인처럼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5년이 지났는데, 이 사람이 목사님 한 분을 만나서 예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 뒤로 폐인처럼 살던 자기 인생을 정리하고,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하루 열시간씩을 일하게 되었습니다. 손에 기름을 묻히면서 열심히 일하느라 손톱 밑이 시커멓게 되어 있는 가운데서도 성경책을 손에서 놓지를 않았답니다. 그때 옥한흠 목사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 친구가 그러더랍니다. “목사님,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예쁜 여학생만 품에 안으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신없이 예쁜 여자 좇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허전함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마약을 피우면서 황홀경에 빠지면 그때 뭔가 갈증이 채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를 못하더군요. 점점 허전함만 커지고 이제는 죽는다는 생각만 가지고 방황하고 있다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셔서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여 한번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에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 5년째입니다. 제가 목사님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자도 채워주지 못했고, 마약도 채워주지 못했고, 그 어떤 것도 채워주지 못했던 이 허전함, 마음의 갈증이 예수님이 들어오시니까 금방 채워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그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헤아려주지 않았던 자기 영혼의 곤고함이 예수님으로 인해 채움을 받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여자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28v. 예수를 전하려고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전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서 자기가 그토록 만나기를 부담스러워했던 사람들 속으로 기쁨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à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속사람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움츠러들었던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머뭇거리지 마시고, 예수 믿기를 오늘 결단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