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ah 4:1-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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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 Season 2
Sum Season 2
Angry Jonah
Angry Jonah
숨 예배 처음 시작하는 날 왔었는데 벌써 시즌 2 마지막 예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예배를 부탁받았을 때 교회에 말씀은 안드렸지만 제가 생각해놓은 휴가 중간이었습니다.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준일 목사님을 통해 숨예배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듣었고 오고 싶었습니다. 요나서 4장을 맡겨주셔서
본문: 요나4:1-11
요나서에 대한 오해가 많이 있습니다.
요나서 하면 고래부터 떠오릅니다. 요나서에는 공식이 있습니다.
yeman 임명하다. 제공하다. 특별한 목적으로 부르다 + 동식물
1:
요나가 탄 배에 큰 바람을 보냅니다. 큰 물고기를 보냅니다. 박넝쿨을 보냅니다. 벌레를 보냅니다. 동풍을 보냅니다.
박넝쿨을 보냅니다. 벌레를 보냅니다. 동풍을 보냅니다.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금요찬양예배제목: 앵그리요나
Introduction하나님께 화내보신 적 있습니까? 화내보고 싶으셨던 적 있습니까?지금은 조금 시들해졌지만 앵그리버드 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휴대폰 게임으로는 아마 가장 유명한 것 같습니다. 거기 나오는 새들을 보면 다 눈썹이 브이자로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욕심쟁이 돼지들이 새의 알을 훔쳐가서 그렇습니다. 돼지에게 복수하는 게임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나도 지금 베리베리 앵그리입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요나가 화가 많이 났습니다. 왜 화가 났죠? 앞에 3장보니까 심판받아 마땅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금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니느웨 사람들이 심판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까?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압제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압제할때 그 일본에 가서 회개의 메세지를 전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는 왕까지 전해져서 왕이 칙령을 내려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까지 그 날을 회개의 날로 지켜 금식하게 했습니다. 이게 요나를 화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3장에 나오는 이 장면이 그 얼마나 설교자들이 꿈에도 사모하는 장면입니까? 설교자들은 죽기전에 꿈이 있습니다. 설교 한번 했는데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집회장소가 뒤집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길 꿈꿉니다. 저도 이런 일이 좀 벌어지면 좋겠습니다. 근데 요나는 지금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그런데 요나는 이거때매 화가 많이 났습니다.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화가 많이 난 앵그리 요나가 앵그리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내가 이럴줄 알았다고. 내가 아는데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라는 것 알았다고. 그래서 내가 고국에 있을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다시스로 도망했던 거라고 막 화를 내면서 대듭니다. 요나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보여지는 요나는 왕하 14:25절 요나책에 나오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 같습니다. 악한 왕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진정한 선지자 였습니다.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알았기 때문에 더욱 더 화가 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비 인자 은혜가 많으셔서 회개해서 심판받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그러므로 주님.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요. 내가 사는 것 보다 죽는게 낫습니다.요나가 특이한 기도방법을 소개합니다. 요나의 마무리 기도. 우리는 보통 기도를 이제 시작하는 시간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이런 식으로 기도를 끝내는데. 기도하면서 미처 구하지 못한 것들도 주님께서 아시고 다 들어주실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러므로 주님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세요. 차라지 죽는게 낫습니다.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이 굉장히 맘에 안듭니다. 불편합니다. 차라리 잘 죽이세요. 지금 요나의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요나의 "유아기적 퇴행" 한마디로 애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부담같은 것들이 찾아오면 갑자기 성숙한 어른이 아이와 같이 행동할때가 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요나가 지금 성 밖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서 떼 부리고 있는것이다. 지금 요나는 지리적으로 니느웨 성이 보이는 동편 언덕에 앉아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하나님의 부흥의 한 가운데에 있는거구요. 요나는 지금 자신이 전한 메시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작 본인 영적으로는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우리들도 이럴때가 있지 않습니까? 남들 오늘 예배 너무 좋았다고. 서로 받은 은혜나누고 있는데 영적 바닥을 치고 있을때 있습니다. 수련회 단기선교 끝났는데 서로 너무 은혜스러웠다고 다 좋아하고 있는데. 본인만 뭐가 마음에 안들어. 뭐가 안맞았어. 마음이 팍상할때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좋았다고 하면 할수록 더 다운되는 때가 있습니다. 영적 축제 가운데 혼자서 영적바닥을 칠때가 있습니다.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그런데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목숨 걸고 바락바락 기도하는 선지자한테 죽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 “수신양호 그래 알았다” 목숨을 거두어 가마~ 저같으면 이럴텐데..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하십니다. 다시 질문하면서 요나의 요구는 무시하시고 대신에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와 관계를 끊거나, 벌을 주시지 않고 요나를 참으십니다
(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앵그리 기도를 드린후에 요나는 성을 떠나 도시 바깥에 작은 천막을 짓고 그 아래 앉습니다.요나의 지금 상황은 선교사 상황과 비슷하다. 집 떠나서 배 타다가, 태풍만나고 바다 속에 던져졌다가 거의 익사직전까지 갔을때 , 물고기 타고 멀미도 가능하고 시차도 다른 지역에 다른 문화에 다른 언어에 선교사 세팅입니다. 창문도 없는 고기타고 와서, 시차적응, 멀미에 음식 맞지 않고, 언어 통하지 않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그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하루 나가서 전하고 왔는데 그 몸이 어떻겠어요.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동쪽에 앉아 쉴만한 터를 만들고 그늘에 앉아서 성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다. 아마도 이 날은 요나는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단한 하루였을 것이다.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식물을 보내십니다.(4: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그런데 더 중요한 식물의 두번째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곤충을 명하셔서 식물을 없애버리고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동풍이 그리고 사막의 강렬한 태양이 요나를 반기절 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랬더니 요나의 마무리 기도가 다시 시작됩니다. 내가 죽는게 낫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려고 지금 벨레, 박넝쿨, 동풍등을 계속 보내셔서 무슨일을 하십니다. 요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겠다고만 합니다. 다시한번 요나에게 니가 성내는게 옳으냐? 물으십니다. 내가 성내는 것이 죽끼까지 옳습니다. 요나의 대답은 죽어도 자기가 맞다는 것이죠.한번 화냈을 때 너 생내는게 맞냐 하면 아 아니지요 그럴만도 한데 넝쿨이 왔다 없어지고 하나님이 너 생내는게 맞냐 또 물으시면 이 때쯤은 좀 알아듣고 네 그렇지요 할만한데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습니다.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이 때 하나님은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두번째 식물의 기능은 레슨이다. 눈에 보이는 시청각 자료지요. 식물이 없어진 것으로 화내는 것이 옳으냐? 옳다. 너는 니가 재배하지도 않았고, 기르지도 않은, 하루에 났다 그 다음날 사라져 버린 식물도 니가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없어지니까 고통스러워 했지않느냐? 니느웨에는 십이만명이나 되는 자들이 있다. 식물이 있고 없고가 덥냐 시원하냐의 문제인데, 편하냐 불편하냐의 문제인데 봐라 내가 니느웨 성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 한 도시가 죽고 사는 문제, 생명과 죽음의 문제인데좌우를 분변못하는 자가 십이만이며 가축도 많이 있는데 내가 불쌍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여기서 요나서가 끝나버립니다. 오픈엔딩이죠. 결론이 없어요. 오늘 본문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요나를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라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지 못하냐?? 너도 내 마음으로 저 니느웨 사람을 보지 못하냐??부흥의 한 가운데서 왜 너만 영적 바닥을 치고 있냐? 성내고 있냐?그것은 내 눈에는 긍휼이 있는데 너의 눈에는 심판만 가득하지 않는냐? 내 마음을 좀 봐라. 내 마음을 공유해달라. 하나님이 페이스북을 하신다면 공유버튼을 많이 누르실 것 같아요.신앙생활의 행복과 불행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시는 여러분 되기실 바랍니다.하나님의 너를 향한 열심을 보라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만 사랑하시고 요나는 사랑하지 않으시나요??다른 사람도 많고 똑똑하고 말 잘 듣는 사람쓰셔도 되고 목숨 걸고 대드는 요나는 벌 받아도 싸고, 자기 고집 안 꺽는 요나는 한번 혼 나봐야 정신차리는게 맞는데 모든 것이 가능하신데도 대책없는 요나를 대책없이 붙드시는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너 아니면 선지자가 없냐?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고… 벌하시지도 않고 관계를 끊으시지도 않고 니느웨 성을 위해 쓰려고 자기가 부르신 요나를 본인이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 하나님이 보이시면 저는 제 할을 다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포기하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요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세요.저와 여러분이 바로 요나입니다.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 행동들 누군가가 다 찍어놔서 다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 어떨 거 같으세요? 불평했던 적, 불 순종했던 적, 자기고집 내려놓지 않고 하나님 앞에 대들었던 적, 내 필요만 구했던적, 내 생각대로 생각하며 불평했던 적, 수도 없이 우리는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우리도 앵그리 기도 하나님께 드린 적 있지 않습니까? 이거 안들어 주면 죽는게 낫다고 우리 어지간하면 한번에 순종 안하잖아요 어지간하면 한번에 감사 모르잖아요. 결국 저와 여러분도 이 하나님의 사랑, 니느웨를 불쌍히 여기시고, 요나를 포기치 않으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지금까지 살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감당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십니까?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알았다면 나의 이 완고함에도 나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를 참으시는 하나님. 제가 이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좀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각도로 보고 싶습니다.
내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요나의 영적 침체가 여기서 출발 했습니다. 나는 이해 못한다. 우리의 경험, 지식, 능력의 한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 생각에 끼워맞추다가 타버립니다. 전선에 허용전류보다 많은 전류가 흐르는 것을 차단해주는 것이 퓨즈입니다. 집에 뚜꺼비집 차단기는 계속 쓸수 있는 차단기형태고 퓨즈는 한번 타면 갈아끼는 형태의 차단기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 크기의 전압이 흐르는데 인간크기의 퓨즈 끼워봤자 순식간에 녹아버립니다.
요나가 화가 많이 났습니다. 앞에 3장보니까 심판받아 마땅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금식했기 때문입니다. 요나 생각에는 심판이 맞는데 회개를 주시는 겁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꾸준히 괴롭혀온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메세지를 전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는 왕까지 전해져서 왕이 칙령을 내려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까지 그 날을 회개의 날로 지켜 금식하게 했습니다. 이게 요나를 화나게 했습니다. 3장에 나오는 이 장면이 그 얼마나 설교자들이 꿈에도 사모하는 장면입니까? 저도 꿈이 있습니다. 어디 초청받고 가서 설교 했는데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집회장소가 뒤집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길 꿈 꿉니다. 저도 이런 일이 좀 벌어지면 좋겠습니다. 근데 요나는 지금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그런데 요나는 이거때매 화가 많이 났습니다.
여러분들도 가끔 하나님께 화나지 않습니까? 나는 기적을 받을 만한 시간인것 같은데 기다림과 인내를 받을때. 순적한 인도하심을 받을 시간이것 같은데 꼬임을 받고. 인정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순간에 오해를 받을 때 하나님께 화가 나지 않습니까?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화가 많이 난 요나가 앵그리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럴줄 알았다고. 내가 아는데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라는 것 알았다고. 그래서 내가 고국에 있을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다시스로 도망했던 거라고 막 화를 내면서 대듭니다. 딱 내 말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그러므로 주님.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요. 내가 사는 것 보다 죽는게 낫습니다.요나가 특이한 기도방법을 소개합니다. 요나의 마무리 기도. 우리는 보통 기도를 이제 시작하는 시간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이런 식으로 기도를 끝내는데. 기도하면서 미처 구하지 못한 것들도 주님께서 아시고 다 들어주실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러므로 주님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세요. 이 상황이 굉장히 맘에 안듭니다. 불편합니다. 차라리 잘 죽이세요. 지금 요나의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그러므로 주님.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요. 내가 사는 것 보다 죽는게 낫습니다.요나가 특이한 기도방법을 소개합니다. 요나의 마무리 기도. 우리는 보통 기도를 이제 시작하는 시간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이런 식으로 기도를 끝내는데. 기도하면서 미처 구하지 못한 것들도 주님께서 아시고 다 들어주실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러므로 주님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세요. 차라지 죽는게 낫습니다.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이 굉장히 맘에 안듭니다. 불편합니다. 차라리 잘 죽이세요. 지금 요나의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알았기 때문에 더욱 더 화가 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비 인자 은혜가 많으셔서 회개해서 심판받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그러므로 주님.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요. 내가 사는 것 보다 죽는게 낫습니다.요나가 특이한 기도방법을 소개합니다. 요나의 마무리 기도. 우리는 보통 기도를 이제 시작하는 시간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이런 식으로 기도를 끝내는데. 기도하면서 미처 구하지 못한 것들도 주님께서 아시고 다 들어주실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러므로 주님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세요. 차라지 죽는게 낫습니다.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이 굉장히 맘에 안듭니다. 불편합니다. 차라리 잘 죽이세요. 지금 요나의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요나의 "유아기적 퇴행" 한마디로 애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부담같은 것들이 찾아오면 갑자기 성숙한 어른이 아이와 같이 행동할때가 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요나가 지금 성 밖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서 떼 부리고 있는것이다. 지금 요나는 지리적으로 니느웨 성이 보이는 동편 언덕에 앉아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하나님의 부흥의 한 가운데에 있는거구요. 요나는 지금 자신이 전한 메시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작 본인 영적으로는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우리들도 이럴때가 있지 않습니까? 남들 오늘 예배 너무 좋았다고. 서로 받은 은혜나누고 있는데 영적 바닥을 치고 있을때 있습니다. 수련회 단기선교 끝났는데 서로 너무 은혜스러웠다고 다 좋아하고 있는데. 본인만 뭐가 마음에 안들어. 뭐가 안맞았어. 마음이 팍상할때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좋았다고 하면 할수록 더 다운되는 때가 있습니다. 영적 축제 가운데 혼자서 영적바닥을 칠때가 있습니다.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그런데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목숨 걸고 바락바락 기도하는 선지자한테 죽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 “수신양호 그래 알았다” 목숨을 거두어 가마~ 저같으면 이럴텐데..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하십니다. 다시 질문하면서 요나의 요구는 무시하시고 대신에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와 관계를 끊거나, 벌을 주시지 않고 요나를 참으십니다
(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앵그리 기도를 드린후에 요나는 성을 떠나 도시 바깥에 작은 천막을 짓고 그 아래 앉습니다.요나의 지금 상황은 선교사 상황과 비슷하다. 집 떠나서 배 타다가, 태풍만나고 바다 속에 던져졌다가 거의 익사직전까지 갔을때 , 물고기 타고 멀미도 가능하고 시차도 다른 지역에 다른 문화에 다른 언어에 선교사 세팅입니다. 창문도 없는 고기타고 와서, 시차적응, 멀미에 음식 맞지 않고, 언어 통하지 않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그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하루 나가서 전하고 왔는데 그 몸이 어떻겠어요.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동쪽에 앉아 쉴만한 터를 만들고 그늘에 앉아서 성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다. 아마도 이 날은 요나는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단한 하루였을 것이다.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식물을 보내십니다.(4: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그런데 더 중요한 식물의 두번째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곤충을 명하셔서 식물을 없애버리고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동풍이 그리고 사막의 강렬한 태양이 요나를 반기절 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랬더니 요나의 마무리 기도가 다시 시작됩니다. 내가 죽는게 낫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려고 지금 벨레, 박넝쿨, 동풍등을 계속 보내셔서 무슨일을 하십니다. 요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겠다고만 합니다. 다시한번 요나에게 니가 성내는게 옳으냐? 물으십니다. 내가 성내는 것이 죽끼까지 옳습니다. 요나의 대답은 죽어도 자기가 맞다는 것이죠.한번 화냈을 때 너 생내는게 맞냐 하면 아 아니지요 그럴만도 한데 넝쿨이 왔다 없어지고 하나님이 너 생내는게 맞냐 또 물으시면 이 때쯤은 좀 알아듣고 네 그렇지요 할만한데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습니다.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이 때 하나님은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두번째 식물의 기능은 레슨이다. 눈에 보이는 시청각 자료지요. 식물이 없어진 것으로 화내는 것이 옳으냐? 옳다. 너는 니가 재배하지도 않았고, 기르지도 않은, 하루에 났다 그 다음날 사라져 버린 식물도 니가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없어지니까 고통스러워 했지않느냐? 니느웨에는 십이만명이나 되는 자들이 있다. 식물이 있고 없고가 덥냐 시원하냐의 문제인데, 편하냐 불편하냐의 문제인데 봐라 내가 니느웨 성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 한 도시가 죽고 사는 문제, 생명과 죽음의 문제인데좌우를 분변못하는 자가 십이만이며 가축도 많이 있는데 내가 불쌍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여기서 요나서가 끝나버립니다. 오픈엔딩이죠. 결론이 없어요. 오늘 본문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요나를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라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지 못하냐?? 너도 내 마음으로 저 니느웨 사람을 보지 못하냐??부흥의 한 가운데서 왜 너만 영적 바닥을 치고 있냐? 성내고 있냐?그것은 내 눈에는 긍휼이 있는데 너의 눈에는 심판만 가득하지 않는냐? 내 마음을 좀 봐라. 내 마음을 공유해달라. 하나님이 페이스북을 하신다면 공유버튼을 많이 누르실 것 같아요.신앙생활의 행복과 불행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시는 여러분 되기실 바랍니다.하나님의 너를 향한 열심을 보라
지금 요나는 지리적으로 니느웨 성이 보이는 동편 언덕에 앉아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하나님의 부흥의 한 가운데에 있는거구요. 요나는 지금 자신이 전한 메시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영적으로는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럴때가 있지 않습니까? 남들 오늘 예배 너무 좋았다고. 서로 받은 은혜나누고 있는데 영적 바닥을 치고 있을때 있습니다. 수련회 단기선교 끝났는데 서로 너무 은혜스러웠다고 다 좋아하고 있는데. 본인만 뭐가 마음에 안들어. 뭐가 안맞았어. 자기 맘에 뭔가 하나 안 맞으면 다 싫습니다.
마음이 팍상할때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좋았다고 하면 할수록 더 다운되는 때가 있습니다. 영적 축제 가운데 혼자서 영적바닥을 칠때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럴때가 있지 않습니까? 남들 오늘 예배 너무 좋았다고. 서로 받은 은혜나누고 있는데 영적 바닥을 치고 있을때 있습니다. 수련회 단기선교 끝났는데 서로 너무 은혜스러웠다고 다 좋아하고 있는데. 본인만 뭐가 마음에 안들어. 뭐가 안맞았어. 마음이 팍상할때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좋았다고 하면 할수록 더 다운되는 때가 있습니다. 영적 축제 가운데 혼자서 영적바닥을 칠때가 있습니다.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그런데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목숨 걸고 바락바락 기도하는 선지자한테 죽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 “수신양호 그래 알았다” 목숨을 거두어 가마~ 저같으면 이럴텐데..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하십니다. 다시 질문하면서 요나의 요구는 무시하시고 대신에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와 관계를 끊거나, 벌을 주시지 않고 요나를 참으십니다
(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앵그리 기도를 드린후에 요나는 성을 떠나 도시 바깥에 작은 천막을 짓고 그 아래 앉습니다.요나의 지금 상황은 선교사 상황과 비슷하다. 집 떠나서 배 타다가, 태풍만나고 바다 속에 던져졌다가 거의 익사직전까지 갔을때 , 물고기 타고 멀미도 가능하고 시차도 다른 지역에 다른 문화에 다른 언어에 선교사 세팅입니다. 창문도 없는 고기타고 와서, 시차적응, 멀미에 음식 맞지 않고, 언어 통하지 않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그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하루 나가서 전하고 왔는데 그 몸이 어떻겠어요.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동쪽에 앉아 쉴만한 터를 만들고 그늘에 앉아서 성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다. 아마도 이 날은 요나는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단한 하루였을 것이다.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식물을 보내십니다.(4: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그런데 더 중요한 식물의 두번째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곤충을 명하셔서 식물을 없애버리고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동풍이 그리고 사막의 강렬한 태양이 요나를 반기절 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랬더니 요나의 마무리 기도가 다시 시작됩니다. 내가 죽는게 낫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려고 지금 벨레, 박넝쿨, 동풍등을 계속 보내셔서 무슨일을 하십니다. 요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겠다고만 합니다. 다시한번 요나에게 니가 성내는게 옳으냐? 물으십니다. 내가 성내는 것이 죽끼까지 옳습니다. 요나의 대답은 죽어도 자기가 맞다는 것이죠.한번 화냈을 때 너 생내는게 맞냐 하면 아 아니지요 그럴만도 한데 넝쿨이 왔다 없어지고 하나님이 너 생내는게 맞냐 또 물으시면 이 때쯤은 좀 알아듣고 네 그렇지요 할만한데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습니다.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이 때 하나님은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두번째 식물의 기능은 레슨이다. 눈에 보이는 시청각 자료지요. 식물이 없어진 것으로 화내는 것이 옳으냐? 옳다. 너는 니가 재배하지도 않았고, 기르지도 않은, 하루에 났다 그 다음날 사라져 버린 식물도 니가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없어지니까 고통스러워 했지않느냐? 니느웨에는 십이만명이나 되는 자들이 있다. 식물이 있고 없고가 덥냐 시원하냐의 문제인데, 편하냐 불편하냐의 문제인데 봐라 내가 니느웨 성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 한 도시가 죽고 사는 문제, 생명과 죽음의 문제인데좌우를 분변못하는 자가 십이만이며 가축도 많이 있는데 내가 불쌍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여기서 요나서가 끝나버립니다. 오픈엔딩이죠. 결론이 없어요. 오늘 본문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요나를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라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지 못하냐?? 너도 내 마음으로 저 니느웨 사람을 보지 못하냐??부흥의 한 가운데서 왜 너만 영적 바닥을 치고 있냐? 성내고 있냐?그것은 내 눈에는 긍휼이 있는데 너의 눈에는 심판만 가득하지 않는냐? 내 마음을 좀 봐라. 내 마음을 공유해달라. 하나님이 페이스북을 하신다면 공유버튼을 많이 누르실 것 같아요.신앙생활의 행복과 불행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시는 여러분 되기실 바랍니다.하나님의 너를 향한 열심을 보라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그런데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목숨 걸고 바락바락 기도하는 선지자한테 죽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 “수신양호 그래 알았다” 목숨을 거두어 가마~ 저같으면 이럴텐데..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하십니다. 다시 질문하면서 요나의 요구는 무시하시고 대신에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와 관계를 끊거나, 벌을 주시지 않고 요나를 참으십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어떻게 참으시는가?
그런데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목숨 걸고 바락바락 기도하는 선지자한테 죽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 “수신양호 그래 알았다” 목숨을 거두어 가마~ 저같으면 이럴텐데..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하십니다. 다시 질문하면서 요나의 요구는 무시하시고 대신에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와 관계를 끊거나, 벌을 주시지 않고 요나를 참으십니다
(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앵그리 기도를 드린후에 요나는 성을 떠나 도시 바깥에 작은 천막을 짓고 그 아래 앉습니다.요나의 지금 상황은 선교사 상황과 비슷하다. 집 떠나서 배 타다가, 태풍만나고 바다 속에 던져졌다가 거의 익사직전까지 갔을때 , 물고기 타고 멀미도 가능하고 시차도 다른 지역에 다른 문화에 다른 언어에 선교사 세팅입니다. 창문도 없는 고기타고 와서, 시차적응, 멀미에 음식 맞지 않고, 언어 통하지 않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그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하루 나가서 전하고 왔는데 그 몸이 어떻겠어요.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동쪽에 앉아 쉴만한 터를 만들고 그늘에 앉아서 성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다. 아마도 이 날은 요나는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단한 하루였을 것이다.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식물을 보내십니다.(4: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그런데 더 중요한 식물의 두번째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곤충을 명하셔서 식물을 없애버리고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동풍이 그리고 사막의 강렬한 태양이 요나를 반기절 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랬더니 요나의 마무리 기도가 다시 시작됩니다. 내가 죽는게 낫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려고 지금 벨레, 박넝쿨, 동풍등을 계속 보내셔서 무슨일을 하십니다. 요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겠다고만 합니다. 다시한번 요나에게 니가 성내는게 옳으냐? 물으십니다. 내가 성내는 것이 죽끼까지 옳습니다. 요나의 대답은 죽어도 자기가 맞다는 것이죠.한번 화냈을 때 너 생내는게 맞냐 하면 아 아니지요 그럴만도 한데 넝쿨이 왔다 없어지고 하나님이 너 생내는게 맞냐 또 물으시면 이 때쯤은 좀 알아듣고 네 그렇지요 할만한데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습니다.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이 때 하나님은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두번째 식물의 기능은 레슨이다. 눈에 보이는 시청각 자료지요. 식물이 없어진 것으로 화내는 것이 옳으냐? 옳다. 너는 니가 재배하지도 않았고, 기르지도 않은, 하루에 났다 그 다음날 사라져 버린 식물도 니가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없어지니까 고통스러워 했지않느냐? 니느웨에는 십이만명이나 되는 자들이 있다. 식물이 있고 없고가 덥냐 시원하냐의 문제인데, 편하냐 불편하냐의 문제인데 봐라 내가 니느웨 성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 한 도시가 죽고 사는 문제, 생명과 죽음의 문제인데좌우를 분변못하는 자가 십이만이며 가축도 많이 있는데 내가 불쌍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여기서 요나서가 끝나버립니다. 오픈엔딩이죠. 결론이 없어요. 오늘 본문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요나를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라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지 못하냐?? 너도 내 마음으로 저 니느웨 사람을 보지 못하냐??부흥의 한 가운데서 왜 너만 영적 바닥을 치고 있냐? 성내고 있냐?그것은 내 눈에는 긍휼이 있는데 너의 눈에는 심판만 가득하지 않는냐? 내 마음을 좀 봐라. 내 마음을 공유해달라. 하나님이 페이스북을 하신다면 공유버튼을 많이 누르실 것 같아요.신앙생활의 행복과 불행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시는 여러분 되기실 바랍니다.하나님의 너를 향한 열심을 보라
(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요나의 지금 상황은 선교사 상황과 비슷하다. 집 떠나서 배 타다가, 태풍만나고 바다 속에 던져졌다가 거의 익사직전까지 갔을때 , 물고기 타고 멀미도 가능하고 시차도 다른 지역에 다른 문화에 다른 언어에 선교사 세팅입니다. 창문도 없는 고기타고 와서, 시차적응, 멀미에 음식 맞지 않고, 언어 통하지 않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그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하루 나가서 전하고 왔는데 그 몸이 어떻겠어요.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동쪽에 앉아 쉴만한 터를 만들고 그늘에 앉아서 성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다. 아마도 이 날은 요나는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단한 하루였을 것이다.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식물을 보내십니다.(4: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그런데 더 중요한 식물의 두번째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곤충을 명하셔서 식물을 없애버리고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동풍이 그리고 사막의 강렬한 태양이 요나를 반기절 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랬더니 요나의 마무리 기도가 다시 시작됩니다. 내가 죽는게 낫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려고 지금 벨레, 박넝쿨, 동풍등을 계속 보내셔서 무슨일을 하십니다. 요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겠다고만 합니다. 다시한번 요나에게 니가 성내는게 옳으냐? 물으십니다. 내가 성내는 것이 죽끼까지 옳습니다. 요나의 대답은 죽어도 자기가 맞다는 것이죠.한번 화냈을 때 너 생내는게 맞냐 하면 아 아니지요 그럴만도 한데 넝쿨이 왔다 없어지고 하나님이 너 생내는게 맞냐 또 물으시면 이 때쯤은 좀 알아듣고 네 그렇지요 할만한데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습니다.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이 때 하나님은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두번째 식물의 기능은 레슨이다. 눈에 보이는 시청각 자료지요. 식물이 없어진 것으로 화내는 것이 옳으냐? 옳다. 너는 니가 재배하지도 않았고, 기르지도 않은, 하루에 났다 그 다음날 사라져 버린 식물도 니가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없어지니까 고통스러워 했지않느냐? 니느웨에는 십이만명이나 되는 자들이 있다. 식물이 있고 없고가 덥냐 시원하냐의 문제인데, 편하냐 불편하냐의 문제인데 봐라 내가 니느웨 성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 한 도시가 죽고 사는 문제, 생명과 죽음의 문제인데좌우를 분변못하는 자가 십이만이며 가축도 많이 있는데 내가 불쌍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여기서 요나서가 끝나버립니다. 오픈엔딩이죠. 결론이 없어요.
오늘 본문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요나를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라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지 못하냐?? 너도 내 마음으로 저 니느웨 사람을 보지 못하냐??부흥의 한 가운데서 왜 너만 영적 바닥을 치고 있냐? 성내고 있냐?그것은 내 눈에는 긍휼이 있는데 너의 눈에는 심판만 가득하지 않는냐? 내 마음을 좀 봐라. 내 마음을 공유해달라. 하나님이 페이스북을 하신다면 공유버튼을 많이 누르실 것 같아요.신앙생활의 행복과 불행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시는 여러분 되기실 바랍니다.하나님의 너를 향한 열심을 보라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만 사랑하시고 요나는 사랑하지 않으시나요??다른 사람도 많고 똑똑하고 말 잘 듣는 사람쓰셔도 되고 목숨 걸고 대드는 요나는 벌 받아도 싸고, 자기 고집 안 꺽는 요나는 한번 혼 나봐야 정신차리는게 맞는데 모든 것이 가능하신데도 대책없는 요나를 대책없이 붙드시는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너 아니면 선지자가 없냐?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고… 벌하시지도 않고 관계를 끊으시지도 않고 니느웨 성을 위해 쓰려고 자기가 부르신 요나를 본인이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내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요나의 영적 침체가 여기서 출발 했습니다. 나는 이해 못한다. 우리의 경험, 지식, 능력의 한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 생각에 끼워맞추다가 타버립니다. 전선에 허용전류보다 많은 전류가 흐르는 것을 차단해주는 것이 퓨즈입니다. 집에 뚜꺼비집 차단기는 계속 쓸수 있는 차단기형태고 퓨즈는 한번 타면 갈아끼는 형태의 차단기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 크기의 전압이 흐르는데 인간크기의 퓨즈 끼워봤자 순식간에 녹아버립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은 사람들이 요나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모습입니다. 메시야는 왕의 모습으로 말을 탄 장군의 모습으로 장수와 군대를 모아 로마를 무찌르고 유다 예루살렘 성을 회복하며 전쟁에서 계속해서 승리하는 메시야! 나귀를 타고 로마 병정에 왠만하면 피할수 있는 십자가형 선고까지 받는 예수님. 그것을 그들의 계획, 기대, 고집이었습니다. 십자가는 그런 자들로 인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불순종했던 적, 자기고집 내려놓지 않고 하나님 앞에 대들었던 적, 그런 하나님께 삐졌던 적, 내 필요만 구했던적, 내 생각대로 생각하며 불평했던 적, 수도 없이 우리는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우리 어지간하면 한번에 순종 안하잖아요 어지간하면 한번에 감사 모르잖아요. 결국 저와 여러분도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십니까?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인애 참고 사랑함을 알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좀 알고 싶습니다.
그 하나님이 보이시면 저는 제 할을 다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포기하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요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세요.저와 여러분이 바로 요나입니다.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 행동들 누군가가 다 찍어놔서 다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 어떨 거 같으세요? 불평했던 적, 불 순종했던 적, 자기고집 내려놓지 않고 하나님 앞에 대들었던 적, 내 필요만 구했던적, 내 생각대로 생각하며 불평했던 적, 수도 없이 우리는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우리도 앵그리 기도 하나님께 드린 적 있지 않습니까? 이거 안들어 주면 죽는게 낫다고 우리 어지간하면 한번에 순종 안하잖아요 어지간하면 한번에 감사 모르잖아요. 결국 저와 여러분도 이 하나님의 사랑, 니느웨를 불쌍히 여기시고, 요나를 포기치 않으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지금까지 살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감당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십니까?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알았다면 나의 이 완고함에도 나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를 참으시는 하나님. 제가 이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좀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각도로 보고 싶습니다.
그 하나님이 보이시면 저는 제 할을 다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포기하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요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세요.저와 여러분이 바로 요나입니다.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 행동들 누군가가 다 찍어놔서 다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 어떨 거 같으세요? 불평했던 적, 불 순종했던 적, 자기고집 내려놓지 않고 하나님 앞에 대들었던 적, 내 필요만 구했던적, 내 생각대로 생각하며 불평했던 적, 수도 없이 우리는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우리도 앵그리 기도 하나님께 드린 적 있지 않습니까? 이거 안들어 주면 죽는게 낫다고 우리 어지간하면 한번에 순종 안하잖아요 어지간하면 한번에 감사 모르잖아요. 결국 저와 여러분도 이 하나님의 사랑, 니느웨를 불쌍히 여기시고, 요나를 포기치 않으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지금까지 살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감당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십니까?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알았다면 나의 이 완고함에도 나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를 참으시는 하나님. 제가 이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좀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각도로 보고 싶습니다.